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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총력취재]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 사모펀드 사태의 전말 

586 카르텔이 탐욕의 괴물 만들었다! 

수조원대 금융사기에 정권 실세 연루 정황 짙어져
진보 정권의 규제 완화가 정치와 자본의 야합 불러


▎최근 벌어지는 사모펀드 사태에서 정부여당 관련 인사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왼쪽부터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이철 전 VIK 대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인 조범동. / 사진:연합뉴스, 중앙포토, 연합뉴스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코링크PE, 라임, 옵티머스. 모두 경영참여형사모투자펀드(PEF)를 발행하는 자산운용사다. 줄여서 ‘사모펀드’라고 부른다. 하나의 사모펀드는 투자자를 49인까지 모을 수 있다. 50인부터는 공모펀드로 사모펀드보다 개설과 관리 감독이 까다로워진다. 그래서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1호, 2호 식으로 펀드 상품을 다양하게 만들어 투자자를 모집한다.

사모펀드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기업에 자본을 투입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한다. 투자 대상을 고르는 과정에서 부실기업을 걸러내고 유망기업을 발굴해 육성함으로써 대기업 위주의 산업지도를 구조조정하는 순기능도 가졌다. 외국 자본의 기업사냥에 따른 국부 유출을 방어하는 역할도 한다.

물론 이는 자산운용사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펀드를 운용한다고 가정을 둔 효과다. 공모펀드보다 폐쇄적으로 운용되고 규제가 약해 고위험 부담을 늘 안고 있다. 진입장벽도 낮기 때문에 투기 자본에 의한 불법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현 정부에서 연이어 문제가 된 사모펀드들의 자산운용 방식과 사기 수법이 대동소이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특이하게도 문제가 발생한 사모펀드마다 어김없이 현 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주로 오르내린다. 그저 우연의 일치거나, 사기꾼의 허세일까? ‘거듭되는 우연은 필연’이란 말처럼 누군가의 악의적 농간으로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정황이 하나둘 드러난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이 현상을 “과거 보수정권이 산업자본 권력과 손을 잡았다면, 문재인 정권의 586들은 금융자본을 권력 파트너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조국 펀드’, ‘장하성 동생 펀드’, ‘유시민 계열 펀드’

문제가 된 사모펀드들은 대개 현 정부 권력 실세의 이름을 이용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는 ‘조국-정경심’ 부부의 이름값을 이용했다. 조씨는 코스닥 상장사를 무자본 인수합병(M&A)하고 주가조작을 시도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지난 6월 30일 1심에서 징역 4년 형을 받았다.

라임·옵티머스에 가려져 있지만, 지난해부터 환매가 중단된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하 디스커버리)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장하성 주중대사가 엮여 있다. 디스커버리 대표이사인 장하원씨는 장 대사의 동생이다. 이 때문에 금융업계에서 ‘장하성 동생 펀드’로 불리기도 했다. 여의도의 한 투자은행(IB)에 몸담은 금융 전문가는 “디스커버리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장하성 이름값으로 몸집을 부쩍 키웠다는 건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7년 상반기까지 디스커버리 수탁액은 5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부 출범 후 투자금이 몰렸다. 2020년 상반기에는 설정액 4933억원에 72개 펀드를 운용하면서 3년 새 몸집을 열 배 가까이 늘렸다. 국내와 미국의 핀테크 사업에 주로 투자했다. 이 시기 장 대표의 형인 장하성 대사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휘했다.

디스커버리는 지난해 1800억원 규모의 핀테크 대출 펀드(US핀테크글로벌채권) 환매를 중단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해 4월 이 펀드의 미국 운용사가 실제 수익률과 투자 자산의 실제 가치 등을 허위로 보고한 사실을 적발해 투자금을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는 올해 들어 부동산 대출 펀드 중 1000억원을 추가로 환매 연기했다. 피해자들은 디스커버리가 2017년 4월에 등록한 신생 운용사인데도 기업은행 등을 판매사로 삼아 빠르게 성장한 점에서 정치권의 개입을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규모가 더 큰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가 불거지면서 의혹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5년 전 3만여 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연관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VIK는 2011년 8월에 설립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5년간 7000억원가량의 투자금을 모았다. 설립자인 이철 전 VIK 대표는 매달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하는 ‘명사특강’을 통해 인맥을 과시했다. 2012년 9월 김창호 전 청와대 국정홍보처장을 시작으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2012년 10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2012년 11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2013년 1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2013년 3월),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2013년 4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2014년 1월), 유시민 이사장(2014년 8월) 등이 강연자로 나섰다. 유 이사장은 이후 2015년 1월 부산대 양산병원에서 열린 신라젠 기술설명회에도 참석해 축사했다. 당시 VIK가 신라젠 최대주주였다.

