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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포엠] 강물처럼 기다렸네 

 

문형렬

▎해가 진 직후 서울 한강대교에서 바라본 여의도 야경. / 사진:박종근 비주얼에디터
천막 같은 몸을 바람에 내어주고
강물처럼 기다렸네
붉게 타는 미루나무로 서서
홀로 흐느끼며 기다렸네
어둠보다 먼저 저무는 뼈에서
쏟아지는 검은 보석 조각, 조각들이
서로 안고 뒤집으며 떠내려가고
물살에 부딪치는 푸른 시간들은
가시나무 풍향계로 달려가네
저쪽, 강 건너 저쪽 붙잡을 수 없는 꿈들이
속을 게워내며 아직도 숨가쁘게 따라오는데
뒤따라오는 길마다 먼 해일이 올라서고
밑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솟구치며
떠밀려가는 슬픔들은
물거품을 붙잡고 엎드려 엎드려
사자 갈기머리를 뒤흔드네

※ 문형렬 - 영남대 사회학과,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기자·논설위원으로 일했다. 1982년과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각각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장편소설로 [바다로 가는 자전거] [눈먼 사랑] 등을, 시집으로 [꿈에 보는 폭설] [해가 지면 울고 싶다] 등을 냈다. 2012년 현진건 문학상을 받았다.

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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