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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 구축 속내는 

中 IT 빅3 텐센트 숨통도 옥죄려는 트럼프 

화웨이, 美 제재로 스마트폰은 물론 5G 네트워크 사업도 먹구름
中이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내쫓던 방식 벤치마킹해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고사작전 돌입 초읽기


▎미국은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 우위를 점하려 하고 있다. / 사진:미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자 경제특구 1호 도시다. 인구 3만의 작은 어촌이었던 선전은 40년 만에 현재 중국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 중 하나이다. 중국 최고지도자이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1980년 8월 26일 선전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한 이후 눈부시게 도약했다. 인구가 1340만여 명에 달하는 선전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약 2조7000억 위안(약 464조4000억원)으로 상하이·베이징에 이어 중국서 세 번째 부자 도시가 됐다. 2007년에는 중국에서 최초로 1인당 GDP 1만 달러를 넘어선 도시가 됐다. 중국 내 임금이 가장 비싼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선전에는 중국의 최첨단 기술 기업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와 중국 최대 IT(정보통신) 기업인 텐센트를 비롯해 대형 통신장비업체인 ZTE(중싱통신), 세계 최대 드론 제조업체인 DJI(다장), 중국 최대 전기자동차업체인 BYD(비야디)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첨단기술과 혁신의 허브’라고 말할 수 있다. 올 7월에는 선전에 중국 최초로 4만6480개의 5G 통신 기지국들이 세워졌다. 선전시는 경제특구 지정 40주년을 계기로 향후 5년 내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혁신 도시로 도약하고, 2050년에는 세계 제1의 혁신 도시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런 선전시가 현재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때문이다. 화웨이가 선전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선전시 통계국에 따르면 화웨이는 선전시 GDP의 7%를 차지하고 있다. 협력업체와 서비스 부문까지 포함하면 화웨이의 비중은 훨씬 늘어난다. 1987년 인민해방군(PLA) 통신 장교 출신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설립한 화웨이는 다른 기업들보다 연구·개발(R&D) 투자도 월등하게 많이 했다. 게다가 화웨이는 칭화대·베이징대·저장대·푸단대 등 중국 명문대 출신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화웨이의 임직원 19만40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R&D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선전시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전이 미·중의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 된 셈이다.

화웨이 뒷문까지 틀어막은 美


▎2015년 런던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에게 화웨이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런정페이 화웨이 최고경영자(CEO).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본격 제재 조치를 9월 15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 및 장비를 활용한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는 화웨이에 반도체 부품을 공급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주요 제재 내용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의 이번 제재 대상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들이 주로 공급하던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부품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5월 화웨이와 114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리고 인텔·퀄컴·브로드컴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거래를 금지했다. 올 5월에는 미국 반도체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화웨이(계열사 포함)의 설계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화웨이가 독자 설계한 반도체를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의 TSMC에 맡겨 생산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었다.

화웨이는 계열사를 통해 대만의 미디어텍 등으로부터 기존에 만들어진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을 대량 구매하는 방법으로 제재 조치의 빈틈을 이용했다. 그러자 아예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때문에 이번 조치는 화웨이가 미국산 제품과 기술을 외국 반도체 회사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구입하는 경로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의도라 분석할 수 있다.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안 쓰는 반도체 기업은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상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외국산 반도체 부품과 장비를 전혀 구할 수 없게 된 화웨이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부품을 제공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기술력은 화웨이가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스마트폰·태블릿PC·이동통신 기지국·통신 장비 등 모든 주력 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반도체 부품을 새로 구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블룸버그 통신(Bloomberg)]은 “이번 제재는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화웨이가 비축해 놓은 핵심 반도체 칩도 내년 초면 바닥이 난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의 니콜 펭 부사장은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이 올해까지는 살아남겠지만, 앞으로 2년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날리스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 2분기 5580만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해 같은 기간 삼성전자(5370만대)를 넘어서면서 스마트폰 판매 세계 1위로 올라선 바 있다. 하지만 화웨이가 더는 최신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질서가 크게 변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화웨이가 비축한 칩을 소진할 때인 2021년에는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4.3% 수준까지 폭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5G 부품과 장비도 마찬가지다. 국제 컨설팅 회사 게이브칼 리서치의 댄 왕 연구원은 “내년 초에 부품 등의 재고가 모두 소진되면 화웨이는 5G 네트워크 구축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5G네트워크 구축 사업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이동통신사들은 화웨이의 5G 네트워크를 선택하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품과 장비부족으로 신규 이동전화 기지국 설치는 물론 시설의 정비와 보수 등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당장 비축한 반도체 부품과 장비 재고로 버틸 계획이지만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비축분이 충분하다고 해도 과거 구매한 부품으로 계속 제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업체들과 첨단 제품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화웨이의 시장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력갱생’ 내걸자 SMIC 제재 카드 만지작


