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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분석] 여당 의원들의 끝없는 ‘실드(shield) 경쟁’ 속사정 

靑 영향력 너무 막강···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문파·대깨문 등 안팎으로 눈치 볼 수밖에 없는 현실
대통령 지지율 떨어지면 돌변한다는 전망도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두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논란’이 인 건 10월 3일. 그날 강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여행 목적은 요트 구매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전해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외교부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해외여행 자제 권고를 내린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 배우자가 여행을 목적으로 출국한 게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비판이 거세지자 강 장관은 이튿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외교부 간부 회의 도중 “국민께서 해외여행 등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가운데 이런 일이 있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결국 본인이 결정해서 떠난 것”이라며 “워낙 오래 계획했고 미루고 미루다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장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확전을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이낙연 대표) “고위 공직자이자 해외여행 자제 권고를 내린 외교부 장관의 가족이 한 행위이기에 부적절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김태년 원내대표) 반면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코로나19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죽어 나가고 있는데, 고관대작 가족은 여행에 요트까지 챙기며 ‘욜로(YOLO)’를 즐긴다”고 직격했다.

여야의 가시 돋친 설전은 방송에서도 이어졌다. 10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박범계 민주당 의원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출연해 이 교수 미국 여행 논란과 관련해 논쟁을 벌였다.

박 의원은 “국민 눈높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강경화 장관께 이걸 연결해 책임을 묻는 일부 기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김 의원은 “고위공직자, 특히 외교부 장관이 여행 자제를 당부한 입장에서 그 부군의 미국 여행이 과연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이어 “이 사안의 핵심은 이중잣대”라며 “국민에게는 ‘성묘도 가지 마라’ 해놓고 장관 남편의 여행은 개인의 문제라고 넘어가는 건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4·15 총선 부정을 주장하며 미국으로 떠난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막지 못한 야권은 이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며 화살을 느닷없는 민 전 의원에게 돌렸다. 민 전 의원은 최근 미국 백악관·의회·대법원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에 김 의원은 “민 전 의원은 고위공직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이라며 “평 국민 같으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도 박 의원을 거들고 나섰다. 그는 10월 6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강 장관의 남편이 요트 구입을 위해 미국 여행을 떠난 것이 불법은 아니다”며 “아무래도 외교부 장관 남편이니 문제가 되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강 장관이 송구스럽다고 표현했을 것”이라고 강 장관을 감쌌다. 이어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도 지금 미국 워싱턴에 가서 국가 망신을 시키고 있는데,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미국에 가려고 한다는 것 아니냐”며 야권 인사들을 끌어들여 비판했다.

조국-추미애 사태 거치면서 한목소리·단일대오 유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같은 여권 인사들의 ‘강경화 실드’를 논리적 모순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국민을 향해 주장했던 ‘선(先)방역, 후(後)사생활’ 방침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강 장관도 지난 5월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생활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한돼야 한다. 사생활은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민준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코로나 정국에서 민주당은 방역을 최우선 가치로 여겼다”면서 “그러다 강경화 장관 남편 논란이 일자 갑자기 사생활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이는 논리적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이일병 교수 논란에 앞서, 지난해 조국 사태와 올해 추미애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도 일부 민주당 의원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막무가내 논리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은 줄곧 한목소리를 내며 단일대오를 유지했다.

“서 일병(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은 군에 가기 전 무릎 수술을 해서 군에 안 갈 수 있는 조건인데도 어머니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내가 안 가도 되지만 가야 되겠다’고 결정해 군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 군에 안 갈 수 있는 사람인데도 군에 갔다는 사실 자체가 상찬(賞讚)되진 못할망정.”(9월 1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설훈 의원)

“아들과 보좌관이 친하니까 엄마가 아니라 보좌관 형한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어봤다는 것이다.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 시킨 것 빨리 달라고 하면 이게 청탁이냐 민원이냐. 알아볼 수 있는 것.”(9월 8일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정청래 의원)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라 논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9월 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우상호 의원)

“철부지의 불장난으로 온 산을 태워 먹었다. 언행을 보면 도저히 단독범이라고 볼 수 없다. 당직 사병(추 장관 아들 군 휴가 의혹 최초 제기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고 공범 세력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국정농간 세력’을 밝혀내고 뿌리 뽑아야 할 것.”(9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황희 의원)

이런 가운데 10월 13일 박진영 민주당 부대변인의 공식 논평을 두고도 공당(公黨)답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당이 개인, 그것도 공인이 아닌 민간인을 콕 집어 비난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박 부대변인은 ‘진중권씨는 [삼국지]의 ‘예형’의 길을 가고자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조정래 작가의 발언을 비판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진중권씨의 조롱이 도를 넘어서 이제는 광기에 이른 듯하다”고 비난했다. 예형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독설가로 결국 처형당하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이에 앞선 10월 12일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된다. 민족 반역자가 된다”고 한 조 작가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 대학에서 유학한 거로 아는데,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돼 민족반역자로 처단당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부대변인은 “이론도 없고 소신도 없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예의마저 없다”며 “조정래 선생에 대해서 예의를 갖춰주실 것을 정중히 권한다”고 요구했다. 진 전 교수는 발끈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조정래를 비판했는데, 왜 성명이 민주당에서 나오나. 당신들 일 아니니까 신경 끄라. 이분들이 미쳤나. 공당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라며 날을 세웠다.

