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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글로벌 트렌드] 세계는 지금 전기차 전쟁 중 

올 9월 테슬라 ‘배터리 데이’에 ‘빅뱅’ 올까 

글로벌 자동차 판매 저조 불구 2018년 200만 대 팔려
현대차, 2025년 연간 100만 대 팔아 ‘전기차 톱3’ 목표


▎현대차가 내년부터 순차 출시 예정인 전용 전기차의 브랜드 명칭을 아이오닉(IONIQ)으로 정했다고 8월 10일 밝혔다. 왼쪽부터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 아이오닉 5 / 사진:현대기아차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자동차 대수는 총 8756만 대였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중국 경제 침체, 글로벌 경기 부진 등으로 세계 자동차 수요는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2018년 9244만 대로 1억 대를 넘보던 자동차 판매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맞은 올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현대자동차그룹 부설 글로벌 경영연구소는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는 전년보다 20% 이상 감소한 7000만 대 초반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판매가 늘어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전기자동차(Electric Vehicle)다. 2017년 전 세계에서 122만 대(순수전기차(B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합산) 팔렸던 전기차는 이듬해인 2018년 사상 처음으로 200만 대를 돌파했고, 지난해엔 220만 대를 넘어섰다.

1886년 최초로 자동차가 등장한 이래, 세계 자동차 산업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른바 ‘C.A.S.E.’ 혹은 ‘카마겟돈(자동차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이라 불리는 격변이다. C.A.S.E.란 연결(Connected)·자율주행(Autonomous)·공유(Sharing)·전동화(Electrification)의 앞글자를 따 만든 조어(造語)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사람이 직접 운전하던 지금까지의 생활 행태나 방식, 산업의 양태가 모두 달라질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100년 넘는 역사의 미국·유럽·일본의 완성차 전문업체가 시장을 주도해왔지만, C.A.S.E. 시대엔 진입 장벽이 사라진다. 전기자동차의 선두주자 테슬라가 폴크스바겐·도요타 같은 글로벌 완성차 공룡을 위협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누려온 기득권이나 지적재산권, 시장의 노하우가 단숨에 사라질 수도 있단 의미다.

미래 차 변혁의 핵심은 전동화다. 하지만 전기차가 미래차 전부를 뜻하진 않는다. 앞서 말한 C.A.S.E.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 차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전 세계 기업들의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200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는 1996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만든 최초의 현대식 전기차 ‘EV1’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GM은 당시 최신 기술의 2차전지였던 니켈수소(Ni-MH) 배터리를 이용해 전기차 EV1을 개발했다. GM이 당시로선 생소하던 전기차를 개발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주 내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의 20%는 배기가스가 전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배기가스 제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만 두 번 죽은 전기차


▎테슬라 차량은 무선 업데이트(OTA)와 넷플릭스 시청 등 초고속 통신망을 이용한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커넥티비티를 이용해 넷플릭스를 구동한 모습. / 사진:테슬라
GM은 니켈수소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장착한 EV1 개발에 성공했다. 1회 충전하면 130㎞를 갈 수 있었고, 개량형 모델인 EV2는 300㎞ 가까운 주행거리를 자랑했다. 요즘 전기차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성능이었다. 하지만 소송 끝에 ‘배기가스 제로 법’은 없어졌고, GM은 EV1을 전량 회수해 폐기했다.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는 EV1을 살해한 범인으로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와 EV1을 만든 GM을 지목한다. 전기차 보급으로 자동차용 연료 판매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석유회사들은 집요하게 이 법을 공격했다. GM 역시 자신들의 다른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가 줄 것이라며 사실상 ‘자살’을 선택했다. 리스로만 판매를 제한해 수익성이 낮았고, 이는 EV1 폐기의 이유가 됐다.

EV1 이전에도 전기차가 없었던 건 아니다.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전류 전쟁(Current War)’으로 전기는 19세기 말 인류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 됐다. 막 태동하던 자동차 산업에서도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시장의 주역을 놓고 자웅을 겨뤘다.

