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현장취재] 안산은 지금 ‘조두순 포비아’ 

잊고 살았던 12년 전 공포의 귀환 

12월 13일 출소하는 조두순, 피해자 있는 안산 정착 의사 밝혀
재범 가능성 높은 성범죄자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견해 고개


▎조두순이 피해자가 살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에 정착하길 희망한다는 소식에 안산 지역사회가 들썩인다.
조두순이 출소한다. 오는 12월 13일 경북 포항교도소를 나서는 조두순의 행선지는 배우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안산시다. 안산시민들은 12년 전 8세 여아를 상대로 저지른 조두순의 끔찍한 성범죄를 떠올리며 공포에 휩싸여 있다.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특구지역의 상인들은 조두순의 안산 정착이 행여 지역 상권에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가 또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움에 떤다. 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가슴이 갑갑해진다는 시민들도 다수다. 피해자와 비슷한 또래인 스무 살 딸을 둔 A(47)씨는 “조두순이 출소해 다시 범행을 저지르면 그 범죄는 조두순을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라며 “딸 가진 엄마 입장에서 조두순은 공포 그 자체”라고 말했다. 동남아시아 음식점을 운영하는 B(59)씨도 “출소하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라는 법은 없다지만, 다시 안산으로 오면 피해자 가족은 어떡하느냐”며 “고향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무도 모르게 참회하면서 사는 게 국민과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만기 출소하는 조두순은 7년간 전자발찌 형태의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해야 한다. 법무부는 7년간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해 일대일로 관리한다. 조두순은 이동 동선과 생활계획을 보호관찰관에게 주 단위로 보고해야 한다. 보호관찰관은 불시에 출장을 나가 조두순의 생활계획 준수 여부를 점검한다. 사법당국으로서는 법에 따라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하는 셈이다. 형기를 마친 사람을 계속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출소한 조두순의 얼굴과 실제 거주지는 누구나 본인 확인을 거치면 성범죄자의 신상을 조회할 수 있는 ‘성범죄자 알림e’에서 열람할 수 있다. 그가 사는 집의 번지수까지 나온다. 이는 성범죄 예방과 재발 방지 취지의 제도지만, 되레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양면성도 있다.

하필 다시 안산이다. 조두순이 안산보호관찰소 심리상담사들과 7월 면담에서 안산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지난 9월 전해졌다. 흉악한 아동성범죄자가 귀환한다는 소식에 지역사회는 발칵 뒤집어졌고, 정치권과 지방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결국 피해자 가족은 안산을 떠나기로 했다. 피해자 아버지는 “조두순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가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간 전학을 가면 혹시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피해자도 가족 이사 계획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산시는 시대로 전전긍긍한다. 먼저 안산시는 쏟아지는 조두순의 안산 귀환 보도에 ‘유감’을 표했다. 조두순 출소와 관련한 무분별한 보도가 조두순으로부터 극심한 피해를 본 피해자와 가족뿐 아니라 74만여 안산시민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하는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더욱이 안산시는 범죄 안전 지수 평가에서 수년째 체면을 구기는 처지다.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가 평가한 범죄 안전 지수에서 최하등급인 ‘5등급’을 받았다. 5년 연속 낙제점이다.

국회는 국회대로 분주하다. 국회는 10월 1일 총 14개에 이르는 조두순 출소 대비 법률안을 내놨다. 21대 국회 임기 시작 이후 첫 조두순 관련 법안은 지난 6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일부개정안이다. 현행법상 법원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성명, 나이, 성범죄 요지 등의 정보를 피고인이 거주하는 읍·면·동의 아동·청소년 친권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있는 가구, 어린이집·유치원·학교·지역아동센터·청소년수련시설의 장 등에게 알리도록 하는 고지 명령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조두순 귀환에 발등에 불 떨어진 지자체와 정치권


▎윤화섭 안산시장이 10월 12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성폭력사건 가해자 석방 관련 피해예방 대책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오종택 기자
여성가족부 장관은 친권자 등에게 우편으로 이 사실을 알려주고 주민자치센터 게시판에 30일간 게시하는 방법으로 고지 명령을 집행한다. 그런데 현행법상 고지 대상에 여성 1인 단독가구는 빠져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인물이 거주하는 읍·면·동이 아닌 다른 읍·면·동은 거리가 가까워도 고지 정보를 받지 못한다는 맹점도 있다. 이 의원은 일정 반경 이내에 있는 인접한 아동·청소년 가구 등에도 알리도록 하고, 여성 1인 단독가구도 포함해 성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며 개정안을 냈다.

지난달 10일 조두순의 안산 정착이 알려지기 전까지 양기대·김영호·전주혜·김민기 의원이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이후 김경협·고영인·김병욱·김정재·강훈식·정춘숙·양금희 의원이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전자장치부착법) 일부개정안, 보호수용법안,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일부개정안 등을 내놨다.

이 중 국민적 관심이 쏠린 법안은 보호수용법 제정안이다. 윤화섭 안산시장이 9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일명 조두순 격리법-보호수용법 제정을 강력히 청원한다’는 글을 게시하면서 이목을 끌었던 내용이다. 이 청원의 참여 인원은 10월 13일 오후 10시 기준 9만5700명을 넘어섰다.

