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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젊은 작가 列傳’(12)] 소설집 '여름의 빌라' 6쇄 찍은 백수린 

“언어로 그림 그리듯 쓴다 평양냉면 같다는 내 소설” 

자폐적이고 우울한 여성 주로 그리다, 최근 두 작품서 밝아져
적나라한 장면 묘사 지양, 존재의 미세한 기척 드러내고 싶어


▎소설가 백수린의 소설은 무공해 청정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인다.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서는 한결 여유 있어지고 유쾌해진 느낌이다. 그 덕에 독자 반응이 나쁘지 않다. 6쇄를 찍었다. / 사진:임안나, 장소 제공=갤러리 카페 연우재
시나 소설, 영화예술은 인생론으로 가득 차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이런 말을 남긴 건 위대한 영화인 찰리 채플린(1889~1977)이다. 시인 김종삼(1921~1984)은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노래했다. 얼마나 빛나는 통찰인가. 한 사람의 평생을 넘어, 산다는 것의 변함없는 철리(哲理)를 한 문장으로 꿰뚫어 낸다. 그의 대표작 ‘어부’에서다.

인생론이라면 1982년생 소설가 백수린도 할 말이 많아 보인다. 가령 그는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타인 앞에서는 진부하게 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것들은 기어코 말할 수밖에 없는데, 어쩌면 삶이란 그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을 기어코 말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14년 그의 첫 소설집 [폴링 인 폴]의 표제작 ‘폴링 인 폴’은, 이런 인생론에 의지해 부끄럽게 털어놓은 짝사랑 이야기다.

프랑스 유학 불문학 박사, 4개 학교 강의 나가


▎왼쪽부터 2014년 [폴링 인 폴] 2016년 [참담한 빛] 2018년 번역서 [문맹] 2019년 [친애하고, 친애하는] 2019년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2020년 [여름의 빌라] 2020년 번역서 [여름비]
백수린의 인생론을 좀 더 경청할 수도 있겠지만 방향을 바꿔보자. 나한테는 절실, 타인에게는 진부, 이 부분으로 말이다. 백수린은 2011년 등단했다. 지금까지 소설집을 모두 다섯권 냈다. 그 와중에 서강대와 프랑스 리옹대 합동과정 박사 학위도 땄다. 물론 불문학 박사다. 누구보다 열심히 분투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만 소설가로서 존재감이 뚜렷해진 건 아무래도 2019년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흐릿한 이미지였다는 얘기다. 나쁘게 얘기하면 ‘타인에게는 진부’, 즉 그의 소설이 어딘가 익숙하게 보였거나, 온정적으로 얘기하면 무공해 청정 이미지지만 어딘가 심심하게 느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월간중앙 젊은 작가 인터뷰를 위해 백수린의 소설들을 비로소 주의 깊게 읽으면서 필자는 기존에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인터뷰에서 백수린이 말 한 것처럼, 잔잔한 듯 심심해 보이는 그의 소설은 굉장한 평지풍파,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내장한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인생론에 더해 곱씹을수록 아름다운 그의 소설 문장도 얘기하자. 그의 소설 미덕으로 말이다. 가령 최근작인 2020년 소설집 [여름의 빌라]의 마지막에 실린 매혹적인 작품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연두색 나뭇잎 사이로 너울대던 초여름의 빛.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밀어를 주고받듯 서로 속삭였고, 순백의 아카시아 꽃송이들이 흔들릴 때마다 사방은 향기로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달콤한 향에 혼곤히 취해 있다 보면 오후는 더없이 느리게 흘렀고 나는 쉽게 무한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254쪽)

가능하면 사적인 체취가 밴 공간에서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더니 작가는 서울 성북동 한옥을 개량한 갤러리 카페 연우재가 좋겠다고 했다. 백수린이 자주 작업하는 곳이다. 사진보다 갸름한 얼굴 모양, 키가 훤칠했다. 백수린은 이번 학기에 무려 네 개 학교에 출강한다고 했다. 소설만으로는 자립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강의하랴 소설 쓰랴 바쁘겠다.

“네 학교에서 다섯 과목을 가르친다. 동국대와 경희사이버대에서는 소설창작을, 서강대와 숭실대에서는 불문학을 가르친다.”

불문과 교수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나?

“그럴 일은 없다. 교수가 되려면 논문을 써야 하는데 박사학위를 딴 이후 논문을 한 편도 안 썼다. 정작 쓰고 싶은 건 논문보다 소설인데 소설 쓸 시간도 부족하다.”

불문학 전공 실력을 살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여름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같은 소설을 번역했다. 번역 작업이 창작에도 어떤 영향을 끼치나?

