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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스가 총리 체제 출범과 한·일 관계의 미래 

내정(內政) 지향 정치인··· 갈등현안 당장 해소는 어려울 듯 

아소 등 극우 세력과의 연대 통해 최고 권좌 올라
아베 정권 ‘시즌 2’ 아닌 전격 노선 전환 가능성도 제기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9월 14일 도쿄 한 호텔에서 열린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경쟁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 차로 제치고 총재에 당선됐다. 그는 9월 16일 소집된 임시 국회에서 제99대 총리로 선출돼 스가 요시히데 내각을 공식 발족했다. / 사진:연합뉴스
9월 14일 스가 요시히데(72) 관방장관이 제26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전 외무상),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전 방위상)을 누르고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 총재로 취임한 스가는 9월 16일 총리 지명 선거를 통해 7년 8개월에 걸친 아베 신조 전 총리에 이어 99번째 총리대신에 취임했다. 72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인내의 남자’는 한없이 밝은 표정을 보였다. 스가 요시히데 새 정권은 어떤 정권이 될까?

일본의 많은 정치 평론가는 “스가가 차기 총리가 된다면(아베 정치의) ‘계승’, 기시다라면 ‘수정’, 이시바라면 ‘전환’”이라고 전망하곤 했다. 즉 스가가 7년 8개월 동안 아베 정권의 ‘안주인’ 역할을 했으니 당연히 정책은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실제 스가 자신도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베 정권의 재창출을 호소해왔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기시다라면 계승, 이시바라면 수정, 스가라면 전환’이 될 것이다. 기시다와 이시바 두 사람은 아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금수저 2세 의원이지만 스가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적으로도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가장 먼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가 요시히데 새 정권은 아베 신조 정권의 계속이 아니라 오히려 전환될 것이라고 필자는 전망한다.

필자는 스가 요시히데라고 하는 노회한 정치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해보고 싶다.

첫째, 그는 어두운 풍모와 성격이다. 스가는 명랑 활달하고 밝은 성격이 결코 아니다. 언제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과묵한 표정으로 상대를 관찰하듯이 응시하면서 어눌한 어조로 말하는 타입이다. 공식석상에서는 확실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타입이 아닌, 한발 물러서서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펴나가는 방식을 구사한다. 비유하자면 그는 해와 달 중에 달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아베 전 총리는 해에 속하는 정치인이었으니 스가와는 대조적이다. 또 스가의 권력 주위에 몰려드는 무리는 무수히 많지만, 흉금을 털어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고독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외교에는 별로 관심 없는 정치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월 28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왼쪽은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 / 사진:연합뉴스
둘째, 스가는 내정 지향의 정치 스타일을 추구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외교는 내정의 연장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외교를 중시하는 정치인이 있는 반면, 내정을 중시하는 정치인도 있다. 아베 전 총리의 경우 1차 내각 때는 ‘자유와 번영의 호’를, 2차 내각 때는 ‘지구본 외교’를 주요 정책으로 설정하는 등 활발한 외교를 지향했다. 1차 내각에서 총 20개국 지역을 방문했고, 2차 내각에서는 총 176개국 지역을 방문했다. 이를 더하면 총 196개국에 달하는데, 단순 비교하면 유엔 회원국인 193개국보다 많다.

이와 비교해서 스가는 ‘내정 지향’의 정치가다. 외유에 나서기 어려운 관방장관을 7년 8개월이나 지냈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금까지 외교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9월 2일 출마 회견에서 스가는 지금까지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홍수 대책을 위한 댐 수량 조정, 또 하나는 휴대전화 요금 인하였다. 모두 내정에 관한 것이다.

스가는 2018년 10월부터 일본인 납치 문제 담당상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납치의 아베’라는 말을 들었던 아베 전 총리가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스가는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납북자 가족들도 아베 정권에서 의지한 인물은 어디까지나 아베 전 총리였지 스가 납치 문제 담당상은 아니었다.

스가는 9월 2일 출마 회견에서 기자들이 미·일 관계에 관해 묻자 지난해 5월 방미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회담한 일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각료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리지만 부통령님, 그런 인사들과 저도 꽤 절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펜스 부통령은 스가와 매우 절친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매일 세계 각국 정상과 회담하는 펜스 부통령 입장에서 보면 스가와의 회담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미국 방문을 마친 뒤 한 외무성 관계자는 필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이번 방미에서 스가 장관은 미국 측 어느 인사와 만나도 우리가 미리 준비한 종이 문서를 읽기만 했다. 어떤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얼굴을 보기 위한 방미였다. 미국 측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동맹국인 일본의 체면을 세워줬다.”

