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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남한 새 안보 라인과 평양의 ‘케미’ 

북한, ‘10월의 깜짝쇼(October surprise)’ 프로그램 가동할까 

트럼프, 김정은과의 베드 딜(bad deal) 가능성에 정상회담 신중 모드
이인영, 대북 협력 손길 내밀었지만 북한의 시선은 미국 대선 향해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9일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평양의 대남부서인 통일전선부 라인은 7월 말 서울의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를 ‘본방 사수’ 했을 것이다. 과거 필자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던 시절 연구원의 상임고문이었던 황장엽 전 비서는 북한의 통전부 간부들이 남측의 방송과 언론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남측 동향을 실시간 모니터링해야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외적인 특권이 인정된다고 한다. 통전부 간부들은 박지원 국정원장 청문회에서 제기된 2000년 4월 경제협력합의서의 이면 합의 논란을 예의주시하고 대책 수립에 나섰을 것이다.

만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3월 9일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대북협력 등 4원칙을 발표했다. DJ의 베를린 선언은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의미했다. 연초부터 국정원의 김보현 3차장→서영교 전략국장→서훈 전략조정단장으로 이어지는 ‘KSS 대북 라인’은 평양 실세를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베를린 선언이 발표된 시간에 국정원 라인들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였던 송호경을 싱가포르에 등장시켰다. 남측 상대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다. 현금 지원을 둘러싸고 베이징을 오가며 네 차례의 밀당 끝에 양측은 4월 8일 현금 5억 달러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은 작성 이틀 뒤인 2000년 4월 10일에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당시 문화부 장관이 공동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처음 공개됐다. 4·8 남북 합의서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일정과 정상회담 개최 내용 이외에 경제적 지원 문제는 언급이 없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자는 ‘대북 지원 약속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런 합의는 없었다”고 답했다.

북측은 남측이 최초의 정상회담을 요청한 만큼 충분한 금전 보상을 요구했다. 문제는 금전 보상의 범위였다. 현대가 4억5000만 달러를 국정원 계좌를 통해 불법 송금한 사실이 2003년 노무현 정부의 특검 결과 밝혀졌다. 영광도 있었으나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DJ는 최초의 정상회담 개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관여한 인물들은 비극적인 결말이나 곤욕을 치렀다.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계동 사옥에서 투신했고, 박 장관은 외국환관리법 등 각종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대북 송금은 2002년 9월 국회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다. 4억5000만 달러가 현대를 통해 북한에 지원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인 산은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4000억 원을 현대상선에 빌려줬다는 사실이 처음 공개됐다. 엄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김대중 정부가 현대에 이어 다른 대기업인 S그룹에도 대북 사업 참여를 압박했다고 밝혔다.

20년 만에 재소환된 ‘남북 이면 합의’


▎2000년 6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송호경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 부위원장이 중국 상하이 차이나월드호텔에서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20년 전 남북정상회담의 ‘이면 합의’ 문제가 공론의 무대로 소환됐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7월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비밀리에 작성됐다는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문건을 전격 공개했다. 통합당이 이면 합의라고 주장하며 공개한 문건에는 추가 지원 내용이 담겨 있다.

첫째, 남측은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을 사회간접부문에 제공한다. 둘째,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5억 달러분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한 실무적 문제들은 차후 협의하기로 하였다 등의 내용이다. 이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시 박 장관이 북한에 총 3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한 것이 된다. 정상회담 당시에도 이면 합의설이 있었지만,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20년 만에 박지원 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가 공개됐다. 친필 서명의 진위를 둘러싸고 필적 감정사들까지 의견을 개진했지만, 위조 여부를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었다. 국민의 혼란은 불문가지다.