1886년 독일의 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선보였다. 2년 전인 1884년엔 영국의 토머스 파커가 최초의 전기차를 만들어 일반인에 판매했다. 초기에 우위를 점한 건 전기차였다. 소음과 검은 매연을 내뿜는 데다 시동이 잘 꺼지던 내연기관차보단 구조가 간단하고 조용한 전기차가 더 많이 팔렸다. 고성능 내연기관 스포츠카로 유명한 포르쉐가 1898년 처음 내놓은 자동차도 전기차였다. 전기차가 내연기관과의 싸움에서 패한 건 석유의 대량 생산과 포디즘(Fordism)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고, 서구 열강들의 전 세계 유전 개발에도 가속이 붙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1908년 싸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모델T’를 팔기 시작하면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의 경쟁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1913년엔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는 ‘포드 생산방식’도 등장했다.

전기모터가 달린 무선조종(RC) 모형 자동차를 작동시키면 말 그대로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일반적인 내연기관 자동차가 엔진이 작동하고 회전수가 높아져야 가속이 붙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3의 퍼포먼스(고성능) 트림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이 3.4초에 불과하다.

내연기관차와 비교하면 테슬라의 가속 성능이 얼마나 ‘황당무계’할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데일리 슈퍼카’로 불리는 포르쉐 911 카레라 4S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3.6초 걸린다. 진짜 슈퍼카인 페라리 F8 트리뷰토와 람보르기니 우라칸 에보GT의 제로백은 2.9초다.

카레라 4S는 최소 1억5000만원,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가격이 3억원을 넘는 점을 생각하면 6000만원대 초반에 구매(보조금 포함)할 수 있는 테슬라 모델3의 가속 성능은 당혹스러울 정도다. 절반 이하, 3분의 1 가격에 ‘수퍼카급’ 성능을 낸다는 얘기다. 테슬라조차도 내연기관과는 전혀 다른 전기차의 특성을 ‘황당무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테슬라의 고급 세단인 모델S에는 ‘루디크러스(Ludicrous, 터무니없는) 모드’가 있는데 가속 성능을 더 높여주는 기능이다. 테슬라는 ‘루디크러스’ 모드 이전엔 이 기능을 ‘인세인(Insane, 정신 나간)’ 모드라고 불렀다.

내연기관 스포츠카에도 순간 가속 성능을 높여주는 ‘부스터’ 기능이 있지만 전기차처럼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다. 테슬라가 이름 붙인 것처럼 ‘터무니없는’ 성능이 전기차 시대에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단 의미다. 앞서 말한 RC 전기차처럼 전기자동차도 출발과 동시에 최대 토크(쥐어짜는 힘, 가속 성능의 기준)를 발휘한다. 안정적인 주행성능을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수퍼카급’ 가속 성능이 테슬라만의 노하우는 아니라는 얘기다.

EV1이 사망선고를 받은 지 7년 뒤인 2003년, 테슬라는 아무도 관심 없던 전기차를 되살렸다. 앞서 일본의 도요타가 하이브리드(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혼합한 방식) 자동차를 선보이면서 고유가 시대의 친환경차 시장을 선점했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를 밀어붙인 건 테슬라였다.

5년 뒤 내놓은 첫 차 ‘테슬라 로드스터’는 절반의 성공을 이뤘다. 차체를 만들 기술이 없다 보니 영국 로터스의 앨리스를 기반으로 일본 파나소닉의 원통형 리튬이온 전지를 얹어 만들었다. 1억원이 넘는 가격이었지만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라는 명성을 얻으며 1200대 넘게 팔았다. 1회 충전으로 약 400㎞를 달릴 수 있다고 했지만, 고속으로 달리면 실제 주행거리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테슬라가 본궤도에 오른 건 2012년 모델S를 출시하면서다. 모델S에 이르러 테슬라는 전동화와 함께 ‘자율주행(Self Driving)’이라는 핵심적인 요소를 더한다. 역시 1억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지만 1회 충전에 400㎞가 넘는 항속거리(한국 인증 기준), 4초대 제로백(2020년 퍼포먼스 트림은 2.5초) 등 준수한 성능을 갖췄다.

