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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한일비전포럼’이 제안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법 

‘순수 피해자 vs 돈 받은 변절자’ 나눠온 역사부터 치유해야 

2015년 합의, 폐기도 않고 재협상도 않는 교착 상태 지속
화해치유재단 잔액 피해자 존엄 회복에 쓰일 방법 찾아야


▎한일비전포럼이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떻게 다뤄야 하나’ 토론회가 지난 7월 26일 서울 성북구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사진:[한반도평화만들기] 캡처
대담 참석자(왼쪽부터)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일비전포럼 간사
심규선: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동아일보 대기자
신각수: 한일비전포럼 위원장, 前 주일대사
정혜경: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과), 한일비전포럼 위원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매듭짓는 합의를 맺는다. 합의문에서 일본 측은 내각총리대신 명의의 사과와 함께 피해자 지원 예산을 약속했다.

그러나 합의 이행은 시작부터 흔들렸다.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배제됐다는 주장이 한국 사회 일각에서 나오면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꾸려진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는 5개월여 조사 끝에 이런 주장이 사실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정부는 ‘2015년 합의를 폐기하지는 않지만, 재교섭도 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합의 이행 없이는 협력도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주한미군 철수설이 단적인 예다. 트럼프는 역내 안보에 동맹국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반면 중국은 갈수록 공세적인 외교정책을 취하고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한국은 일본과의 끈을 놓지 않고 대중 레버리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갈등에 휩싸인 한일관계])

한편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관한 국내 정책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생존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 5월 “반일 감정만 부추기는 수요집회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일갈하면서다. 이 할머니는 “한·일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우도록 운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일본 아베 총리가 건강 문제로 사임 의사를 밝히는 등 일본 정부가 리더십 교체기에 접어들었다. 아베 총리 재임 기간 한·일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불편했던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의 국수주의적 언행은 한국인들의 분노를 불러왔다. 아베 총리의 퇴장을 계기로 한·일 관계는 새 국면에 접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묵은 감정을 덜어내고 새 비전을 모색하는 게 양국 정부에 주어진 과제라고 하겠다.

이와 관련해 7월 27일 서울 성북구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회의실에서 한일비전포럼 주최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떻게 다뤄야 하나’ 토론회는 한·일 관계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영감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신각수 전 주일대사를 비롯해 학계·언론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5년 합의에 대한 평가부터 국내 위안부 정책의 변화 방향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이 이어졌다. 월간중앙은 두 시간여 동안 이어진 이날 토론을 지면으로 옮겼다. 토론회의 전체 영상은 유튜브 채널 [한반도평화만들기]에서 볼 수 있다.

1부 | 2015년 위안부 합의에 관한 논란


▎2015년 12월 28일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대신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신각수_ 올해도 한·일 관계는 정체기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출입국 제한, 일본의 통상규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그리고 한국인의 WTO 사무총장직 입후보를 둘러싼 일본의 반발 등 한·일 관계를 껄끄럽게 하는 사안들이 이어지고 있다. 알다시피 한·일 관계의 이런 어려움은 과거사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크게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두 가지다. 오늘은 두 번째 문제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전문가 네 분에게 진단과 해법을 묻고자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80년대 말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일 양국은 2015년 합의를 맺었지만, 이행을 둘러싸고 여전히 최종적인 해결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2015년 합의부터 살펴보면 어떨까 한다.

정혜경_ 1993년 일본의 고노 담화부터 2015년 합의까지의 과정을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양국 간 신뢰관계가 있을 때 성과를 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갈 때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영삼 정부가 그랬다.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보상하는 대신 도덕적 우위를 가져간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2011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 소송에 대해서 정부가 적극 노력하지 않는 부작위 행위는 위헌)으로 이런 입장을 가져갈 수 없게 됐다. 그러면 협상에서 도덕적 우위를 유지할 대안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반면 일본 측에선 ‘왜 입장을 바꾸느냐’는 구실이 있었다. 또 미국 같은 외부적 요인도 개입했다. 결국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놓치면서 성과를 내는 게 어렵지 않았나. 이런 면에서 2015년 합의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비슷했다고 본다.

신각수_심규선 교수는 화해치유재단 이사로 활동했다. 2015년 합의에 대해 개괄적으로 평가한다면?

