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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3대 키워드로 읽는 웹소설의 세계 

현실 불만이 이상(異狀) 욕망을 낳다 

K웹툰 손잡고 5년여 만에 4000억대 시장으로 급성장
쌍방향 소통 통해 ‘사이다패스’ ‘여공남수’ ‘게임’ 등 청년 니즈 반영


▎웹소설을 웹툰으로 탈바꿈해 국내외에서 300억원 벌어들인 [나 혼자만 레벨업]의 웹소설 표지(좌), 웹툰 표지(우).
#김독자(가명·34) 씨는 코로나19가 터지고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았다. 남은 돈으로 변두리에 작은 가게를 차렸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고민하던 김씨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는 웹소설을 떠올렸다. 손님이 찾지 않는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쓴 글로 돈도 벌 수 있다던데…. 이내 결심이 선 김씨는 평소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한 웹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웹소설이 새 주류문화로 떠오른다. 성장세가 가파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100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5년 만인 2018년 4000억원으로 40배가량 커졌다. 웹소설 플랫폼, 콘텐트 제공자(Content Provider, CP)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감안하면 현재 시장 규모는 6000억원을 뛰어넘으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실제로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는 지난해 9월 10억원이었던 하루 거래액이 올 5월 들어 20억원을 돌파했다.

‘웹소설’이라는 말은 2013년 네이버가 ‘네이버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형성된 모바일 환경, 대형 플랫폼에 의한 체계적인 연재-결제 시스템이 기존 인터넷소설과 다른 점이다.

웹소설이 주류문화에 한 발 걸치기 시작한 것은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다. OSMU는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시너지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이다. 웹소설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IP)을 기반으로 다양한 웹툰뿐만 아니라 드라마까지 제작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300억원을 벌어들이며 K웹툰의 대표주자로 나선 [나 혼자만 레벨업]이 대표적이다. 일명 ‘나혼렙’으로 불리는 이 웹툰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얻고 레벨업(성장)하는 이야기다. 웹툰의 인기가 높아지면 원작 웹소설을 찾는 독자도 늘게 된다. 웹소설·웹툰 간에 선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독자와 작가도 눈에 띄게 늘었다. 2년 전부터 웹소설을 즐겨 읽기 시작했다는 A(43)씨는 “출퇴근하며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다가 웹소설을 알게 됐다”며 “뉴스나 유튜브는 오래 보면 질리지만, 웹소설은 소재가 다양하고 재미있어서 손이 간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웹소설 연재 플랫폼 조아라가 개최한 공모전에는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5350여 개 작품이 참가해 웹소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웹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쌍방향 콘텐트라는 점이다. 작가가 댓글로 독자와 작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창작과 수용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다 보니 독자들의 니즈가 그대로 반영되기 쉬운 구조다. 카카오페이지는 아예 독자의 관심사를 ‘전개가 빠른’ ‘먼치킨(압도적으로 강한)’처럼 키워드로 정리해 제공한다. 이런 웹소설의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웹소설에 담긴 독자의 욕망을 엿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현재 웹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

‘회빙환’: 독자는 더 시원한 ‘사이다’ 찾는다


▎회귀·빙의·환생을 소재로 독자 눈길 사로잡은 [재벌집 막내아들](좌), [환생무신](우). / 사진:카카오
순양그룹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던 ‘윤현우’. 그룹 회장의 비자금 문제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데, 어라? 눈을 떠 보니 창업주의 막내 손자로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윤현우는 복수를 꿈꾸는데….