VIK의 화려한 여권 인맥 뒤에는 이 전 대표의 정치 활동 이력이 있다. 이 전 대표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출신이다. 이후 국민참여당 의정부지역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2년 4월 18대 총선에선 의정부을 지역구에서 출마하려다 양보했다. 결국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총 14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불법자금을 받은 게 확인된 사람은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뿐이다. 그는 이 전 대표로부터 6억29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학연·지연 총동원해 정치권 인맥 전방위 로비 의혹


▎라임 사태 핵심 인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측이 10월 16일 자필 형태의 옥중서신을 공개했다. / 사진:뉴시스
정계와 금융계, 법조계까지 전방위적 로비 의혹을 받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은 학연이 눈에 띈다. 이 회사를 설립한 이혁진 전 대표는 한양대 경제학과 86학번으로 공대 출신인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와 동문이다. 2006년경 임 특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의 이사로 있었다. 두 사람은 2006년 6월 2~5일 경문협이 주관한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 참관단으로 방북하기도 했다. 그 뒤 이 전 대표는 2012년 4월 18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재 더불어민주당) 서울 서초갑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 정책특보와 영상제작산업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해외로 출국한 상태다.

옵티머스의 몸통으로 지목돼 구속 기소된 김재현 대표는 한양대 법대를 나왔다. 옵티머스 사내이사로 서류 위조 혐의 등으로 구속된 윤석호 변호사도 한양대 법대 출신이다. 그의 부인 이진아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옵티머스 지분 9.8%와 옵티머스가 무자본 M&A 과정에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셉틸리언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옵티머스가 인수한 상장기업 해덕파워웨이에 지난해 8월 감사로 선임된 금융감독원 국장 출신 인물도 한양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5조원 넘는 투자금을 운용하다 지난해 환매를 중단하면서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낸 라임자산운용은 호남 인맥이 주축이 되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라임 사태의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광주광역시 출신이다. 김 전 회장의 고향 친구인 김모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은 김 전 회장에게서 뇌물 5000만원을 받고 금감원의 라임 검사 계획서를 빼돌려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광주MBC 사장 출신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는 정치권 인사들과 김 전 회장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회장은 법정에서 이 전 대표를 통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강 전 수석은 이 전 대표를 만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돈을 받은 적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라임이 우회적으로 인수한 수원여객의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리고 해외로 도주한 수원여객 재무담당 전무 김모씨는 김 전 행정관과 고향 선후배 관계로 묶여 있고, 라임을 기획·관리한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김 전 회장에게 소개했다.

문제가 된 사모펀드 운용 과정은 각종 불법이 판친 비리 종합세트나 마찬가지다. 무자본 M&A, 폰지(ponzi) 사기, 횡령이 버젓이 이뤄졌다. 자기자본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코스닥 기업을 인수해 우회 상장한 뒤 회삿돈을 빼내거나 주가를 조작해 차익 실현 후 빠져나가는 무자본 M&A는 자본시장에서 가장 질 나쁜 범죄로 꼽힌다. 정상 운영하던 기업도 이런 기업사냥꾼의 ‘작업’에 걸리면 빈껍데기로 전락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사냥꾼에게 한번 작업당한 회사는 상장 폐지될 때까지 두고두고 꾼들의 먹잇감이 된다. 보통 이런 껍데기뿐인 상장사는 30억원가량에 거래되곤 한다”고 전했다.

기업사냥꾼의 우회 상장 수법은 마치 진주를 양식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업계에선 껍데기가 되는 상장기업을 쉘(shell), 우회 상장할 기업을 펄(pearl)이라고 부른다. 쉘과 펄에는 같은 사업 목적이 붙는다. 대개 유행을 타는 테마업종이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을 소재로 삼는다. 껍데기의 영양분을 먹고 진주가 어느 정도 자라면 껍데기는 버린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무자본 M&A 세력을 “자본시장과 기업을 황폐하게 만드는 쓰레기 중에서도 가장 쓰레기”라고 말했다.

조 전 장관 가족의 돈이 흘러들어간 코링크PE의 ‘블루펀드’는 이런 무자본 M&A를 통해 우회 상장해 주가 조작을 시도했다. 블루펀드는 가로등 점멸기 제조업체 ‘웰스씨앤티’에 전환사채(CB)를 받고 14억원을 투자한다. 웰스씨앤티는 이후 2차전지 관련 신사업에 진출한다며 상장사인 WFM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2차전지 업종은 2017년 7월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던 테마주였다. 조 전 장관 부부의 투자금이 2차전지 업종 진출까지 추진된 것은 조 후보자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2017년 5월 이후다.

