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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허울뿐인 분권’ 자치경찰제 시작 전부터 파열음 

조직 신설도 없이 지방 업무 겸직하라니 

지난 8월 발의된 법안, 조직 일원화 모델로 급선회
“현재 방안대로면 오히려 국가경찰 권력 집중 부를 것”


▎당·정·청이 자치경찰제 방안을 발표한 7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정문에서 경찰이 근무를 서고 있다. / 사진:뉴시스
제주도에는 ‘제주지방경찰청’ 소속 국가직 경찰이 있고, ‘제주특별자치도’ 소속 지방직 자치경찰이 있다. 국가직 경찰은 강력 범죄 같은 수사 업무를 맡고, 자치경찰은 생활치안 업무를 담당한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관련법을 입법할 때 제주자치경찰도 함께 도입됐다. 중앙에 쏠린 경찰권을 지방으로 분산하려는 목적에서 참여정부가 그린 그림이다.

이후 자치경찰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한 논의들을 사회 각계에서 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한층 적극적이다. 지난해 2월 당·정·청 협의를 통해 올해까지 자치경찰제를 입법하고 내년부터 서울·세종 등 5개 시도에서 시범 실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런데 지난 8월 4일 느닷없이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법·경찰공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하 김영배 안)을 대표 발의했다. 형식적으론 의원발의지만, 청와대 의중이 담긴 법률안으로 알려져 있다. 11월 16일부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사에 들어간다. 계획대로 올 연말까지 본회의를 통과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소위에 상정된 김영배 안은 기존에 논의하던 자치경찰제와 내용이 전혀 다르다. 김영배 안은 현 경찰 인력을 쪼개 국가경찰 사무와 자치경찰 사무를 맡기는 일원화 모델이다. 한 조직 내에서 국가 사무와 자치사무 인력이 나뉘는 것이다. 행정비용 부담은 덜지만, 지휘체계 혼선이나 업무 과중 문제가 불거지기 쉽다. 기존에 논의하던 이원화 모델은 별도 자치경찰 조직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제주도 자치경찰도 이원화 모델이다.

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경찰 내 노조 격인 전국의 경찰직장협의회가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를 결성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갖는 등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당장 내년부터 서둘러 시행할 때 벌어질 혼란도 문제지만, 일원화 모델이 타당한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시·도는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다.

위원회 구성, 지자체 몫 과반 안 돼


▎전국 경찰직장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지난 9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자치경찰법안 폐기와 재논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자치경찰은 경찰의 지방자치다. 지방자치란 자치 사무를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법령의 범위 안에서 주민과 그 대표 기관(지방자체단체)이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일단 결정하면,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진다. 자치경찰이 지방분권의 일환이라면, 그 구성과 의사결정의 정당성도 지역 주민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김영배 안이 그리는 자치경찰은 사실상 ‘타치(他治)’에 가깝다. 자치경찰 사무를 집행하는 시·도 경찰청장은 경찰청장이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공무원이다. 국가경찰이 자치 업무를 수행하는 셈이다. 임명할 때 시·도 자치경찰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을 듣지만, 주민자치와는 무관하다.

또 시·도 경찰청장은 자치경찰 사무에 관해선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감독을 받지만, 국가경찰 사무에 대해서는 경찰청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수사에 대해서는 국가 수사본부장과 경찰청장의 지휘·감독을 받게 돼 있다. 결국 시·도 경찰청장 업무 대부분은 국가 사무다. 인사권자인 경찰청장과 대통령의 영향 하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자치경찰 사무에 대해서도 주민의 요구보다 중앙의 의중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의 보조기관으로 전락한다.

이렇게 ‘변형된 국가경찰’을 자치경찰이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일까? 김 의원은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에서 찾는 듯하다.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는 자치경찰 사무 관련 ▷집행기관인 시·도 경찰청장 지휘·감독 ▷인사·예산·장비·통신 등에 관한 주요정책 및 운영 지원 ▷담당 공무원의 임용, 평가 및 인사위원회 운영 등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다.