▎올 5월, 화웨이가 사내망에 “상처 없는 굳은살이 어디 있겠으며 영웅은 자고로 시련이 많다. 험난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문구와 함께 전투기 사진을 올렸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그동안 줄곧 화웨이를 전투기에 빗대왔다. / 사진:환구시보 캡처
화웨이는 강력한 제재 조치에 맞서 ‘난니완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난니완(南泥湾)은 중국 산시성 옌안에서 남동쪽으로 90㎞ 떨어진 곳에 있는 계곡이다. 항일 전쟁(1937~1945) 때 중국 공산당의 주력부대 중 하나인 팔로군(八路軍)은 이곳의 황무지를 개간해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일본군과 싸웠다. 중국 공산당의 혁명 성지라 할 수 있다. 당시 팔로군의 이런 불굴의 투지와 인내를 ‘난니완 정신’이라 부른다. 미국의 기술과 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체 개발한 기술과 중국산 부품으로 제품을 만들겠다는 화웨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천명한 ‘자력갱생’ 전략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력갱생은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이 주창한 경제 이론이다. 마오 전 주석 집권 당시 중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자급자족의 폐쇄형 국가 경제 정책을 추진했는데, 당시 선전구호는 ‘자력갱생 자급자족’이었다. 시 주석은 올 5월 공산당 지도부 모임인 정치국 회의에서 ‘경제 자력갱생’을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까지 제재할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 국영기업으로 분류되는 SMIC는 올해 43억 달러를 설비에 투자하는 등 기술력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MIC는 현재 14㎚(나노미터, 10억분의 1m)중심의 파운드리 공정을 연말까지 7㎚로 업그레이드해 자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의 수요를 충족시킬 방침이다.

SMIC의 최대 고객사는 화웨이다. 이 때문에 SMIC 거래 제재 검토는 화웨이를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 정부는 올 5월 SMIC에 22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미국 정부가 SMIC에 제재 조치를 내릴 경우, 중국의 ‘반도체 굴기’ 계획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IT 업계는 물론 중국 산업 전반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2014년 대비 0.6%p 증가한 15.7%에 그쳤다. 2024년 자급률도 20.7%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는 미래 기술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5G 네트워크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화웨이는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인프라기술인 5G 네트워크 분야의 선두주자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은 물론 각국에 5G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앞으로 화웨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모든 정보·통신 기업들을 배제하기 위한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프로그램 구축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올 8월 5일 국무부에서 직접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미국 국민의 개인 정보와 미국 기업들의 민감한 정보들을 중국 공산당 같은 악의적인 행위자들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 공산당의 감시통제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클린 네트워크 출범 선언과 함께 자국의 이런 프로그램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5G 클린 이동통신사(5G Clean Telecom Company)’를 발표했다. 5G 클린 이동통신사는 중국산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회사로 미국 국무부의 의뢰에 따라 민간 기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미국·아시아·유럽 등 25명 전문가와 함께 통신장비평가 기준에 따라 ‘안전하다’고 선별한 기업들이다.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5G 클린 이동통신사들은 한국의 SK텔레콤·KT를 비롯해 ▷미국 버라이즌·스프린트·AT&T ▷일본 NTT 도코모·KDDI ▷대만 티스타·타이완모바일 ▷스페인 텔레포니카 △프랑스 오렌지 ▷영국 오투 ▷캐나다 로저스 ▷호주 옵터스·텔스트라 ▷인도 지오 등이 31개사이다.