586은 왜 펀드 금융 사기의 주인공이 됐나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징계 및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옵티머스의 타깃이 됐던 해덕파워웨이는 결국 상장 폐지됐다. 선박 방향타 부문에서 세계 1위로 한때 코스닥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이었지만, 2018년 옵티머스의 먹잇감이 되면서 잇단 최대주주 변경과 불성실 공시 반복으로 2019년 10월 상장 폐지가 확정됐다.

이런 불법 행각이 천문학적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사정·금융당국과 관계 기관, 정치권에 대한 로비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돼 있다. 힘 있는 사람과 친분을 과시해야 펀드 운용사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투자금을 모을 수 있어서다. 투자금을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굴린다면 당국의 감시망을 무력화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다. 학연·지연·혈연 등 온갖 인맥이 동원된다.

우선 내부 동향을 염탐하거나 정보를 빼줄 ‘망원’을 심는다. 좀 더 윗선을 ‘마사지’하려면 거물급 인사에게 접근해 ‘보험’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분업화된 시스템은 ‘쩐’으로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한 금융캐피탈 관계자는 “라임이나 옵티머스처럼 대형 펀드를 작업하려면 정교한 설계와 철저한 보안이 유지돼야 한다”며 “로비 대상자들도 각자의 역할과 범위가 정해져 있어서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 전까진 자기들도 누가 ‘동업자’였는지 잘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론되는 인물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수석급 참모, 여당의 중진 의원 등이 다양한 인맥으로 펀드 사기를 주도한 이들과 얽혀 있다. 현재 불거진 사모펀드 사태의 주인공들은 거의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 즉 586세대다. 특히 586 정치인들이 유독 자주 오르내리는 건 이 사건들의 특징이 여느 권력형 비리와 다르다는 걸 암시한다. 그 특징을 이해하려면 사모펀드의 태생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국내에서 사모펀드가 양성화하기 시작한 건 참여정부 때다. 1997년 IMF를 거친 뒤 공적 자금을 투입해 간신히 살려둔 은행과 기업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됐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5년 뒤 되팔아 4조원의 시세차익을 냈던 론스타가 대표적이다. 외국 자본의 침탈에 맞설 토종 자본 육성 여론이 사모펀드의 자양분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펀드 육성 정책, 문재인 정부 계승


▎386세대는 2000년대 초 정치개혁의 열망과 벤처 열풍을 타고 정치권과 경제계의 미래권력으로 등장했다. 2000년 초 코스닥 벤처기업 설명회장(오른쪽)과 민주당 신인들의 기자회견 모습.
참여정부는 2003년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3대 금융허브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 선진화, 금융회사 국제화, 금융거래 국제화라는 3대 추진목표를 설정하고, 금융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신년특별연설에서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당시 경제부총리인 ‘이헌재 사단’이 토종 펀드 육성론의 대표주자다. 이 전 부총리는 옵티머스의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금융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도 펀드 옹호론자다. 황 협회장은 삼성그룹을 거쳐 우리금융지주·KB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그는 2017년 7월 10일 금융투자협회 기자간담회에서 “펀드산업은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미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벤처 정부’였다면, 문재인 정부는 ‘사모펀드 정부’라 할 만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PEF 수는 721개다. 2018년 말보다 141개 늘어난 수치다. 2019년 한 해에만 206개가 신설돼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사전 등록제를 사후 보고제로 바꾸는 등 제도 개편이 있었던 2015년 말 316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4년 만에 2.3배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모펀드 정책은 참여정부 기조를 이어받았다. 2018년 1월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국회 4차 산업혁명 특위 업무보고에서 “기술개발과 연구개발 투자 목적의 신산업 분야 M&A는 신속히 심사하겠다”며 “사모펀드를 통한 투자 활성화를 위해 순수 자금모집 성격의 사모펀드 설립에 대해 M&A 신고 면제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 정부와 여당은 사모펀드 투자자 제한 완화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부동산 시장에 몰려 있는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들도록 하는 명분이다. 49명으로 돼 있는 사모펀드 투자자 제한을 100인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펀드 투자자가 50명 이상일 경우 공모펀드로 분류돼 결성 절차가 번거롭고, 금융당국의 감시가 강화된다.

