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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극한의 생존 본능 ‘코로나 세대’ 

“약 먹고 피 뽑고 돈 번다” 몸마저 내놓는 청춘들 

취업 길 막힌 20대, 큰돈 벌 수 있는 생동성 시험 알바로 몰려
‘이상 약물 반응’ 위험성 감춘 바이럴 마케팅도 활개


▎생동성 시험 피시험자들은 팔에 관을 박고 하루 14번의 채혈을 받아야 한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사실 찜찜하지만 뭐 딱히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도 없고 호주머니도 바닥난 처지라 이거(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신청했다.”

올해 초부터 대학을 휴학 중인 노준영(가명·24)씨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건물 뒤편에 위치한 임상시험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말 1년 넘게 일했던 식당 아르바이트가 끊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손님이 급감하자 식당 주인이 조만간 가게 문을 닫을 예정이라며 해고를 통보한 것. 당장 월세부터 생활비 등 돈 들어갈 데가 많은 그는 눈앞이 깜깜했다. 9월 들어 코로나19 2차 확산으로 일자리가 자취를 감추자 결국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노씨가 병원을 찾은 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하 생동성 시험)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그는 “신체검사에 통과해야 2박 3일간 진행되는 합숙 생동성 시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동성 시험이란 제약회사에서 만든 복제 의약품(제네릭)이 오리지널(기존) 약과 생물학적으로 동등한지 확인하고자 시행하는 실험을 말한다. 쉽게 말해 복제약 출시를 앞두고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을 검사하는 약물 임상시험 중 하나다. 생동성 시험은 보통 짧게는 1박 2일부터 2박 3일 동안 진행된다. 통상 일주일 간격을 두고 1기와 2기 총 2번의 시험에 참여해야 한다. 피시험자들은 병·의원이 지정한 장소에서 함께 투숙하게 된다.

이처럼 제약회사나 병원의 임상시험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제공하고 사례비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그래서 청년들 사이에선 이른바 ‘마루타 아르바이트’라는 자조적인 비유로 통하기도 한다. 여기에 참여하면 열흘 남짓한 기간에 60만~120만원의 돈을 벌 수 있다.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이 많이 찾는 아르바이트이기도 하다.

생동성 시험 참여자들에게 행하는 신체검사는 의료계에서 스크리닝이라 불린다. 이 스크리닝 과정은 피시험자의 생동성 시험 동의서 작성과 혈압측정, 소변검사, 심전도검사, 담당 의사와의 면담 방식 등으로 진행된다. 신체에 이상이 없는 건강한 피시험자만 검사에서 통과된다. 비만이거나 지병이 있으면 불합격 처리되기도 한다. 신체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3시간이 걸린다. 임상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신체검사 합격률은 80% 안팎이다.