핵심은 위원회(총 7인)의 인적 구성이다. ▷시·도의회가 추천하는 2인 ▷국가경찰위원회가 추천하는 2인 ▷위원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2인 ▷시·도지사가 지명하는 1인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중 주민 대의기구 몫은 과반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시·도의회가 추천하는 2인도 실질적으로는 중앙당의 영향에서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해당 지역 주민을 대표해서, 주민을 위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자치기관이라기보단 외부 추천에 바탕을 둔 외인부대에 가깝다.

위원회 활동을 주민들이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위원회는 편제상 시·도지사 소속이지만, 시·도지사로부터 독립해 직무를 수행한다. 시·도지사는 위원회 의결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정도다. 더욱이 국가경찰위원회가 위원 2인을 추천하는 것은 국가의 과도한 개입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 지자체가 과연 자치경찰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김영배 안에서 규정하는 자치경찰 사무는 네 가지다. ▷주민의 생활안전을 보장하는 활동 ▷지역 내 교통안전과 소통·질서에 관한 활동 ▷공공시설 등에 대한 경비 ▷학교폭력·성폭력·교통·경범죄 등 생활치안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다. 모두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돼 있다. 자치 선진국 대부분은 기초 지자체 고유 사무로 이미 수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다른 나라에서 기초 지자체 규모는 평균 수천 명에서 1만 명 정도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 기초 지자체는 수십 배 더 크다. 실제로 자치경찰 사무를 집행하는 단위인 시·도는 평균 300만 명에 이른다. 웬만한 나라에서는 주(州) 정부 규모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시·도 단위에는 생활치안 문제만 담당하게 하는 건 대학을 졸업한 어른에게 유치원생이 하는 일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치안 문제에서조차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 보자면, 광역 지자체도 일상과 거리가 먼 거대 행정단위다. 일상적인 생활치안마저 국가나 광역 단위에 맡기면 주민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시민이 될 기회를 갖지 못한다. 행정이나 비용의 효율성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치 선진국에서 보통 기초 지자체를 자치경찰의 집행 단위로 설정하는 이유다.

기존 경찰 조직논리에서 못 벗어나


▎지난해 2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 논의를 위한 당·정·청 협의회가 열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치경찰은 검·경의 수사권 조정 일환으로 다뤄졌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간의 분권을 통해 국가경찰의 비대화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검찰 수사권의 경찰 이전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분권화란 지방으로 이전된 사무의 종류가 무엇인지, 그리고 중앙정부의 간섭이 얼마나 배제되는지를 통해 판단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김영배 안에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간 분권은 어느 정도로 이뤄졌을까?

먼저 자치경찰 사무를 경찰법에 규정함으로써 외관상 경찰 사무의 이양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무 대부분은 생활치안과 관련한 것이다. 자치경찰의 수사권도 생활치안 관련 범죄에만 해당한다. 국가경찰 사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언저리에 그친다. 또 자치경찰 사무를 실제로 집행하는 기관은 국가기관인 시·도 경찰청이다. 지자체 산하에 별도 집행기관이 없다. 시·도 경찰청장은 국가 경찰청장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니 국가경찰의 지방분권은 외관만 있을 뿐, 실체는 없다.

이 밖에 자치경찰제는 자치경찰 사무와 관련된 지방 사무를 지자체와 유기적으로 연계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김영배 안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역시 경찰공무원이 국가직으로 남기 때문이다. 지자체 공무원이 수행하는 지방 사무와 연계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조직 생리상 자치경찰 사무를 맡은 경찰조차 승진에 도움이 되는 국가경찰 부서나 수사 부서로 자리를 옮기려고 힘쓸 수밖에 없다. 이점을 더 법리적으로 따져보면, 자치경찰을 국가직으로 두는 것은 지자체의 인사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소지도 있다.

