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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와 인생’] 지독한 연습벌레 ㈜삼원 최원철 회장 

“한 타 욕심 버리면 기회는 옵니다” 

마흔에 골프 시작, 16년 만에 국내 미드 아마 랭킹 1위 기록
“사업도 운동도 열심히 연구하고 연습하는 사람 이길수 없어”


▎마흔 살에 시작해 미드아마추어계의 정상에 오른 최원철 ㈜삼원 회장은 꾸준한 연습과 흔들림 없는 정신을 비결로 꼽았다. / 사진:성호준
자동차 부품업체인 ㈜삼원의 최원철(63) 회장은 2012년 미드아마추어 랭킹 1위를 했다. 골프를 잘하려면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고수 중 상당수가 재승덕(才勝德) 스타일이라는데 그는 재능보다 덕이 많아 후배들이 따른다. 김천골프협회 회장과 브리지스톤 미드아마 골프단 회장도 맡고 있다.

골프는 1996년 거래 은행 지점장의 골프 연습장을 따라간게 시작이었다. 그의 스윙을 구경하는 게 심심해서 한번 쳐봤는데 공이 똑바로 갔다. 14일 만에 유성CC에 가서 120타를 쳤다. 그러나 후반 9홀(55타)은 첫 9홀(65타)보다 10타를 줄였다. 이후 100타를 넘긴 적은 없다. 6개월 만에 싱글을 치고 1년도 안 돼 언더파를 쳤다. 최저타는 6언더파 66타, 공식 경기에서는 68타가 기록이다.

그는 숭문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대신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쉬울 거라고 덤벼들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빈털터리가 되고나서야 가족이 눈에 밟혔다. 1985년 울산 현대차의 1차 협력사에 입사했다. 제품을 개발하고 연구하느라 밤새우기 일쑤였다. 당직을 도맡아 섰다. 1년8개월 만에 과장이 됐다. 동료들의 응원 속에 1990년 1월 자기만의 회사를 창립했다. 3000만원에 임대한 150평 공장은 지붕도 없어 눈을 맞으며 일했다. 전기가 없어 발전기로 기계를 돌렸다. 월 매출 800만원으로 시작했으나 1년이 지나자 1억이 됐다.

그와 동생, 누나가 잠을 안 자고 제품들을 만들었다. 그의 “골프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지금 삼원은 흡음재 외에도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헤드레스트, 카펫, 시트커버 등을 생산한다. 침구 사업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현재 삼원의 연간 매출은 900억 정도다. 최 회장은 “회사가 힘들 때마다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분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은혜는 아마 이번 생에서는 다 갚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현 미드아마 랭킹 1위 조백균 씨는 “한국에서 연습을 가장 많이 한 아마추어는 최원철, 진성근 선배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최 회장은 라운드가 없을 때는 아침·점심·저녁에 2시간씩 6시간을 연습했다. 라운드 날은 전후로 2시간씩 연습한다. 최 회장은 “3번 우드로 훅이나 페이드 치기 등 그날 안 된 게 있으면 당연히 연습하고, 잘 되는 게 있으면 그 감을 유지하려 연습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아들이 어릴 때 유학을 갔고 부인이 골프에 대해 너그러워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방해에 흔들리지 않아야 진짜 선수


▎최원철 회장의 집에는 그가 각종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와 상패가 즐비하다. / 사진:성호준
그는 아마추어의 연습법도 조언했다. 연습장에서 잘 맞아도 골프장에서는 안 맞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연습장에서 타이거 우즈보다 더 잘 치는 샷은 한 시간 동안 훈련된 근육이 만든 샷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소 연습은 한 클럽으로 계속하더라도, 라운드 전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는 “한 샷을 최대 다섯 개만 해라. 그것도 연습 스윙을 많이 하고 쳐라. 아니면 여기가 필드라고 생각하고 티샷과 세컨드 샷을 상상하고 쳐라. 잘 안 맞았다면 칩샷을 해보는 등 실전처럼 쳐야 한다. 그냥 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샷 연습을 하지 말고 10m 앞에 공을 떨어뜨리는 연습을 많이 하면 좋다. 60도 웨지부터 7번 아이언까지 딱 10m에 떨구는 연습이다. 피칭웨지는 60도 웨지보다 10m를 더 구르고 8번 아이언은 20m 더 구른다. 그 샷을 응용하면 그린 주위 쇼트게임의 도사가 된다. 최 회장은 하루에 퍼트 연습을 500~700개 했다. 그러면 기계처럼 퍼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운전할 때는 운전만 생각하듯, 골프 할 땐 골프만 생각하고 사업할 땐 사업만 생각한다”며 집중력을 강조했다. 또한 골프는 방해받는 운동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다. 공의 궤적을 바꾸는 바람, 눈에 어른거리는 벙커는 물론 동반자, 심지어 캐디까지 일종의 방해자다.