5G 네트워크 선두 두자 압박에 속속 동참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5G 클린 이동통신사(5G Clean Telecom Company)’ 명단. / 사진:미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미 국무부의 의도는 이번 명단 공개를 통해 동맹국들과 파트나 국가들은 물론 각국의 동참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각국 정부와 이동통신사들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명단에 들지 못한 기업들은 미국 정부에 ‘신뢰할 수 없는 회사’로 낙인찍혀 자칫 미국 시장 진출 길이 막힐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한국의 주요 이동통신사 3곳 중 규모가 큰 두 곳은 이미 신뢰할 수 있는 업체를 택했고 규모가 작은 한 곳은 여전히 결정 중”이라며 “한국은 기술적으로 아주 요령 있는 곳이고 그들이 위험을 알고 있다고 본다“며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사이버·국제통신정보정책 담당)도 “우리는 LG유플러스 같은 기업들에 믿을 수 없는 공급업체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기라고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의 내용은 클린 캐리어(Clean Carrier)·스토어(Store)·앱(Apps)·클라우드(Cloud)·케이블(Cable) 등 5가지다. 첫째, 믿을 수 없는 중국 이동통신사들이 미국의 통신 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바이러스나 정치 선전물이 배포될 우려가 있는 중국 앱을 미국 앱 스토어에서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미심쩍은 앱을 미리 깔아두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넷째, 미국 국민들의 민감한 개인 정보나 코로나19 백신 연구 자료 같은 중요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에 서버가 있는 클라우드에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다섯째, 태평양을 건너는 정보를 중국이 중간에 수집하지 못하도록 해저케이블 사업에 중국 기술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국제 IT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중국 IT 기업들과 기술의 퇴출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는 동맹국 등 각국에 화웨이 5G 장비사용 금지를 요청했듯이 이번에도 각국에 반중(反中) 공동 전선에 참여할 것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프라하 제안’에서 비롯됐다. 30여 개국과 유럽연합(EU),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대표들은 지난해 5월 체코 프라하에서 5G 인프라의 안정성과 보안 문제를 검토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제안을 바탕으로 올 4월 ‘5G 클린 패스(clean pass)’ 구상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 구축을 선언했다. 미국 정부의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전 세계 IT 네트워크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막는 것이 핵심 목표다.

시 주석은 세계 첨단기술 분야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올해부터 2025년까지 6년간 무려 10조 위안(1727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시 주석의 계획에 중국의 대표적인 IT기업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중국의 시스템 통합 업체인 디지털 차이나의 마리아 궉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런 웅대한 계획은 일찍이 없었던 구상으로, 전 세계 기술 패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포석”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전자상거래·검색엔진·SNS 등의 분야에서 미국과 격차를 좁히고 있고, 전자결제 등 일부 분야에선 이미 미국을 앞질렀다. 미국 정부로선 IT 패권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된 셈이다.

