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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의 ‘온 리버티(on liberty)’] 한국 보수의 길을 묻다(3) 반공 너머 자유주의 

보수, 시장의 실패에 적극 개입해야 

다른 생각 억압하는 전체주의가 열린사회의 진정한 적(敵)
‘맹목적 친문’ 은 개인 숭배와 우상화 모습… 언젠가는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본소득 도입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올해는 4·19 혁명 60주년의 해입니다.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운동의 초석과 같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차례 법을 개정해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사사오입 개헌이었고요. 대통령 중임제한 규정을 없애는 게 목표였습니다.

개헌은 3분의 2가 찬성해야 합니다. 당시 의석수 기준으로는 135.3석이었죠.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6표, 무효 1표가 나왔습니다. 처음엔 135.3석에 못 미쳐 부결됐습니다. 그러나 여당이던 자유당은 135.3을 반올림(사사오입) 하면 135이므로, 찬성 135표를 받아 가결됐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승만과 자유당


▎1954년 11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안이 ‘사사오입’ 논리로 통과되자 야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연임에 성공한 이승만 정권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 야당의 유력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조병옥이 뇌수술 도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실시되면서 관심은 부통령 선거로 쏠렸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야당의 장면이 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개입하면서 부정선거가 됐습니다.

개표를 해보니 이승만·이기붕 정부통령 후보의 득표가 95~98%에 육박하는 지역이 속출했습니다. 조작이 너무 티가 나는 개표 결과에 당황한 자유당은 당시 최인규 내무장관에게 이승만은 80%, 이기붕은 70~80% 선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최종 집계 결과 이승만 88.7%, 이기붕 79.2%의 압도적 당선이었죠. 이것이 바로 3·15 부정선거입니다.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는데, 그 시작을 알린 것은 마산 3·15 의거였습니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이 실종된 것이었죠. 한 달 후 김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습니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유기된 그의 시신을 보면서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4월 18일 고려대생 1000여 명이 서울에서 처음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고, 반공청년단 소속 폭력배들에게 공격받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대학의 학생과 고교생, 시민 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20만여 명의 시민이 광장에 나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계엄령을 내리고 시민들에게 발포해 120명이 사망했습니다.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성명을 발표했죠.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진 이승만 대통령의 공은 분명 인정하지만, 그의 말로가 좋지 않던 것도 분명합니다.

19세기 영국의 종교모독금지법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8개 고교생이 자유당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 사진:대구시청
건국 이후 제대로 기틀을 갖춘 최초의 보수정당인 자유당은 이렇게 몰락했습니다. 당의 핵심 가치는 당명대로 분명 ‘자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당이 진정한 자유주의의 가치, 즉 시민의 자유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개별성과 다양성, 관용의 가치를 갖고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이라는 이름을 썼을까요. 또 역대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은 그를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할까요.

이승만과 자유주의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잠시 19세기 영국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857년 여름의 어느 날 영국 남서부의 콘월(Cornwall)이란 지역에선 한 남자가 크리스트교를 비판하는 말을 대문에 써놨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런던의 중앙형사법원인 올드 베일리(Old Baily)에선 2명의 배심원이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배심원 자격을 빼앗겼습니다. 이들은 당시 재판장에서 엄청난 수모와 야유를 견뎌야 했습니다.

이처럼 종교를 비난했다고 실형을 받고 무신론을 펼쳤다는 이유로 배심원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당시 영국에선 크리스트교를 모독해선 안 된다는 법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음속으로는 신을 부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신을 믿는다’고 거짓 증언했다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양심을 속이면 이익을 얻고, 진실을 말하면 처벌받는 모순된 법이 통용되던 사회였던 것이죠.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영국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어떤 생각과 그 생각의 표현을 금지하는 법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며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는 법과 질서가 영국 정신의 자유를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법적 처벌을 받거나 사회적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처럼 현실적인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공표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유론, On Liberty])