일부러 그러지는 않겠지만, 캐디가 정확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보장은 없다. 동반자도 그렇다. 고수의 라운드에선 역(逆)정보도 나온다. 거리가 비슷한 동반자가 파 3홀에서 5번 아이언을 쳤는데 짧았다. 그래서 4번 아이언을 쳤는데 그린을 훌쩍 넘어간다. 그린을 넘기면 파 세이브가 매우 어렵다. 동반자는 일부러 5번 아이언을 살살 친 것이다.

어떤 골퍼는 8번 아이언을 들고 있다가 캐디에게 7번 아이언을 달라고 하더니 칠 때는 슬그머니 7번 아이언을 내려놓고 8번 아이언을 친다. 타이거 우즈도 그랬다. 최 회장은 “골프는 방해받는 운동이란 걸 알게 되면 남의 행동에 덜 흔들리고, 당했다고 해도 화를 내 라운드를 망치지 않는다”고 했다.

상대방이 퍼트를 칭찬하면 고마워하고 드라이버를 칭찬하면 경계하라고 최 회장은 조언했다. 퍼트는 덕담을 들으면 더 잘하지만, 드라이버 칭찬을 들으면 멀리 치려고 힘이 들어가 망가진다는 이유다. 또 매번 그린을 노리지 말라고 했다. 롱 아이언은 그린을 튕겨 넘어간다. 짧은 채로 쳐 그린 앞에 두고 오르막 칩샷을 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보기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는 오전 7시에 경기하면 시합 전 매일 7시에 연습을 했다. 큰 대회를 앞두면 골프화를 신고 다녔다. 일반 신발과 골프화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 열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력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다. 최 회장은 “골프는 400개 근육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운동신경이 좋지 않으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임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좌절감이 들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실력도 는다”고 했다.

슬럼프는 더 높이 뛰는 도약의 발판


▎2012년 9월에 열린 제2회 볼빅배 코리아 아마추어 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원철 회장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사진:한국미드아마골프연맹(KMAGF)
최 회장도 좌절할 때가 있었다. 한때 별명이 ‘7080’이었다. 대회에 나가 첫날 70타를 치고 선두권으로 갔다가 다음 날 80타로 무너지는 일이 많아서다. 라운드 후 연습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연습을 했는데도 80타가 나왔다. 해결책은 부인이 알게 해줬다. “어느 대회에 와이프가 따라왔다. 감기에 걸린 아내가 기침을 밤새 하는 통에 한숨도 못 잤다. 그래서 연습을 못했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너무 많이 연습해서 진이 빠져 경기가 안 됐다는 것을 알았다. 연습이 필요한 때가 있고 쉬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았다. 평안도 강계 출신으로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피란 내려왔다. 일제가 남기고 간 농기계들을 다 고쳤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공장 2개를 운영했다. 돈을 잘 벌었는데 집은 부유하지는 않았다. 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여러 번 날렸다.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 때 세상을 떴다. 그는 잘 웃지 않는다. 사진 촬영에도 미소를 짓지 못했다. 그는 “고등학생일 때 가장이 됐다. 여러 명의 월급도 책임져야 한다. 그때문에 웃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업에 어려움도 많았다. 폐업을 앞둔 소재 납품업체를 샀는데 숨은 채무가 많았다. 겨우 해결하니 1997년 IMF가 터졌다. 100만 원짜리 자산을 10만원에 매각하고 버텼다. 가족의 집과 땅도 다 팔아야 했다. 이후 어음을 쓰지 않는다. 그때 단련돼 2007년 금융위기, 올해 코로나19 사태에도 큰 피해는 보지 않았다.

회사 이름이 삼원인 이유가 있다. 최 회장은 원자 돌림을 쓰는 누나와 남동생이 있다. 그 세 명이 함께 회사를 일궈 삼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최 회장은 “한 번도 가족을 믿지 않은 적이 없고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다”고 했다. 동생과 누님이 일을 맡아줘 내게 골프를 할 시간을 줬다”라고 했다.

골프에도 슬럼프가 있었다. 그의 사업체 중 계속 적자가 나는 부문이 있었다. 초창기 IMF를 함께 견뎌낸 가족 같은 직원들이 있는 곳이어서 회사를 접을 수도 없었다. 그는 2013년 골프를 놓고 일에 매달려 흑자로 돌려놨다. 그리고 6개월여 만에 고교골프 최강전에 나갔다가 허리를 다쳤다.