작금의 상황을 주목하고 있는 민주당 출신 한 정치 컨설턴트는 “민주당 내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상황이 엄혹한 것 같다”며 “[조국 백서] 공저자인 김남국 초선 의원의 ‘당론과 어긋나면 무소속 활동을 해야 한다’는 발언에 반박한 의원이 없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민주당 내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여당이 청와대 경호실 역할?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송영길 의원(왼쪽부터)이 10월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검찰개혁, 현주소와 향후 과제’ 세미나에서 나란히 박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민주당 인사들은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청와대를 비호하려 할까. 정치인의 발언은 응당 정당과 정파의 이익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일부 여권 인사는 상식과 논리를 아예 무시하기도 한다.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 출신인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의 진단이다. “총재라는 이름의 당내 절대권력자는 사라졌지만 대통령의 공천 영향력은 대단하다. 대통령이 사실상 총재 이상의 보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잘 아는 의원들이 차기 공천을 보장받기 위해 민심 챙기기는 뒷전으로 미룬 채 대통령과 청와대 비호에 나서는 것이다.”

이른바 소신파들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도 다수 의원에게 ‘반면교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금태섭 전 의원은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당론과 달리 본인 소신대로 기권 표결을 했다가 ‘당론 위배’로 징계를 받았다. 결국 금 전 의원은 4·15 총선에서 공천 탈락한 뒤 야인으로 돌아갔다.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1위 이낙연 의원에게 크게 뒤진 2위에 그쳤다. 그는 전대 기간 당 극렬 지지층으로부터 ‘친일 매국노의 매부’라는 공격을 받았다. / 사진:연합뉴스
금 의원과 함께 이른바 ‘조금박해(조응천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박용진 의원, 김해영 전 의원)’로 불렸던 나머지 인사들도 소신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곤 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을 지낸 박 의원은 9월 16일 라디오에 출연해서 “군대에 다녀온 평범한 청년들에게도, 그들이 갖는 허탈함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추미애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이후 그는 문재인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인 ‘대깨문(머리가 깨져도 문재인)’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김민준 소장은 “금 전 의원 등의 공천 탈락과 함께 지난해 총선에서 청와대 출신들의 대거 약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대통령의 공천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 커졌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채진원 교수는 “사실상 현재의 여당은 청와대 경호실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21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초선 의원은 15명에 이른다. 고민정 전 대변인,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등 초선 15명 모두 친노·친문 인사로 분류된다. 그만큼 청와대의 여당에 대한 장악력은 더 강해졌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상의 여당인 열린민주당의 최강욱 초선 의원(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민주당 한병도(전 청와대 정무수석)·진성준(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재선 의원 등과 과거 노무현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이형석 초선 의원(전 청와대 비서실 비서관) 등을 더하면 노무현·문재인 청와대 출신 현역 의원은 20명이 훌쩍 넘는다.

민주당 출신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난 총선을 통해 청와대의 ‘힘’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라며 “내년 3월 민주당 전당대회,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내후년 지방선거가 줄줄이 예정된 만큼 의원들 또는 예비후보들의 청와대 ‘심기(心氣) 경호’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비문(非文)으로 분류되는 설훈·송영길 의원의 경우 내년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들에게 찍히면 죽는다”


▎2007년 1월 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안’ 대국민담화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 내 운동권 출신들의 선민의식이 도가 지나치다. 설령 운동권 출신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닮아야 살아남는다는 기류 역시 강하다. 그러니 오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김철근 국민의힘 서울 강서병 당협위원장이 지켜본 민주당의 분위기다. 고(故) 박상천 전 민주당 의원 보좌관 등으로 오랫동안 민주당에 몸담았던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른 86 운동권 출신이다.

김민준 소장의 진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민주당 헤게모니는 문파(文派)들이 쥐고 있는데 그들에게 찍히는 순간 중진 의원일지라도 살아남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 역시 “비문으로 분류되던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 이종걸 전 5선 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공천받지 못한 게 좋은 사례”라고 거들었다.

2011년,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던 ‘혁신과 통합(혁통)’은 손학규 대표의 민주당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손쉽게 가입하는 정당을 만들자며 ▷시민주도 정당 ▷개방형 정당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기반 정당 세 가지를 제안했다. 당시 손 대표는 차기 당권을 노리던 박지원 의원 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제의를 받아들였고, 당 헤게모니는 순식간에 ‘혁통’으로 넘어갔다.

