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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바이든 시프트’ 걸림돌 트럼프의 유산] 미국 우선주의 외교의 종말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은 허상이다’ 

백인의 누적된 박탈감 건드려 집권 성공, 인종차별 부추기고 민주주의는 훼손
소외된 백인 유권자의 맹렬 지지로 당 장악, 백악관 나오면 사그라들 수도


▎선거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순순히 백악관을 나갈 생각이 없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징이 울리고 막이 내리면 연극은 파하고 관객은 흩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관객은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갈채를 바라는 주연 배우는 장막 뒤에서 분장실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관중석에서는 계속 그를 찾는 소리가 들리고 주연 배우가 장막을 헤치고 다시 관객 앞으로 다가선다. 그러자 감독, 조연, 스텝이 모두 관객과 하나가 되어 그 배우에게 다시 환호를 보낸다. 분명히 끝났는데 아무도 연극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20년 11월 3일 미국 대선이 치러진 지 한참 뒤인 지금의 공화당 모습이다. 그리고 그 주연 배우는 조금 있으면 백악관에서 퇴장해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공화당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대선 결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8100만이 넘는 표를,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7400만이 넘는 표를 얻어 선거는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나란히 1·2위를 기록한 득표 수다. 주목할 것은 트럼프의 득표 수다. 대선 전 주요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바이든 후보가 아무리 작은 득표 차로 이기더라도 6~7% 정도는 우세할 것으로 보였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득표율 격차는 4%를 조금 넘는 정도였다. 게다가 압승이 예상됐던 위스콘신·미시간·펜실베이니아 등 블루월(Blue Wall·민주당 강세지역) 3개 주의 투표결과도 바이든 후보가 간신히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다면 과연 바이든 후보가 이길 수 있었을까 싶은 선거였다. 그만큼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의 동원력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이것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객석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소외된 백인 유권자의 박탈감 끌어안다


▎2020년 11월 6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2016년 당시 공화당 경선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트럼프는 공화당 백인 유권자들의 공포와 불안이 어떤 종류의 정서였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공포와 불안을 어떻게 분노로 바꿀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러한 감각은 트럼프에게는 대단한 자산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당내 기득권이자 유력 후보라고 손꼽히던 젭 부시, 마르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에게는 이런 동물적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저 워싱턴 정가에서 주류 미디어만 상대하고 의사당 집무실에만 앉아 있었다. 아쉬울 것 없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펜실베이니아 폐광촌의 전직 광부들, 아이오와 옥수수밭의 순박한 복음주의자들, 히스패닉 이민자가 늘어만 가는 작은 마을의 백인 거주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보이고 들릴 리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워싱턴 정가가 아닌 불안에 떠는 전국의 소외된 백인들이 공화당 경선을 좌우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눈높이에서 알아보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공화당 경선에서부터 트럼프에 환호한 이들 공화당 지지자는 한마디로 불안했다. 2008년, 이들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아버지가 케냐 사람인 흑인이 미국 최고의 권력자가 된 것이다. 이들은 밀려오는 남미 히스패닉 이주민에게도 불안감을 느꼈다. 히스패닉 이민자들은 미국이 서유럽에 뿌리를 둔 백인 기독교 국가라는 사실을 조롱하듯 미국 사회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미국 전역이 캘리포니아처럼 소수인종이 백인보다 많아지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민에 대해서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고 성탄절 인사를 건네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인종과 민족 간 평등한 대우라는 명분으로 강조했다. 매일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자신들이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던 백인들은 불안했다. 자신들의 자리가, 자신들의 믿음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젊고 유능해 보이는 흑인 대통령에 의해, 기업 로비에 영혼을 빼앗긴 워싱턴 정치인에 의해, 말쑥하게 차려입은 동부 대도시의 주류 방송국 앵커들에 의해 밀려나고 무시되고 약화됐다고 믿게 됐다.

