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와이드 인터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본 한반도 정세 

“주한미군, 美 의회 동의 없어도 철수 가능··· 모든 가능성 대비해야” 

■ “北, 2인자 없어… 위임통치는 정책 실패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 분산용”
■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는 극히 잘못된 일, 북한이 유감 표명해야”
■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지속하는 게 국익”
■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개정해야 주한미군 분담금 인상 가능”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9월 7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특보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문 특보는 남북관계부터 미·중 신냉전까지 망라해 의견을 밝혔다.
요즘 미국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너무 섬뜩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예컨대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반도의 운명이 핵전쟁의 전야에 놓였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는 최근 출간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책 [분노(Rage)]에서 2017년 미국이 핵무기 80개를 동원해 북한을 폭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예방’ 차원에서 검토했다는 것이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저서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2017년 말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선제 타격이 왜 효과가 있는지 설명했다”고 언급했다.

우드워드는 같은 저서에서 “트럼프가 2017년 회의에서 ‘나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 미국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3만 병력을 유지하는 비용을 내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는 33년 전에도 금전적 관점에서 동맹국을 겨냥했다. 1987년 당시 일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트럼프는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일간지 3곳에 전면 광고를 싣고 “미국이 이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과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는데 왜 이들은 미국에 돈을 지불하지 않느냐”며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했다. 트럼프에게 주한미군 철수 내지 감축은 ‘오래된 생각’이면서도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 선택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변덕스럽기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정상회담을 통해 우의를 다지던 문재인 정부를 향해 입에 담기조차 힘든 비방을 쏟아내는가 하면, 남북대화의 상징인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유일 영도를 원리로 하는 수령 국가에서 2인자가 등장했다는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돌연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등 요지경 속이다. 이례적인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 요즘 한반도 안팎 정세의 특징이다.

외교학에서는 흔히 정책은 국익에 기초해 결정되고, 국익은 국가의 정체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가 자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정책이 결정된다고 하겠다. 한반도 정세의 핵심 변수인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의 막말 퍼레이드를 펼치는 요즘, 한국 정부는 어떤 대응 전략과 안보 청사진을 구상하는 걸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이에 답할 위치에 있는 여권의 관계자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책사’이자 자문역으로 통한다. 9월 7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특보실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문정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 외교·안보 관심사의 우선 순위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비핵화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경제 실패 자인은 북한 정상화의 한 과정”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오른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백악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의 경제 실패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 배경을 풀이한다면?

“북한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김정은 위원장 본인에게 더 큰 타격이 올 수도 있다. 또 실패를 인정하는 게 그의 통치 방식이기도 하다. 현지 지도에 나섰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그걸 인정하고 수정한 뒤 개혁하는 게 그의 기본 패턴이다. 이는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엔 최고지도자가 모든 걸 혼자 다 결정했기에 진행 과정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은 각종 회의를 통해 합의를 만들고 지시사항을 하부에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북한 정권이 돌아간다. 북한의 거버넌스가 훨씬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며, 정상화하는 흐름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여파로 북·중 교역이 급감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여전하다. 지금 북한 경제는 얼마만큼 어려운가?

“많이 어렵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효과가 엄청나다. 북한의 대중(對中) 무역량이 80~90% 정도 줄어들었다. 또 코로나19 확산 이후 북한 국경은 완전 차단됐다. 여기에 홍수 등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닐 것이다. 놀라운 점은 그런 북한이 아직도 가시적인 경제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 경제 연구자들조차 왜 그런가에 대해 당혹해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경제 실상을 제대로 아는지도 의문이다. 평양을 자주 방문한 빈대학교의 뤼디거 프랑크 교수는 한국이 분석하는 북한 경제 현황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도 어떤 때는 우리가 북한 경제에 관해 얼마나 아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북한 내 위상과 관련해 박지원 국정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서로 다른 톤의 얘기를 했다. 국정원은 김여정이 사실상 2인자로 위임 통치에 나섰다고 한 반면, 통일부는 후계자 위상은 다소 무리한 해석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2인자라고 언급한 적은 없다. 하태경 국회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의 브리핑에서 그런 식으로 얘기가 나왔을 뿐이다. 북한 수령제에는 2인자 개념이 없다. 2인자라는 건 한국이나 일본, 미국의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쓰는 표현이다. 위임 통치라기보다는 역할분담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해 보인다. 박봉주·이병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 총리, 김덕훈 내각 부총리에 김여정 부부장까지 더해지는 등 시스템이 점점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1면 사진에 김정은 아니면 못 들어가던 [노동신문]에 노동당 부위원장들의 현지 지도 장면이 장식된 것만 봐도 이런 흐름을 알 수 있다.”