심규선_ 화해치유재단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비판들에 대해 겸허히 수용한다. 그런데 동시에 묻고 싶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불가능한 최선보다 가능한 차선을 택한 결과가 2015년 합의였다. 이를 능가하는 새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혜경 박사께서 도덕적 우위를 말씀하셨다. 도덕적으로는 일본에 계속 책임을 추궁하되, 돈 문제는 우리가 안고 가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방법에 대한 양해가 없으면 한·일은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만 할 것이다. 우리 국민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10억 엔 둘러싼 한·일의 해석 차

신각수_ 양기호 교수는 2017년 한국 외교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했다. 2015년 합의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양기호_ 2016년 국내 여론조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응답자 73.4%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2016 한·일 국민의식 공동여론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2017년 19대 대선 때도 후보자 대부분이 합의 파기를 주장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사자는 물론, 지원단체에도 알리지 않고 ‘소녀상 이전’, ‘성노예 표현 쓰지 않는다’ 등 비공개 합의까지 맺었던 건 큰 실책이었다. 또 10억 엔과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맞바꾼 것도 문제였다. 피해자 보상은 한국 정부가 맡겠다는 것이 1993년부터 이어져온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런 원칙을 바탕으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와 민간이 노력해왔다. 10억 엔이라는 돈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정상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

신각수_ 제가 주일대사(2011년 5월~2013년 5월)로 있을 때 일본 정부는 소위 ‘사사에 안’이라는 것을 물밑교섭 끝에 2012년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2012년 11월 노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었다. 2015년 합의의 기본 골격도 사사에 안에서 나왔다. 큰 골격은 세 가지다. 책임과 사죄, 그리고 배상. 피해자 단체들이 요구했던 8개 항목 중 핵심 요소가 그랬다. 배상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예산이 들어가는 걸 우리는 ‘배상’으로, 일본 측에선 ‘인도적 지원’으로 해석했다. 일종의 ‘agree to disagree’하는 합의를 했던 것이다. 10억 엔이라는 액수가 핵심은 아니다. 피해자(단체)들의 요구를 외교적 합의로 만들어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걸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점이 문제였다.

박철희_ 양 교수께서 2015년 합의에서 피해자를 배제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생각이 다르다. 2015년 합의를 바탕으로 피해자의 70% 이상이 보상을 수용했다(생존 피해자 47명 중 37명이 보상금 수령). 물론 일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가 반대했으니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났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일각에선 ‘피해자 일부 중심주의’, ‘피해자 지원단체 중심주의’라고까지 비판하기도 했다.

2부 | 한·일 양국의 해결 노력: 우리가 되돌아볼 부분은?


양기호_ 피해자 70%가 돈을 받았다고 해서 일본의 사죄를 수용했다고 볼 수 있나?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청구권협정에 따라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건 일본의 일관된 태도였다. 2015년 합의의 문제도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합의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이 없다. 책임을 인정했다고 우리가 유추했을 뿐이다. 아베 총리가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과하고 정부 예산으로 10억 엔을 내고 이런 걸 모아서 유추한 거다. (2015년 합의 당시 아베 총리는 기시다 당시 외무상을 통해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대독 사과’라는 논란이 일었다.) 유추한 대신에 준 것은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것이다. 이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국민을 설득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보고, 외교적 교섭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철희_ 당시 총리가 일본을 대표하는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사과를 다시 했다. 또 10억 엔은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예산이었다. 예산이라는 것은 법적 조치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돈이 문제가 된다고 말하는 건 안타깝다. 다만 (1993년부터 지켜온 도덕적 우위 원칙과 관련해) 마치 우리가 돈을 목적으로 사죄를 요구한 것처럼 비친 것은 반성할 부분이다. 또 2015년 합의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부분이 막판에 ‘불가역적인 해결’로 뒤바뀐 점은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심규선_ 양 교수의 지적에 수긍한다. 다만 처음 질문을 다시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2011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정부의 부작위를 그대로 둘 수 없어 협상에 나섰고, 합의했다. 부족했고 문제가 많다. 그런데 현 정부는 문제 있는 합의를 파기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또다시 정부의 부작위가 이어지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욱 문제다. 사실 역대 정부가 대부분 그랬다. 세 정부만 달랐다. 1965년 청구권협정,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결정, 그리고 2015년 위안부 합의였다. 비판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양기호_ 그 말씀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2015년 합의의 취지는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외교 쟁점화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두 번이나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했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합의의 또 다른 취지인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 회복에도 힘썼다. 매년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의 날’로 정했고, 이용수 할머니를 청와대 국빈만찬에 초청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도록 하기도 했다.

신각수_ 2015년 합의는 위안부 문제를 외교 현안으로서 종결짓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 문제로서의 종결을 뜻한 건 아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또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을 자제’한다는 소위 ‘독소조항’이 들어간 것은 외교 현안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양국 정부 차원에서는 끝이 나야 외교 합의가 이뤄지는 것 아닌가. 합의해놓고 또 문제를 제기하면 의미가 없다. 다만 한국 정부는 역사 문제로서의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외교적 합의이기 때문에 역사 문제까지 해소하기엔 불충분했다’, ‘미진한 부분은 도덕적 우위 원칙에 따라 해결해나가겠다’는 자세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외교 현안으로서는 2015년에 마무리됐을지 모른다.

