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특별기획 | 평양 리포트] 당 창건 75년 맞은 김정은의 강온 전술 

한 손에 미사일 쥔 ‘악어의 눈물’ 

■ 새벽 열병식에 신형 무기 공개하며 ‘강한 지도자’ 이미지 대외 천명
■ 삼중고 시달리는 인민들 다독이는 제스처로 따뜻한 리더십 부각
■ 문 대통령 종전선언에 화답한 유화 메시지는 대미 협상력 강화 포석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열을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한국의 여의도 정치도 변화무쌍하지만 남북관계 역시 살아있는 생물이다. 지속해서 돌발사태가 발생한다. 단순히 분단국가로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 국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반도 상황은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 물 밑과 물 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돌발변수가 발생한다. 서해해상분계선(NLL)은 충돌의 경계지대다. 남한의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북측 수역 안에서 구조신호를 보냈는데도 북한군 총격에 피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사건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양이나 아프리카 근처에서 암약하는 무장해적들도 몸값을 챙기려고 들지 저항하지 않는 인질을 쉽게 살해하지는 않는다.

한반도를 넘어 지구 반대편에서도 상황이 발생한다. 전 세계 60개국의 북한 외교공관은 해외 공작의 소굴이자 언제 이탈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지뢰밭이기도 하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할 당시 북한 대사관은 암살 공작의 전초기지였다. 전 세계 북한 대사관은 외교관 특권과 면책을 이용해 각종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베이스 캠프다. 2018년 11월 주이탈리아 대사관을 탈출해 지난해 7월 서울로 망명한 조성길 대사대리는 유럽에서 김정은 일가의 1호 특수물품을 조달하는 책임자였다.

필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재직 시절(2008년 7월∼2012년 1월) 연구원으로 일하던 탈북 외교관들의 기존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북한 대사관은 각각 전문화된 공작 업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태영호 공사가 근무했던 영국대사관은 주로 북한의 국제관계 방침을 서방세계에 전달하는 공보담당 역할을 수행한다.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관은 주로 미국과의 간접 연락장소로 활용한다. 보안이 필요한 북·미 간 물밑 협상이 은밀히 진행되기도 한다. 독일 주재 북한 대사관은 주로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의 각종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해외 북한 대사관들의 은밀한 ‘이중생활’


▎2018년 11월에 잠적한 조성길 북한 대사대리(작은 사진). 조 대사대리가 근무했던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의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반면 이탈리아 대사관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로마에 있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는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 창구로서 북한이 접촉에 적극적이다. FAO 자매 기구로서 국제 식량 위기에 인도적 대응 활동으로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WFP(세계식량계획)는 로마에서 북한대사관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한다. 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은 과거부터 김씨 일가의 1호 물품을 조달하는 비밀 출구다. 요트, 바이올린 등 고급 악기, 와인 등 주류, 선물용 시계, 의류 및 치즈, 과일, 밀가루 등 각종 먹거리가 가득한 2~3개의 컨테이너가 나폴리 등 이탈리아 반도 남쪽 항구를 출발해 지중해를 거쳐 동남아-남중국해 해상루트를 통해 3주 정도가 지나면 남포항에 도착한다. 최근 김정은 홍보 사진에 등장했던 아우디 마크가 달린 독일제 자동차도 이런 루트를 통해서 들어왔을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근무했던 탈북 외교관 K는 1호 컨테이너 이외에 간부용 소형 컨테이너를 별도로 준비해 남포항에 보내다가 1년 만에 보위부에 적발돼 소환을 당하자 공관을 탈출했다. 소형 컨테이너에 실린 각종 유럽산 생필품은 평양 권력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대로 보위부의 안테나에 걸리면서 유럽산 고급 물품의 평양 밀반입은 1년도 안 돼 막을 내렸다.

전 세계 북한 대사관은 평양에서 공관 운영비용을 절반밖에 받지 못해 각자도생으로 돈을 벌어 운영한다. 과거 베트남에서 발생한 면세 외제차 판매사건은 외교관 면세 규정을 악용했다. 외교관용 면세 벤츠 자동차를 구매한 지 3개월 만에 정상가격으로 재판매해 차익을 챙기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마약 밀수는 물론 무기 거래까지 서슴없이 나설 수밖에 없다. 조성길 대사대리의 경우 김정은 일가의 물품 조달 과정이 문제가 됐을 것이다.