“번역을 하려면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번역하려는 작가가 어떻게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이동하는지, 어떻게 장면을 만들고 넘어가는지에 대한 공부가 된다. 문장 차원에서도 어떤 호흡이나 리듬으로 글을 쓰는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아, 나는 앞으로 이렇게 쓰면 좋겠다’거나 ‘내 작품이 번역된다면 어떻게 옮겨질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효용만을 바라고 번역하는 건 아닐 텐데, 뭔가 내가 아는 아름다운 것을 독자와 나누고 싶은 건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그 작품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나 말고 누가 소개를 해도 되고 나보다 더 잘 소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뭔가 협업해서 그 작품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너무 매력적이다. 뒤라스나 크리스토프나 모두 돌아가신 분들인데 한참 차이 나는 내가 협업할 기회가 많지는 않지 않나.”

파리가 아니라 리옹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소설이 그렇게 쓰고 싶었다면 굳이 유학을 해야 했나?

“2011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다음 박사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등단하고 보니 소설이 뭔지 모르겠고 겁도 났다. 소설을 잘 쓸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유학 시절의 흔적으로 짐작되는 프랑스가 배경인 작품들이 있다. 이국 생활이 아무래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건가?

“그런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실은 유학과 무관하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고민을 했었다. 가령 내가 뭔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많이 했다. 그런 맥락 속에서 환경적인 영향을 받아서 지금과 같은 소설들을 쓰게 된 것 같다.”

번역 통해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작품에 참여

그런 경험은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 소설 쓰기가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한 건가?

“내 글쓰기의 처음 출발은 그랬던 것 같다. 소설집 [폴링 인폴]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 내게 있는 어두움을 견디기가 힘든데 그런 괴로움을 덜어낼 다른 방법을 모르겠으니까 글쓰기를 통해 견디려고 했었고 그 결과물이 소설의 형태로 나타나 소설가가 된 것 같다. 처음 출발은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소설가로 살면서 조금씩 그것만으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글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최근작들인 [친애하고, 친애하는]과 [여름의 빌라]는 이전 소설들과 비교하면 좀 더 재미있달까, 낙천적이 됐달까, 그런 느낌인데.

“나도 약간 그런 느낌으로 그 소설들을 썼다. [참담한 빛](2016)까지는 내가 느끼는 고독이나 외로움·결핍·상실,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게 내 작업의 결이었던 것 같은데, [참담한 빛]을 쓰고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쓰던 사이에 박사 논문을 한참 썼고, 사회적으로는 문단 내 성폭력·미투,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럴 때 ‘아, 내가 스스로의 어둠을 끊으려고 소설책을 두 권 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자폐적이면서 우울하고 자기 안에 침잠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계속해서 반복해 쓰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약간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에서 여성 주인공들을 재현할 때 오랫동안 그렇게 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여성 작가로서 그것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 작가로서 계속 이런 식의 인물을 내가 좋다고 계속해서 그려내는 게 유의미한가’ 고민하게 된 거다.”

지금까지 낸 소설 중에 [여름의 빌라]가 가장 반응이 좋은 것 같다. 교보문고 소설 분야 19위에 올라 있는데.

“6쇄 찍었다. 나는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신인이었을 때는 딱 신인만큼의 인지도밖에 없었다. 신인 때부터 굉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들도 있지 않나. 두 번째 책을 낼 때는 두 번째 책을 내는 작가만큼의 인지도가 생겼던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쌓여가는 중이어서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

갈수록 반응이 좋아져 운이 좋다는 얘기인가?

“결국 그 얘기와도 연결되는 거지만 내 성격을 봤을 때 처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아마 절필했을 것 같다. 부담이 커서. 그런데 나에게 근육이 생기는 만큼의 인지도가 생기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어서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소설 쓰기가 점점 익숙해지지는 않나?

“매번 힘들고, 익숙해지지 않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워도 마감은 한다’ 그런 배짱은 좀 생긴 것 같다. 예전에는 마감을 못하고 펑크를 낼까봐 두려움이 굉장히 커서 괴로웠는데 이제는 ‘괴로워도 우여곡절 끝에 마감은 하게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좀 생겼다.”

괴로워도 마감할 수 있다는 배짱 생겨


▎백수린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소설이 잘 써진다고 했다. 집에서 작업을 할 때도 TV를 켜놓고 작업할 정도다. / 사진:임안나
이렇게 얘기해놓고 또 마감이 닥치면 괴로워하는 거 아닌가?

“그건 당연히 그렇다. 계간지 [문학동네] 내년 봄호부터 장편 연재를 하는데 그걸 펑크낼까봐 오늘도 계속 울다가 이 자리에 나온 거다.”

'여름의 빌라'에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나?

“코로나 때문에 독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온라인 피드백 가운데 [여름의 빌라]를 통해 나라는 작가를 알게 됐다는 분들이 많다. 그런 게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감정들을 알게 돼서 좋았다는 분도 있다. 내 소설을 읽으면서 뭔가 감정의 고양 같은 것들을 처음으로 느껴봤다는 분도 있었다. 이런 피드백은 기쁠 수밖에 없다.”