여전히 차체 제작 노하우가 부족해 구형 메르세데스-벤츠의 부품을 사용했지만 태블릿PC를 연상케 하는 세로로 긴 거대한 디스플레이, 물리 버튼 없이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는 사용자 경험 등은 자동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놨다. 2년 뒤 ‘오토파일럿’이라 이름 붙인 반(半)자율주행 기능이 포함된 통합 아키텍처(기본 구조) ‘HW 1.0’을 적용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엔진·변속기, 공조 시스템 등을 디지털화하면서 모듈마다 전자제어장치(ECU)를 장착했지만, 실리콘 밸리 태생인 테슬라는 자동차를 하나의 컴퓨터처럼 통합 제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자율주행 기능의 경우 초창기엔 이스라엘 기업인 ‘모빌아이’(이후 인텔이 인수)와 협업했고, 이후엔 엔비디아와도 손잡았다.

변화에 둔감했던 완성차 업체


▎LG화학 오창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의 직원들. / 사진:LG화학
미래 차 변혁을 감지한 게 테슬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델S 시절만 해도 연간 수만 대 수준(2018년 5만4715대), 그것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만 팔렸던 테슬라와 달리 연간 1000만 대 가까운 양산차를 판매하는 ‘완성차 공룡’들이 발 빠르게 변신하긴 어려웠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전동화에 익숙했던 일본 완성차 업체였다. 닛산은 2010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출시했다. 9년 만에 누적판매 40만 대를 넘긴 리프는 지금까지도 테슬라의 대항마로 분전하고 있다. 같은 해 미쓰비시는 ‘아이 미브’라는 소형 전기차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3년엔 BMW가 첫 순수 전기차인 i3를 선보였고, 현대자동차도 2016년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 라인업으로 아이오닉을 출시했다.

하지만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순수 전기차로의 이행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수백만 대씩 팔리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것도 발목을 잡았다. 1999년 GM이 EV1을 포기한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테슬라가 무선 업데이트(OTA·On The Air), 자율주행, 디지털 기기 같은 사용자 경험 등으로 차별한 것과 달리 변화에 둔감하거나 주저했다.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이 굼떴던 또 다른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연간 수백만 대를 판매하는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의 디지털 사용자 경험이 완전하지 못하다 여겼고, 고객들의 집단 클레임을 두려워했다.

스타트업에 관대한 미국 시장과의 차이점도 있었다. 테슬라가 무려 ‘오토파일럿(Auto Pilot, 자동 조종)’이라 이름 붙인 기술은 다른 완성차들도 선행 기술(양산 단계 이전의 완성된 기술)로 보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슬라가 인명사고에도 불구하고 무모해 보일 정도로 양산에 집착한 반면, 완성차들은 쉽사리 양산차에 적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테슬라의 ‘무모한 도전’에 힘입어 실리콘 밸리의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이 앞다퉈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마트폰에선 당연하게 여겨지는 무선 업데이트는 불안정한 통신망으로 인해 고객 불편을 초래할까 봐, 태블릿PC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는 운전 중 사고를 유발할까 봐 좀처럼 적용하지 못했다. 테슬라의 독특한 인터페이스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고를 일으키는 건 사실이다. 오토파일럿을 맹신하거나 개조한 운전자의 사고도 계속된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테슬라의 세계 판매량은 37만 대에 불과하다. 연 900만 대씩 판매하는 일본 도요타나 독일 폴크스바겐과는 아직 격차가 크다. 완성차 업계에선 양산 대수가 300만 대를 넘을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고객 민원이 증가한다고 본다. 2008년 이상 가속 현상으로 대량 리콜 사태를 겪고 파산 위기에까지 몰렸던 도요타나, 2015년 디젤엔진 배출가스 조작 사건인 ‘디젤 게이트’로 천문학적 배상을 해야 했던 폴크스바겐으로선 쉽사리 모험하기 어려웠다.