밀은 이와 같은 사회 제도와 관습을 과거의 유물이 남긴 ‘박해의 구습’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절대적인 종교적 믿음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옥죄며 독단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한 것이죠. 이런 사회에선 “진리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어렵고 불관용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거짓으로 위장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밀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모든 신념과 이론, 주장 등이야말로 진짜 ‘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에 대한 믿음을 국가에 대한 믿음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국가에 대한 비판은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그 통치자에 대한 비난은 신성모독으로 여겨집니다. 국가는 신처럼 전지전능한 권력을 갖고 있고, 국민은 신을 숭배하는 신도들처럼 국가의 뜻이라면 언제든 자신의 것을 내어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신념을 우리는 ‘국가주의’라고 부릅니다.

‘국가주의’의 이론적 틀을 만든 사람은 토마스 홉스(1588~1679)입니다. 그는 국가가 전쟁과 같은 외부의 침략과 위협, 내부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무질서, 혼란을 막기 위해 시민들의 계약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스스로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의 신’인 것이죠.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오히려 ‘신약(新約, covenant)’에 가깝습니다. 물론 홉스가 이런 믿음을 가졌던 이유는 당시 그가 살던 국가의 체제는 왕정이었고, 그곳의 최고 권력자는 절대군주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홉스의 ‘국가주의’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정부군과 반란군이 전쟁을 벌여 수백만의 시민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 강대국들이 서로 반대 진영에 서서 약소국가를 마치 체스 판처럼 여기며 엄청난 도박을 벌이고 있죠. 이런 비극이 생긴 이유는 홉스가 말한 국가적 물리력이 자신의 영토와 국민을 지킬 만큼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겪은 것도 당시 대한제국이 국가와 시민을 보호할 만큼 힘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6·25 전쟁을 통해 수백만 명이 죽고 지금까지도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이유 역시 국가적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만한 강력한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제1의 요건인 셈입니다.

국가주의의 원형


▎1981년 ‘부림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변호인](2013). 사회과학 독서모임 소속원 22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법 감금 및 고문을 당한 사건이다. / 사진:CJ ENM
자연스럽게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명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내란과 범죄·무질서를 제압하는 것이었습니다. 총부리를 겨눈 북한과는 달리 서구의 체제를 이식받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국체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발명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국·프랑스, 자유주의를 기치로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미국과는 그 배경이 달랐습니다. 민주주의를 이식받긴 했지만 기본 토양이 되는 시민적 역량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갖고 있지 못했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가 존중받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공산주의에 반대되는 자유세계’라는 진영 논리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는 “20세기 이후 서방의 자유 진영은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강력한 정치·사회 체제로 떠오르면서 큰 위기의식을 느꼈다”며 “특히 미국은 1950~1954년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치며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시기에 한반도에선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이식된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의 파운더스가 건국의 이념으로 삼았던 자유주의와는 달랐습니다.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까지 국가가 강조한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야 한다는 ‘리바이어던’식 국가주의의 의미가 강했던 것이죠. 결국 과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을 생명처럼 여기게 됩니다. 이를 위해 국가가 휘둘렀던 가장 강력한 무기가 국가보안법이었고요.

그래서 2000년대까지만 해도 보수정당은 ‘자유주의’를 공산화로부터 지켜내는 것, 즉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로만 인식했습니다. 지금도 보수 유튜버와 그들의 주된 시청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공산화를 반대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죠. 지난 역사의 과정을 살펴볼 때 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북한의 적화통일과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고 한국을 ‘자유세계’의 대표적인 나라로 굳건히 지켜낸 공은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당시 국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와 같은 상황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공은 인정하되 잘못된 부분도 지적해야 합니다. 즉, 과거 보수를 표방한 정치세력은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만 있을 뿐, 자유주의 즉 ‘시민의 자유’를 깊게 생각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보수정당이 자유당·민주자유당·자유한국당과 같은 당명에 썼던 ‘자유’의 뜻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입니다.