현재는 엄밀하게 말하면 2011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도 불이행 상태로 남아 있다. 한·일 간 협의를 해서 이행이 덜된 부분을 보충해가지 않으면, 위안부 문제는 영구미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살아 계신 피해자 17명마저 돌아가시면 결국 피해자가 없는 사안이 된다. 합의의 불충분함을 인정하고, 후속 조치로 보충하는 것이 양국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합의 이행과 관련해 양 교수의 생각은 어떤가?

양기호_ 화해치유재단 잔금 58억원에 우리 정부가 갹출한 돈 100억원을 더해 158억원이 남아 있다. 이 돈 용처를 두고 일본과 실무 교섭을 해왔다. 아베 총리는 유엔총회에서 전시 성폭력 치유를 위해 공헌하겠다고 누차 말했었다. 한국 측에선 그런 정신에 맞게 국제적인 전시 성폭력 치유 프로그램에 펀딩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수차례 거부했다. 그리고 화해치유재단 자체 업무는 종결된 상태다. 당사자든 당사자의 유족이든 보상받을 사람은 다 받아 간 상태여서 2018년 11월 해산이 결정됐다. 그런 부분에서 한국 정부는 나름 노력을 했다고 본다.

정혜경_ 업무가 끝나서 해산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점은 조금 잘못 아시는 것 같다. 제가 알기론 서류를 접수하고 결과를 기다리다가 해산이 돼서 돈을 못 받은 유족도 다수 있는 걸로 안다. 그리고 업무가 제대로 진행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단 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런데 업무가 끝나서 종결했다는 식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일방적으로 해산한 것이다.

만약 10억 엔이 기분 나쁘다, 또는 도덕적 우위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낸 100억원으로 보상하면 된다. 또 합의 내용엔 치유금 지급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나머지 잔금은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서 전시 성폭력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쓸 수 있다. 이런 점과 관련해 (재단을 해산한 주체인) 한국 정부가 잔금 58억원에 대한 협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정부는 어떤 입장도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공이 일본 정부가 아닌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3부 |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교육해야 하는가?


▎지난해 12월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이 열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연대로 향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박수 치고 있다. 오른쪽은 리커창 중국 총리.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심규선_ 사실 유족에게 돈을 지급하고 싶어도, 유족이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지급이 불가능했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예전 자료만으로 유족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34명 정도가 보상받기로 하고 지급이 끝났다. 그 시점에서 이사들은 이제 교육과 기념·기림 문제를 논의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때 화해치유재단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비록 재단은 해산됐어도 사회자와 정 박사가 지적한 부분은 한국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하는 지점이다.

박철희_ 돈을 더 넣어서라도 역사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제가 한·일 관계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1차 자료를 읽힌다. 그러면 학생들이 다들 놀란다. 그동안 1차 자료를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어떤 형태로 위안부 모집과 이송이 이뤄졌는지, 군 위안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1차 자료를 모아서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회자 지적대로 1차 자료의 90%가 일본 것이다. 일본을 놀라게 할 만한 한국 독자 연구가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연구가 보다 치밀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양기호_ 일본이 초반에 연구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축적했던 자료가 많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최근엔 국내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중 간 학술교류가 많이 있었다. 박사 논문도 12개 정도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연구를 많이 한다. 여성가족부 산하 일본군위안부연구소가 잘은 안 됐지만, 연구 교육의 장도 활성화돼 왔다.

신각수_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야드 바셈’이라는 이름의 국립 기념관이 있다. 학살된 유태인 600만 명의 자료를 모두 모아서 기념관을 세웠다. 또 해외 홀로코스트 박물관들과 연구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통합된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 피해자 의식을 극복하면서도 일본에 무엇이 올바른 역사인지 알려주는 수단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혜경_ 일본 정부가 방해하는 건 가해자니까 그렇다.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최대한 모으고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야드 바셈이 좋은 사례다.

한국도 김영삼 정부 때부터 꾸준히 연구·조사를 진행했다. 외교부와 여성가족부에서 적지 않은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연구·조사 결과물을 공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을 했다. 자료를 디지털 아카이브 형태로 공개하겠다는 사업이었다. 사업은 종료됐는데, 여전히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술이 부족한 건 아니지 않나. 이런 우리 스스로의 문제부터 제기해야 한다.

심규선_ 저는 다른 관점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일제 강점기 35년간 피해를 본 집단은 위안부 여성만 있지 않다. 강제 동원된 징용자와 군인, 군속(軍屬, 군무원에 해당) 등도 있다. 사실 징용된 군인의 경우 유골도 못 찾고 보상도 노무현 정부 때 2000만원씩 지급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건전하지 못하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똑같은 비중을 둬서 논의해야 한다. 이슈가 있을 때만 몰려다니는 것은 국격에 맞지 않는다.