또 자치경찰은 주민의 참여를 통한 주민의 책임감과 경비 절감, 주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치안서비스 제공 등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김영배 안에서 주민의 직접적인 참여와 결정권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지방경찰 사무는 대체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면서도 성과는 화려하지 않다. 이에 국가경찰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주민 참여 대신에 일방적인 업무처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이 자치경찰 모델은 주민 참여 활성화를 달성하기 어렵다.

결국 김영배 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된다면 자치경찰의 목적인 경찰사무의 지방분권을 통한 수직적 권력분립, 관련 지방행정과 치안 행정의 유기적 협력, 주민 참여 활성화는 실현되기 어렵다. 국가경찰은 비대해지고, 분권을 통한 혁신과 참여, 효율성의 증가는 요원하다.

자치경찰, 지방자치법으로 규정해야


▎제주국제공항 입구 도로에서 제주자치경찰이 공항 교통질서 확립 활동에 나서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는 매일 각종 단체의 시위가 이어진다. 정문 근처 난간에는 유성 펜으로 글씨를 쓴 스티로폼 패널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 패널에 적힌 문구에는 조롱 섞인, 일부는 모욕적인 표현도 없지 않다.

하지만 권력이 없다면 풍자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경찰이 쥔 권력이 크고, 경찰이 어루만질 수 있는 아픔이 많다는 방증이다. 수사권까지 갖게 될 경찰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자치경찰을 세워 국가경찰을 견제하겠다는 구상의 본 뜻은 존중한다. 잘 정착하면 우리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풀뿌리 민주주의 말이다.

그러나 김영배 안에 담긴 자치경찰은 변형된 국가경찰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설계한 모델이다. 스위스나 미국 같은 외국의 자치경찰 사례는 물론, 2006년부터 시범실시 해오며 보완해온 제주도 자치경찰 모델과도 맥이 다르다.

다만 제주도 모델은 주민 근접형 치안자치를 기본 정신으로 했다. 원래 서구에선 기초 지자체 단위에서 해오던 유형이다. 제주도에는 광역 단위만 있기 때문에(제주시·서귀포시는 행정시) 부득이 제주자치경찰이 된 경우다. 만일 자치경찰제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면, 다른 지역에선 시·군·자치구 단위로 제주도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동시에 광역 자치경찰은 기초 단위에서 하기 어려운 권력적인 치안행정에 역점을 둬서 경찰 사무의 실질적인 분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시·도 자치경찰 조직도 국가경찰과는 독립된 조직으로 편성해야 하고, 자치경찰은 당연히 지방공무원이 돼야 한다. 국가공무원을 자치경찰로 전환할 것이 아니라, 주민 복리와 안전에 헌신할 열정을 가진 자치경찰을 새로 선발해야 한다.

또 기초 단위의 자치경찰은 물론, 광역 단위의 자치경찰도 궁극적으로 주민에게서 민주적인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 주민의 직접 통제 또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원화 모델을 입법할 경우 경찰에 대한 지방자치가 아니라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경찰관의 자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나아가 자치경찰의 법체계도 국가경찰에서 탈피해야 한다. 김영배 안은 자치경찰을 국가경찰을 규율하는 경찰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의 하부 기관이 되고, 국가경찰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치경찰이 표류할 수 있다. 진정한 자치경찰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법에 자치경찰을 규정하거나, 지방자치법에 근거를 둔 ‘지방자치경찰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 그 내용도 일상적인 생활치안 사무는 기초 지자체가 책임지도록 해 주민 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 시·도 자치경찰은 기초 지자체가 할 수 없는 수사를 비롯한 보충적인 경찰 사무만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적잖은 지역 경찰서에 경찰협의회 이름으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부분 김영배 안 자치경찰제를 반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선 경찰들이 바깥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생경한 모습이다. 자치경찰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자면, 주민과 가장 밀접한 거리에 있는 이들부터 설득해야 할 듯하다.

-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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