탈북 외교관들은 1호 물품 조달이 양날의 칼이라고 한다. 최고 지도자가 별도의 언급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지만 행여 물건의 품질이 신통치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평가가 서기실을 통해 전달되면 이탈리아 대사관은 초상집 수준이 된다는 것이 과거 로마 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탈출한 북한 외교관의 전언이다. 평양에서 충분한 자금을 내려보내면서 조달 지시가 오면 양질의 물자를 정상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빈약한 예산에 지난 2017년 이후 유엔 안보리 제재 등으로 자체 자금과 물자 조달이 여의치 않다. 대사관이 조달하기 어려운 물자는 노동당 재정경리부 소속 39호실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2011년 12월 집권 이후 최고위급 인사의 망명은 김정은 위원장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특명전권대사는 아니지만 대사대리가 망명한 것은 지난 1997년 장승길 이집트 대사의 미국 망명 이후 최고위급이다. 또한 김정은 체제 출범 후에는 2017년 태영호 공사의 탈북 이후 최고급 인사다. 김 위원장은 조성길의 망명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할 것인가? 결론은 로키(low-key) 전략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여가 지난 치부를 들춰 외무성과 보위부의 관련자를 색출해 철직을 시킨들 책임자 처벌이라는 푸닥거리 명분 외에 이득은 별로 없다. 특히 딸이 평양으로 들어간 조성길은 아들 둘과 함께 서울에 있는 태영호 공사와는 상황이 다르다. 조성길은 북한 비난의 강도를 높였던 태영호와 달리 평양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잠행을 유지해야 평양의 딸과 외무성 인맥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평양에 딸이 볼모로 잡힌 조성길은 이미 평양 외교부에서 남측 정보기관에 의한 실종 및 납치로 처리됐을 것이다. 과거 외교관 망명 시절마다 북한 외무성이 사용하던 비책으로 모두가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다. 다만 평양의 딸을 살리기 위하여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조성길 부인의 행태는 여전히 잠복 변수다. 국내 일부 단체에서 기획 입국 등의 이유를 들어 북송 여론을 조성하면 평양 역시 송환 요청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평양 양측 모두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2020년 가을 평양의 대내외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사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조성길 사건 외에 시급한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집권 9년 차를 맞아 흐트러진 민심을 다독거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김 위원장은 노동당 창건 75년 주년 행사를 빅 이벤트로 만들어야 했다. 우선 꺾어지는 해인 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은 동요하고 있는 내부 민심을 다독이며 미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대였기 때문에 성공적인 행사 개최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행사의 수위를 조절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김정은의 ‘물망초’ 전략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처음 선보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 사진:조선중앙TV 캡처
과거 방식대로 오전 10시에 보란 듯이 김일성광장 열병식에서 지난 2018년 2월 8일 건군 70주년 행사 당시 화성 14, 15호를 선보인 것처럼 이번 행사에는 화성 16호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대 800㎏이 넘는 핵탄두를 장착한 상태에서 1만5000㎞의 유효 사거리로 미국 수도인 동부지역 워싱턴 등 어디든지 핵 타격이 가능한 무기다. 초대형 액체 연료를 가동해 즉각 발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새로운 전략무기로 평가된다. 하지만 신형 핵무기의 확실한 공개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날의 칼이다. 신형 ICBM과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4A형, 초대형 방사포 및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 등 신무기 4종 세트의 공개는 평양이 워싱턴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로서 코로나 확진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대북제재에 맞대응해 선거 이후 워싱턴을 움직일 레버리지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역시 핵무기와 미국을 위협할 투발 수단인 신형 ICBM을 선보이는 ‘맞보기 전략’은 불가피하다. 특히 선거 이후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심정으로 진검승부가 될 4차 북·미 정상회담을 기약하는 만큼 ‘닥치고 공격’ 위주의 충격요법을 저울질했으나 마지막에 변칙 전략을 구사했다. 자신이 평양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유권자를 설득하는 트럼프의 입장을 어렵게 하기보다 ‘선거 후에 나를 잊지 말아요(forget me not!)’라는 고상한 물망초 전략을 구사했다.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당초 오전 10시에서 자정으로 행사 시간을 변경함으로써 신형 무기를 확실하게 과시하는 도발적인 무력시위 카드는 대미 강경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불빛 감성 전략으로 상대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는 나이트 쇼로 전환됐다. 서치라이트를 받으며 -실전 발사하지 않아 성능이 어떤지는 미지수이나 크기와 운반 차량의 바퀴로 판단하건대 ICBM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를 공개함으로써 외부의 판단을 애매하게 하는 ‘모호성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뉴욕과 워싱턴을 동시에 때릴 수 있는 핵 다탄두 탑재가 가능한 신형 ICBM 퍼레이드에 불같이 화를 내고 실망감을 나타냈다고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의 알렉스 워드 기자는 전했다. 필자가 원고를 마감하는 12일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나오지 않아 그의 심경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나 북한이 비핵화 협상 3년 동안 ‘괴물 ICBM’을 만들었다는 평가에 트럼프의 심기가 편하진 않을 것이다. 야간이건 주간이건 신무기가 공개된 것은 지난 3년간의 핵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바이든 후보의 지적에 반박하기는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행보에 실망스럽다는 입장이다.