불안과 좌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백인 노동자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타운이 비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무역만 강변했다. 그러나 당장 주변에서는 문닫는 공장이 속출했다. 내 할아버지가 미국에 와서 처음 봉급을 받은 공장에서, 내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고 첫 집과 첫 차를 마련한 그 공장에서 이제는 내가 쫓겨나게 됐다. 정작 우리동네의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은 지는 이미 오래됐지만, 셰일공장을 지어주고 청정 경제가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밀려난 백인’들의 불안과 공포는 엄청난 좌절감과 분노로 발전해 갔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대통령의 약속이나 워싱턴 정치인의 허풍은 처음부터 믿을 게 못 됐다. 제때 꼬박꼬박 세금 내고, 나라가 부르면 내 아들을 보내 이역만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총 들고 싸우게 했던,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세금 한푼 안 내고 이 땅에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는 내가 낸 세금으로 학교도 공짜로 다니고 복지혜택도 누리는데, 정작 국경일마다 성조기를 제일 먼저 걸어 올린 나는 왜 직장을 잃고 실업급여로 연명해야 하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소외된 백인의 분노가 점점 커질 때, 트럼프가 등장했다. 그는 달랐다. 그는 이들에게 ‘공공의 적’이 누구인지 가르쳐 줬다. 그는 오바마·이민자·워싱턴 정치인·주류 미디어·민주당을 ‘공공의 적’이라고 지적했다. 피아(彼我)를 확실히 구분해 적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그는 여느 공화당 정치인과 달랐다. 긴 시간 소외감을 느꼈던 백인들은 “여러분, 이 공공의 적 때문에 여러분이 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깡그리 청소해 냅시다”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울분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주는 트럼프에게 깊이 매료됐다. 로널드 레이건과 존 웨인이 기관총을 든 람보처럼 다시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았다. 트럼프는 분노하고 좌절했던 백인들에게 이처럼 수호신으로 다가왔다. 트럼피즘은 백인의 분노를 타고 등장했고 그렇게 커갔다.

트럼프가 제45대 대통령으로 등극하면서 공화당의 체질 자체가 바뀌었다. 원래 공화당은 자유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친(親) 기업적 보수주의 정당이었다. 이는 대강 1930년대 뉴딜 이래 미국 공화당을 규정하는 하나의 공식이었다. 자유시장경제 친기업적 보수주의는 감세·탈(脫)규제·자유무역을 중심으로 정치·경제적 좌표가 설정돼 있었다.

“우리들의 진정한 대변인이 나타났다”


▎2017년 8월, 버지니아 살러츠빌에서 발생한 시위에서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차를 몰고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트럼프는 여기에 미국 우선주의로 표방되는 고립주의 노선과 백인 민족주의라는 정체성 정치를 들여와 공화당 DNA를 확 개조시켰다. 이제는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이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인 것처럼 변해 버렸다. 더는 좌파나 우파로 민주당과 공화당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누가 뒤처진 자와 소외된 자를 껴안고, 누가 앞선 자와 잘난 자만 대접하는가가 정당 구별의 기준이 됐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전자를 돌보겠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도 역시 백인의 공포와 분노의 정치가 작동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는 기존 친기업형 보수주의의 핵심인 감세와 탈규제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소외된 백인 노동자의 경제적 불안은 해소해야 했다. 그래서 그간 민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소중히 여겼지만, 공화당이 개선이나 철폐를 주장했던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Medicare, 노인 의료보험)는 손대지 않았다. 대신 백인 노동자를 위해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의 경제적 주권을 앞세우면서 철저히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유지되는 미군 병력의 해외주둔을 경제적 비용으로만 여겼다. 동맹국에 주둔 비용을 전폭적으로 늘리지 않으면 철군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가 실제 국익에 도움됐는지는 지지자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들이 미적지근하게 동맹국 눈치나 보면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요구할 것을 요구하지 못했다고 느낀 사람들이 트럼프 지지자들이었다. 이들은 기존의 관행을 과감하게 뒤엎는 트럼프의 화끈한 스타일에 환호했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선언과 거침없는 협박은 오히려 이들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미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언행이 국제적으로 초래할 결과는 둘째 문제였다. 동맹국에서 내키지 않으면 항상 떠날 수 있는 주권국가 미국, 미국민의 삶과 애환을 동맹국의 안보보다 먼저 돌아보는 미국을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훨씬 더 중요했다.