스가는 영어가 서툴다 보니 외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비친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는 내정 지향의 정치인이다. 스가는 9월 12일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 외교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내 나름의 외교 스탠스가 있고 그것을 관철해나가고 싶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또 지금까지 미·일 관계와 중·일 관계에 대해 말했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마도 가뜩이나 관심이 적은 외교 문제 속에서도 한·일 관계는 더욱 관심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스가 정권이 출범했다고 해서 당장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는 없을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셋째, 그는 통제형 지도자다. 최근 필자는 몇 차례 가스미가세키(도쿄의 중앙 관청가)를 방문했는데, 벌써 공기가 변해 있었다. 스가 정권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중앙관청의 관료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5월 30일 아베 정권은 ‘정치 주도’라는 명분을 내걸고 내각 인사국을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중앙관청 국장의 하부 보직인 심의관 이상의 600여 명 공직자에 대해서는 내각 인사국의 승인이 필요해졌다.

그때부터 가스미가세키 관료들의 총리 관저에 대한 과도한 ‘손타쿠(윗 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한다)’가 시작됐다. 손타쿠의 상대는 본래 행정의 수장인 아베 총리일 텐데 아베 총리는 관심이 큰 사람(분야) 외에는 모두 스가 관방장관에게 맡겼기 때문에 관료들은 스가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스가 장관이 행정의 수장(총리)으로 승격하자 관료들의 손타쿠는 더욱 배가될 것 같은 분위기다. 손타쿠를 하는 것은 관료만이 아니다. 여당인 자민당 의원 394명도 일제히 스가 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있다. 중의원의 임기가 내년 10월이면 만료된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상황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스가의 9월 2일 출마 회견에서 신경이 쓰이는 답변이 몇 개 있었다. 하나는 자민당 총재 선거 방식(국회의원 외에 지방의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당이 정한 룰에 따라 지금 이 총재 선거가 진행되고 있으니 그 안에서 전력을 다해나가겠다”는 대답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전에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변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목소리’로 회견해줬으면 한다고 주문한 기자에 대해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룰에 근거해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강권(强權) 바람 거세게 불 것”이란 전망도


▎9월 12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정무조사회장 (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와 같이 짧은 회견 속에서 “룰에 따라”, “룰에 근거해”라고 두 번이나 ‘룰’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가 정권은 아베 정권의 단순한 연장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의미에서 관방장관은 정부의 종적 행정(행정기관간의 법령 모순과 과도한 관할 의식 등으로 야기되는 행정의 비효율성)을 깨트릴 수 있는 유일한 장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나 자신이 내각 관방장관으로서 종적 행정의 폐해, 그것을 깨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자세로 임해왔습니다. 앞으로 많은 폐해를 깨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일을 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룰’을 강조하는 동시에 ‘(룰을) 깨트린다’고도 말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얼핏 보기에는 모순된 감각이 독특하다. 일본에서는 독특하지만 외국에는 비슷한 정치인이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다. 이들은 아랫사람들은 룰을 철저히 지키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룰을 계속 깨왔다. 어느 중앙관청의 간부는 얼마 전 한숨 섞인 말로 필자에게 이렇게 푸념했다.

“스가 정권이 탄생하면 강권(强權) 바람이 거세게 불 것이다. 관방장관 시절에도 스가 장관으로부터 총리관저로 호출받으면 관료들은 전날부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불과 15분 정도의 대화 도중에 스가 장관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머뭇거리면 ‘그만 됐어’라며 그는 자리를 떠버린다. 그 순간 그 관료의 출세는 스톱이다. 그래서 일부 관료는 어려운 데이터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면 역시 ‘알았어, 됐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관료가 방을 나가는 순간, 동석한 비서에게 ‘그 데이터를 다시 조사해보라’고 지시한다. 만약 그 관료가 거짓말한 것이 발각되면 그는 다음 인사에서 좌천된다. 그렇게 해서 가스미가세키의 심의관 이상의 간부에 대해서 평가해나갔다. 지금까지는 2인자였으니까 마지막에는 아베 총리에게 울며 매달릴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일본에 시진핑 정권이나 푸틴 정권 같은 강권적인 정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넷째, 그는 인내의 남자다. 9월 2일 스가 관방장관의 출마 회견에서 모두가 ‘틀림없이 나오겠지’라고 예상했던 레퍼토리가 아니나 다를까 소개됐다. 그것은 스가의 ‘고난의 인생사’다.