결국 평양은 가을날 쌀쌀한 야심한 시각인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신무기와 2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 깜짝 열병식쇼로 75주년 행사를 마무리했다. 어둠 속에서 일부 화려한 조명이 등장하긴 했지만 김 위원장이 전쟁 억지력 운운 등 장황한 연설을 하고 북한군 특수부대 사열 이후 깜짝 신무기가 등장하는 전통적인 열병식 퍼레이드와 형식은 유사했으나 대낮의 태양 아래 공포감을 주었던 기존 행사와는 다소 분위기가 달랐다.

군사적 위압감 줄이고 감수성 강조


▎10월 10일 밤에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설 도중 울먹이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TV 캡처
특히 김정은이 “인민들에게 제대로 보상하지 못해 면목이 없다”고 울먹이는 모습은 연출일지언정 열병식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어색한 장면이었다.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표현만 18번을 사용했다. 반대로 신형무기가 등장할 때마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는 김정은의 표정은 그의 복안이 무엇인지를 추측할 수 있게 했다. 연설 내내 인민들을 대상으로 극존칭을 사용하는 모습은 최고 존엄으로서는 무언가 모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감성적인 용어 사용으로 주민들의 불만을 희석하려는 심리적인 전술이다. 대내외적으로 녹록지 않은 평양 내부의 상황을 반영했다.

최근 국내외 운동 경기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는 것과 같이 평양의 열병식도 국제사회의 관중은 불참하는 제한적인 무관중 행사로 치러졌다. 글로벌 팬데믹 위기 속에서 신형무기를 선보이는 요란한 군사 퍼레이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한 듯 김 위원장이 행사 수위를 조절했지만, ‘괴물 ICBM’은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행사 시간에 밤과 낮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실감성이 판단 기준이다. 확실하게 신형 첨단무기와 군인들의 눈빛을 보여주는 데는 역시 환한 대낮이 제격이다.

무엇 때문에 처음으로 2만여 명의 정예 병력이 총을 들고 한밤중에 모였겠는가? 필자는 2004년 10만여 명이 참가하는 아리랑 공연을 평양에서 관람한 적이 있다. 각종 카드섹션을 연출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동작이 보이지 않는 야간이 유리하다. 하지만 무기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열병식 행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낮에 개최했고 북한도 지금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2020년 가을 깜짝 심야 군사 퍼레이드를 해야만 하는 평양의 광경은 대단히 낯선 모습임이 틀림없다.