북측에서 최종적으로 합의문을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실체적 진실에 대한 공방은 한계가 있다. 문건이 진짜라면 남북에 각각 한 부씩 있을 것이다. 남측은 과거 특검으로 폐기됐을지 모르지만, 북측에는 보관돼 있을 것이다. 야권에선 북한에도 원본이 있을 텐데 약점 잡힌 국정원장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해당 문건의 존재를 전면 부인했다. 윤도한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 국정원, 통일부 등 관련 부처를 모두 확인했지만, 정부 내에는 그 문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야당이 ‘30억 달러 이면 합의서 의혹이 있는데 왜 박지원 국정원장을 임명했느냐’고 따지고 있어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문서인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야당이 박 후보자에 공세를 강화한 것은 “남북대화는 그동안 정치권이 ‘물밑 접촉’을 독점하면서 국민의 정서와 부합하지 않는 통치 이벤트를 주도해왔다. 남북 대화·협상 기승전결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남북관계도 다른 국제관계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민 동의를 확보한 뒤에 추진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의미일 것이다. 사전 견제구를 통해 2000년 이벤트의 재연을 차단하기 위한 압박전술이다.

‘못 사는 동생 집에 가는데 빈손은…’


▎2000년 6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서명한 남북정상회담 합의서(왼쪽). 오른쪽은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공개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문서의 진위와 관계없이 박 후보자는 문건은 없었지만 유사한 내용의 논의는 있었다는 식으로 비공개 청문회에서 답변했다고 한다. 통합당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인사청문회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나 “박 후보자가 ‘아시아개발은행, 민간사업자 등의 투자 자금으로 20억~30억 달러의 대북 투자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원론적인 얘기를 했었다’고 전했다”며 “즉, 합의문의 내용은 (남북이) 언급했지만, 실제 합의문을 작성하거나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박 후보자의 답변”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북한의 20억 달러 현금 지원 요구는 거절했지만, 정상회담 이후 남북협력이 이뤄지면 아시아개발은행(ADB)·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을 통해 20억~30억 달러 투자는 금방 들어온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지원 장관은 2000년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북측의 현금 지원 요청에 난색을 표명했다. 박 장관이 북측의 요구를 청와대에 보고하자 DJ는 고심 끝에 ‘잘 사는 형이 못 사는 동생을 만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고 어느 정도의 선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현금 선물은 5억 달러 미만에서 결정됐다. 실제 2000년 초 남북 당국자들의 정상회담 접촉 과정에서부터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얘기가 오갔다. 대북 송금 판결문에 따르면, 2000년 3월 17~18일 중국 상하이에서 진행된 1차 접촉에서 협상 라인들은 “남북정상회담에 응하면 쌀, 비료 등과 같은 인도적 지원 외에도 향후 20억~30억 달러에 상당하는 SOC 지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북측에 제안했다.

정상회담 직후 남북은 일사천리로 경협 사업을 진행해갔다. DJ 정부는 2000년 12월 북한과 상호 간 투자자 및 투자 자산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는 내용의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등 4건의 합의서를 체결했다. 현대그룹도 북측과 금강산, 통천, 원산지구 개발과 철도, 통신, 전력, 문화, 체육 등 7대 분야 경협 합의서를 속속 체결했다. 국회 자료 등에 따르면, DJ 정부 때 남북 교역에 4억5000만 달러, 금강산 등 관광에 4억1000만 달러 등 현금이 약 9억 달러 지원됐다. 또 비료 등 무상 지원 4억6000만 달러, 식량 차관 2억5000만 달러, 관광 투자 3억3000만 달러 등 11억 달러 가량이 현물로 지원됐다. 여기에 5억 달러가량의 대북 송금을 합치면 약 25억 달러가 지원됐다. 이 돈을 북한이 어디에 사용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핵과 미사일 개발에 투입됐다는 주장을 반박하기도 어렵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시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8~2008년 한국이 북한에 약 70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제공했으며 이 가운데 29억 달러는 현금으로 지원했다고 공식화했다. 특히 북한이 이 기간 중인 1999년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기술을 해외에서 사들이기 시작해 2000~2001년에는 기술 조달을 가속했다고 밝혔다. 2010년 1월 래리 닉시 한반도 전문가가 작성한 미 의회조사국(CRS)의 ‘의회 한·미관계 현안 보고서’는 “북한이 한국의 지원 자금을 핵무기 개발에 전용했다”는 것을 최초로 공식화 및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39호실이 마카오, 싱가포르 및 오스트리아에 개설해 운용하는 은행 계좌로 경협 자금을 이체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기관과 고위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한국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미군 관계자들이 1999년부터 의심했다고 기술했다. 현대가 1999~2000년 공개·비공개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북한에 제공했을 당시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용 부품과 재료를 해외에서 구매하는 데 외환 사용을 급속히 늘렸다고 분석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1999년부터 우라늄 농축 기술을 구매하기 시작해 2000년과 2001년 기술 구매 속도를 더욱 높였다고 추정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09년 12월 27일 북한에 핵무기 제조기술을 전수한 인물로 잘 알려진 파키스탄의 압둘카디어 칸 박사가 “북한은 2002년 무렵 3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소량 농축하고 있었으며 농축에 필요한 가스 제조공장도 건설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에게 부여된 ‘특명’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9일 청와대에서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의 손자에게 꽃다발을 주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야당은 ‘돈 주고 정상회담을 구걸한 것’인지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이면 합의 논란은 이미 과거사(?)가 되고 말았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 정상회담의 당사자인 정상들도 세상을 떠난 지금 다시 남북 이면 합의나 대북 송금 등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것은 유일한 당사자인 박지원 전 장관이 대북문제를 총괄하는 국정원장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DJ, 김정일, 송호경 등 주인공들은 이승의 무대를 떠났지만, 박 전 장관은 청와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국정원장에 올랐다.

