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긴급진단] ‘최숙현 쇼크’로 본 한국 스포츠계의 그림자 

생살여탈권 쥔 지도자··· 선수는 乙로 살 수밖에 

폭행 신고했다가 자칫 문제아로 낙인찍힐 수도
‘운동기계’ 양성 시스템 고쳐야 또 다른 비극 막아


▎고 최숙현 선수 아버지 최영희씨(왼쪽 셋째)가 7월 10일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최숙현 법’ 발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이영표가 네덜란드 프로축구 에인트호벤에서 뛰던 시절 혹독한 적응기를 견뎌낸 비결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고비 때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고는 했다. ‘시궁창에서 짓밟혀보기도 했는데 이까짓 거야 양반이지’ 하면서 이겨냈다. 그때는 지옥 같았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이영표는 1977년생이다. 그가 국가대표의 꿈을 키우던 학창 시절엔 감독에게 ‘빠따’ 몇 번 안 맞아본 선수가 없을 만큼 구타가 일상이었다. 싫어도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강압적인 환경에서 버텨낸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2000년대생들이 한국 스포츠의 차세대로 나섰다. 태릉 국가대표선수촌 시대를 뒤로하고, 최첨단 시설과 장비가 가득한 진천 선수촌이 이들을 맞이했다. 한국 스포츠의 ‘겉’은 몰라보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지옥’이었다.

6월 26일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최숙현(22) 선수가 폭행·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 선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였다.

최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건 최 선수의 전 소속팀 경주시청 김모(42) 감독, 팀 닥터로 불리는 운동처방사 안모(45)씨, 주장 장모(32)씨, 남자 선배 등 네 명이다. 트라이애슬론 청소년대표를 지낸 유망주 최 선수는 2017년부터 경주시청 소속으로 뛰다 지난 1월 부산시청으로 팀을 옮겼다.

최 선수가 남긴 녹취록과 진정서 등에는 김 감독과 안씨의 충격적인 가혹행위가 생생히 담겨 있다. 특히 의사나 물리치료사 면허도 없는 안씨가 마치 지도자처럼 선수 위에 군림했다. 작년 3월 경주시청 소속이던 최 선수는 전지훈련지인 뉴질랜드에서 안씨에게 뺨을 20회 이상 맞고 가슴과 배를 차이는 등 폭행을 당했다. 아침에 복숭아 하나 먹은 것을 김 감독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최 선수가 녹음한 음성파일에는 안씨가 최 선수를 때리는 소리도 담겼다. “이빨 깨물어”라는 말 뒤엔 “짝” 소리에 이어 “커튼 쳐”라는 소리 뒤 다시 “퍽” 소리가 났다.

김 감독은 울고 있는 최 선수에게 “짜지(울지) 마라”, “닥터 선생님께서 알아서 때리시는데 아프냐”, “나한테 죽을래?”라고 했다. 김 감독은 최 선수를 때리던 안씨에게 “일단 한잔하시죠, 선생님. 콩비지찌개 제가 끓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최 선수는 앞에서 흐느꼈다. 최 선수에 따르면 김 감독과 안씨는 최 선수의 체중이 조금 늘었다는 이유로 빵 20만원어치를 억지로 먹으라고 했다. 최 선수는 먹고 토하기를 반복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최 선수 사건으로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다시 드러났다. 스포츠계의 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여자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 폭행 사건이 스포츠계에 충격을 줬다. 조재범 코치가 수차례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은메달을 딴 ‘팀 킴’ 멤버들은 그해 11월 “지도자들이 폭언했다”고 폭로했다. 작년 8월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던 최인철 감독은 과거 인천 현대제철 시절 선수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난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계에서 폭력과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성적 지상주의’를 꼽는다. 국내 운동선수는 보통 초등학교 3~4학년 때 입문한다. 이때부터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초·중·고교 선수는 단기간에 성적을 내야 진학이 결정된다. 대학과 실업팀 역시 당장 성적이 좋아야 취업이 되고, 선수 생활도 이어갈 수 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꾸준히 성적을 내야 자기 자리를 유지한다. 이런 환경은 “메달만 따면 된다”는 성적지상주의로 이어졌다. 국내 아마 종목은 선수층이 매우 얇다. 그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많지 않다. 스타급 선수를 보유한 팀은 몇 년이고 독주할 수 있는 구조다. 한 팀에서 전국체전이나 주요 국내 대회를 수년간 싹쓸이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성적 지상주의가 부른 폭력… 선수는 볼모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2018년 12월 17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진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 육성은 다른 나라 얘기다. 1년간 성적으로 평가받는 지도자는 기회가 있을 때 작은 대회라도 입상 선수를 배출해 실적을 쌓는 게 중요하다. 급해질 수밖에 없다. 한 아마 종목 국가대표 선수는 “선수의 경기력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으면 지도자는 조바심이 생긴다. 경기에 진 선수를 탓하며 욕설을 하기도 하는데, 욕설이 반복되고 강도가 세지면 폭행이 된다”고 말했다.