초유의 혼란 이후 11월에 존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선의 최종 승리자가 되는 장면은 평양에 악몽이다. 김정은에게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전략이라는 명분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잃어버린 8년’의 추억이 재현되는 데자뷔는 끔찍하다. 코로나 쾌유 친서를 신속하게 하루 만에 보내는 등 평양은 일단 트럼프에게 수중에 있는 판돈 전부를 걸었다. 평양이 김여정을 워싱턴에 파견해 김정은 친서를 전달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트럼프의 확진 판정으로 물거품이 됐다. 이제 평양은 오매불망 트럼프의 당선을 기원하며 인터넷으로 미국 선거를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북한, 코로나19 누적 격리자 3만1163명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분주하다. 북한은 코로나와 지난여름의 수해 태풍 피해로 경제난과 식량난에 처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평양의 살림살이는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다. 대북제재와 수해·태풍 피해 및 코로나로 인한 삼중고는 지난 1996~1998년의 고난의 행군 수준에 육박한다. 김 위원장 역시 75주년 연설에서 삼중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면목이 없다”며 잔뜩 자세를 낮췄다. 물론 김정은은 유럽에서 체류한 경험으로 김일성광장 전면 주석단 등을 유럽풍 대리석으로 치장하는 등 정치성 예산 사용에는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평양에서 긴급하게 편성한 30만 명의 돌격대를 함경도 태풍 피해 현장에서 보내 복구에 나서고 있지만 올해 식량 감소는 불가피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월 초 UN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면서 식량난이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곡창지대인 황해남북도 일대가 물폭탄을 맞았고 함경남북도 수산 사업소들이 태풍의 피해를 입었다. 특히 코로나19 탓에 국경 봉쇄가 계속되고 외부 지원도 끊기면서 북한의 식량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식량 수급에 있어 중요한 장마당이 거의 열리지 않으면서 쌀 1㎏이 몇 달 치 월급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미국 농무부 산하 경제연구소는 지난달 발표한 연례보고서(국제 식량안보 평가 2020-2030)에서 올해 북한 주민의 59.8%인 약 1530만 명이 식량부족 상태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와 격리는 북한 경제위기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 위원장도 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단 한 명의 악성 코로나 피해자 없이 모두 건강해서 고맙다”면서 “전 세계가 놀랄 일”이라고 자찬했다. 방역승리를 선언하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2만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필자는 북한 당국이 사망자는 물론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우회적인 방법으로 코로나 발생 실태를 추정했다. 회원국의 의무로서 세계보건기구(WHO)에 제출한 격리자 통계를 통해서 감염 실태에 대한 개괄적인 상황을 추론했다.

북한이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2월 31일부터 2020년 9월 30일까지 코로나19 누적 격리자는 3만1163명이며, 9월 17일 기준으로 총 3374명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모두 음성이었다. 또한 북한 당국의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최초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도한 1월 22일부터 9월 30일까지 8개월 10일간 보도한 기사 총 1585건을 추적해 신의주, 사리원, 해주, 청진, 함흥 등지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감염병에 대한 북한 매체의 보도는 폐쇄성과 비공개성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보안 위주의 보도 원칙에도 불구하고 올해 [노동신문]의 코로나19 관련 보도량은 2002년 사스 발생 당시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늘어났다. 사스(SARS) 발생 당시 노동신문 보도량은 100건이 채 되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장마당에서는 감기, 기침, 소염진통제, 소독약, 링거 주사줄 등 기초 의약품 가격이 연초 대비 7배 올랐다. 주민들은 고열과 기침 등 감기 증세가 보이면 방역당국에 신고하거나 병원에 가기보다 장마당에서 약을 사 복용한다. 함경도 삼수군 주민과의 통화에 따르면 방역 당국에서 파견한 의료일꾼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감염자를 점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코로나 발생 9개월이 지나도록 가가호호 방문 기록이 없다고 전했다.

평양에 들어간 일본인들의 거취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스크를 벗으며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쾌유를 비는 전문을 보냈다. / 사진:연합뉴스
군방역소 일꾼 → 인민반 반장(통장) → 주민 증상 체크의 현장 방역체계는 당국의 지시와 달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고열과 기침이 나면 자진신고하고 환자는 집에서 격리하는 방침을 따르면 매일 장마당에 나가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은 오히려 격리하다가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불평이다. 한번 격리에 들어가면 꼼짝 못 하고 감옥 수준에 처한다고 한다.