“저의 출발점에 대해 조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아키타현의 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현지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바로 농가를 잇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취직을 위해 도쿄에 나왔습니다. 작은 동네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곧 냉엄한 현실에 직면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2년 늦게 호세이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일단은 민간 기업에 취직했습니다만, 세상에 눈뜨기 시작할 무렵, 어쩌면 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정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인연이 닿아 요코하마 출신의 국회의원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선생님의 사무실에 비서로 들어갔습니다. 26세 때입니다. 11년간 비서를 맡았는데 우연히 요코하마 시의원 선거에 도전할 기회가 생겨 38세에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으로 일하면서 국민 생활 향상을 위해서는 지방분권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 가운데 국회의원 선거를 목표로 도전했고, 47세에 당선됐습니다. 지연도 혈연도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스가는 ‘조금만’이라고 전제했지만, 이 이야기는 전체 회견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젊은 시절의 고생이 정치인 스가 요시히데의 출발점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날 회견 중 질의응답 때 처음 질문권을 얻은 기자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포스트 아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오지 않았느냐”며 다그치듯 물었다. 그에 대한 스가 내정자의 답변은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나 자신은 그야말로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습니다”였다.

목표 위해 사생활까지 철저히 희생


▎8월 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제품 불매운동 전개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물론 거짓말이다. 정치인이 된 이후 그는 자신의 힘이 부족하자 유력 정치인들에게 붙었다. 2012년에는 아베 신조라는, 부활을 노리는 거물급 정치인을 발견하고 그에게 적극 다가갔다. 그것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매미’처럼 땅속에서 7년이나 ‘인내’하며 가을을 기다렸다. 매미는 결국 성충이 돼 단숨에 땅속에서 기어올라와 세차게 울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스가 전 장관은 권력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위해 사생활까지 희생하며 견뎌왔다. 예를 들어 스가가 2012년 12월 관방장관에 취임한 이후 일과는 다음과 같다. 총리관저 뒤편 아카사카의 의원 숙소에 사는 스가는 아침 6시쯤 일어나 복근 운동을 100회 한다. 이는 관방장관으로서 외모를 가꾸기 위한 다이어트다. 그 덕분에 그는 취임 후 반년 만에 14㎏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이어 약 30분간 산책하며 머리를 식힌다. 그리고 각종 조찬 모임에 2회 참석한다. 가급적 각계의 많은 인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서다. 한 참가자에 의하면 스가는 거의 발언하지 않고 듣기만 한다고 한다.

오전에는 국무회의와 기자회견을 거쳐 다시 두 차례 각종 오찬에 참석한다. 오후에는 정무를 보거나 기자들과 만나 브리핑을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세 차례 정도 사람들과 만난다. 평균 1시간 남짓이다. 스가는 술을 마실 줄 알지만, 저녁 모임 때는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밤늦게 의원 숙소로 돌아오면 다시 복근운동을 100회쯤 한다. 그야말로 ‘인내의 남자’다.

트럼프-바이든 美 대선도 큰 행운으로 작용


▎2019년 12월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아베 일본 총리.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다섯째, 그는 대운의 소유자다. 중국 정가에선 ‘작은 일은 지혜로 이루고 큰일은 덕으로 이루지만 더 큰일은 운으로 이룬다’는 잠언이 있다. 마지막은 지혜도 성품도 아닌, 대운의 소유자가 천하를 잡는다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그야말로 대운의 소유자다. 당초 포스트 아베의 유력자는 모두(冒頭)에서 언급한 기시다였고, 대항마는 이시바였다.

하지만 적어도 네 가지 행운이 겹치면서 스가가 총리 옥좌를 차지했다. 첫째 행운은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병세 악화로 인한 사임이다. 만약 내년 9월 임기 만료까지 아베 총리가 자리를 지켰다면 스가 대망론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시다와 이시바는 출마했다고 해도 제3의 후보는 고노 다로 방위상,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상 등 50대 젊은 후보가 차지했을 게 틀림없다. 아니, 아베 전 총리의 사임 발표가 한 달만 늦어졌어도 그사이에 당직 및 개각 인사가 단행됐을 것이다(예정은 9월 24일쯤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게 되면 81세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제외됐을 공산이 크다. 지난해 9월에도 옥신각신 끝에 간사장에 유임됐지만 아베 전 총리는 분명히 니카이를 제외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면 니카이 간사장이 그를 밀더라도 이번처럼 ‘스가 대망론’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행운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바이러스의 만연이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여름에는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됐을 것이고, 이런 난장판 같은 정권 교체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비상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책의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스가와 니카이의 주장도 설득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 행운은 경쟁자들이 약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를 개인적으론 ‘인품의 기시다’, ‘정책의 이시바’, ‘노련한 스가’의 싸움이라고 정의한다. 자민당 정치인들은 “기시다는 너무 기가 약하다”, “이시바는 인망이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다른 후보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린 정치인들은 모두 처지는 인물들이었다. 그러자 노련함을 무기로 한 스가가 백전노장 니카이 간사장을 등에 업고 급부상했다. 그래서 순식간에 자민당 분위기가 스가 쪽으로 기울었고 스가 대망론의 흐름이 생겨났다.

