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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특집] 김택진 NC 구단주, 벤처 이어 야구도 ‘성공 신화’ 

야구소년 ‘택진이’의 꿈 두 배로 이룬 ‘택진이 형’ 

창단 10년 만에 정규리그 첫 우승, 빅데이타·파격으로 명문구단 반열
높아진 브랜드 인지도 바탕, 모기업 엔씨소트프 북미 시장 공략 도전


▎10월 24일 경남 창원 NC파크에서 창단 10년 만에 프로야구 정규리그 첫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김택진 구단주를 헹가래 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광주 찍고 대전, 그리고 창원.

김택진(53) 엔씨소프트 대표 사무실은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다. 그런 김 대표가 지난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 동안 세 도시를 누볐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구단주로서 NC의 창단 첫 우승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다. 21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이기면 우승 확정이었지만, 비가 많이 내려 경기가 연기됐다. 허탕을 친 김 대표는 이틀 뒤 대전으로 향했다.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이기면 우승이었지만, NC는 6대11로 졌다. 다시 행선지가 바뀌었다. 다음 날 김 대표는 NC의 홈구장인 창원 NC파크에 갔다. 그리고 마침내 NC의 우승을 볼 수 있었다. LG 트윈스와 경기에서 3대3 무승부를 거둔 NC는 정규시즌 우승을 이루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라운드에 선 김 대표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그를 향해 기립 박수를 치는 관중들을 향해 “많은 말을 준비했는데, 여러분과 함께 이 순간을 함께해 정말 기쁘다고 말하고 싶다. 창단 때부터 꾸던 꿈 하나를 이뤄냈다. 다음 꿈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김택진은 왜 야구단을 창단했을까


▎김택진 NC소프트 대표가 야구장을 찾은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사진:NC다이노스
김택진 대표는 1989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재학시절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과 함께 ‘아래아 한글’을 개발했다. 1997년에는 당시 현대전자를 나와 직원 17명과 온라인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를 만들었다. ‘리니지’ ‘아이온’으로 연달아 대박을 터뜨려 부자가 된 벤처 1세대다.

그런 김 대표는 2010년 12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경남 통합창원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제9 구단을 창단할 뜻을 담은 의향서를 제출했다. 느닷없는 소식에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발표 직후 주가가 21만2000원에서 19만8000원으로 6.6%나 떨어졌다. KBO리그 구단은 흑자를 내는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보 효과는 컸지만, 모기업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돈 먹는 하마’였다.

기존 구단의 반대도 있었다. 엔씨소프트가 당시 투자의향서에 명시한 2009년 매출은 6300억원이었다. 매출 1조원도 안 되는 회사가 매년 투자를 해야 하는 프로야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프로야구단 운영엔 연간 300억원 이상 소요된다. 거기다 삼성, LG 등 전통의 대기업이 프로야구단 모기업을 맡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급성장한 게임업체가 이런 대기업처럼 지속해서 구단을 운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특히 부산을 비롯한 경남지역에 두꺼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 반대가 심했다. 당시 장병수 롯데구단 사장은 “엔씨소프트 수준의 기업 규모로 야구단을 운영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준비가 부족한 신생 구단들이 1군에 진입할 경우 프로야구가 질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택진 대표는 야구단 창단 의지를 꺾지 않았다. 김 대표는 “내 재산만 갖고도 프로야구단을 100년은 운영할 수 있다”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당시 김 대표는 대한민국에 15명밖에 없는 ‘1조 클럽’ 회원 중 한 명이었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프로야구단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보이면서 NC 다이노스는 2011년 탄생했다.

김 대표는 왜 그렇게 프로야구단 창단에 매달렸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창단 기자회견에서 김 대표는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털어놨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건 야구였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 ‘거인의 꿈’을 보며 꿈을 키웠다. 중학교 시절엔 빠른 볼을 잘 던지려고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커브볼 책을 구해 본 뒤 몇 달간 밤새 담벼락에서 혼자 피칭 연습을 하곤 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야구’라는 단어다. 나한테 야구는 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이자 삶의 지혜서다. 투수가 던지는 볼 하나하나에서 드라마를 느낄 수 있다.”