필자와 간접 소통하는 일본인들은 평양 보통강에 위치한 평화센터에서 일한다. 지난해 11월 하순 6개월 일정으로 평양에 들어갔지만, 현재까지 교통편이 두절돼 나오지 못하고 있다. 평양의 항공편과 열차편이 올스톱 돼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평양 시내로의 쇼핑도 불가능해 평양 관계자들이 물건을 사서 배달한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언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고 한숨을 쉬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북한의 경제활동은 예년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 1~8월 북한의 대중 무역 규모는 5억1000만 달러로 지난해 1~8월(17억1000만 달러)보다 70%가 감소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1~8월 북한의 대중 수출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70.3% 줄어든 4192만 달러였다. 수입은 70.2% 감소한 4억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북한의 대중 무역 비중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2007년 67.1%에서 지난해 95.4%로 증가했다. 북한의 대중 무역액 감소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경차단 때문이다.

심야 열병식의 신형 ICBM 공개와 함께 김정은의 당 창건 기념식 연설 중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남 메시지다. 김 위원장은 밝은 회색 서양식 정장을 입고 짙은 회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해 “이 영광의 밤이 드디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했다. 특히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보낸다”며 “하루빨리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두 손 마주 잡는 날 찾아오기를 기대한다”는 짧은 메시지를 서울을 향해 전격적으로 던졌다.

메시지의 함의는 문 대통령의 연이은 종전선언에 대해 화답한 것으로 이른바 ‘문재인 일병 구하기’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로 대북 불신은 한국사회에서 한계치에 도달하고 있다. 15개월 남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동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평양이 워싱턴을 상대하는 데 있어 서울은 여전히 유효한 지렛대가 아닐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 11월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서울의 활용 가치는 작지 않다. 그동안 팽팽하게 줄을 당기면서 대남 비난을 이어왔지만 각종 사건 사고로 이제 동아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임기 말 시간에 쫓기며 자충수 두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2일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재차 촉구했다. / 사진:청와대
남북관계가 썰물이 되니 어업지도선 직원 피살 사건이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평양은 순식간에 얼굴색을 바꾸고는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평양의 각종 비인도적 행위에 곤혹스러워하던 청와대는 NSC 상임위를 소집해 김정은의 연설에 대해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북한의 입장에 주목한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여당 또한 “북한이 평화 프로세스에 화답했다”며 일제히 손을 들어 환영한다. 북한이 과시한 각종 신형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지난 70년간 남한을 상대해온 북한의 통전부에게 북을 향해 일편단심인 남한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작업은 식은 죽 먹기다.

평양의 복잡한 상황과 달리 서울은 초지일관이다. 북한이 신형 ICBM 개발에 마이웨이 행보를 하는 것처럼 문 대통령이 9월과 10월 두 차례 제안한 한국전쟁 종전선언은 청와대의 마이웨이다.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한 지 2주 만인 10월 8일 문 대통령은 한·미간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 화상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통해 한·미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는 다음날 “남북문제와 비핵화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대북 사안에) 한미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의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편한 심정을 반영했다. 내퍼 부차관보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의지에 부응하고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해결할 때까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계획한 10월 동북아 방문에서 한국과 몽골을 건너뛰고 4∼8일간 일본으로 가서 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개국 중심의 다자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출범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 등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한국이 미국의 관심사인 ‘쿼드’는 중국의 눈치를 살피며 참여에 소극적인 입장이고 옥토버 서프라이즈 등 북·미 접촉에만 관심이 많은 만큼 서울을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갖는 격이다. 한·미 훈련이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되는 사이 북한은 괴물 ICBM을 완성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핵협상 3년은 이제 낙제점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신형 ICBM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당사자인 미국의 관심이 부족하고 전제조건인 비핵화의 여건도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특히 대북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마이웨이’ 전략을 지속하는 이유는 임기 말 초조함 때문이다. 임기 5년의 단임 한국 대통령은 항상 북한에 협상을 제의하며 본인이 통일과 평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국정의 동력 중 상당 부분을 한반도 북측에 할애한다. 북측은 핵보유 로드맵에 따라 별 미동도 없는데 스스로 조바심내고 스스로 희희낙락하다가 임기 말 시간에 쫓기며 자충수를 두는 행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외 없이 반복되는 중이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images/sph164x220.jpg
202011호 (2020.10.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