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커버 스토리 | 뉴 트렌드] 친문 권력의 이중성 공격하는 진보 논객들 

희대의 국론 분열 정치에 옐로카드! 

조국흑서팀, 경제민주주의21, 사회진보연대, 최장집, 강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과정에 들어선 586 친문계에 직격탄


▎문재인 대통령이 제19대 대통령선거 이틀 뒤인 2017년 5월 11일 청와대 경내에서 참모들과 티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요즘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인기 상승 중인 구경거리는 단연 ‘진보 대 진보’ 대결이다. ‘조국 백서’ 대 ‘조국 흑서’의 싸움이 대표적이다. 이 싸움의 승자는 있을까? 이긴다 한들 무엇이 남을까? 싸움은 본시 무엇을 지키려 할 때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조국 백서’를 쓴 측은 얻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권력이다. ‘조국 흑서’를 쓴 측에는 무엇이 남을까? 약간의 명성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는 이조차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마도 가장 결정적 동기는 ‘가짜 진보’ 축출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짜 진보’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노력은 ‘진보 지키기’로 봐야 한다.

싸움 구경이 끝난 뒤 우리 사회에 남는 것은 또 뭘까? 한때 그들이 치열하게 싸운 적이 있다는 역사적 기록 한 줄? 만약에 이것이 최종 결론이라면 참으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도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차고 넘치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문제적 인간’ 조국은 진보의 자긍심을 사정없이 흔들어버린 자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일관된 항변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았던 것 같은 일관된 행보에서 우리는 유체이탈 화법의 극치를 봤다. 누구보다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던 자들이 허탈감을 담아 쓴 것이 바로 ‘조국 흑서’다. 그들이 본 것은 허상이 아니다.

그래서 책 저자들은 가치혼돈과 정신분열에 한동안 시달렸을 것이다. 다이아몬드로 알고 비싼 돈 주고 산 것이 알고 보니 유리였을 때 겪는 것과 같은 증상이다. 꽤 오랫동안 이들은 이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싶었을 터다. 차마 버리기 아까웠기 때문이다. 혼돈 속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들에게 남은 선택은 ‘손절매’밖에 없었을 것이다. 합리적 선택이다. 그 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완전히 돌아버렸을지 모른다.

대통령은 남이 써준 연설문만 읽는다?


▎대담집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저자들. 왼쪽부터 김경율 회계사, 강양구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권경애 변호사, 서민 단국대 교수. / 사진:천년의상상 출판사
이제 진보 진영은 둘로 나뉘었다. 여전히 환상에서 깨고 싶지 않은 자들과 환상에서 깨어난 자들이다. 진보 진영 내에서는 언제나 노선 투쟁이 거셌다. 그 덕분에 투쟁에 이골이 난 집단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 때리기를 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양상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노선 투쟁이 아닌 진보의 ‘이중성’이나 ‘기득권화’가 화두이기 때문이다. 진보가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지 않았으면 없었을 논쟁이다. 노선 투쟁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좀 더 진보적이고 노동 친화적인 정의당·민주노총·전교조는 더불어민주당을 애매한 진보로 본다. 마르크시즘에 충실해지자는 공산주의 원리주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그나마 민주당을 선택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보수 정당보다 확실히 ‘진보적 의제’에 대한 수용도는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진보 진영 내 이념적 위치는 어디쯤일까? 특히 ‘친문계’의 이념 정체성은 어떠할까? 그때그때 달라 보인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 보니 불가피한 일이라고 어느 정도 양해하더라도, 그 진폭이 너무 클 뿐만 아니라 거의 널뛰기 수준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왜 이런 일이 빚어졌을까? 인물과 계파에 초점이 맞춰진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 아니, 옳아야 한다. 친문계가 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사고가 현재 그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문 대통령의 ‘이념 정체성’은 무엇일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올 6월 국민의당 ‘온(On) 국민 공부방’에 연사로 나와 이렇게 지적했다.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는 거고 탁현민이 해준 이벤트를 연출하는 의전 대통령이라는 느낌이 들고, 자기 의견이 없다.”

지난 7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모친상에 대통령 조화를 보냈을 때는 이렇게 언급했다. “그의 철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철학이 없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최소한 개념은 있어야 한다.” “저는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문을 보는데 이분 정말 참 많은 고민을 했다는 걸 느끼는데 문 대통령을 보면 그게 없다.”