무척 뿌듯할 것 같다.

“좋은 것들만 소개한 거다. 나쁜 것도 있다. 내 소설이 심심하다는 얘기를, 안 좋게 읽은 분들이 하는 경우가 있다. 굉장히 재미있다고 해서 읽었는데 심심했다, 이런 반응을 더러 접하는데, 비슷하면서도 좋게 느낀 반응 가운데 백수린의 소설은 평양냉면 같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평양냉면을 내가 좋아하니까 이건 칭찬이라고 받아들였다.”

심심한데 매력적이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평가에 동의하나?

“나는 내 소설이 심심한지 모르겠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쓰는데 심심하다고 한다.”

소설집들의 추천사를 보면 우아하다는 평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나도 그게 의문인데 [여름의 빌라] 추천사에서 박연준 시인은 ‘백수린의 문장은 우아하고 침착하다’고 했고, 김금희 작가도 ‘우아하게’라는 표현을 썼다. 김연수 작가도 [참담한 빛] 추천사에서 우아하다는 말을 썼다. 왜 자꾸 우아하다고 할까 생각해봤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뭔가 품위 있고 기품 있다는 얘기 아니겠나. 수면 아래서는 마구 갈퀴질을 하지만 수면 위에서는 유유하게 떠가는 오리처럼 말이다. 독하고 극단적인 소설이 세상에 얼마나 많나?

“내 소설에도 가령 집단폭행 장면 같은 게 나오기는 한다. [여름의 빌라]에 실린 ‘고요한 사건’에 마을 재개발을 반대하는 고양이 아저씨를 동네 사람들이 집단 폭행한다. 그런데 아마 그걸 그리는 방식이 적나라하지 않아서 우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실은 적나라하게 그리고 싶지 않은 거 아닌가?

“적나라한 소설을 독자로서 좋아하고 그렇게 쓰는 작가들을 좋아하는데, 소설 쓸 때 내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은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하다면 표현을 최소한으로만 하고 넘어가고 싶다. 극적인 사건이나 끔찍한 일들,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나보다 더 잘 다루는 작가들이 있다. 내 관심사는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그 안에서 발생하는 균열이라든지 기척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다. 살인이나 성폭력 사건 같은 것들을 날것 그대로 적나라하게 써버리면 정작 내가 그리고 싶은, 너무나 미세하고 미미한 세계에 사람들의 눈길이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그릴 수가 없다.”

안 풀리던 장면 표현, 풀릴 때 너무 짜릿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풍경 묘사가 많은 편인데, 아름다운 문장들이 이어져 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묘사에 공을 들이는 편이다. 어떤 사람의 슬픈 마음을 그릴 때 ‘누구누구는 슬프다’ 이렇게 쓸 수는 없으니까 슬픈 정서를 보여주는 좋은 장치가 풍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 묘사를 통해 심리 변화나 관계 변화를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그런 작업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처럼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쓴다. 단어들을 쌓아서 그걸로 어떤 심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즐거움을 준다.”

그런 문장들이 쉽게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이다. 성공적인지는 모르겠다. 항상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세상에 내보이는 것 같다.”

마음에 드는 표현을 찾지 못해 막히면 어떻게 해결하나?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본다. 좀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산책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러면서 주변을 관찰하고 메모도 자주 한다. 오전보다는 밤늦게 새벽까지 쓴다. 아침에 깨자마자 쓴다는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너무 신기하다. 발동이 늦게 걸리는 편인 대신 오래 앉아 있는 걸 잘하는 편이다. 몇 시간이고 일어나지 않고 앉아 있다.”

표현이나 문장을 고민하다가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나?

“문장이나 표현을 찾을 때 그런 경우는 없었던 것 같고, 장면을 만들 때 그럴 때가 있다. 소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들을 하나씩 넣는 편인데, ‘아 이제 됐다’ 이런 느낌이 딸각,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아, 이 소설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느낌이 안 오면 소설 완성 못한다.”

사례를 든다면?

“‘여름의 빌라’ 뒷부분에, 땅바닥에 집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던 프랑스 여자아이 레오니가 캄보디아 소년이 다가오자 금을 다시 그어 집 안으로 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생각해내지 못해서 소설을 90%까지 써놓고 펑크내려고 했었다. 잡지 편집자에게 소설 마무리 못하겠다는 사과 메일까지 써놓고 잠을 자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무척 기뻤겠다.

“그런 경험 때문에 소설 쓰는 것 같다. 그런 장면을 발견할 때 기쁨이 너무 크고 너무 짜릿하다.”

10년 후 어떤 작가가 돼 있기를 바라나.

“최소한 장편 하나는 있었으면 좋겠고 그때도 꾸준히 글을 쓰고, 독자들이 기다려주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이 업계가 등단도 어렵지만 등단하고 나서 살아남는 것도, 계속 쓰는 것도 어려워서….”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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