북한 권력 시스템의 정상화라는 단면 외에 다른 의미를 찾는다면?

“북한은 지금 모든 것이 어렵다. 그래서 책임 분산의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통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노동당 부위원장들은 나중에 책임도 져야 한다. 요즘은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위원장도 실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지만, 북한은 기본적으로 수령 무오류의 국가다. 위임 통치는 정책 실패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을 주변에 분산해 김정은 위원장의 정통성에 가해지는 데미지를 줄이고 통제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 같다. 내가 볼 때는 좋은 현상이다.”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엔 북한 책임도 있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8월 19일 북한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6차 당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남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내가 판문점도, 평양도 갔었는데 북의 대접이 정말 극진했다. 우리에게서 많은 걸 기대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하노이 미·중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되면서 한국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만 쌓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 같은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다는 건 극히 잘못된 대응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북한의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 식으로 폭파한 것은 정당화되지 못한다. 그나마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복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지구 군대 재배치와 대남전단 살포를 위한 공간 확보 등 북한이 공언했던 4대 군사행동을 보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북한이 이런 무리수를 둔 속사정을 짚어본다면?

“내가 그걸 군사적 도발이 아니라고 했다가 일부 언론에서 호된 비판을 받은 적 있다. 그건 도발이 아니다. 북한 내부의 정치적 행위로 봐야 한다. 북한 주민을 추스르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 같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남북관계 개선의 행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지만 총대를 멘 건 김여정 부부장이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 대통령 내외분을 만나고, 남쪽 주민들의 환대에 좋은 인상을 받아서 남북관계를 풀자고 강력 주장한 사람이 바로 김여정 부부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게 교착된) 현 상황에서 본인이 책임은 져야 하는데 ‘백두혈통’이다 보니 처벌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나온 게 6월 3일 김여정 명의의 첫 담화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외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남북관계 개선에 공을 들인 셈인데,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건 과하지 않나?

“과했다고 본다. 그러나 역지사지로 보면 북의 실망도 클 것이다. 우리가 철도 연결, 에너지 공급, 관광 개발 등을 얘기했지만 뭐 하나 이뤄진 게 없지 않은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만 해도 우리가 미국과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고 봤을 수도 있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5조 2항(미국이 싱가포르 선언에 따른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에 나오는 영변 카드는 우리 정부가 북에 강력하게 권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면 비핵화에 상당히 중요한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우리는 본 것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카드가 나오기까지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그 카드를 걷어찬 것이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로는 양에 차지 않았던 건가?

“많은 이가 영변 핵시설의 가치를 상당히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일부에서는 영변 핵시설의 가치가 북한 전체 핵 능력의 10%밖에 안 된다는 주장도 한다. 반면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인 지크프리드 해커 박사는 영변의 비중이 북한 전체 핵시설의 60~70%에 달한다고 평가한다. 영변에는 5㎿ 실험용 원자로와 핵연료 제조공장, 방사화학 재처리시설, 삼중수소 실험실, 그리고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이 있다. 건물만 해도 400개가 넘는다. 이런 핵시설들의 영구 폐기는 결코 가벼운 제안이 아니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과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면서 일이 꼬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예컨대 미국 정부는 영변 카드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우리 정부가 북에다 그 카드면 통할 것이라는 식의 오판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북한 책임도 있다고 본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 보좌관 회고록을 보면 미국도 하노이 회담에 확실한 대안을 갖고 임한 것은 아니었다. 2월 16일부터 2월 26일 열흘간의 북·미 실무접촉 과정에서 북한이 실무대표인 스티브 비건 당시 대북특별대표에게 영변 카드를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무회담에서 영변 카드가 논의가 안 된 것이다. 사전에 얘기가 됐으면 비건이 한국 정부와 소통해서 어젠다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좋은 카드를 두고 실기한 셈이다.”