진 전 교수가 지적한 것은 통치 철학이다. 통치 철학도 결국 ‘이념 정체성’을 반영한다고 볼 때, 우리가 문 대통령의 이념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극기 집회에서는 문 대통령이 ‘빨갱이’, ‘종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의 주장처럼 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 또는 주체사상 신봉자일까? 그것을 알고도 우리 국민이 대통령으로 선출해준 것일까? 대통령이 된 이후 보인 말과 행동으로 볼 때, 그렇게 단정 짓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진보적 성향이 강한 것은 맞지만, 극단으로 내닫지는 않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소득주도성장론’을 강조했지만, 요즘에는 ‘한국판 뉴딜’로 기업 살리기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집권 초기 북한 정권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한·미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킬 정도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도 일방적으로 재개하지 않았다. 재벌개혁 또한 크게 미진하다는 것이 정의당과 민노총의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는 민주당도 너무 친기업적·친자본적이라는 것이 정의당과 민노총의 판단이다.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상황이 되면, 진보적·보수적 의제를 적절히 ‘믹스 앤드 매치(Mix & Match)’ 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양극단 세력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래도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하는데, 문 대통령에게는 그게 잘 안 보인다. 이유는 문 대통령 스스로 중심이 안 잡혀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확고하지 못하다면 청와대 참모진, 특히 비서실장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보다 외부의 비선 조직에 의존한다면, 물론 그 비선 실세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 비선 실세의 ‘이념 정체성’에 따라, 대통령의 통치 철학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그 비선 실세의 이념 정체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여전히 대통령에게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의 이념 정체성을 따져봐야 한다.

“운동권 위장해 배지 달고 민주화 세력 행세하는 이 많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표지. / 사진:천년의상상 출판사
양 전 원장은 한국외대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 위원장 출신이다. NL(민족해방)계 곧 자주파 또는 주사파로 불리는 운동권 세대다. 이런 연고로 대선 캠프였던 ‘광흥창팀’에는 전대협 의장 출신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를 비롯해 윤건영(전 국민대 총학생회장), 한병도(전 원광대 총학생회장), 송인배(전 부산대 총학생회장), 신동호(전 전대협 문화국장), 오종식(전 고려대 조국통일위원장) 등이 참여했고, 이들이 현재 핵심 친문이다.

진 전 교수 지적처럼 문 대통령이 스스로 국정철학이 확고하지 못해 이들에 휘둘리는 의전 대통령에 불과하다면, 국민의힘이 자유한국당 시절 현 정부를 주사파 정부로 불렀던 것도 적어도 인적 특성 면에서는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불러들인 것이 문 대통령이라고 본다면, 대통령도 기본적으로 이들과 생각이 같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중요한 것은 이들이 여전히 ‘주사파’로 남아 있느냐의 문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역시 전대협 출신이지만, 주사파를 아직도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올 7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전대협 의장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아직도 주체사상 신봉자냐’는 태영호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 당시에도 주체사상 신봉자는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이 점은 분명히 말씀드린다.”

답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전대협 세대 모두가 계속 주사파를 추종했다면, 그들이 주류가 된 지금쯤은 대한민국이 북한에 흡수통일돼야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 박사는 올 8월 19일 [경향신문] 칼럼에 이렇게 적었다.

“당시 ‘전대협 100만 학도’ 중 지금 이렇게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50대 국민 대다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노후가 불안한 평범한 중년일 뿐이다…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학벌 권력만으로 86 운동권으로 ‘위장’해 배지를 달거나, 586 나이만으로 각계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행세하는 남녀가 많다.”

전대협 지도부 출신 친문계는 어떤 경우에 속할까? 족보가 분명한 까닭에 ‘위장’해 배지를 단 경우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이들 대다수도 ‘노후가 불안한 평범한 중년’으로 변한 것은 아닐는지? 이른바 ‘진보의 이중성’이 그 반증일지도 모른다.