김 대표의 야구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만큼 야구는 못했다. 그는 “제 체구가 좀 더 컸다면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신 감동을 주는 야구인을 배출하고 싶었다”고 했다. 막연한 바람은 프로야구 구단주로 구체화했다. 2007년에도 당시 매물로 나온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고 싶어서 KBO에 문의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언젠가는 프로야구단을 만들겠다’는 꿈을 다졌다.

그의 우상도 ‘무쇠 팔’ 최동원이었다. 김 대표는 “변화구를 잘 던진 롯데 최동원 투수가 어릴 적 영웅이었다”고 했다. 2011년 최동원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김경문 당시 NC 감독과 함께 직접 조문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최동원 선수는 제 마음속에 영원한 별”이라고 했다.

야구팬들은 김 대표를 ‘성공한 야구 덕후’라고 한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김 대표는 단순히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을 뿐만 아니라 게임 속 야구단이 아닌 직접 야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성공한 야구 덕후가 됐다. 김 대표가 꿈꾸던 프로야구단은 ‘야구 자체가 목적인 구단’이었다. 그는 “야구에 미치고, 승리에 미치고, 프로로서 숙명을 다할 수 있는 구단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과연 NC는 그런 구단이 됐을까.

택진스타일 야구, ‘알아도 나서지 않는다’


▎김택진 NC다이노스 구단주가 신인 선수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NC다이노스
“10개 팀 구단주 중에 야구 데이터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실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김택진 대표를 옆에서 지켜본 NC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프로야구는 데이터 야구를 중시한다. 빅데이터, 세이버메트릭스 등 야구를 통계학적·수학적 방법으로 분석해 선수들의 기록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불어온 ‘데이터 야구’ 바람이 KBO리그에 도달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김 대표는 오래 전부터 데이터 야구에 관심이 컸다. 어려운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단 수뇌부를 만나면 가볍게 안부를 묻듯이 습득한 통계 기록을 쏟아냈다. 그런 김 대표를 보면서 구단 직원들도 덩달아 데이터 야구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NC는 2011년 창단 준비 때 엔씨소프트 데이터 정보센터 내에 야구 데이터팀을 신설했다. 2012년에는 NC 내 데이터팀을 신설해 데이터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세이버메트릭스를 독학으로 공부한 임선남 씨를 대표 직속 정보전략 담당으로 뒀다. 임씨는 현재 데이터·스카우트팀장을 맡아 11명의 팀원을 이끌고 있다. 창원 홈구장의 라커룸, 코치실 등 모든 공간에서도 데이터를 볼 수 있는 인터넷 환경도 조성했다.

2013년에는 전력 분석 시스템인 ‘D-라커’를 만들어 10개 구단 선수들의 영상과 기록, 투구추적, 데이터팀 분석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기반 도구를 만들었다. 2018년에는 데이터코치 직이 생겼다. 데이터팀과 전력분석 파트를 긴밀히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NC 코칭스태프는 경기에 앞서 데이터코치가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미팅하고 경기 전략을 짰다.

김 대표는 올해 초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서 최신형 태블릿 PC 120개를 모든 코치진과 선수단에 지급했다. 선수들은 태블릿 PC로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타 구단 선수들의 영상과 데이터를 볼 수 있는 D-라커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이호준 NC 타격코치는 “데이터를 숫자로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바꿔 선수별로 제공하고 있다. 선수들의 이해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NC는 창단 초기 다른 구단과 달리 스카우트팀이 아니라 데이터팀이 외국인 선발을 전담했다.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뽑은 외국인 선수는 거의 성공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2015년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은 에릭 테임즈(미국)다. 테임즈는 그해 KBO리그 최초로 40홈런-40도루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했던 그는 NC에서 진화했고 다시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받아 역수출됐다.

이런 노력 덕분에 NC는 뒤늦게 KBO리그에 뛰어들었지만 승승장구했다. 2012년 2군 퓨처스리그에서 뛴 뒤 2013년부터 1군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겨뤘다. 2013년 7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부터는 가을야구 단골이 됐다. 2014년 정규시즌 3위로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2015년과 2016년 2위, 2017년 4위를 차지하면서 ‘신흥 강호’로 불렸다.