어느새 문재인 정부도 집권 3년 반을 넘어섰다. 야구경기로 치면 7회 말 정도다. 8, 9회가 남아 있지만, 어느새 경기는 종반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20·30대의 지지가 하락하는 문 대통령이 매일 아침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 전 의원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은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의 노딜 이후 진전 없는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라는 의미다. 특히 최초 남북정상회담의 설계자로 평양과 비밀협상을 수행한 추억을 연상시키는 창의적인(?) 해법 마련을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7월 29일 박 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막혀 있고 멈춰 있는 남북관계를 움직여나갈 소명이 두 분에게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박 원장에 대한 절대 신임의 표시로 박 원장 손자에게 ‘신뢰’라는 꽃말을 가진 송악과 아게라툼 등이 담긴 꽃다발을 줬다.

하지만 정글 같은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하고 대북송금으로 곤욕을 치른 노회한 신임 국정원장이 청와대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권 후반기에 무리수를 둘 것 같지는 않다. 작금의 부귀영화로도 충분한 만큼 향후 18개월 남짓한 임기 동안 실정법의 테두리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한다. 또다시 눈에 안대를 쓰고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설 경우 자칫 잘못하면 영어(囹圉)의 몸이 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비밀공작은 억만금을 주더라도 인생 최후반기 절대 금기사항일 것이다. 아직은 방송인의 체질이 남아선지 아니면 정중동 속의 워밍업인지 SNS에 자신의 동선을 밝힘에 따라 음지에서 활동하는 정보기관장의 행태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가십성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SNS 활동을 중지한다고 선언했지만, 주기적으로 SNS에 글을 올림으로써 본인의 행보를 가능한 한 투명하게 보이려는 전술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남북한 간에 밀사 역할을 넘나들었던 정치9단다운 전략적인 행태다.

일단 박 원장은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직계인 김상균 국정원 1차장을 유임함으로써 기존 대북 라인을 통해 문 대통령의 소망을 북측에 타진할 것이다. 반미투사 출신의 박선원 국정원장 특보를 예산과 조직 담당인 기조실장에 임명함으로써 국정원 예산 사용의 민감성 문제를 검토할 것이다. 2022년 3월 대선까지 남북관계의 향방은 서훈 안보실장-박지원 원장-이인영 장관-김상균 차장-박선원 실장 라인이 좌우할 것이다.

라인 바꾼 문 대통령이 던질 승부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뒤 남북 경제협력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2001년 8월 19일 북한의 농산물과 가공품이 경의선 연결도로를 통해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문제는 평양 권부의 의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박 원장의 역량과 역할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통전부 라인은 2000년의 추억이 담긴 문건과 자료를 들여다보며 전략 마련에 고심할 것이다. 11월 3일 미국 대선 전인 10월에 마지막 빅 이벤트인 ‘10월의 깜짝쇼(October surprise)’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인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것이다. 통전부와 국정원의 물밑 접촉은 조만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문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75주년 기념사에서 평양의 관심을 유도하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 추석 이산가족 상봉, 한·미 군사훈련 중단 및 축소 등 획기적인 제안을 통해 평양을 움직일 묘수를 찾고 있을 것이다.