국가주의 향수하는 보수정치


▎7월 1일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이날은 국가안보를 해치는 활동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홍콩 국가안보법’이 시행되는 첫날이었다. / 사진:연합뉴스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에선 공안 검사와 경찰이 독서 모임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한 것이 ‘이적 행위’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죠. 그리고 이들은 대학생들을 기소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이 말한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체제로서의 그것을 의미합니다. 자유주의와는 엄연히 다르죠.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변호사는 법정에서 E.H 카가 ‘빨갱이’라는 검사의 주장을 반박하며 “그는 존경받는 외교관이자 학자”라는 영국대사관의 공문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원조 국가인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학자의 책을 읽고 토론한 것이 왜 ‘빨갱이냐’고 반문합니다.

만일 이 같은 일이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또 오늘날 한국 사회에 벌어졌으면 어땠을까요? 한국에서도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며 사실상 국가주의를 맹신했던 과거의 권력들에겐 체제로서의 자유 진영만 있을 뿐 정치철학으로서 자유주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가주의 사회를 벗어났습니다. 시민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는 민주사회에서 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 내용이 사회주의·공산주의 해당하는 것이라도 말이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불법과 폭력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어야 자유주의 사회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은 과거의 한국식 ‘자유민주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을 ‘반공’으로 착각하고 있던 것이죠. 지난 총선까지도 현재의 여당을 ‘종북’으로 몰아세우며 국가주의 시대의 향수를 자극해 표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국민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여전히 20세기에 매몰돼 있는 것이었죠.

더 큰 문제는 국가주의적 사고에 머물러 있으면서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칭해 시민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의 한 정치인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칭했습니다. “개인과 국가의 힘은 자유에서 나온다”며 ‘000과 자유의 힘’이라는 간판을 걸어놨죠. 그런데 이 정치인은 ‘자유주의 리더’라면서 알렉시스 드 토크빌, 존 로크, 아담 스미스 등 사상가와 함께 이승만과 박정희를 제시했습니다.

4차 혁명과 자유주의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고 자유세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성장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오직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사용토록 한 로크의 법치주의 원리와 개인의 자유와 공감의 원리를 강조한 스미스의 철학을 실천하고 전파한 진정한 ‘자유주의 리더’였는지는 의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반공’으로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국가주의 리더’인 셈이죠.

이들이 과연 로크의 법치주의 원리대로 시민의 뜻을 대표하는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사용했나요. 개인의 자유와 공감의 원리를 강조한 스미스의 철학을 실천하고 전파했을까요. 누차 말하지만 한국의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업적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이들이 시민의 자유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실천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치인이 이들을 자유주의자로 표현한 것은 그가 여전히 과거의 관념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자유주의를 중시하는 선진 민주국가에서 국정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는데 말이죠.

국가주의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무서운 것은 사회의 전 영역에서 시민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 자체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트교를 비방하면 처벌한다는 19세기 영국법이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제한했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오늘날 영국엔 그런 법이 없어진 지 오랩니다. 한국의 시민들도 지난 몇십 년간 자유와 민주의 바람을 타고 많이 성숙한 만큼 보수 정치도 변해야 하는 것이죠.

미국의 포르노 잡지인 [허슬러]의 사주 래리 플린트는 1983년 한 기독교 원리주의 목사를 풍자하는 가짜 인터뷰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는 ‘이것은 광고 패러디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며 수차례 목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평소 자신을 외설가라며 사사건건 비난하는 그 목사를 골려주기 위한 것이었죠. 목사는 곧바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외설 시비는 연방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최후 변론에서 플린트는 “나 같은 쓰레기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미국은 모든 시민의 자유가 보호되는 위대한 나라다”며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죠. 당시 언론은 저속한 포르노 잡지조차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라며 자유의 나라 미국을 치켜세웠습니다.