2018년 말 이동욱 감독을 선임했던 배경도 데이터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2012년부터 NC의 수비 코치로 활동하면서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했다. 이 감독은 김경문 전임 감독에 비하면 무명이었다. 김 전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을 이끄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김 대표가 원하는 데이터 야구를 통해 2018년 최하위였던 NC를 지난해 5위로 가을야구에 복귀시켰다. 그리고 올해는 첫 우승을 일궈냈다.

임선남 팀장은 “창단 때 엔씨소프트 데이터정보센터 내에 야구 데이터팀이 만들어진 것도, 이후 NC에 데이터팀이 생긴 것도, 선수들이 데이터를 더욱더 쉽게 접하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아이패드를 선수단에 제공한 것도 모두 구단주의 의지였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야구를 잘 아는데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야구인 출신을 중용했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을 경청했다. 데이터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줄 뿐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주머니는 화끈하게 열지만, 결정 권한은 야구 전문가에게 줬다. 언론에 나와 자신이 얼마나 야구에 대해 잘 아는지 보여주지도 않는다. 올해 KBO리그가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에 중계됐다. 시즌 초반부터 NC가 선두를 달리며 잘하자 미국에서 NC가 인기 구단이 됐다. ESPN은 NC 구단주인 김 대표가 야구 지식에 해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김 대표는 극구 사양했다. KBO리그 한 구단은 대주주, 이사회 의장 등 구단 수뇌부가 감독에게 투수 기용, 선발 라인업, 경기 운용 등에 간섭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김 대표가 있는 NC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자산 3조 갑부지만 여전히 ‘택진이 형’


▎2018년 12월 NC다이노스가 양의지 선수를 영입한 뒤 팬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팬들은 김택진 구단주가 직접 올린 글이라 믿고 있다. / 사진:커뮤니티
3조원(약 26억 달러). 김택진 대표의 올해 8월 포브스 기준 자산이다. 얼마나 돈이 많은지 가늠이 잘 안 될 정도다. 그런 어마어마한 부자에게 참 친근한 별명이 하나 있다. ‘택진이 형’. 여러 차례 자사 게임 광고에 출연하면서 친근한 이미지가 부각됐고, 엔씨소프트 게임 이용자들이 김 대표를 택진이 형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별명은 야구팬들에게까지 퍼졌다.

야구팬들에게 김 대표는 더욱 친근한 사람이다. 김 대표는 창단부터 매년 정규시즌 개막 홈경기와 마지막 홈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개막 홈경기에서는 개막 선언을 맡아 NC 팬들에게 직접 시즌 시작을 알리며,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후 팬들과 함께 진행하는 하이파이브 행사 등에 참여하고 있다.

매년 꾸준히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NC 팬들은 옆집 아저씨를 대하듯 편하게 대하고 있다. 김 대표가 보이면 다가가 주저 없이 “사진 같이 찍어요”라고 요청한다. NC 팬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김 대표와 찍은 인증샷이 종종 올라오는데, 한 팬은 김 대표의 허리를 꽉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김 대표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일부 다른 팀의 구단주들은 홈구장을 찾으면 경호원을 대동하고 일반 관중석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굴지의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들인지라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더라도 일반 팬들은 다가가기 어렵다. 그런데 기업이나 주식을 물려받지 않고 창업을 통해 자수성가한 김 대표에게는 벽이 없다.

한 NC 팬은 “택진이 형이 먼저 ‘야구장 자주 찾아오시라’면서 두 손으로 악수를 청하더라. 진심으로 감동했다. 이런 구단주가 우리 팀 구단주라서 진짜 복 받았다”고 말했다. NC가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날, 김 대표가 관중석에서 손을 흔들자 NC 팬들이 벌떡 일어나 엄청난 함성을 보냈다. NC 팬들이 김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김 대표는 선수들과는 더욱 막역한 사이다. 선수들이 김 대표에게 적극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말한다. 2018년 말 선수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내야수 모창민이 “자유계약선수(FA) 양의지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입니다”라고 요청했다. 당대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는 당시 FA 시장에서 몸값이 최소 100억으로 예상됐다. 구단으로서는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모창민은 스스럼없이 말했고, 김 대표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프런트에 바로 양의지 영입 검토를 지시했다. 그리고 4년 총액 125억원에 양의지를 영입했다. 당시 NC 팬들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김택진’이라는 닉네임으로 “김택진입니다. 양의지 선수 사 왔습니다.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정말 김 대표가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NC 팬들은 택진이 형의 글이라고 여기고 있다.