9월은 미국 대선 전 남북관계의 일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월에 별일이 없으면 올해는 미국 대선 전까지 정중동의 상태가 될 것이다. 승부수 이면에는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명하는 세곡동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평양은 20년 전 스토리로 ‘현금의 추억’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위험한 거래는 경험자만이 가능할 것이다. 이제 평양에서 진실의 칼자루를 쥔 것은 아닌지, 한여름이지만 등골이 서늘하다. 앞으로 북한과의 물밑 거래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음지에 박 원장이 있다면 양지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있다. 이 장관은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공세적으로 추동할 당사자의 역할을 마다치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전임 김연철 장관은 남북공동 연락사무소 폭파로 14개월 만에 남북관계 악화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386세대로 전대협 출신의 4선 의원이자 여당 원내대표 출신인 이 장관은 지명 이후부터 줄곧 “남북관계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금강산과 백두산의 물, 대동강의 술을 우리의 쌀, 의약품과 바꾸는 물물교환식 구상을 밝혔다. 또 “대북제재 속에서도 인도적 협력 부분인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해도 될 것이라고 적극적인 대북정책 추진을 예고했다.

북측은 일단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북한의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7월 14일 “이번 인사에서 이인영, 임종석 두 사람에 거는 기대도 많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측과 수면 밑에서 접촉할 비선과 창구가 여의치 않은 통일부가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과 물물교역으로 유엔 대북제재를 피해 물꼬를 트는 데 주력하고 있다. 통일부는 7월 30일 국내 한 민간단체가 신청한 코로나19 방역물품에 대해 대북 반출을 승인했다. 민간 남북경제협력연구소가 신청한 소독약과 방호복, 진단키트 등 약 8억원 규모의 반출이다. 이 장관이 7월 27일 취임한 이후 첫 대북 반출 승인 건이다. 그러나 정부는 구체적인 북측의 수령 주체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장관은 “코로나19 방역에 협력할 일 있으면 언제든 하겠다”고 언급했다.

실세 장관 등장에 속도 붙은 대북 지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7월 18일 조선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5차 확대회의에서 2018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핵보유국, 자위적 핵 억제력” 등을 언급했다. / 사진:연합뉴스
통일부는 8월 들어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 영유아 및 여성 돕기 사업에 1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연이어 북한 술과 남한 설탕의 물물교환 거래를 승인했다. 대략 1억5000만원 정도 규모의 개성 고려인삼술, 류경소주, 들쭉술 등 북한의 대표 술 35종류 1만 병과 남측의 현물인 설탕 167톤을 교환했다.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과 북한의 개성고려인삼 무역회사가 거래당사자다. 중개 역할은 중국회사인 연변해운수출입무역유한공사가 맡았다. 북한의 거래품목인 술은 남포에서 중국 다롄을 거쳐 인천으로 들여온다.

북한은 2009년 약 177만 달러 규모의 설탕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이후 2018년에 4001만 달러, 2019년에는 11개월 동안 3888만 달러의 설탕을 수입했다. 2009년인 약 10년 전보다 20배 이상 수입이 증가했다. 과거에 북한 주민들은 사카린을 설탕 대용으로 사용했다. 설탕은 북한 상류층의 신분과시용 소비재다. 2000년대 들어 보따리상들이 중국 설탕을 수입하면서 상류층은 사카린 대신에 설탕을 소비했다. 하지만 계속된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설탕, 커피 등 소비재 품목의 수입이 외화 부족으로 줄어들자 남측과 설탕 물물교환에 합의했다.