코로나19 검사까지 받아가며 줄 선 청년들


▎9월 초 서울의 한 병원 임상센터 1층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수십 명의 청년들. 거리두기를 무시한 채 밀집해 있다. / 사진:심민규 인턴기자
기자가 서울 도심의 종합병원을 찾은 때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한 9월 초. 병원 내 한 건물에서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 신청자들이 신체검사를 받았다. 신청자들은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제약회사가 복제한 뇌전증의 발작(간질) 치료제 시험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 종합병원 임상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신체검사를 나흘에 걸쳐 진행하며 하루에 4개 팀으로 분산하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종합병원 내 임상센터 입구는 대부분 20대로 보이는 청년들로 붐볐다. 생동성 시험 신체검사에 합격한 참여자를 대상으로 병원 측이 실시하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는 행렬이다. 코로나19 검체 채취 키트를 손에 쥔 참여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최소 간격인 1m)가 무색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서서 자기 순번을 기다렸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차려진 선별진료소의 엄격한 거리두기와는 딴판인 장면이 연출됐다. 얼핏 보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 생동성 시험 참여자들의 코로나19 검사 행렬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이날 코로나19 검사를 마친 김모(25)씨는 “생동성 시험에서 신체검사에 통과해 이곳으로 오라는 문자를 병원 측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라고 기자에게 밝혔다. 그는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는데 이마저 부족해 단시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온라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참여 경위를 전했다. 김씨는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오면 2박 3일 합숙 기간을 이용해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지방공무원 시험 공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역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최모(21)씨는 대학생이다. 9월 들어 대학의 2학기 강의가 시작됐지만 3일간 진행되는 생동성 시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학교 강의는 줌(화상회의 앱)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합숙 기간에도 무리 없이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지하철 광고를 보고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를 한 친구에게 소개를 받았다”면서 “좀 위험해 보이기는 해도 쉽게 돈을 벌 수 있어 신청했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청년 대부분은 약물 부작용 가능성을 의식하면서도 참여 의지를 불태웠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8월 30일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역 강화 국면에서도 목돈을 쥐고자 코로나19 검사까지 받아가며 시험에 참여한다. 정부가 8월 말부터 수도권 실내체육시설과 학원 및 독서실 등 실내 이용시설에 대해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제약회사의 복제약 생동성 시험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중앙방역대책본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병원은 거리두기 사안에 포함돼 있지 않으므로 질병관리본부에서 제한하는 부분은 아니다”면서 “지방자치단체 혹은 보건복지부 등의 규정은 별도로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상센터도 병원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약 30~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동성 시험에 참여해도 규제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약 복용 후 30분에서 2시간 단위 채혈


▎생동성 시험에 참여 중인 청년들이 병상에 누워 있다. / 사진 : 네이버블로그 달리는사람
이렇게 스크리닝과 코로나19 검사를 통과한 평균 30~50명 정도의 피시험자들은 합숙에 들어간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기자가 찾은 종합병원의 생동성 시험이 이뤄지는 임상시험실은 넓은 공간에 50개가량의 병상이 놓여 있었다. 피시험자들을 넓은 공간에 몰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곳은 피시험자들 사이에서는 ‘야전병원’이라고도 불린다. 피시험자에게는 시험 참여 번호가 부여되고, 의사와 임상간호사(CRC)는 환자와 소통할 때 그들의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른다.

입원하게 되면 약물 복용과 채혈이 반복된다. 제네릭의 효능을 시험하기 위해 의약품을 복용하고 주기적으로 피를 뽑는 것이다.

지난 7월 생동성 시험에 참여했던 취업준비생 이모(25)씨는 “첫날은 입원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다음 날 새벽(5시)부터 일어나 하루 동안 시간을 정해 피를 14번이나 뽑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입원 이튿날부터 약물을 복용한다. 복용 후 1시간 지나면 미리 팔에 꽂아준 채혈용 카테터를 통해 처음에는 30분 단위로 피를 뽑는다. 한 번에 5~10㎖ 정도 뽑을까. 채혈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반복되는 과정에서 기분 탓인지 약간 어지러움 같은 걸 느꼈다. 이렇게 여러 번 뽑는 건 약이 시간대 별로 흡수되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생동성 시험 채혈은 약 복용 직후 30분 단위인 채혈 간격이 시간이 흐르면서 2시간 단위로 늘어난다. 전체 채혈량은 보통 헌혈 1회 분인 400㎖보다 적다.

이후 남는 시간은 참가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다만 병원 안에서 식사와 수면, 이동까지 모두 병원이 제공·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생동성 시험 참가자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 컴퓨터에 담아 온 영화나 각종 동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약물을 먹고 채혈하는 것 외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라 일부에서는 ‘꿀알바’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일자리와 알바가 귀해진 요즘 청년들이 생동성 시험에 몰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청년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생동성 시험 정보를 접하는 걸까? 기자가 만나본 청년들 대부분은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 공고와 지하철 모집 광고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생동성 아르바이트 신체검사에 참여한 노준영씨는 “알바 구직사이트에서 관련 정보를 찾았다”면서 “포털사이트에서 생동성 시험 후기를 검색해보니 크게 건강이나 안전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포털사이트 ‘생동성 알바’를 검색해보면 블로그와 카페에 수많은 후기와 모집 관련 정보들이 올라와 있다.