넷째 행운은 미국의 불간섭이다. 원래대로라면 ‘미·중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의 최대 동맹국인 일본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친중파’인 니카이 간사장이 밀고 있는 후보를 미국이 허락할 리 없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현재 4년에 한 번 있는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다. 더구나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접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이처럼 네 가지 행운이 겹친 스가가 뚝심을 앞세워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가 요시히데 새 정권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필자는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가 ‘레이와(令和) 시대의 다케시타 노보루’라고 생각한다. 다케시타는 1987년 11월부터 1989년 6월까지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다. 다케시타 정권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의 승계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정권이었다. 이 때문에 아베 정권 승계를 외치며 출범하는 스가 정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일본의 두 번째 축소기의 고비에 해당하는 총리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쇼와 시대(昭和時代, 1926~1989년)의 일본은 두 차례에 걸친 팽창의 시대였다. 64년간 이어진 쇼와는 1945년 패전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쇼와 전기의 일본은 군사적으로 팽창했던 시대였다. 대만과 조선의 식민지에 더해 쇼와 초기에는 만주에 꼭두각시 정권을 건설했고, 이후 중일전쟁이 개전하자 중국 주요 도시들을 수중에 넣었다.

나아가 태평양전쟁 개전 후에는 동남아시아 일대를 지배하면서 ‘대일본제국’을 전개했다. 쇼와 20년의 패전으로 대일본제국이 와해되면서, 일본은 모든 식민지와 점령지를 포기했지만 5년 뒤 한국전쟁을 계기로 경제적으로 팽창했다. 하토야마 이치로 정권은 경제백서에서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이케다 하야토 정권은 ‘소득배증론’을 내세웠다. 1968년에는 서독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한국은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도

일본은 쇼와 50년(1975년) 개최된 G7(선진 7개국) 서밋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으로서 참가했다. ‘재팬·이즈·넘버원’이라고 미국으로부터도 칭송을 받은 쇼와 말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공전의 버블 경기에 들끓었다. 이러한 ‘군사적 팽창’과 ‘경제적 팽창’의 쇼와는 1989년에 끝을 내고 헤이세이 시대(平成時代)를 맞이했다. 그 고비가 된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으로부터 다케시타 노보루 정권에 바통 터치됐을 때였다.

헤이세이 시대(1989~2019년)의 31년은 한마디로 ‘축소의 시대’였다. 이른바 ‘헤이세이 불황’이 일본을 강타해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다. 버블 경제를 이끌어온 야마이치증권이 도산했고, 내로라하는 일본의 12개 시중은행은 메가뱅크 세 곳으로 흡수되며 도태됐다. 반도체 왕국도 무너지면서 샤프는 대만 홍하이에 팔려갔다. ‘취직 빙하기’에 빠져 젊은이의 대량 실업이 사회 문제화됐다. 쇼와 시대 젊은이들이 ‘육식계’였던 것에 비해, 헤이세이의 젊은이들은 ‘초식계’라고 불렸다.

이와 같이 일본은 쇼와부터 헤이세이로 바뀐 것을 계기로 ‘축소의 시대’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적 전환을 유도한 것이 다케시타 정권이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을 거쳐 시대는 헤이세이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9월 8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연설에서 이시바 시게루 후보는 21세기에 세계 인구는 두 배가 되지만 일본 인구는 절반이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즉, 앞으로 일본은 ‘두 번째 축소기’에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2차 축소기를 유도하는 것이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의 정권이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실제로 다케시타 노보루와 스가 요시히데라는 두 정치인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았다. 나는 예전에 중앙관청의 수장인 사무차관까지 올랐던 한 거물급 관료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총리를 목표로 하는 정치가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실현하고 싶은 정책이나 오랜 지론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총리를 목표로 하는 타입, 다른 하나는 총리가 되는 것 자체가 목표인 유형이다. 전자는 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가스미가세키의 관료들도 일심동체가 돼 움직이며, 장기 정권이 되기 쉽다. 한편 후자는 일단 총리직에 오른 후의 목표는 하루라도 더 오래 그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수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뒤로 밀리고 산적해간다. 그러다 돈 문제 등 스캔들이 터져나와 단명으로 끝나는 것이다.”

다케시타 총리의 발언은 ‘언어 명료, 의미 불명료’라는 야유를 받았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국민은 알지 못했다. 바로 이 점도 아베노믹스 장기집권의 뒤를 이을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와 통하는 게 있다. 어쨌든 우선은 노회한 정치인 스가 총리를 지켜보자.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스가 새 정권에 ‘한·일 관계 개선’은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스가 정권이 적극적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의미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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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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