술 이외에 간장, 된장 등 250가지 품목을 물물교환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실세 장관이 등장하자 그간 미뤄뒀던 대북 지원과 협력 사업이 속전속결로 승인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장관은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에게 물물교환방식 거래를 한미워킹그룹 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에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향후 거래 물량과 품목이 증가하면 물자 운송과 북측 거래 주체 조사 등 선박 사용 관련 대북제재 위반 혐의가 나올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한편 북한의 상황은 엄중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월 18일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2018년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핵보유국, 자위적 핵 억제력” 등을 직접 언급했다. 7월 26일 김 위원장이 당 정치국 비상 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최대비상 방역체제 전환을 지시했다면서 19일 개성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온 한 탈북자가 코로나19 감염자로 의심되기 때문이라고 평양 매체들이 보도했다. 북한의 이례적인 보도는 탈북자의 월북 사실을 통해 체제 우위를 선전할 정치적 측면과 함께 북한의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여차하면 남한 책임으로 돌리려는 다목적용으로 풀이된다. 보도의 핵심은 평양은 물론 최남단인 개성에도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고 북한 전역이 코로나 감염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중앙통신]은 8월 3일 “모든 사람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며 체온 재기, 손 소독을 비롯한 방역규정들을 준수하도록 통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김정은의 회의 주재 사진과 함께 “국가적으로 개성시에 대한 완전 봉쇄와 함께 물자보장이 최우선적인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개성시민들에 대한 검진과 의학적 감시가 강화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개성시 환자 발생과 완전봉쇄 조치를 확인했다. 김정은은 수해 피해가 심각해지자 이재민에게 전쟁 예비물자인 비축 양곡까지 풀며 민심을 다독이고 있다.

美 대선 시계로 향한 북한의 시선

현재 북한의 2인자로 움직이는 김여정 중앙위 제1부부장은 역설적으로 서울보다 워싱턴 뉴스를 직접 챙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미국 대선 이전에 북·미 간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데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평양의 시선은 워싱턴에 머물러 있다. 서울은 워싱턴의 철저한 종속변수인 만큼 문제풀이는 워싱턴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갈수록 오리무중인 트럼프의 재선 여부를 예측하고 10월 중에 ‘깜짝 정상회담’을 할 것인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여정은 지난 7월 10일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독립기념일 행사를 담은 DVD를 요청했지만, 워싱턴의 답신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여정은 DVD를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는 ‘편지 외교’ 전술을 구사했지만, 7월 8일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이후 워싱턴은 무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3차 정상회담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 자신의 재선에 득실이 무엇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선거가 70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일부 주에서 우편투표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대선 후보 출정식도 못하는 트럼프 입장에서 또다시 베트남이나 동남아 국가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베드 딜(bad deal)에 합의하는 외교 이벤트가 국내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물론 [그 일이 일어났던 방(The Room Where It Happens)]이란 제목의 회고록으로 트럼프를 비판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10월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인터뷰했지만, 오히려 불장난에 대한 견제구 성격이 강하다. 결국 트럼프는 8월 7일 기자회견에서 재선되면 북한과 신속하게 비핵화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혀 사실상 ‘10월의 서프라이즈’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트럼프의 지속적인 대화 메시지는 대선 전 북한과 같은 적성 국가들의 도발을 막고 상황을 관리하여 유권자에게 호소하기 위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김정은도 워싱턴이 선거 정국인 시점에 남측의 방역물자 반출 정도로 ‘미워도 다시 한번’ 성격의 남북정상회담 이벤트에 출연하는 것은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종편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혹시 2000년 현금 제공의 추억을 살린다면 검토해볼 만한 일이나, 지난 3년 반 동안 북측 주도로 남북 정상이 평양과 개성에서 함께 냉면 먹기 및 백두산 등정 이벤트를 전개했으나 손에 쥔 것이 없는 김정은은 선대 김정일 위원장 시절보다 남측이 성의가 없다는 속내를 피력했을 것이다. 또 통전부는 유엔 안보리 제재라는 그물망이 촘촘히 가동되는 상황에서 남측의 거창한 남북협력 담론은 국내정치용이라는 평가보고서를 김정은에게 제출했을 것이다. 대남 라인들은 청와대와 여권이 강계 들쭉술을 마시고 취중에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취권전략의 요행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우선은 술과 설탕 거래 정도로 남측의 새로운 대북 라인들의 복심을 탐색하면서 워싱턴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것이 물난리를 겪고 있는 평양의 우중전략(雨中戰略)일 것이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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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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