“바이든 집권해도 미·중 냉전 이어질 것”


문 특보는 2018년 10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5·24 조치 중 유엔(UN)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안과 겹치지 않는 부분은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이후 2년 동안 제재 해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북·중 간에는 생필품 교역이 가능하다. 생필품은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안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북한과 생필품 교류를 못할 이유가 없다. 인도적 지원도 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과 미국의 독자 제재에 저촉되지는 않는 부분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 물물교환을 언급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금융제재, 특히 세컨더리 보이콧을 고려할 때 북에 대한 대금 결제는 어렵다. 그러나 물물교환은 그런 제약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이 받겠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다고 인식하지 않나? 한·미 현안 협의 통로로서의 한·미 워킹그룹 기능과 운용을 평가한다면?

“한·미 워킹그룹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히 존재한다. 유엔 및 미국의 제재에 저촉되는 품목들을 사전에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수 있다는 점은 순기능이지만, 미국이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관계 전반을 조율하려 한다면 이는 역기능이 된다. 한·미 워킹그룹이 출범한 2018년 11월 당시는 남북관계가 너무 잘나갈 때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비핵화 진전이 없는데 남북관계가 앞서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한·미 워킹그룹은 한국 입장에서 제재를 풀어가는 기제였다면 미국엔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기구인 셈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염원하는 사람들은 한·미 워킹그룹을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간주하겠지만, 한·미 워킹그룹의 순기능도 분명히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를 풀자면 미국과의 협력은 절대적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시진핑 중국 주석을 일러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신봉자’라고 공격하는 등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으로 돌입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대중국 비판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11월 대선을 앞둔 한시적·전술적 대응이라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초강대국 미국의 예외주의와 우월주의에 기초한 장기적 전략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미국은 공화당·민주당 할 것 없이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대단하므로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신냉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중 관계는 상당히 냉각될 것이다.”

국내 언론 기고에서 문 특보는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때리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워싱턴의 이분법적 외교정책을 비판하는가 하면, 중국 외교는 패도 내지 강권 외교라고 일침을 가했다.

“미국은 외부의 적을 만들고 이를 악마화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1950년대 매카시즘은 물론이고 레이건 전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했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이라 칭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을 ‘프랑켄슈타인’으로 규정했다. 카터 행정부에서 미 국무부 차관보와 [뉴욕타임스] 논설실장을 지낸 레즐리 겔브 전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외부의 악마는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일갈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악마를 만들어내는 건 ▷과도한 이념과 원칙 ▷잘못된 외교정책에 편승하는 워싱턴 정치 풍토 ▷뭐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경파들의 목소리만 커지고 잘못된 정부의 외교정책에 침묵·편승하는 흐름이 워싱턴에 조성됐다.”

문 특보는 중국 정부 역시 전략적 모호성과 혼선으로 주변국들의 신뢰를 해치고 있으며, 미국과 비슷한 예외주의를 표방한다고 비판했는데.

“중국도 말로는 화평발전, 인류 운명공동체 등 좋은 얘기를 하지만, 대국굴기를 추구할 뿐더러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은 신제국주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이런 전략적 모호성과 혼선이 주변국들의 신뢰를 흔든다. 사드 한국 배치 당시 보인 태도, 남중국해에서의 행보, 코로나 사태 이후 ‘늑대 전사(戰狼) 외교’는 왕도가 아닌 패도와 강권에 가깝다. 중국은 자기들만 문명이라고 한다. 거기서 나온 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라며 이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다. 중국이 진정 미국과 경쟁하려면 자신들의 특수성을 세계적인 보편성과 절충해야 한다. 미국은 자신의 예외주의를 민주·자유·인권이라는 보편주의로 포장하는데, 중국은 그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다른 나라들의 존경을 받고 정통성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중국 특색 민주주의’로는 국제사회 설득 못해”


▎지난 9월 16일 총리로 지명된 스가 신임 총리(오른쪽 첫째)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운데)가 손뼉을 치며 축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 특보 본인은 미국과 중국 중 어디에 더 가까운 편인가?

