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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역사 재조명]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한 5년 단임제의 얄궂은 숙명 

레임덕의 문 여는 권력형 게이트 

예외 없이 집권 4년 차 실세 연루 대형 스캔들… 국정 장악력 급속히 약화
일파만파 기로에 놓인 ‘라임·옵티머스 사태’ 추이에 따라 文 정권 운명 결정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왼쪽 둘째)이 올 10월 12일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위증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도착했다. / 사진:연합뉴스
"단임제 아래서는 임기 3년이 지나면 당정관계에 레임덕이 옵니다. 당정 분리를 하지 않더라도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미국의 경우에도 ‘임기 6년 차의 저주’라는 연구논문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대통령제 아래서는 레임덕 문제가 책임정치의 장애사유가 되는 것을 회피하기 어려운 일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리의 경우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임기 3년 차의 저주’라고 해야 할 형편입니다.”

2007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임제 개헌 발의를 위해 직접 작성한 국회 연설문 원고의 일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이 ‘저주’라 불렀을 정도로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임기 중반 이후 레임덕은 숙명에 가깝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단 한 명의 대통령도 피해 가지 못했다.

레임덕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징후를 앞세운다. 측근 비리, 인사·정책 실패, 여권 분열 등등. 그중에서도 레임덕을 앞당기는 요인은 ‘권력형 게이트’다. 정권 실세가 금품과 이권, 특혜 의혹에 연루되는 사건이다.

올 10월 12일, 예상치 못한 진술이 한 재판정에서 나왔다.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측근을 통해 강기정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고 얘기한 것. 김 전 회장 진술 이후, 꾸준히 의혹이 제기됐던 옵티머스 자산운용 사기 사건까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강기정 전 수석은 사실무근이라며 김봉현 전 회장을 위증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지만 ‘라임·옵티머스’ 정관계 로비 의혹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야당은 곧장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문재인 정권의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는 모양새”라며 “검찰이 확보한 문건에 따르면 펀드 수익자 가운데 정부와 여당 관계자가 다수 포함돼 있고, 이들이 실제 펀드 운용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라임·옵티머스 사건은 사모펀드의 금융 사기 사건”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시기가 예사롭지 않다. 역대 정권에서 ‘권력형 게이트’는 주로 집권 4년 차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만사형통’, 바다이야기, 홍삼 트리오


▎노무현 정권 4년 차에 정국을 뒤흔들었던 사행성 게임장 ‘바다이야기’.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정부 4년 차였던 2016년,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알렸다. 이로 인해 임기 만 4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해 12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취임 6개월 만에 친인척 비리(처사촌 김옥희씨 공천 사기)가 발생했던 이명박 정부도 예외 없었다. 알선수재 혐의로 추부길 전 청와대 기획비서관(2009년 8월), 천신일 당시 세중나모 회장(2010년 12월)의 구속은 시작에 불과했다. 집권 4년 차였던 2011년 1월, 배건기 청와대 전 감찰팀장이 함바 비리에 연루돼 물러났다. 2월엔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이 함바 비리로 구속됐다. 5월엔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연루 비리로 쇠고랑을 찼다. 그해 9월, 검찰이 본격적인 저축은행 비리 수사에 들어가자 3개월 만에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씨가 수뢰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됐다. 이듬해 7월에는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까지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여러 비리 연루 의혹에 휩싸였었다. 비슷한 시기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대통령 최측근들의 금품 수수 사건도 연이어 터졌다.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불거진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는 국정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국세청에서 파견된 청와대 행정관이 관련 업체의 지분을 갖고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의 인척 연루설까지 돌며 게이트로 비화됐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특별회견에서 “국민에게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은 6개월간의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구속기소 45명을 포함, 총 153명을 사법 처리했다. 검찰이 범죄수익을 환수 조치한 금액은 1377억원에 달했다.

앞서 노무현 정권은 ‘386’을 비롯한 측근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탄핵을 경험했다. 여기에 형 건평씨는 차명 주식투자, 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유임 청탁 로비 의혹 등 여러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 참패 이후 터진 ‘바다이야기’ 사태는 그해 10월 열린 4곳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전패를 불러왔다. 당은 분열했고 청와대와의 불화도 시작됐다. 당·청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자 이듬해 초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을 탈당했고, 국정 장악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권 마지막 해에 터진 ‘신정아 게이트’로 레임덕에 빠진 노무현 정권은 도덕성까지 타격을 입으며 무력한 임기 말을 보냈다.


▎2002년 5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가 서울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1998년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부터 ‘게이트 정국’에 휘말렸다. 2300억원대 불법 대출과 주가 조작으로 경제계를 뒤흔든 ‘진승현 게이트’, 680억원대 횡령이 적발된 ‘이용호 게이트’와 ‘최규선 게이트’ 등이 잇따라 터졌다. 특히 이용호 게이트는 정치인과 검찰·국정원·금감원 간부 등이 두루 연루돼 ‘부정부패 종합 선물상자’란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홍삼 트리오’로 불렸던 DJ의 세 아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면서 정권은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었다. 장남 홍일씨는 나라종금 인사 청탁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차남 홍업씨는 이용호 게이트 수사 과정에 특가법상 알선수재, 조세포탈 등으로 구속됐다. 삼남 김홍걸 의원은 미국 유학 중에 알게 된 최규선씨로부터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악화된 김 전 대통령도 결국 2002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게 된다.