기자가 확인해본 결과 온라인에 떠도는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 정보 중에는 모집책으로 활동하는 중간 브로커들이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뿌린 경우도 많았다. 중간 브로커는 주로 청년들이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 활동한다. 주로 20~30대 청년들이 가입한 다수의 온라인 카페에서 생동성 시험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글과 댓글을 작성한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아르바이트 기회가 줄어들수록 이들의 바이럴 마케팅은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문제는 생동성 시험의 잠재적 위험성은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또 온라인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는 생동성 아르바이트를 ‘꿀알바’, ‘편한 알바’, ‘고수익’ 등으로 포장해 광고하는 사례가 흔하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광고가 지하철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광고문 어디에서도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는 문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바이럴 마케팅으로 안전 불감증 생성시켜


▎임상시험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담긴 액자형 광고판이 지하철 1호선 열차 내부에 부착돼 있다. / 사진:심민규 인턴기자
임성빈 경희대 의대 임상시험센터장의 ‘생동성 시험의 현황과 문제점’ 논문(2011년도)에도 이런 문제점이 지적됐다. 논문에서 임 센터장은 “(생동성 시험과 관련해) 이미 팔리고 있는 약이고 부작용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문구로 피시험자로 하여금 ‘생동성 시험이 안전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선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자가 생동성 시험 중에 중대한 이상반응을 경험했고, 피부발진이나 구토 및 두통으로 응급실에서 피시험자를 치료한 사례가 수차례 있다”고 생동성 시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결국 상대적으로 큰돈에 이끌려 생동성 시험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위험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임상시험 모집 광고를 내는 전문 사이트 측은 “생동성 시험의 경우 이미 시판된 의약품을 복제한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고, 설령 발생한다 해도 오리지널 약에서 허용된 범위 안의 경미한 부작용 정도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생동성 시험을 통해 복제약의 효능을 시험하는 것 자체가 안전성 확인을 겨냥하는 것인 만큼 시험 과정에서나 이후에 예기치 못한 건강상 문제를 일으킬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험 대상 의약품에 따라 피험자 사례비가 적게는 60여 만원부터 많게는 120여만원에 이르기까지 차이 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는 보통 약학정보원에서 제공하는 미국 FDA 분류기준 임부투여안전성 등급을 통해 분류된다. A~D등급과 X등급이 있으며, 알파벳순으로 위험도가 높아진다. 예를 들자면 평소 일상생활에서 먹는 ‘타이레놀’이 B등급 정도이며, 노씨가 시험에 참여한 뇌전증 의약품인 ‘레비티라세탐’은 C등급이다. 의약품의 위험도가 높을수록 사례비는 올라간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 현장은 시험에 참여하려는 젊은 청년들로 더 넘친다. 노준영씨는 “예전엔 알바 채용 자리를 놓고 경쟁률이 치열했다면 지금은 아예 알바 구직 공고 자체가 없어져 생동성 시험에 더 눈길이 간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이모씨는 “돈이 급해서 참가한 것이니 위험성 같은 건 생각할 처지가 못 된다”며 “당장 돈이 아쉬운 처지에 이것저것 따질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의 신규 채용도 절벽이다. 취업준비생들이 많은 20대 후반(25~29세) 실업률이 IMF 외환위기였던 1999년 6월 이후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대 고용률은 지난 2월부터 5개월 연속 내리막길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아르바이트 등 일자리가 급감한 지난 2018년과 비슷한 청년 일자리 흉년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듯 악화하면서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도 1999년 6월 이후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9월 9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쉬었음’ 인구는 246만2000명을 기록했다. 특히 20대의 ‘쉬었음’ 인구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취업시장 마비로 아예 일시적으로 취업을 단념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취업 기회가 사라지면서 일할 의지조차 상실해가는 ‘코로나 세대’의 모습이 임상시험이란 사회의 단면에서 포착되고 있다.

- 심민규 월간중앙 인턴기자 smkyu49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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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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