한 아마 종목 국가대표팀 감독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도 했다. “지도자들은 보통 한 해 동안 선수들이 세운 기록으로 성과를 평가받는다. 선수를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 오히려 부족해서 다그친다. 그러다 보니 폭언과 폭행이 이뤄진다.”

아마 종목 중에서도 ‘비인기 종목’에 속하는 철인3종은 특히 경쟁이 더 치열하다. 국내 등록 선수가 66명에 불과하지만, 실업팀은 12개나 되기 때문이다. 대한철인3종협회 관계자는 “선수들의 월급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해서 감독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신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폭언·폭행하는 지도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좁은 바닥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면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서다. 인맥과 학연으로 끈끈하게 묶여 있는 동종업계 지도자 사이에선 ‘같은 식구(지도자)끼리는 눈감아주고 봐줘야 한다’는 그릇된 사고가 퍼져 있다. 그래야 지도자 생명이 길어지고 권위도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폭력 피해를 본 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긴다고 해도 적응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운동이 인생의 전부인 선수들이 평생 찍힐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도자는 선수에게 운동 말고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악용해 선수의 꿈을 볼모로 삼기도 한다.

“‘라떼’는 맞으면서 했다”… ‘빠따’가 당연한 문화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7월 9일 고 최숙현 선수의 유골이 안치된 경북 성주군의 한 추모공원을 방문해 추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 아마 종목 선수의 학부모는 “선수를 때리는 학교인 걸 알고도 보내는 학부모가 있다. 이런 환경에선 감독·코치의 폭행은 지도의 수단으로 당연시된다”며 “자식이 감독에게 폭언을 듣는 장면을 보거나 폭행을 당했다는 의심이 들어도, 자식 생각해서 못 본 척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조차 눈치 보면서 대들지 못하는 마당에 동료들은 언감생심이다. 괜히 불이익을 당할까 봐 주위에서도 모른 척한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은 “선수 미래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쥔 지도자 밑에서 선수는 ‘을’로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장 지도자들은 현역 시절 폭언·폭력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운동한 세대다. 부진한 선수나, 기대에 못 미치는 선수를 보면 ‘나도 어린 시절에 맞고 운동했다. 선수를 때리면 잘하게 되고 메달도 딴다’는 그릇된 사고를 가진 지도자가 적지 않다.

맞고 자란 선수가 코치가 돼 선수를 때리는 폭력의 대물림이 한국 스포츠에 만연한 이유다. 쇼트트랙 심석희를 폭행해 실형을 받은 조재범 코치가 대표적이다. 영화 [4등]에는 체벌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번번이 4등에 머무는 초등학생 수영 선수에게 코치는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아들의 멍 자국에 화가 난 아버지가 “코치가 선수를 때리냐”고 따진다. 그런데 아들은 오히려 “내가 잘못해서 맞은 것”이라고 코치를 두둔한다. 코치도 “다 너를 위해서 때리는 것”이라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총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초·중·고 선수 인권 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중 5만7557명(91.1%)이 응답했는데, 그중 9035명(15.7%)은 언어폭력을, 8440명(14.7%)은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2212명(3.8%)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초등학교 선수 중 3423명(19.0%)이 폭언과 욕설 등 언어폭력을 겪었다고 답했다. 신체폭력 경험자는 2320명(12.9%)이나 됐다.

주요 가해자는 주로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였다. 더 큰 문제는 신체폭력을 당한 뒤, 초등학생 선수의 38.7%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했다’는 반응은 16.0%에 불과했다. 때리는 지도자는 물론 맞는 학생도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맞고 운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선수. 영화 속 초등학생의 얘기는 현재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가혹행위 강도는 더 커졌다. 같은 해 인권위의 ‘대학 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 결과 설문 대상(4924명) 중 1514명(31%)은 언어폭력을, 1613명(33%)은 신체폭력을, 473명(9.6%)은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초·중·고 학생보다 2~3배나 높은 비율이다.

신체폭력은 전체 응답자 3명 중 1명이 당했을 만큼 심각했다. 특히 신체폭력 경험 선수 중 255명(15.8%)은 일주일에 1∼2회 이상 상습적으로 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맞아야 운동을 잘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는 곳에서 폭력은 일상이었다.

고장 난 채 방치된 선수 보호 장치


▎7월 13일 고 최숙현 선수 사건과 관련해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운동처방사 안모씨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주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 아마 종목 국가대표 선수는 “전국대회에서 부모님이 보시는 가운데 감독에게 심한 욕을 들은 적이 많다. 폭언은 일상이라서 특별히 반감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최동호 소장은 “선수는 어린 시절 운동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그 세계의 위계질서를 배우게 된다. 지도자에게 복종하고, 선배에게 복종해야 하는 스포츠계의 룰을 어기면 안 된다고 배운다”며 “그걸 철저하게 학습한 선수가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 갑질과 폭력이 대물림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선수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해야 할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최 선수는 지난 2월부터 사망 전날까지 4개월여 동안 여섯 차례나 국가인권위원회·검찰·경주시청·대한체육회·대한철인3종협회에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고 진정서를 내고 고소했다.