밀은 “과거에 허무맹랑했던 주장이 오늘날엔 상식인 경우가 많다”며 “진리를 얻기 위해선 어느 한 개인의 의견에도 재갈을 물려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뉴턴을 예로 들며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이론은 그 타당성을 더욱 인정받는다고 설명합니다. 반대로 반증될 수 없는 주장은 종교적 믿음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치열한 토론 끝에 살아남은 생각이 진리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는 국가주의를 넘어 민주주의 사회로 성숙해가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보수는 자유주의를 갖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과거의 굴레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산업화 시대의 업적을 인정하되, 그들이 갖고 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논리를 벗어나 진짜 자유주의로 가야 합니다. 특히 4차 혁명 시대는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패스트 팔로워로 20세기 산업화의 모범생일 순 있었지만, 21세기엔 퍼스트 무버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 전제 조건이 자율과 창의, 개방과 관용의 정신이며 이런 핵심 가치가 녹아있는 것이 자유주의입니다.

21세기 보수가 자유주의로 무장했다면 이제 그들이 싸워야할 지점이 명확해 집니다. 먼저 시민의 권리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만일 이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유령이 보인다면 가장 앞장서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과거의 국가주의 시대를 향수하는 아스팔트 보수와 수구 유튜버이든, ‘문프께 모든 것을 양도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맹목적 친문 세력이든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이들과 맞서야 합니다.

전체주의에 물드는 현 정부와 여권


▎2015년 10월 국회 본청으로 향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야당 의원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를 벌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 민주화 투쟁을 했던 현 정부와 여권의 인사들이 국가주의 세력이 자행했던 전체주의적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 시민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이 억압되고 통제되고 있는 것이죠. 마치. 크리스트교를 비방하면 처벌한다는 19세기 영국법이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제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발했고, 당론을 거부하고 소신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했습니다. 친여 성향의 네티즌들은 비판적인 글을 쓴 기자나 교수에게 ‘댓글 테러’와 ‘신상 털기’를 가합니다. 그 결과 지식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여당은 “생각 같아서는 언론의 징벌적 손해 배상을 30배, 300배 때리고 싶다”(정청래)며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아울러 대북 전단까지 금지하는 법안을 내고, 통일부는 아예 전단 배포 단체를 고발했죠. 최근에는 토지거래허가제 실시와 외고·자사고 폐지 등으로 사유재산 및 학교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5·18역사왜곡처벌법(518특별법 개정안)까지 만들겠다고 합니다. 이미 다른 법률로도 위법이 될 만한 사항은 충분히 처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겠다는 것은 과거의 국가보안법이나 19세기 영국의 종교모독금지법처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를 구성하는 것도 모자라 정치개혁이란 명분으로 위성정당을 만들어낸 선거법을 개악하고, 검찰을 개혁하겠다며 오히려 길들이려 합니다.

심지어 여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공동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이 과반을 넘는 일방적 결과는 윤 총장에게 빨리 거취를 정하라는 국민 목소리였다”며 “눈치가 없는 것인지, 불필요한 자존심인지, 뻔한 상황인데 윤 총장은 갈수록 더 하니 이런저런 계산하는 정치인들조차 ‘이제는 그만 하시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권의 유력 실세들도 끊임없이 윤 총장을 흔들고 있죠.

총선 득표율이 국민 과반을 넘지 못한 여당이 임기가 2년 보장된 검찰총장을, 그것도 대통령과 친여 정치인이 그렇게 치켜세우며 임명한 사람을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내쫓으려 하는 게 자유주의 사회에서 합당한 일일까요. 이들이 그토록 강조해온 자유와 민주의 가치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그뿐 아닙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여권은 대통령에 대한 조그만 지적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의전 대통령’ 발언으로 조리돌림을 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겐 쥐박이, 2메가, 귀태, 그년 같은 표현을 해놓고 지금은 작은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며 “어느새 문 대통령은 권위주의의 상징이 돼버렸다”고 말합니다.