공룡의 반격과 새내기의 수성


▎이동식 전기차 충전기. / 사진:중소벤처기업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오랫동안 양치기 소년이었다. 2015년 머스크는 3만 달러대(약 4000만원대)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선보일 것이며 네바다주 사막에 건설 중인 기가팩토리(테슬라의 전기차·배터리 생산시설)는 무인공장으로 가동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출시 3년 전부터 선(先)주문을 받은 모델3의 출시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2016년 실물을 공개했지만 가격은 4만5000달러까지 올라갔다. 무인공장으로 가동할 것이라던 기가팩토리에선 주 80시간씩 수작업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언론에선 ‘폰지 사기’(새 투자자를 모집해 그 돈으로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사이 테슬라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X를 출시(2015년)했고, 새로운 전기·자율주행차 아키텍처인 HW 2.0(2016년), HW 2.5(2017년) 등을 선보이며 내공을 쌓아갔다. 판매량이 늘면서 자율주행기술 고도화의 핵심인 ‘빅데이터’ 수집량이 천문학적으로 늘었다. 2015년 이후엔 모델S가 미국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 판매 1위에 올랐다.

오토파일럿 오작동으로 인한 잇따른 인명사고 이후 테슬라의 자율주행·고객대응 총괄이던 매튜 슈얼이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로 이직했다. 자율주행·전기차 분야 핵심 인재들의 이탈도 잇따랐다. 테슬라는 전기·자율주행차 통합 시스템온칩(SoC)의 자체 설계를 선언했다.

테슬라는 AMD 출신 짐 켈러를 비롯해 실리콘 밸리의 고급 두뇌들을 영입해 SoC 설계에 나서는 한편, FSD(Full Self Driving) 칩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모빌아이, 엔비디아와 결별한 데다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도 아닌 테슬라의 SoC 설계 가능성을 신뢰하지 못했다. 하지만 테슬라가 개발한 SoC는 기존 엔비디아 제품의 성능을 훨씬 뛰어넘었다.

2017년 모델3가 본격 판매에 들어가면서 판은 바뀌었다. 모빌아이·엔비디아와 결별한 테슬라의 아키텍처 개발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서서히 진행하던 현상이 작은 요인으로 한순간 폭발적으로 진행되는 것)’가 됐다.

2017년 10만 대 남짓이던 테슬라의 세계시장 판매량은 2018년 모델3가 본격적으로 팔리면서 24만 대를 넘겼다. 지난해엔 37만 대를 팔았고 올 상반기 코로나19 속에서도 17만9050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한국 시장에서도 7079대를 팔아 단숨에 수입차 선두권에 올랐다.

완성차 업체들은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폴크스바겐그룹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와 전기차 브랜드 ID를 만들고, 2025년까지 연간 15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코로나19와 소프트웨어 오류로 늦춰지긴 했지만 하반기부터는 첫 전용 전기차인 ID.3를 본격 판매한다. 내년엔 크로스오버차량 ID.4가 출격한다.

하이브리드에 집착하다 전기차 시장에서 뒤처진 일본 도요타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TNGT를 개발해 총 10종의 전기차를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소프트뱅크와 공동으로 설립한 모빌리티 전문기업 ‘모넷 테크놀로지’를 통해 모빌리티 서비스도 내놓을 예정이다. 혼다·스바루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이 진영에 참여한다.