11억 명 쓰는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 퇴출도 시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 9월 15일 이후 중국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틱톡과 위챗을 퇴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이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 구축 계획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인 8월 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정보 유출과 국가안보 위협을 들며 올 9월 15일 이후 중국 모바일 앱 틱톡(중국명 더우인·抖音)과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위챗(중국명 웨이신·微信)과 모회사인 텐센트와의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틱톡에 대해 “중국 공산당의 허위정보 캠페인에 이용될 수 있다”, 위챗에 대해선 “미국인 개인정보가 중국 공산당에 유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올려 공유하는 틱톡보다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 대한 제재 조치가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국 정부로서는 위챗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가 틱톡에 대한 제재보다 훨씬 더 충격이 클 것”이라면서 “위챗은 전 세계 중국인들을 연결해주는 핵심 서비스로, 개인 소통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거래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챗은 중국인 11억 명 이상이 매일 사용하고 있는 중국판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이다. 중국 휴대전화 사용자의 대부분이 위챗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이 앱을 사용해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사진을 공유하고, 물건값을 지불하고,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은행 거래를 한다. 전자결제 서비스인 위챗페이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건강 코드 등 각종 생활 필수 서비스들도 결합해 있어 중국에서 스마트폰에 위챗을 설치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다. 위챗페이의 중국 전자결제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말 기준 39%이며 사용자는 무려 8억 명이나 된다. 게다가 위챗은 중국인과 해외 곳곳에 있는 중국 동포와 유학생 등을 연결하는 핵심 수단이고, 중국과 거래하는 미국을 비롯해 많은 외국 기업들과 외국인들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가 중국의 대표 IT 기업인 텐센트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텐센트(Tencent·腾讯)는 바이두(Baidu·百度)·알리바바(Alibaba·阿里巴巴) 등과 함께 중국의 3대 IT 기업들이다. 보통 이들 3대 기업의 영어 이름 알파벳 첫 글자를 따 ‘BAT’라고 부른다. BAT는 중국의 광활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검색·전자상거래·SNS·인터넷 결제를 비롯해 각종 금융 거래, 모바일 게임 등은 물론 자율자동차를 비롯해 각종 신산업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의 구글이라 불리는 바이두는 중국어권 최대의 검색엔진이고, 알리바바는 아마존을 넘어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텐센트는 중국 최대의 SNS 회사이자 세계 1위 온라인 게임사다. 텐센트는 올 7월 말 기준 시가 총액이 6700억 달러(796조 원)를 기록하면서 미국의 페이스북(6578억 달러)을 제치고 세계 1위 소셜 미디어 기업에 등극했다. 텐센트는 단일 앱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위챗을 비롯해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모바일 게임, 전자상거래, 인터넷 결재, 인공지능(AI) 등을 포괄하는 글로벌 기술 기업이다. 특히 텐센트는 세계 1위 게임 퍼블리셔다. 텐센트의 전체 매출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달한다. BAT는 해외 시장까지 적극 진출하면서 미국의 4대 IT 기업들인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의 아성을 위협해왔다.

텐센트 시작으로 바이두·알리바바도 잠재적 공격 대상


▎중국 선전시에 자리 잡고 있는 텐센트 신사옥. / 사진:포브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 정부가 그동안 미국 IT 기업들을 자국에서 쫓아내던 방법을 벤치마킹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2003년부터 홍콩을 제외한 본토에서 만리방화벽(중국의 인터넷 검열 차단 시스템)을 앞세워 구글·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 등의 접속을 완전히 차단했다. 세계 최대 인터넷·모바일 시장을 겨냥했던 미국 기업들은 이로 인해 2010년부터 대부분 중국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미국 IT 기업들이 자국의 법률과 제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 미국 등 외국 IT 기업들은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정부가 제시한 검열 지침을 준수해야 하고, 개인 정보 등 데이터를 중국에 보관하고, 중국 정부가 그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외국 IT 기업들은 중국에 데이터센터 개설과 함께 데이터를 제공해야만 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지정한 인물을 감독관으로 특별 채용해야 했다. 외국 IT기업들이 대거 중국을 떠나고 경쟁자가 사라지자 BAT는 내수시장에서 빠르게 덩치를 키운 뒤 해외 시장을 공략해왔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텐센트를 시작으로 중국 IT 기업 고사작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기술패권 경쟁에서 뒤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폼페이오 등 미국 정치인이 중국의 첨단기술 기업을 탄압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미국의 중국 IT 기업 퇴출은 자국의 기술 독점 지위를 지키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는 횡포”라고 주장했다. 왕 대변인은 “미국의 일방적 제재를 받는 중국 기업들은 무고하다”며 “미국이 잘못을 바로잡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미국 정부의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중국 정부로선 IT 패권 추진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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