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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이슈분석] 진보 정권에 ‘옐로카드’ 집어 든 문화·예술인들 

힘센 정의를 약자의 가치에 양보하라! 

7월 7일 발표 안치환 신곡 ‘아이러니’에 진영 떠나 공감대
권력을 질책하는 평범한 시민들간의 연대를 꾀하는 움직임도


▎‘사랑은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 등의 노래로 유명한 민중가수 안치환(오른쪽)씨가 지난 7월 7일 디지털 싱글 ‘아이러니’를 발표했다. / 사진:뉴시스
가수 안치환(54)씨가 지난 7월 7일 신곡 ‘아이러니’를 발표했다. 이날 낮 12시 주요 음원사이트에 곡이 공개될 무렵, 언론에서도 일제히 안씨의 신곡 소식을 쏟아냈다. 코로나19, 5·18민주화운동 등 사회성 짙은 곡들을 잇달아 내놓을 때와는 사뭇 다른 차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 86세대의 정서를 대변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별안간 진보 진영 내의 왜곡된 경향을 꼬집는 메시지를 발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선 ‘안치환, 진중권·김경률에 이어 공개 탈(脫)진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노래 내용이 어떻기에 이런 반응이 나온 걸까.

다음은 ‘아이러니’의 일부 대목이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후렴구에서 안씨는 한층 직설적으로 심정을 드러낸다.

‘아이러니 왜 이러니 죽 쒀서 개 줬니/ 아이러니 다 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곡을 둘러싼 평가가 분분하자 안씨는 7월 10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에서 “나는 진보를 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진보 진영 내에서) 진보의 탈을 쓴 기회주의자를 다룬 노래”라며 “곪은 상처를 베어내지 않고 어떻게 먼 길을 걸어가겠느냐”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안씨는 “세상은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여야 한다”며 “내부의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지 않으면 이명박·박근혜 시절과 다른 게 무엇이겠냐”고 반문했다.

안치환의 외침은 문화예술계로부터 잔잔한 반향을 불러왔다. 문단 내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역시 안치환!”이라며 “아이러니, 다 이러니…”라고 썼다. 또 민음사 대표이사 편집인을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예술을 무서워할 때만 정치는 그럴듯해진다”며 “착한 권력은 없다. 비판을 견디는 권력만 착하다”고 권력의 본령을 언급했다. 영화기획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이쌍규씨는 한 언론 칼럼에서 “‘아이러니’ 노래가 선명하게 나의 뇌를 강타한다. 성찰의 부끄러운 시간”이라며 권력을 향해 다음과 같은 일침을 가했다.

“팬덤정치의 아수라장이다. 공적 윤리와 사적 윤리의 구별이 필요 없다. 이기면 무조건 정의가 되는 각자도생의 몰염치 사회를 강요한다. 그러나 역사상 견제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처참한 말로를 우리는 또렷하게, 너무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편 가르기 아닌 옳고 그름 다룬 것”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7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력은 인간적 정리 놀음, 우리는 책 읽는 연대”라고 말하며 책 [김지은입니다]의 베스트셀러 소식을 전했다. / 사진:장은수 페이스북/ 중앙포토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양분으로 삼는 문화·출판·예술 분야는 전통적으로 시대를 풍자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변화를 꾀하는 진보적 정서에 더 편하게 공명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문화·출판·예술 분야를 일러 ‘진보 진영이 가장 공들여온 정치적 진지(陣地)’라고 간주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보수 성향의 문호 이문열 작가는 “문화 쪽은 진보가 거의 98%까지 장악하고 있다”(2013년 1월 [국민일보] 인터뷰)고 말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당시 인터뷰에서 “지난 10여 년 새 문인들이 보수라고 색을 드러내는 즉시 당하는 불이익이 너무 컸다”며 예술계의 사상·표현의 자유가 갈수록 경색돼간다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그런 문화·출판·예술 분야에서 진보를 향해 회초리를 드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전성욱 문학평론가(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는 “안치환의 노래야말로 예술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라며 “여권 인사들의 일탈과 실패가 반복되면서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비단 안치환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와 시대상을 아파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그들의 절규는 조용하지만 엄중하다. 문재인 정부 지난 3년 동안 좀처럼 보지 못한 현상이기도 하다.