최근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합병을 선언한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도 eVMP라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들어 2023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PSA와 FCA는 스텔란티스라는 이름으로 합병법인을 만드는데 판매대수 기준 세계 4위(폴크스바겐-도요타-르노·닛산·미쓰비스 연합 순)로 올라선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2025년까지 연간 10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글로벌 전기차 톱3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개발해 내년 초 첫 양산차를 선보인다.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브랜드는 아이오닉(IONIQ)으로 정해졌고, 기아차 역시 내년에 E-GMP기반 첫 차가 나온다.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도 전기차 출시를 앞두고 있다.

배터리 가격 떨어지면 가격경쟁력 상승


▎한국전력은 전기차에 충전 플러그를 꽂으면 사용자 인증과 결제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플러그 앤드 차지(Plug and Charge) 충전 기술’을 개발했다. / 사진:한국전력
하지만 테슬라처럼 ‘하나의 컴퓨터’와 같은 아키텍처 구현은 어느 완성차 업체도 당분간 선보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폴크스바겐과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자율주행차 통합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테슬라에 최소 2년 이상 뒤처져 있음을 인정한다.

독일 자동차 전문매체 [아우토모빌보헤]는 지난 5월 폴크스바겐 그룹 내부 문건을 인용해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이 ‘테슬라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신경망처럼 정보를 수집해 운전자에게 최고의 주행 경험을 제공하고 업데이트한다. 우리를 비롯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테크 전문매체 <닛케이 크로스테크>도 지난 2월 “전문가들과 모델3를 분해해본 결과 통합 제어 시스템 분야에서 도요타와 폴크스바겐을 최소 6년 이상 앞서 있다”고 보도했다.

테슬라는 지난해 자체 개발 SoC를 장착한 HW 3.0 아키텍처를 내놨다. OTA로 항속거리를 늘리거나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업데이트처럼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올해 가격을 인상한 FSD 옵션의 경우, 조만간 업데이트를 통해 신호등과 도로 표지판 인식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완성차 업체들이 발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중 이런 기능을 제공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당분간 테슬라 수준의 기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전기차 시장은 규제나 정책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유럽이 올해부터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면서 각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뿌렸고, 비싼 전기차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비교적 저렴하고 오랜 노하우로 상품성을 높인 모델3는 가장 큰 수혜자다.

전기차 시장 확대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지금까지 전문가들은 저유가와 배터리·라이다(LiDAR, 레이저를 쏴 주변 물체의 3차원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 등 고가 핵심부품의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전기차 보급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술적 난제들이 극복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영역도 생겨났다. 모빌리티 분야 전문가인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배터리 가격이 ㎾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내연기관과의 가격경쟁이 가능해진다”며 “보조금 의존적이던 전기차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 센터장은 “자율주행 등 통합 컴퓨팅이 미래 차의 핵심 기능이 되면서 이에 필요한 전력 소모를 충당하려면 내연기관차에 달린 2차전지만으론 감당이 어렵다”며 “친환경과 첨단 이미지를 갖춘 전기차로 시장의 무게중심이 기울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차두원 모빌리티연구소장도 “각국이 전기차 우대정책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데다 소비자들도 새로운 매력을 지닌 전기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시장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맑은 하늘을 되찾으면서 전기차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해외 설문조사가 있다”며 “전기차와 MaaS 등 새로운 시장과 부가가치, 생태계가 지속해서 성장한다면 전기차로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는 9월 22일 열리는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다. 이 행사에서 테슬라가 새로운 배터리 기술을 공개할지 관심이 쏠린다. 테슬라는 지난해 맥스웰, 하이바시스템즈 등 미래 배터리 개발업체들을 인수했고, 자체 배터리셀 양산을 위한 ‘로드러너 프로젝트’도 발표한 바 있다.

테슬라가 기존 배터리 수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을 공개한다면 다시 한번 전기차 시장은 요동칠 수 있다. 모델3를 통해 자신을 입증한 일론 머스크를 더는 ‘양치기 소년’ 취급하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동현 중앙일보 자동차 팀장 offramp@joongang.co.kr

202009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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