비판이 사라진 곳엔 권력을 향한 찬가만 남아 여당 정치인이 “달빛 소나타가 대통령의 성정을 닮았다”며 ‘월광’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어떤 검사는 ‘달님에게 보내는 노래’를 대통령에게 헌사 하듯 SNS에 올립니다. 국가주의가 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의 개인숭배와 우상화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자유주의로 새롭게 태어나라


▎2018년 11월 짐 아코스타 CNN 백악관 출입기자(왼쪽)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의혹을 언급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질문을 끊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원장 영입 후 이슈가 될 만한 새로운 정책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습니다. ‘백종원 발언’부터 기본소득 도입이나 공교육 개혁 등 논쟁적 이슈를 제기하며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김종인 위원장의 말처럼 중도층을 흡수하고 표몰이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슈 몰이에 성공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지금의 보수 정치인들이 집권한다고 한들 우리 사회의 무엇이 달라질까요. 철학과 가치의 방향성 없이 그저 표를 얻기 위한 전략과 전술만으로 무장한 채 권력을 얻어 봐야 과거의 정치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시간이 좀 더 걸릴지언정 보수는 치열하게 내외부에서 투쟁해야 합니다. 밖으로는 전체주의로 치닫는 현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맞서 싸우고, 안으로는 구태의 보수와 절연하려는 뼈를 깎는 자성이 필요합니다. 이런 논쟁이 촉발될 수 있도록 김 위원장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보수에는 큰 변화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 논쟁을 통해 그것을 꼭 통합당이 당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활발하게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과 가치의 논쟁이 벌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보수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디 개혁이라는 것은 원칙과 단계별 목표가 필요합니다. 보수 개혁의 원칙은 자유주의입니다. 지금까지 보수는 자유주의를 시장의 자유, 즉 경제적 자유의 틀 안에서만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유주의의 본질적 의미는 외면했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보수가 추구해야 할 것은 진짜 자유주의이며, 이를 위해선 정치·사회적 자유주의를 보수의 핵심 가치로 받아들이고 삶의 준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로 대변되는 표현의 자유, 그리고 시민 개개인의 개성이 존중받는 다양성과 개별성, 수직적 구조를 무너뜨리는 수평적 조직 관계, 자유로운 토론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등을 의미합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생각이라도 무시당해선 안 되며 다수의 목소리로 소수를 짓눌러서도 안 됩니다. 이런 확신을 갖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사회적 자유주의자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보수가 결자해지해야

정치적 자유주의는 위와 같은 사회·문화적 가치가 정당이라는 정치 체제로 구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한반도에선 사회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는 도입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보수’라고 불려왔던 정치 집단의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사회적 자유주의가 충분히 무르익은 다음에 점진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기존의 보수층을 끌어안고 갈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사회적 자유주의를 보다 실효성 있게 구현할 수 있는 시민적 토양을 만드는 일입니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단계에선 ‘이제 남은 것은 덧없는 장미의 이름뿐’인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야 합니다. 이 역시 보수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서야 할 일입니다.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경제적 자유를 논할 때 방임하지 말고 시장의 실패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불평등과 양극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 각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물적 토대가 갖춰질 때 사회적, 정치적 자유도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과 트럼프 행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유주의의 가치가 그 어떤 나라보다 굳건히 지켜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년 전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료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보내 대통령이 자유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가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생방송하던 CNN이 정부가 자화자찬만 한다며 중간에 생중계를 끊어 버렸습니다. 만일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면 어땠을까요. ‘불경죄’를 들어 온갖 비판과 매장에 가까운 사회적 비난이 일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보수 정권이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자유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열린사회의 길입니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우리는 짐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문명사회의 인간으로 남길 원한다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길, 열린사회의 길만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새로운 폭력을 불러온다”며 “열린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성의 독단이며, 통제되지 않는 열광은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보수가 가야 할 길이 명확히 보이지 않나요.

※ 윤석만 논설위원/중앙일보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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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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