윤 시장은 “조두순 사건 피해자 가족은 물론 많은 국민이 조두순이 출소한 후 격리되길 희망한다. 조두순의 끔찍한 범행을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조두순은 그 이름 석 자만으로 피해자와 국민에게 새로운 고통을 더하고 있다”고 적었다. 특히 윤 시장은 피해자와 안산시민, 국민이 조두순 출소 뒤 일정 기간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는 “안산시민을 대표해 보호수용법 제정을 청원한다”면서 “이중처벌과 인권 침해에 대한 논란이 없도록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청원 배경을 밝혔다.

국회에서는 김병욱 의원과 양금희 의원이 보호수용 관련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재범을 막는 처분인 위치추적 전자장치만으로 재범 예방에 한계가 있으므로 형기 종료 후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사람을 일정 기간 수용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소리만 요란하다. 국회는 아직까지 조두순 출소 관련 법안을 단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조두순의 출소일인 2020년 12월 13일은 12년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입법기관이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2년 전 그날, 검찰 ‘의문의 1패’


▎최근 1년간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조두순 관련 국민청원이 27건 올라왔다.
검찰도 할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조두순 공포가 12년 만에 이렇게 고개를 든 데에는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재판에서 검찰은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조두순은 형량이 지나치다며 항소한 반면, 검찰은 항소를 하지 않아 1심의 형량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부는 사건 범행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이 피고인의 것으로 밝혀지고, 피해자가 동종범죄 전력자 8명 사진 중 명확히 피고인을 지목하자 범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조두순의 부인 진술도 유죄 판결을 뒷받침했다. 그의 부인은 사건 당일인 2008년 12월 11일 범행 시각 이후인 오전 9시 이후에 조두순이 귀가했다고 진술했다. 조두순의 집에서 압수한 운동화와 양말에서 피해자의 혈흔도 발견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와 가족은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참담하고도 심각한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해자가 제기한 배상신청은 배상명령을 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고 손해배상금 합의도 없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대신 피해자와 어머니가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잘못된 대응으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1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찰이 1심의 형량에 불복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당시 검찰이 패착을 저질렀다는 여론이 일었다. 적용한 법조문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검찰은 당시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옛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형법상 강간상해죄로 조두순을 기소했다. 공소장을 변경해 바로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1심 판결 후 열린 2009년 국정감사에서 항소를 포기한 검사를 징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검 감찰위원회는 조두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에 대해 주의조치(경징계)를 권고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결국 피고인이 상소한 사건의 경우 원심판결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는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에 따라 조두순은 2009년 9월 24일 대법원 상고심에서까지 형량 변화 없이 징역 12년형을 확정받았다. 검찰이 좀 더 섬세하게 사건을 다뤘다면, 피해자는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좀 더 가질 수 있었을 터다.

이 사건 이후 아동성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지긴 했다. 2010년 형법을 개정해 유기징역형 상한을 기존 15년에서 30년으로 높였다. 유기형의 상한은 가중하면 50년까지 가능하다. 성폭력 특례법을 강화해 성범죄에는 주취 감경 규정을 적용할 수 없게 됐다. 술을 먹고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봐주는 판결이 조두순 사건 이후에서야 사라졌다.

재범 가능성 높은 성범죄자 어떻게 관리하나


조두순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017년 12월 재심을 통해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61만5000여 명이 동의했다. 답변 기준선인 20만 명을 훌쩍 넘겨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직접 답변했다. 조 당시 수석은 “재심은 유죄 선고를 받은 범죄자가 알고 보니 무죄이거나, 죄가 가볍다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경우에 처벌받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만 청구할 수 있다”며 “무기징역으로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재심 청구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여론만으로는 피해자와 안산 주민들의 공포를 달랠 방법이 전무한 게 현실이다.

어디 조두순뿐일까. 알려지지 않은 아동 성범죄 사건은 경기도에서만 지난 3년(2017~2019)간 988건 발생했다. 재범의 위험성과 관계없이 확정판결을 받은 흉악범은 언젠가 교도소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돼 있다. 물론 출소한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고자 교육이나 보호를 하는 보안처분이 있긴 하다. 수형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이중처벌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보안처분이 유일한 방어장치다.

하지만 재범 위험성이 농후한 출소자를 보안처분에 의지해 사회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학계의 시각도 있다. 성범죄는 정신질환과도 연결돼 있다. 제도를 조금만 손본다면 치료 목적의 보호수용으로 출소자의 재사회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재범 위험을 줄이고 성범죄자와 함께 살아야 할 지역 주민들의 불안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형기 만기 1년을 전후로 정신적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확인해 보호수용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도 있다. 보호수용시설을 일반적인 교정시설이 아닌 치료시설로 할 경우 이중처벌과 인권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논리도 동원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며 “치료하는 것을 두고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없다. 보호수용은 목적, 시설, 처우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이중처벌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12년 형벌을 마치는 것과 정신적 문제가 치유됐는지 여부는 별개 문제”라며 “형기를 마쳤을 때 질환이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있다면 치료되도록 국가가 관리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죗값을 치른 출소자의 헌법적 권리와 안전한 삶을 영위할 시민의 기본권이 이번 조두순 사건을 통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한국 사회는 어떤 묘책을 도출해낼 것인가.

- 손성배 경인일보 기자 son@kyeongin.com

202011호 (2020.10.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