“나는 미국도 가깝고, 중국도 가깝다. 알다시피 아들과 딸을 미국서 낳고 길렀고 손자·손녀들도 미국에 산다. 또 우리가 중국과 사이가 나빠서 도움 될 게 뭐가 있나.”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은 미국 아닌가?

“우리가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할 때는 무엇보다 국가 이익을 중심에 놓고 사고해야 한다. 중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가는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이 우리 무역총액의 25%를 차지한다. 중국은 14억 인구를 가진 국가다. 국가 이익을 경제적 이익 관점에서 본다면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안보 이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미국의 동맹이므로 미국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말은 옛날이야기다. 한반도 전역이 중국 미사일 사정권에 든다. 한국이 신냉전 체제의 최전선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가. 또 미국은 언제나 떠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할수록 한국 입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 동맹이 절실해진다는 시각도 있지 않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 기준에서 중국을 배제해도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가치가 국가 이익보다 중한가? 패권 국가인 미국도 가치와 국익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우리가 가치지향 외교로 일관할 수 있을까? 게다가 중국이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데 가치지향 외교 때문에 중국과 척을 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하고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지속하는 게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이다. 가치와 국익 사이에서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이후 보안법 제정 등 홍콩을 다루는 중국의 모습에서 국제사회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중국이 과연 예측 가능한 나라인가라는 의문이 나온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만든 건 분명히 잘못한 일이다. 그러나 그 맥락을 봐야 한다. 홍콩은 일국양제를 취하지만 엄연히 중국의 일부다. 홍콩에 자율성을 주는 건 좋지만, 중국 국기와 공산당을 부인할 경우 중국 지도자라면 어떻게 대처하겠나. 중국에서 분리해나가겠다고 하면 중국 국법이 허용하겠나. 지난해 범죄인 인도 관련 송환법 사태 당시 홍콩 민주화 세력이 보다 슬기롭게 사태를 해결했어야 했다.”

인접한 일본은 미국에 올인하는 것 같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라는 말로 곧잘 대변된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왜 한쪽으로 쏠리는 정책을 펼까?

“우선 아베 전 일본 총리는 이중적이었다. 미국과 함께한다고 하면서도 중국과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조성해왔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많은 협력사업을 벌인 바 있다. 북한 문제만 해도 북한은 우리의 직접적 위협이고 일본엔 간접적 위협에 그친다. 지금 상황이 일본에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미국과 손잡고 대(對)중국 견제에 나서면,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권장한다. 언젠가는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까지 용인할지 모른다. 사실 일부 워싱턴 보수 인사들은 일본의 핵무장을 옹호하고 나선다. 일본 보수파의 입장에선 미국과 같이하는 게 일본의 정상국가화와 장기적 국력 신장에 이롭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아베 전 총리, 미·중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


얼마 전 언론에 ‘주한미군 철수의 진실의 순간’이라는 글을 실었다. 감축설, 철수설 등이 분분한데 미국은 결국 어떤 선택을 할까?

“미리 그런 상황을 준비하라고 쓴 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추가적인 주한미군 감축은 없다던 미국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다가 나중에 호되게 당했다. 당시 급작스럽게 자주국방을 외치고 방위산업 진흥에 나서는 동시에 대북 접촉을 통해 7·4 남북공동성명을 만들어냈다. 그때의 경험을 되새기자는 취지였다. 지금도 우리는 주한미군이 응당 유지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혀 있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주한미군을 유지하자는 쪽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이 안 맞으면 철수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나.”