전대협 세대의 이념 정체성이 세차게 흔들린 시기는 구소련이 붕괴했을 때다. 당시 전대협은 공식 입장 발표를 한동안 유보했을 정도다. 그만큼 심리적 공황상태였다. 실제로 구소련 붕괴 이후 실질적 사상 전향자가 많이 나오면서 전대협은 퇴조기를 맞았다. 물론, ‘사상적 관성’이 남아 여전히 ‘진보적 의제’를 선호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과거처럼 원리주의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들이 정치권으로 들어와 주류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실 이런 변신, 좋게 말해 ‘이념적 유연성’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원리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변질했다고 지적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한때 절대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진보적 의제’조차 이들에게 이제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 변화한 것 아닐까?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될만한 ‘진보적 의제’를 선거 때마다 대량 방출하지만, 실제 집권 이후에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의당이나 민노총이 제기하는 문제도 이런 것이 대부분이다. ‘진보적 의제’조차 필요할 때만 내거는 빛바랜 ‘깃발’ 정도로 전락해버린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권력 누려온 전대협 지도부


▎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대표적인 ‘학생 운동권’ 출신이자 ‘586’ 정치인이다.
반면 강화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습관’이 아닌가 한다. 현 정부에서 주류로 부상한 전대협 지도부는 운동권 족보 상단에 위치한 인물들이다. 전대협 대중은 족보 밖의 ‘장삼이사’로서, 지도의 대상일 뿐이다. 조국 교수가 말한 ‘가재와 붕어 그리고 개구리’들이다. 사실 전대협 지도부는 학생 시절부터 학내에서 기득권층이었다. 학생회의 물적 자원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추앙받는 존재였다. 이후 정치권의 주류가 된 지금까지 그들의 지위와 서열은 크게 안 변한 것 같다.

임지현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소장은 올 8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급생끼리도 학생회장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학생회장은 서비스하는 사람이지만 ‘님’이 되는 순간 두목이 됩니다. 민주당의 386세대는 그런 문화에 젖어서 큰 친구들인데 스스로를 민주화할 수 있을까요? 안 될 겁니다.” 기득권층으로 학생운동 시절부터 권력을 누려 온 전대협 지도부 인사들은 그래서 기득권 의식이 매우 강하다. 최근 ‘진보의 기득권화’가 사회적 논란이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득권층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 기득권은 치열한 노선 투쟁과 정치 투쟁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래서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공격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도 특권 의식 못지않게 습관화된 것으로 보인다. 임지현 소장은 이와 관련, ‘포위된 요새 신드롬(Besieged Fortress Syndrome)’을 언급했다.

“자기네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했는데 제국주의 열강이 러시아를 포위해 혁명을 질식시키려 하니 살아남으려면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였어요. ‘진영론’이 그렇게 나온 겁니다. 볼셰비키 혁명 초기에 언론이 누리던 자유는 ‘포위된 요새’를 살린다는 이유로 제한됐어요.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당이 우위를 점했습니다. 당이 명령하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사적 이해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주의가 만들어진 심리적 기반이 ‘포위된 요새 신드롬’이에요.”

강화된 스탈린주의가 바로 김일성주의 곧 주체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적폐 세력’ 청산을 명분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도 ‘사상적 습관’의 한 단면일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기득권이고 주류인데, 여전히 소수 비주류 행세를 하니 말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도 최근에는 진보 정치인들이 더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올 4월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에서 이것을 ‘조직 보위론’으로 설명했다. “1980년대의 운동권을 지배했던 사고 가운데 ‘조직 보위론’이란 게 있다.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하기 위해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조직 밖에 알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유시민은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직 보위론을 다시 꺼내 들었다.” 조국 수호에 나선 유시민도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진단인 셈이다.

강 교수는 친문계의 조국 수호 배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분석했다. “문재인이 생각을 바꾸지 않자, 지지자들은 ‘조국사태’를 ‘문재인 사태’로 인식하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희대의 ‘국론 분열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조직 보위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조직의 수령을 지키는 일이다. 진보 단체와 노조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이 조직 보위론은 성폭력을 비롯한 내부 비리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진보 진영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공개와 은폐 중에서 어떤 것이 조직 보위에 더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이다. 보위하는 이유는 결국 ‘진보적 의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깃발의 빛이 바랜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습관’으로서 ‘조직 보위론’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습관’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국론 분열 초래한 조직 보위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하고 나선 대표적 진보 인사다. 최 교수는 올 6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의 ‘한국정치연구’에 기고한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촛불 시위 이후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는 전환점으로 기대됐지만,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학생 운동권 세대의 엘리트 그룹과 이들과 결합한 이른바 ‘빠’ 세력의 정치적 실패에서 왔다… 가상으로 조직된 다수가 인터넷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주도하고, 이견이나 비판을 공격하면서 사실상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강준만 교수는 이와 관련, 문 대통령 책임론도 제기했다. “조국이 사퇴했지만, 문재인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국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차 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국론 분열 전쟁의 요체가 바로 ‘조직 보위론’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또한 임지현 소장이 지적한 ‘포위된 요새’ 신드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조차도 대통령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나온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런 지적은 최근 여타 진보단체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며,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의 역량 강화와 노동자 민중의 단결과 연대의 힘에 기초해 새로운 대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활동’한다는 ‘사회진보연대’는 지난해 10월 조국 사태를 이렇게 지적했다.