박철희_ 일본이 특히 아베 정부 때 역사 문제에 있어 퇴행했다. 그러나 일본 민간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도쿄대학의 와다 하루키 교수가 아시아여성기금을 주장하고 만들고 운영하면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관철해 낸 게 있다.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거다.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웹에 올려뒀다.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중국어·영어까지 번역해서 올려놨다. 한국은 안 하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가 더 노력해야지 가해자가 왜 노력하겠나. 우리가 연구할 테니 당신들 반성 똑바로 하라는 태도가 피해자로서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

4부 | 일본에 무엇을 요구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5월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철희_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유슈칸을 정기적으로 들른다. 일종의 전쟁기념관이다. 일본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는지 보고 싶었다. 보면 자기들이 한 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이고, 일본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또 야스쿠니 신사에 2만 명이 넘는 한국 사람들이 합사당해 있단 걸 쉬쉬한다. 유슈칸 1층에 가미카제 특공대 사진들을 붙여놨는데, 한국인은 한 명도 안 붙여놨다. 이런 것 보면 일본을 더 혹독하게 몰아붙여야 한다.

정혜경_ 피해의식이 아닌 피해자성(性)을 가져야 한다. 피해자성은 진상규명과 피해자 공감, 그리고 재발방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진실에 다가서려 하지 않으니 그다음으로 못 나가고 있다.

신각수_ 외교 현안으로서는 마무리해야 하고, 역사 문제로는 계속 추구해야 하고. 외교 현안으로서 종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강제동원 문제도 화급한 상황이다. 이것이 수습이 잘돼야 한·일 관계는 정상 궤도로 돌아가는 첫발을 뗀다고 본다. 어떻게 한·일 관계를 터널에서 벗어나 빛을 보게 할 수 있을까 의견을 모아 달라.

‘피해자 일부 중심주의’ 오해 풀어야

양기호_ 우리 안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대화 기구가 필요하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도 있었고,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도 분명히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선 보상금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아직 강하다. 피해자 내부의 인식 공유가 굉장히 어려워진 것이 국내 현실이고, 이런 이유로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당사자와 지원단체, 전문가, 그리고 일반 시민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대화 기구가 생기길 바란다.

정혜경_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를 제외한 피해자 사이에 인식의 간극이 너무나 넓어졌다. 이걸 정부나 정치인들이 잘 이해 못한다. 단적인 것이 지난해 ‘문희상 법안’이었다. 화해치유재단 잔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로 지급하자는 내용이 있다. 정말 피해자 양쪽을 갈라놓는 발상이라고 본다. 아시아여성기금 때도 그 돈 받으면 일본 용서하는 것이라며 난리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상받는 피해자들을 마치 돈에 팔려가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피해자들을 갈라 쳐온 역사에 대해서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이미 너무 상황이 얽혀 있다.

심규선_ 피해자로서의 논의가 굉장히 깊어졌다는 점을 느낀다. 이런 토양이 없다면 어떤 합의라도 똑같은 전철을 밟아서 깨질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네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가 100% 이기지 못한다. 기다리면 일본이 무릎 꿇을 것이라는 ‘희망 고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다. 국민 의사만 존중하면 좋은 리더가 되는 시기는 지났다. 셋째,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를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100%를 요구했다가 또 깨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일 동시 행동이 필요하다. 양측이 서로 먼저 무릎 꿇으면 양보하겠다는 생각으로는 합의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선 동시 행동이 필요하다. 동시 행동을 위해선 물밑접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철희_한국은 역사 문제에 잘 올라탄다. 잘 올라타는데, 넘어갈 생각을 안 한다. 역사 문제를 잡고만 있다. 그런데 일본은 올라타진 않으면서 어떻게 넘어갈까 궁리만 한다. ‘대충시간 지나서 협력하면 잊히겠지’가 일본의 사고방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일이 동시에 올라타야 하고, 어떻게 같이 넘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어느 한쪽이 무릎 꿇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본다.

신각수_ 한반도나 동북아를 둘러싼 전략 환경이 한·일 협력을 엄청나게 필요로 한다. 동북아 전략 환경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공간을 가지려면 한·일 관계가 이래서는 안 된다. 그 자체의 중요성은 분명하지만, 최근 한·일 관계가 위안부·강제동원 2대 현안에만 함몰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비교적 오랜 기간 합의의 틀을 고민해온) 위안부 문제 해결을 디딤돌로, 강제동원 문제까지 잘 넘어갈 수 있길 바란다.

※ 한일비전포럼 -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략적 해법을 찾기 위해 전직 외교관 및 경제계·학계·언론계의 전문가들이 2019년 4월 결성한 포럼이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대표를 맡고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포럼은 설립 이래 매달 두 차례씩 모임을 열고 있다. 지난 8월엔 그간의 논의를 정리한 책 [갈등에 휩싸인 한일관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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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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