선풍적인 인기로 드라마 제작까지 확정된 [재벌집 막내아들]의 줄거리다.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은 최근 웹소설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다. 지식과 경험을 그대로 가진 채 과거로 돌아가거나, 다시 태어나서 ‘두 번째 삶’을 사는 게 회빙환 소설의 기본 설정이다. 보통 회빙환 소설의 주인공은 전생의 경험을 이용해 다른 등장인물보다 뛰어난 면모를 자랑한다. 현실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없는 독자들은 언제나 당당하게 행동하고, 그러면서도 좋은 성과를 얻는 주인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웹소설을 가르치는 이융희 교수는 회빙환이라는 소재가 지식에 대한 욕망에 기인한다며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회빙환 소설에서는 미래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트코인 열풍같은 현실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 공시생이 비트코인 투자로 6조원대 재벌이 되는 내용의 소설이 나올 정도로 회귀·빙의·환생을 통해 성공하고 싶어하는 상상력이 많다. 단순히 후회를 바로 잡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성공을 쟁취하는 게 목적이다”

성공을 쟁취하는 과정에는 ‘사이다’ 전개가 유독 두드러진다. 사이다 전개는 독자가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진행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은 미래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의 성격도 모두 꿰뚫어보고 있다. 그래서 악당이 파놓은 함정에도 일부러 당해준다. 함정을 역이용해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주인공이 속는 척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우쭐대는 악당의 모습이나, 진실을 알고 넋이 나간 악당을 약 올리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독자는 사이다를 마신 듯한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전개만을 요구하는 독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한편으로는 작가에게 부담이다. 이야기 흐름에 반드시 필요한 배경·인물 설명조차도 견뎌내질 못하는 조급한 독자를 이르는 ‘사이다패스(사이다+사이코패스)’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작가 지망생 B(24)씨는 “사건이 한 회 분량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답답하다고 아우성치는 독자가 꽤 많다”며 “바쁜 시간을 쪼개서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니 글이 길어지면 독자가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사이다패스는 웹소설의 전체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환생무신]을 연재하고 있는 김신 작가는 “예전에는 환생을 해도 이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으로 최고가 되었는데, 요즘은 추가적인 설정이 덧붙는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삶의 육체나 사회적 지위가 전생보다 훨씬 좋아진다는 것이다. 뛰어난 머리를 가졌지만 흙수저라는 한계 때문에 최고가 되지 못했던 주인공이 전생의 경험을 간직한 채 재벌집 자녀로 환생하는 식이다. 김 작가는 “코로나19로 평소보다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독자들이 더 강한 자극, 더 통쾌한 사이다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여주판’: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의 시대


▎배우 서예지가 참여해 큰 화제를 모은 [하렘의 남자들]의 광고. 황제가 된 여성 주인공이 여러 명의 남성 후궁을 들인다는 줄거리. / 사진:네이버 시리즈 유튜브 캡쳐
여성향 웹소설에선 달라진 여성 주인공들의 위상이 눈길을 끈다. 여성 주인공이 연애 대신 모험이나 성공에 집중하는 ‘여주판(여성 주인공 판타지)’ 소설이 SNS를 타고 유명세를 얻고 있다. 그동안 여주판 소설은 마이너 장르로 분류됐다. 그러나 [랭커를 위한 바른 생활 안내서] 등 몇몇 작품이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입증하면서, ‘주체적 여성’이라는 독자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장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향 웹소설 편집자 C씨는 “여주판 소설 자체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2년 사이에 급격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C씨는 여주판 소설의 유행과 페미니즘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페미니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여주판 소설의 주인공은 남성 주인공과 구별되는, 여성 주인공만의 모험과 성공을 추구한다. 여주판 소설로 공모전 출품을 준비하고 있는 D씨는 “여주판 소설은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남성 주인공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주변 인물을 등한시하기도 하지만, 여성 주인공은 성공보다 주변 인물과 정서적 유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D씨는 “거창한 성공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주변 인물을 잘 챙기는 것이 여주판 소설 주인공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여주판 소설에서 여성 주인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로서의 개인이다. 그동안 여성향 웹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던 로맨스는 여성 주인공의 성취나 책임 등에 밀려난다. [아도니스]는 주인공 ‘이아나’가 최고의 검사(劍士)로 성장하는 모험담을 다룬 웹소설이다. 로맨스적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여성 주인공의 정신적·신체적 성장을 다루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남성 주인공이 책 한 권 분량 동안 등장하지 않을 정도다. 독자들은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그 분야에서 남성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고가 되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여성 주인공이 남녀관계에서 주도권을 갖는 ‘여공남수’ 소설도 화제다. ‘여성은 소극적, 남성은 적극적’이라는 기존의 편견을 깨는 설정이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월간 랭킹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하렘의 남자들]이 대표적이다. 황제가 된 여성 주인공이 여러 명의 남성 후궁 중에서 황후를 고른다는 이야기다. 남성중심적 사회의 폐해에 지친 독자들은 남성을 쥐락펴락하는 여성 주인공의 모습에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2030세대 사이에 퍼진 페미니즘, 혼자 사는 독자의 증가가 능동적인 주인공에 대한 수요로 이어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일부가 되기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나가겠다는 욕망이 유독 여성향 웹소설에서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성 독자의 구매력이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면서 여성향 웹소설이 빠르게 확산하는 모양새다.