▎최영미 시인은 7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최영미 페이스북/ 연합뉴스
안치환의 노래가 나온 7월 7일은 공교롭게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모친의 발인식이 치러진 날이기도 했다. 모친상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박병석 국회의장 등 주요 정치인들이 공식 직책을 내건 조화와 조기를 보냈다. 한때의 동지였던 안 전 지사 상가에 친노·친문 진영의 유력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런 흐름을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7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조화가) ‘백래시(※사회적 변화에 대한 강한 반발)’로 비치지 않도록, 조화를 개인 이름으로 보내도록(청와대 참모들이) 건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표현은 완곡했지만 대통령을 언급한 메시지라 울림은 강했다. 장 대표는 나아가 “나의 힘센 정의를 약자의 가치에 양보하는 것이 공통 감각의 출발점”이라며 “문학의 자리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그가 말한 ‘약자의 가치’는 다음 날인 8일 페이스북에서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는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하며 미투 운동에 불을 당긴 김지은씨의 책 [김지은입니다] 사진을 페북에 올렸다. “권력은 인간적 정리 놀음, 우리는 책 읽는 연대.....! 김지은입니다, 베스트셀러 역주행.”라는 알 듯 말 듯한 짧은 글과 함께. 이 글의 의미는 그 아래 달린 한 페이스북 친구(‘페친’)의 댓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장 대표의 한 페친은 “권력이 저희들끼리의 동지를 챙길 때 평범한 시민들끼리 연대를 표명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네요. 다 알만한 내용일 거라고 안 읽었던 이 사람도 동참해야겠어요.^^” 이렇게 SNS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공론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진영은 내부에서부터 붕괴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월 10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빈소를 찾은 일부 정치인은 안 전 지사의 징역살이를 자신의 민주화 운동 당시의 경험과 등치시키기도 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아버지도 제가 징역살이할 때 돌아가셨다.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고, 김부겸 전 의원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사정인데 이런 일까지 당했으니까 당연히 (조문을) 와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활동가들이 주축인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는 이들의 발언에 대해 “안희정은 더 이상 민주투사가 아닌 성범죄자”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지낸 노혜경 시인은 7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희정 사건을 아직도 불륜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동지들”을 향해 “(안 전 지사가) 불륜이었다면 저는 안희정 절대 손절 안 했다”고 일갈했다. 노 시인은 이어 “안희정 사건은 매우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노 시인은 청와대 비서관뿐 아니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를 지내는 등 안 전 지사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 정부와 여권의 행태를 지적하는 글을 꾸준히 올려왔다. 지난해 8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될 당시에도 노 시인은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 터져 나오는 폭로들은 ‘조 후보자가 정말로 (검찰개혁) 적임자인가’에 대한 검증이 아니라, ‘조국의 계급·계층이 어디인가’에 대한 폭로”라고 꼬집었다. 또 “진영 논리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조 후보자만 수호하면 될 것 같지만, 그 진영은 내부에서부터 붕괴되고 있다”며 당시 높은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에 취한 여권에 경고음을 날렸다.

이런 내용이 언론을 통해 일반에 알려지자, 노 시인은 기자들을 겨냥해 “왜 (사적 공간인) 페이스북에 쓴 글을 아무데나 가져다 쓰느냐”며 반발했다. 이에 월간중앙은 안 전 지사 조문 논란과 함께 현 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입장을 직접 물었다. 노 시인은 “저는 이 정부의 혼란이 이 정부의 탓이라기보단 시대의 흐름이고 누가 해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렇게 안 전 지사 모친 조문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돌연 목숨을 끊었다. 사람들을 더 경악하게 만든 것은 박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이었다. 7월 8일 서울시청 비서실에서 비서로 근무했던 A씨는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아 박 시장을 성폭력특례법 위반 및 형법상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A씨가 고소한 다음 날 박 시장이 이를 파악했고, 그게 극단적 선택의 주요 원인이었으리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충격이 컸던 탓일까. 여권 관계자들은 좌충우돌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7월 10일 박 전 시장의 조문을 마친 뒤 “고인에 대한 의혹과 관련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뒤 한참을 쏘아봤다. 이 대표는 “XX 자식 같으니라고”라며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7월 13일 “박원순 시장은 누구보다도 성인지 감수성이 높았던 분”이라며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죽음으로써 답했던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진보 여권 때리는 ‘탄광의 카나리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17년 5월 6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걷고 싶은 거리에서 진행된 ‘투표참여 릴레이 버스킹 vote0509’에서 가수 이은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최영미 시인은 7월 13일 자신의 페북에 이렇게 올렸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가 남긴 빛과 그림자가 크다.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방점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찍혔다.

하루 전인 12일 장은수 대표는 페북에 인도의 시인이자 지성인 차크라바르티의 글을 다음과 같이 올렸다.

“당신들이 진정 세계를 실제로 지배하게 될 때, 당신들 지배의 희생자들이 그 지배를 비판할 수 있도록 당신들은 어떤 비판의 관점들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당신들의 전통 내부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당신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당신들은 어떤 자원들을 생산해 낼 수 있습니까? _차크라바르티.”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페북에 덧붙였다. “이는 차크라바르티가 중국 및 인도 친구들한테 한 말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에 적용된다.” 한국의 권력집단에도 적용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은유적으로 집권세력의 행보를 지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한민국에서 친문 집권세력과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노골적으로 권력을 공격한다. 그는 7월 16일 페북에서 처절한 한방을 날렸다. “지금 문빠들이 피해자에게 하는 짓은, 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권인숙 의원에게 했던 짓과 그 본질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때 저들은 권인숙씨가 ‘성을 혁명의 무기화’ 했다고 두드려 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심리상담학과 교수)도 여권의 애도하는 방식,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심 평론가는 “(자살로 인해 박 전 시장) 생전의 미담이 만장으로 나부낀다”며 “도덕적 배수진을 치고 살다가 욕망이 스스로를 배신하고 퇴각로가 없으니 명예자살을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평론가는 그러면서 “고소한 그 처자, 공소권 없음의 그 처자. 그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피해자 중심주의 관점을 강조했다.

칼럼니스트 김종현씨 역시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의 근거 없는 음모론을 직격했다. 김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들을 향해 “자신의 정치적 시야와 목적성, 그리고 감정과 이성의 분리가 안 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며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몰이성의 극치와 일상성을 보여준 이들은 모두 1993년의 박원순과 싸우고 있었다. 1993년부터 6년 동안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박원순이 극복해야 했던 게 바로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었다.”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과 실세들의 행보를 보는 문화·예술계의 시선은 이처럼 불안하게 흔들린다. 오랜 옛날 광부들은 유독가스 누출을 감지하고자 카나리아와 함께 탄광으로 들어갔다. 2020년 한국에서도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시그널을 발산하는 ‘탄광의 카나리아’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절규가 집권세력에게 어떤 울림으로 와 닿는지 궁금하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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