“개혁 세력의 ‘내로남불’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2000년대 내내 보수 세력과 대결한다는 명분으로 쌓아온 오래된 정치적 태도다… 오직 진영만 남은 상태에서 도덕적·정치적 이중 잣대는 문제 되지 않았다… 조국 사태는 포퓰리즘 개혁정치의 실패를 상징한다. 현 집권 세력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확대할 실질적 방안보다 기득권·보수·적폐 세력 등 집권 세력 외부의 가상의 적을 상대로 한 섬멸전에 초점을 뒀다.” 이들에게도 이제는 노선 못지않게 ‘습관’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자칫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조국 흑서 집필에 참여한 이들은 현재의 친문계를 더는 소수·비주류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주류가 돼 패권 성향마저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기득권을 누려온 집단이었지만, 비주류로 지냈기에 우리는 그들의 삶이 소박할 것으로 여겼다.

착각이었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소박한 삶을 이어온 진보 지식인들로서는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진보가 늘어나는 것이다. 적폐 세력을 비판하면서 적폐 세력을 따라 하는 것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적폐 청산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리해서는 안 된다. ‘입 진보’ 곧 ‘가짜 진보’가 속속 드러나는 현실에서 오히려 침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진보’의 직무유기일 것이다.

친문은 친박계 전철 밟게 될까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9월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조국 흑서 집필에 참여한 김경율 회계사가 대표인 ‘경제민주주의21’은 행동으로까지 나섰다. 9월 1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처할 때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아 검찰청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핵심 취지다. 김 회계사는 ‘경제민주주의21’ 소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그 잘못됨을 지적해야 할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권력에 아부하고 이권이라는 부스러기에 매달리는 것을 지켜봤다. 이에 우리는 다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권력과 재벌로 상징되는 경제권력에 대한 감시의 눈과 입이 되고자 한다.”

김 회계사는 참여연대 출신이다. 참여연대는 현 정부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사회단체다. 그도 아부의 길을 택했다면, 지금쯤 요직 하나를 꿰차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경제민주주의21’ 소개 글을 보면 그는 여전히 진보다. 권력의 유혹까지 내치면서 추구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진짜 진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친문계 일부 ‘입 진보’의 활약(?)으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많이 하락했다. 그 덕분에 국민의힘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형국이 됐다. ‘입 진보’의 활약상에서 우리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아주 흔한 ‘우기기’와 ‘되치기’ 그리고 ‘옆차기’ 방식이다. 상대방의 주장이 ‘가짜 뉴스’고 우리 주장이 ‘진짜 뉴스’라는 등식이 ‘우기기’의 기본이다. 당신들도 그러지 않았느냐며 과거사를 들춰내 역공을 하는 등식이 ‘되치기’의 기본이다. 본질과 상관없는 지엽적인 문제를 더 부각해 시선을 돌리는 등식은 ‘옆차기’의 기본이다.

알고 보면 과거 학생운동 시절, 노선 투쟁 또는 정치 투쟁할 때 자주 써먹던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주류까지 됐으니 버리기 아까울 것이다. ‘습관’이기도 해서 버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을 식상해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꿰뚫어보는 국민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도 목적이 정당하다면 얼마간 지지를 해주긴 할 것이다. 하지만 목적조차 빛바랜 깃발로 드러나고 나면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지지율 하락은 바로 이런 현상의 반영이 아닐까.

알다시피 ‘나쁜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가짜 진보’들이 의도적으로 ‘나쁜 습관’을 재생산하고 있다면, 고질병 수준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가짜 진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충성’에 목맨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친문계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과정에 들어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진보 인사들은 사명감에 그나마 말과 글로 경고하는 이들이다. 적지 않은 이는 차라리 침묵하는 쪽을 택한 상태다. 그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나섰다가 신상털이만 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친문계 내부에서도 균열 조짐이 나타나는 중이다. ‘진짜 진보’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친문계도 결국 강경파를 중심으로 점점 소수화될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도 그러했다. 역사는 어쩌면 이렇게도 예외 없이 되풀이되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 이종훈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images/sph164x220.jpg
202010호 (2020.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