게임: 노력은 반드시 보상 받는다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가 광운대에서 국비지원 웹소설 작가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게임은 웹소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웹소설은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Gamification)’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진 장르 중 하나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이 아닌 분야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게임적 요소를 활용해 재미있게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웹소설로만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나 혼자만 레벨업] [전지적 독자 시점]도 레벨, 상태창, 아이템, 스킬 등 다양한 게임적 요소를 활용했다.

게임적 요소는 독자가 소설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요소다. 주인공이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 ‘성진우’는 어려운 퀘스트(임무)를 성공하면 할수록 강력한 소환수가 생긴다. 노력은 곧 성장으로 이어진다. 소위 ‘노가다’로 불리는 단순 반복 행동만으로도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올라간다. 웹소설에서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직장인 이원호(29)씨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데, 게임에서는 노가다를 해도 경험치나 레벨이 오른다”며 “노력에 맞는 보상이 확실하게 주어진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독자는 ‘노력-성장-보상’의 반복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주인공의 모습을 업그레이드된 능력이나 아이템을 통해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마치 실제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것처럼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된다.

웹소설과 게임적 요소의 결합에 대해 이장주 이락디지털 문화연구소 소장은 “게임에서는 퀘스트나 노가다를 통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게임적 요소로 투영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연봉 10억대 작가 시대가 열리며 웹소설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도 크게 늘었다.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가 추산한 작가 지망생은 약 25~30만 명이다. 누구나 웹소설을 올릴 수 있는 문피아의 자유연재 코너에는 지난 10월 한 달에만 769개 작품이 올라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웹소설 작가 강의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광운대학교 국가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국비지원 웹소설 작가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김종찬(34) 파트장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부터 문의가 들어온다”고 밝혔다. 현직 작가가 대거 강사로 나선 문피아 아카데미도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그러나 웹소설 작가 겸 편집자 E(32)씨는 웹소설에 도전하는 작가 지망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새로 데뷔하는 작가 중에 단돈 1000원이라도 벌 수 있는 작가는 1년에 300명에서 1000명에 불과하다”며 “업계 전체로 넓혀도 플랫폼이나 CP사와 계약된 작가는 5000명 안팎”이라고 말했다. 웹소설 시장의 미래가 장밋빛처럼 보이지만, 정작 작가가 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E씨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웹소설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화가 진행 중이다. 기성 작가조차 게으르면 밀려난다. 되도록 직업을 가진 상태에서 취미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출판사는 작가 지망생의 가능성을 보고 계약했는데,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분도 있었다. 업계는 작가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창작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분만 도전하길 바란다. 프로게이머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나. ‘게임이 취미일 때는 즐겁지만 직업이 되니 힘들더라’라고.”

- 김재현 월간중앙 인턴기자 hyun2805@naver.com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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