그는 김 감독 등의 폭행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2월 6일 경주시체육회에 이런 사실을 처음 신고했다. 3월에는 이들을 검찰에 고소한 데 이어 4월 8일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e메일로 신고했다. 최 선수는 6월 22일에는 철인3종협회에, 사망 하루 전날인 6월 25일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수개월 동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구조를 요청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없었다. 최 선수의 절규를 기관들은 사실상 외면했다.

대한체육회의 ‘재심 제도’는 선수들이 지도자에게 가혹행위를 당해도 고발하기 어렵게 한다. 체육회는 그동안 재심에 솜방망이 처벌로 비판을 받았다. 폭력(성폭력)으로 해당 경기단체에서 영구제명을 받은 사람도 재심을 거치면 대부분 징계가 완화됐다. ‘무관용 원칙’ 적용은 말뿐이었다.

올 초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체육회가 징계 처분한 104건 중 33건이 징계 기준 하한보다 낮은 처분을 했다. 몇 년 후 폭력 지도자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고발한 피해자와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수를 보호하는 장치는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다.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내에는 선수 인권 상담실을 설치돼 있다. 하지만 현역 국가대표만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최 선수는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스포츠인권센터에 진정서를 낸 것이다. 스포츠인권센터도 서울 한 곳에만 있다.

최 선수처럼 먼 지역에 있는 선수들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전화나 e메일로는 조사에 한계가 있다.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각 시·도에도 스포츠인권센터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예산 문제로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해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 폭행 사건을 계기로 내놓은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의 핵심은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이다. 외부 독립 기구인 윤리센터는 기존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가 담당하던 스포츠 인권 관련 업무를 넘겨받아 8월에 문을 연다.

하지만 윤리센터는 강제 조사권이 없고, 센터장도 비상근이어서 한계가 있을 것이란 걱정이 많다. 최 선수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제도를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은 7월 10일 “‘고 최숙현 법’을 고인의 아버지 최영희씨와 함께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상 체육계 성폭력 및 폭력 문제 전담기관인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에 관한 규정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피해자 보호와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대표 발의할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스포츠윤리센터의 권한과 의무를 확대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조항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발의할 개정안에는 스포츠윤리센터의 독립적인 업무수행 보장, 행정기관 소속 공무원과 기관·단체 임직원 파견 요청 권한 부여, 폭력·성폭력 신고자에 대한 빠른 긴급 보호 조치와 조사 착수, 신고자와 피해자를 위한 임시보호시설 설치와 운영, 신고자 등에 대한 불이익·방해, 취소 강요 조사 방해 행위 등에 대한 징계 요구권 부여 등이 포함됐다. 신고자를 보호하고, 혐의자에 대한 조사 속도는 높이겠다는 의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계에서 성폭력과 폭력, 승부 조작 등 비위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대책을 내놨다. 작년까지 정부가 최근 12년간 발표한 스포츠 비위 관련 대책만 9개에 이른다. 성폭력·승부 조작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 지도자 징계 정보를 체육 단체가 공유, 비위 지도자 자격을 취소한다는 내용 등이 수차례 담겼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정책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났다. 정책을 내놓기만 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악습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 이유다.

‘도돌이표’ 정부 정책은 그만


▎영화 [4등]의 수영 코치 광수(박해준, 왼쪽)가 초등학생 선수인 준호(유재상)를 빗자루로 때리고 있다.
선수 인권에 대한 인식 부족도 폭력의 일상화를 막지 못하는 요인이다. 대한체육회 선수 인권 담당 부서는 최근 6년간 수차례 부서장을 바꿨다. 무려 8명이다. 한 사람당 1년도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문성이 있을 수 없다.

최 선수는 4월 체육회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석 달 가까이 조사는 진전이 없었다. 훈련장에 CCTV를 설치하고, 강압적 훈련 분위기를 바꾸고, 합숙훈련을 없애는 등의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백 가지 정책보다는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동호 소장은 “제도와 시스템 면에서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왔다고 본다. 문제는 사람이 원칙대로 제대로 운영을 못 하고 있다는 데 있다”며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심석희 사건 때 모든 것이 바뀔 것처럼 작업을 진행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운동기계’를 양성하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며 “이제는 엘리트 체육에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엘리트 체육인들에겐 달갑지 않은 얘기겠지만, 그렇게 해야 앞으로 제2의 최숙현이 안 나온다. 스포츠인의 모든 권리를 국민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하고 정책으로도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 선수 사건이 벌어지자 수영 국가대표 출신 최윤희 제2차관에게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겨라”고 지시했다. 문체부는 그날 바로 최 차관을 단장으로 20명 규모의 특별조사단을 만들고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 협회·경북체육회·경주시체육회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정 교수는 “이번만은 뭔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올림픽 금메달 100개보다 선수의 목숨과 인권이 중요하다”며 “스포츠는 올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 피주영 중앙일보 기자 pih.juyoung@joongang.co.kr

202008호 (2020.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