스타는 나이 들고 힘이 빠져야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다. 농구 스타 허재는 선수 시절 말년 다리에 힘이 빠져 한 뼘밖에 안 될 듯한 점프로, 키 크고 탄력 좋은 수비수를 뚫고 어떻게든 골을 넣고야 말았다. 요즘 힘이 아니라 샷 메이킹으로 승부하는 타이거 우즈도, 미식축구의 노장 쿼터백 톰 브래디도 그렇다.

2018년 최 회장은 일본 오키나와TV 마스터스에서 60대 우승, 전체 2위를 했다. 당시 그의 허리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대회 내내 불어 닥친 엄청난 바람을 가장 잘 이긴 선수가 그였다. “뒷바람·맞바람 속에서도 나를 믿고 자신 있게 스윙을 해야 한다. 피칭웨지 거리를 7번 아이언으로 풀 스윙하는 건 다들 불안해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미드아마 시니어 부문(60세 이상)이 아니라 일반부에 나간다. 그는 “나는 파이터다. 톰 왓슨을 닮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고맙지만 나는 존 댈리가 되고 싶다. 꼴찌를 해도 60대 이상의 시니어 투어가 아니라 여기서 해보고 싶다”고 했다. 80대에 80타 치는 것이 목표다. 부인과 함께 치는 골프가 가장 재미있다고 한다.

필드 위의 정직함이 사업의 신용으로 돌아와


▎최원철 회장은 사업을 성공 가도에 올려놓은 밑거름이 골프를 통해 배운 정직과 신용이라고 단언했다. / 사진:성호준
60세가 넘는 시니어의 골프 방법도 조언한다. “시력이 떨어지면 그린 경사가 안 보인다. 그러면 읽어야 한다. 멀리서부터 그린 경사를 보고 간다. 또 배수로를 확인한다. 그쪽이 낮다. 벙커도 고려한다. 벙커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오르막이다. 그쪽 경사를 참고하면 다른 쪽의 경사를 알 수 있다. 다른 사람 퍼트도 주의 깊게 보면서 경사를 파악해야 한다. 힘이 있어도 그라파이트 샤프트로 쳐야 한다. 공을 많이 치면 안 된다. 대신 연습 스윙을 많이 해도 좋다. 겨울에, 또 매트에서 많이 치면 안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헬스클럽에서 시간을 보내고 라운드 전후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골프를 하다 보면 유혹이 많다. 최 회장의 정직은 미드아마추어계에서 유명하다. 2006년 조니워커배 아마추어 대회에서 일이다.

“1, 2, 3번 버디를 했다. 함께 라운드한 동반자들이 자기 일처럼 응원했다. 한 홀에서 공이 OB 선상 쪽으로 날아갔다. 나갈 공은 아니었는데 공이 없었다. 누군가 벙커 옆에 박힌 공을 찾아줬다. 내가 쓴 공과 브랜드와 번호가 같았다. 그러나 나는 점 세 개를 찍어 놨으니 내 공이 아니라고 했다. 동반자들이 ‘점은 지워질 수도 있으니까 그냥 이걸 치라’고 했다.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가 비겁하지 말고 비굴하지 말라고 했다.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잠깐은 좋아도 그 찝찝함에 결과가 오히려 좋지 않다. 사업할 때도 속이지 않았다. 야바위 짓을 하면 오래 못 간다.”

그렇게 성실한 그가 골프를 안 했다면 사업이 더 커졌을까. 최 회장은 “골프를 하면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룰 지키고 매너 지키고 라운드하면 설령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가 된다. 몇 차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건 그런 사람들의 도움 덕이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이 잘 키웠고, 직원들 월급 줄 수 있었다. 항상 골프에 감사한다“고 했다.

골프 자체가 그의 인생의 스승이다. 최 회장은 “골프를 하면서 배운 게 많다. 공 쳐보면 욱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화를 내면 망한다. 캐디 핑계, 클럽 핑계를 대는 사람이 있는데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배움도 얻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해야 함을 알았다. 얼마 전 공장에 불이 났는데 침착하게 대응해 큰 피해 없이 막아냈다. 어려운 상황이 되면 한 타 손해라고 생각하고 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면 기회가 온다. 만약 이를 붙들려고 욕심을 내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마흔에 시작한 골프지만 나에게 큰 도움을 줬다”고 했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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