양측의 통합 직후 치러진 2012년 1·15 전당대회 결과 한명숙·문성근·박영선·박지원·이인영·김부겸 순으로 표를 얻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당대표, 나머지 5인은 최고위원이 됐다. ‘원조 친노’ 문성근은 같은 해 4월 19대 총선 패배를 책임지고 한 전 대표가 물러나자,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다. 1·15 전대 이후 대부분의 민주당 주요 선거에서 친노·친문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지난 8월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을 선출하는 전당대회 때 문파들 사이에서는 ‘118 운동’이 벌어졌다. 당대표는 기호 1번 이낙연 후보, 최고위원은 기호 1번 김종민 후보와 8번 신동민 후보를 찍자는 것이었다. 신 후보는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문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덕분에 최고위원에 선출될 수 있었다.

김철근 위원장은 “문파·대깨문들이 당을 장악하면서 의원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당내 민주주의마저 심각하게 퇴보하고 있다”면서 “총선 전에 입각(入閣)했다고는 하지만 비문이라 할 추미애·박영선 전 의원도 결과적으로는 공천을 받지 못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수도권 재선 의원은 “한마디로 문파들이나 대깨문들에게 찍히면 정치적으로 끝이라는 압박감이 작용하는 것”이라면서 “청와대에 문제가 생기면 의원들이 앞다퉈 실드에 나서는 것도 대깨문·문파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4년 차 징크스 피할 수 있을까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2일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오종택 기자
여권 인사들의 과도한 ‘청와대 비호’의 근본적인 이유가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율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5%를 넘어 때론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 4년 차 지지율과 비교하면 확연히 높다. 추미애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 등 악재가 잇따랐지만, 대통령 지지율에 큰 변화는 없었다. 여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레임덕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0월 8~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49%, 부정 평가는 44%로 집계됐다. 경향신문·한국리서치 조사(10월 3~4일)에서도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50%, 부정 평가는 45%였다. 물론 리얼미터의 경우 문 대통령의 부정평가가 9월 이래 6주 연속 50%대를 넘어서고 있다.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더 높다는 말이다. 하지만 긍정평가 역시 40%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등 지지세도 나름 견조함을 보여준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콘크리트’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40대로 파악된다. 이들은 대체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거부감이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40% 콘크리트 지지율이 있다. 그 지지율 상당 부분이 (문 대통령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율은 문 정부 임기 끝까지 지속될까. 문재인 대통령은 5년 단임제 시행 이후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기록될까.

김철근 위원장은 “콘크리트라고 믿었던 모래성이 언젠가는 허물어질 것이고, 그럴 경우 여권 인사들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진원 교수도 “지지율이라는 건 참 허망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렸던 것도 바로 얼마 전이었다”고 말했다.

8월 1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39%로 전주와 비교해 5%p 떨어졌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잇단 부동산 정책 실패, 검찰개혁 피로감 등이 꼽혔다.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지율 문제를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극렬 지지층에 시야가 가린 정부여당이 국민 전체 여론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콘크리트 지지층을 맹신하다 국민 다수의 외면을 받았다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진중권 전 교수는 “과거에 새누리당이 친박 공천으로 망했다. (민주당이) 친문 일색으로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역대 정부가 겪었던 ‘4년 차 징크스’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노태우 정부 4년 차이던 1991년에는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이 터지면서 민심이 돌아섰다. 검찰 수사 결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청와대 관계자, 국회의원 등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밝혀졌다. 김영삼 정부 때는 집권 4년 차 때 백두 비리 사건,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뇌물 수수 등 권력형 비리 사건이 잇따랐다.

지지율에 콘크리트는 없다!


▎2017년 4월 성남 야탑역에서 진행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는 유권자들.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의 세 아들이 비리에 연루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세간에서는 ‘3홍 게이트’ ‘홍삼 트리오’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바다 이야기’ 스캔들에 정권 실세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번지면서 레임덕이 가속화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4년 차 때 측근·친인척들이 비리에 연관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했다. 꾸준히 30%대를 유지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6년 10월 10%로 떨어지더니 한 달 후인 11월에는 한 자릿 수로 추락했다.

현 정권의 경우 최근 불거진 라임자산운용와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사건이 정권 말 뇌관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주장이 제기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라임자산운용 및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미진할 경우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실련은 10월 13일 입장문을 통해 “라임은 1조6000억원, 옵티머스는 5000억원가량 금융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야기한 펀드 사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수개월 전부터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에 소극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라임펀드 재판 과정에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통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옵티머스 펀드 관련 내부문건에 정·관계 인사 20여 명의 실명이 등장하고, 청와대 전 행정관의 차명 주식 보유 의혹이 제기됐다.

김민준 소장은 “지금 같아서는 레임덕 같은 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최근 불거진 사모펀드 사태 등이 향후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채진원 교수는 “현행 대통령제하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측근·친인척 등의 비리가 생기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당장은 대통령 지지율이 콘크리트처럼 비칠 수도 있기에 여권 인사들의 ‘청와대 엄호’ 경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 같은 기류가 돌변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있다. 다시 김철근 위원장의 말이다.

“만일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차기 대선주자들부터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과 보폭을 맞추고 있지만 어느 순간 각을 세울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민주당 의원들 역시 청와대에 등을 돌릴 것이다. 지지율에 콘크리트란 있을 수 없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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