선수들의 요청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014년에는 “원정경기 때 선수 전원 1인 1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원정 경기 3연전을 기준으로만 약 500만원 비용이 더 발생하지만, 김 대표는 역시나 바로 들어줬다. 선수들의 충분한 휴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수들이 편하게 김 대표를 대하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 일대일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려워하고 어색해했던 선수들도 이제 김 대표와 연락을 즐긴다. NC 관계자는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하고도 종종 휴대폰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 격려와 응원의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NC 다이노스-엔씨소프트 ‘윈윈’


▎김택진 NC다이노스 구단주는 팬들 사이에 ‘택진이 형’으로 불린다. 자신이 직접 광고에 출연하기도 한다. / 사진:리니지2 광고 영상
야구계 사람들은 말한다. “김 대표가 야구 자체가 목적인 구단을 어느 정도 실현했다.” NC는 야구에 미치고, 승리에 미치고, 프로로서 숙명을 다하는 구단이 됐다. 야구를 순수하게 사랑한 꼬마 김택진이 꿈꿨던 야구단으로 성장하면서 덩달아 모기업 엔씨소프트도 날개를 달았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메이저리그(MLB) 개막이 늦어지자 미국 스포츠 채널 ESPN은 지난 5월 긴급하게 KBO리그를 편성했다. 야구 종주국 미국에서 KBO리그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을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스포츠가 멈추면서 콘텐트 부족에 시달렸던 ESPN은 KBO리그라도 중계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중계해보니 미국 야구팬들의 KBO리그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다. 특히 시즌 초반 ESPN에 많이 편성됐던 NC 인기가 뜨거웠다. NC와 약자가 똑같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민들로부터 응원을 받게 됐다. 노스캐롤라이나는 공룡화석으로 유명한데 엔씨 마스코트 또한 공룡이었다.

NC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해외 팬들의 많이 찾아오자 영어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5월 해외 팬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숍도 오픈했다. 유니폼, 모자, 티셔츠, 로고 볼 등을 내놨는데 한 달 만에 2000만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캘리포니아, 뉴욕, 플로리다, 뉴저지, 텍사스, 애리조나, 일리노이 등 미국 야구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샀다.

올해 ESPN에서 KBO리그 해설을 맡은 대니얼 김 해설위원은 “9구단인 NC는 국내에서는 인기 구단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이 대표적인 인기 구단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개를 해도 ESPN 톱 캐스터와 해설위원들 모두 NC를 가장 좋아하는 구단으로 뽑았다. ‘주변에도 NC 구단을 응원하라고 추천한다’라고 전했다. 그만큼 NC가 올해 경기를 재미있게 했다”고 전했다.

마침 김 대표는 최근 글로벌 시장 공략을 최대 과제로 꼽고 있다. 특히 북미 현지법인 엔씨웨스트를 세워 북미 시장 공략에 돌입했다. 미국 야구팬들이 NC의 모기업이 엔씨소프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엔씨소프트도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됐다. 앞으로 NC와 엔씨소프트가 북미에서 공동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좋아하는 야구를 통해 사업까지 번창하게 됐으니 택진이 형의 꿈은 두 배로 이뤄진 셈이 아닐까.

NC는 11월 17일부터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7전 4승제)에서 지난해 통합 우승팀 두산 베어스와 대결한다. 김 대표는 정규시즌 우승을 이루고 “다음 꿈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나가겠다”고 했는데, 다음 꿈은 바로 한국시리즈 우승일 것이다. 정규시즌 우승에 눈물을 글썽였던 김 대표가 한국시리즈 우승 날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 박소영 중앙일보 스포츠팀 기자 psy0914@joongang.co.kr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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