조국 펀드를 파헤쳤던 권경애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론스타에서 보듯 5년간 4조원의 시세차익을 내고 되파는 잭팟의 투자(투기)시장이 환상적인 신세계였을 터다. 글로벌스탠더드를 외치며 M&A 시장에 뛰어들어 외국 IB 한국지사와 손잡고 소소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자들 중에는 운동권 출신의 여의도 한량들도 꽤 됐다”고 했다.

복수의 취재원들은 탐욕자본의 단맛에 취한 나머지 86그룹의 현실과 이상이 괴리되기 시작한 시점을 벤처 열풍과 M&A 열풍이 거의 동시에 불어닥친 2000년대 초라고 잡는다. 서울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벤처 붐의 주역이 바로 당시의 ‘386’들이었다. 벤처라는 딱지를 달고 코스닥에 상장만 하면 막대한 투자금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당시 벤처기업을 창업해본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벤처기업이라고 하면 여기저기서 투자금이 마구 들어왔다. 룸살롱을 지정해 놓은 건 예사고, 아예 룸살롱 하나를 사서 전용으로 쓴 기업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386의 혁신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벤처 기업인과 선진금융기법을 배우고 돌아온 투자전문가, 그리고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노무현 키즈’ 세 갈래로 나뉜다. 독재에 저항하던 시대의 경험을 공유한 세 개의 86그룹들에게 돈과 지식, 권력의 3박자가 갖춰졌다. 87학번으로 총학생회장 출신인 민주당의 한 원외 인사는 당시를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고 삶은 윤택한 시절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룸살롱에서 양주를 마시면서 배를 곯아가며 치열했던 과거를 회상했고, 그 마음 잃지 말자며 잔을 부딪쳤다. 그땐 뭔가 뿌듯했지만, 돌이켜 보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정치권의 86그룹은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정치 바깥으로 나가면 다르다. 돈을 벌 만큼 벌어봤고, 여전히 벌고 있는 86들이 수두룩하다. 아스팔트로 나가 독재와 싸운 이들에게 가진 부채의식을 물질적 보상으로 해소한다. 벤처기업의 사외이사나 직원으로 이름을 걸어두고 활동비를 받는 식으로 86 권력의 두 축인 ‘386 자본’과 ‘386 정치’ 사이에 끈끈한 유대가 형성된다. 정치의 사업화, 사업의 정치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386 자본’과 ‘386 정치’ 권력의 끈끈한 연대

90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졸업할 때까지 내내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한 일간지 기자는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된 86그룹의 타락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함께 운동했던 동지들과 술자리에서 외치던 단골 구호 중 하나가 있다. ‘돈 있는 자 돈으로, 지식 있는 자 지식으로, 힘 있는 자 힘으로’라는 구호다. 운동(정치)에는 돈이 필요하고, 사업에는 힘(정치)이 필요하단 걸 서로 알고 있다. 각자 가진 것으로 돕는 게 젊은 날의 꿈을 실현하는 생활투쟁이자 연대라고 여기는 거다. 결국 불법과 유착은 대의를 위한 필요악으로 포장되고 만다.”

돈 벌어본 적 없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정치그룹은 기업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정치에 적용한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진보 진영이 시작해 한때 유행했던 ‘유시민 펀드’, ‘박원순 펀드’ 등 선거자금 펀드는 정치의 사업화와 사업의 정치화를 보여주는 극명한 현상이다. 또 2011년경에 출현한 이철의 VIK가 ‘상생’, ‘집단지성’, ‘선한 투자’와 같은 86그룹의 정치적 이상을 기업 가치로 내세운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노사모 출신으로 열린우리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을 거치며 여성운동을 해온 오세라비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철의 밸류가 내건 슬로건은 집단지성, 선한 투자, 선한 기업이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3만 명 개미투자자들의 피 같은 돈 1조원은 어디로 사라졌나”라고 일갈했다. 그는 “밸류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14~2015년 무렵 사기라는 걸 직감했고 예감은 적중했다”고 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사모펀드 사태의 배경에 대해 “돈의 흐름이 과거에 건설토건에서 바이오, IT, 태양광 등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이동했다. 이 분야에서 뭉칫돈을 움직일 만한 네트워크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586세대”라고 분석했다.

같은 책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전망은 다소 비관적이다. 진 전 교수는 과거엔 보수가 586을 향해 “니들, 돈 벌어본 적 있어?”라고 물었지만, 이젠 처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586의 대답은 보수의 세대교체, 새로운 기득권의 탄생을 알리는 커밍아웃이나 마찬가지다. “당신들, 지금 돈 벌고 있어?”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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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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