노태우·YS 정권 무너뜨린 정태수 한보 회장


▎1997년 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한보 사태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4년 차인 1996년 ‘권력형 게이트’의 문이 열리며 정권은 쇠락의 길로 빠졌다. 시작은 ‘장학로 사건’이었다. ‘집사’로 불렸던 장학로 당시 청와대 제1부속 실장은 기업체와 점심을 두 번씩 먹었다. 뇌물을 받을 만남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17개 기업으로부터 챙긴 금액은 27억여원이었다. 그의 구속 이후 정권은 물론 대한민국을 몰락으로 이끈 ‘한보 사태’가 터졌다. 1997년 1월, 한보그룹이 부도를 맞았다. 논란이 된 것은 자기자본 2200억원에 불과한 한보가 5조70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있다는 의혹이었다.

공식직함이 없는 김씨는 정권 초기부터 ‘소통령’, ‘비선 실세’ 등으로 불렸다. 정부 고위 인사들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공직자 인사 문제에도 관여했기 때문이다. 정계에 파다한 내용이었지만, 그런데도 정권은 그를 비호했다. 그러나 결국 비자금 관리, 각종 이권 개입, 뇌물수수에 연루된 ‘김현철 게이트’가 터졌다. “아들 허물은 아비의 허물”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이후 ‘한보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은 현철씨는 결국 구속됐다. 김씨의 구속은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단죄한 최초 사례였다. 아들 문제에 악화된 경제 상황까지, 사면초가에 몰린 김 전 대통령도 결국 신한국당에서 자진 탈당하는 처지에 이르게 됐다.

노태우 정부 때는 4년 차인 1991년, 서울 강남구 수서 택지 분양 특혜 비리 사건이 정권을 흔들었다. 정·경·관이 유착한 대형 스캔들이었다. 당시 수서·대치 택지개발예정지구는 개발제한구역으로 주택 신축이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특정 주택조합에 건축허가를 내줬다. 논란이 커지자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나섰다. 그 결과 정태수 당시 한보 회장이 청와대 관계자, 국회의원, 건설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밝혀졌다. 대검은 정태수 회장,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국회의원 5명을 구속했다. 노 전 대통령도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민심을 되돌릴 순 없었다. 그 역시 임기 말 집권 여당인 민자당을 탈당했다.

전문가들은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권력형 게이트로 확대될 정황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여러 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권력 핵심들과 연관이 있을 개연성이 있다”며 “합리적 의심이 확산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한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도 “심증은 가는데 확증이 없는 상황”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가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의견이다.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창렬 교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 이후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다 자른 상황”이라며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하명수사 의혹 사건 수사들처럼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폐지 시기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진척 상황들을 들며 “미심쩍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법무부는 올 1월 검찰 내 비(非)직제·직접수사 부서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합수단을 폐지한 바 있다. 추 장관 취임 후 18일 만의 일이었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린 합수단은 2013년 출범 이후 6년여간 자본시장법 위반 사범 965명을 기소하고 346명을 구속했다. 이런 이유로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올 10월 12일 국회 법사위 법무부 국감에서 “합수단 폐지를 두고 일각에선 옵티머스나 라임 수사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與 특검 수용 가능성 낮아 “공수처 1호 사건으로 수사”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4일 라임·옵티머스 사건과 관련, “빠른 의혹 해소를 위해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최 교수는 “라임·옵티머스 사건은 피해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많은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진술이 나오기 시작하면 짜 맞추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검찰이 정권에 등을 돌리면 권력형 게이트로 커지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말한다.

야당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수사팀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월 14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구성하는 특별수사단에 수사를 맡기거나, 특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특검 임명을 위해 발의안 초안 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민주당이 특검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교수는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논란에 대한 특검도 단칼에 거절한 민주당이 라임·옵티머스 사건 관련 특검을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국회 내 의석수가 절대 열세인 야당이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사안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에서 잽만 날리고 정작 카운터펀치는 없는 현실”이라며 야당의 전략 부재를 꼬집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야당이 정치적 역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차재원 교수는 “과거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어 의혹이 제기되면 검찰총장의 지시로 중수부가 속전속결로 압수수색, 소환조사 등을 통해 진상을 밝혀내곤 했다”며 “현재의 검찰 체제에서는 과거 대검 중수부에서의 전광석화 같은 수사를 바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거처럼 검찰권이 행사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사건으로 라임·옵티머스 건을 꺼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의 특검 수용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승부수를 띄울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차 교수는 “공수처가 의혹을 사실로 밝혀내면 정권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고 설사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공수처가 정권의 도구라며 ‘공수처 무용론’을 펼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권력형 게이트와 함께 선거도 레임덕을 부르는 또 다른 요인이다. 집권 후반기 불거지는 권력 비리는 어김없이 선거 패배를 불러왔다. 이른바 ‘집권 4년 차 여당 선거 패배 징크스’다. 선거 패배는 레임덕을 가속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4년 차에 치른 총선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다. ‘유재수·조국·송철호’ 등 청와대 관련 인사들의 의혹에도 징크스를 피해갔다. 이런 가운데 ‘라임·옵티머스 사건’이 수면 위로 재부상했다. 여기에 예정에 없던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내년 4월에 놓여 있다.

임기를 약 1년 7개월 남겨둔 지금, 부정평가가 앞서긴 하지만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래권력의 홀로서기 움직임도 크지 않다. 그러나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고, 야권의 공세 수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여권의 기대대로 ‘레임덕 없는 최초의 정권’이 될지, 아니면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답습할지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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