미 의회에서 주한미군을 현행 2만8000명 이하로 줄일 경우 의회에 승인받도록 한 국방수권법을 제정했다. 이 법이 안전장치 역할을 하지 않을까?

“단서조항이 문제다. 미군 감축이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맞고 동맹의 안보를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는 경우 동맹국과 협의를 거치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워싱턴에는 트럼프처럼 방위비 분담 증액이 없으면 주한미군 철수한다는 거래주의자, 핵무기와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이 코앞인 평택에 어떻게 주한미군을 두느냐는 현실주의자들도 있다. 또 미국은 역외 균형자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신현실주의자도 존재한다. 우리도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이런 얘기들을 여권의 누군가는 보수 진영에 전하고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 인사들은 집단사고에 능하다. 나 같은 이는 완전히 프리랜서여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들 자신들의 사고 틀 속에 갇혀 있어 교감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참 어려운 게 외교안보에서는 상식과 순리의 중도가 설 자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한·미 방위비 협상이 미국 대선(11월 3일) 이후에나 타결되리라는 얘기가 미국 일각에서 나온다.

“미국은 우리 정부가 증액에 쉽게 응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알아야 한다. 원래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따른 한국의 방위비 분담은 주한미군의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 그리고 각종 병참지원 비용 등으로 그 사용처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미국이 연간 분담금으로 요구하는 45억~50억 달러에는 미군 임무 교체 시 수송비, 전략자산 전개 비용, 호르무즈 해협 등 해상통로 안전 유지비용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 SMA에 없는 내용이다. 만일 이 분담금을 우리 정부가 수용해도 한국 국회에서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의 삭감될 수 있다. 결국 SMA를 개정해야 풀릴 쟁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의 관심사 우선순위를 든다면?

“아마 제일 중요한 관심사는 한반도에 전쟁을 막고 비핵화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정책 목표를 위해 남북관계, 한·미, 한·중 관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세부적인 건 국가안보실에 문의해보라.”

일본 총리가 바뀌는 상황이다. 한·일 관계에 전환점이 올까?

“(후임 총리) 스가 요시히데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 안다.”

“강제징용 문제, 대법원 판결 이행이 우선”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절실하다. 한·일 정부가 대담한 타협에 나서라는 여론이 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공 배상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정치적 타결을 통해 일본 기업에 대해 보상을 해주든가 하는 방안은 나중에 찾아야 한다. 일본은 징용공 해법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부에 얘기를 해 결단을 내리면 된다고 본다.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일본 등에는 국내법과 외교관계 간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사법부와 행정부가 사전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정의 친구(amicus curae)’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때 판사들이 정권의 뜻을 받아들여 강제동원 소송을 지연시켰다가 사법농단으로 단죄를 받았다.”

그렇다면 한·일 간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

“내가 알기로는 일본 기업들도 빨리 강제징용 건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 대법원 판결대로 이행하고 남은 보상 문제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제안한, 기업과 국민의 성금을 더하는 ‘1+1+α’ 안으로 처리하면 어떻겠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에서 연정(연세대 정외과) 라인이 득세한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에 이어 최종건 외교1차관까지 연대 출신 인사로 채워지면서 그런 얘기가 나온다.

“연정 라인 운운은 많이 과장되고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강경화 장관은 정부가 국제기구에서 활약한 인물을 입각시킨 케이스고, 이도훈 본부장은 박근혜 정부 때 외교부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정통 외무 관료 출신이다. 김준형 원장과 최종건 차관은 문재인 캠프에 있었지만 똑똑하고 영어 잘하고 강단 있어 뽑힌 것이다. 그리고 연정 라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야 하는데 이도훈은 연대 경제학과, 최종건 차장은 미국 로체스터대학을 나왔고, 나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강경화 장관과 김준형 원장만 연대 정외과 출신이다. 따라서 연정 라인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해 보인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편집장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심민규 인턴기자

/images/sph164x220.jpg
202010호 (2020.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