이런 자존감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담은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 ‘미국은 유럽계 백인 기독교도가 세운 나라인데, 이민의 증가와 이에 따른 이질적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미국의 정체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우려는 특히 백인 노동자들에게는 공유된 정서였다.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에 멕시코 정부의 돈으로 국경장벽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했고, 실제로 국방예산을 전용하면서까지 국경장벽의 일부를 쌓기도 했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정책을 뒤집으면서 급기야 국경지대에서 불법으로 월경한 부모·자녀가 생이별하는 사태까지 빚어냈다.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어 엄연히 미국인이 된 아시아계 혹은 아랍계 사람들에게 미국이 싫으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들은 자신의 진정한 대변인을 만났다고 느꼈다. 백악관에 미국의 왕처럼 군림하는 대통령 트럼프가 있는 이상, 이제 이들은 더는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랜만에 이 나라 대통령이 자신들을 진정으로 보호해 준다고 느꼈다.

미국 우선주의와 백인 정체성 정치는 모두 소외된 백인의 공포와 분노, 그리고 이를 동물적 감각으로 활용한 트럼프 정치의 소산이었다. 소외된 백인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트럼프는 민중주의적 민족주의를 활용했고 권위주의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내적으로 민주적 규범의 파괴와 법치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

인종차별 철폐 위한 180년 노력 물거품으로


▎2020년 2월, 워싱턴 펜타곤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견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방위비 증액은 미국의 동맹 전반에 대한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2016년 대선으로 되돌아가 한 가지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는 당시 대중 집회 도중 자신을 비난하는 몇몇 사람을 보고는 지지자들에게 “저들을 맘껏 두들겨 패주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이 그 변호사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도 했다. 선거운동 와중에 트럼프에 중독된 지지자들은 이러한 그의 폭언에 오히려 환호했고, 그 후에도 절제되지 않은 그의 거친 언사는 계속됐다.

트럼프 집권 후인 2017년 8월 초 버지니아주 샬러츠빌(Charlottesville)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우파 단합시위가 있었다. 이들 시위에 맞불을 놓는 반대 시위가 발생하자 백인 우월주의자 가운데 한 명이 차를 몰고 반대 시위자들에게 돌진해 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도 트럼프는 “양쪽에 모두 좋은 사람이 있다”면서 백인 우월주의를 명백히 단죄하지 않았다. 양비론이었다. 트럼프는 백인 우월주의자의 인종차별에 대해 단호히 비난하며 민주적 규범을 세워나가야 할 모범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거부한 것이다.

민주적 규범에 대한 트럼프의 도전은 2020년 8월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제이컵 블레이크에 대한 경찰 총격 이후 위스콘신주 케노샤(Kenosha)에서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나타날 때도 나타났다. 트럼프는 인종차별 반대시위를 법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시위자들은 사회주의자, 선동주의자로 몰아붙였다. ‘법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시위를 지지자 결집용 편가르기에 활용하는 대통령의 행태는 남북전쟁 이후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미국의 지난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민주적 규범과 관행에 대한 트럼프의 도전과 상식 파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백악관 내부의 의사결정은 공사(公私) 구분이 없는 것이었다. 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는 백악관 선임보좌관으로 트럼프를 가까이서 보좌했다.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정책라인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중동정책은 사위가 도맡아 처리했고, 2020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백악관 앞마당에서 가족잔치로 치러졌다.

트럼프의 고위직 인사는 전횡 그 자체였다. 러시아 커넥션 조사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제프 세션즈 법무장관을 경질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연신 트윗을 통해 비난을 퍼부어 그를 거의 산송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러시아 커넥션에 대해 “적당히 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수사를 맡은 제임스 코미 FBI 국장도 사임시켰다. 처음부터 그가 임명하는 관직은 자신이 추구하는 노선의 무오류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로 하사될 수 없는 선물이자 족쇄였다. 인사에 정실주의가 개입되면서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됐다.

민주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 도전은 대선 이후 그 민낯을 드러냈다. 각종 선거소송이 기각·각하되면서 패배가 명백한데도 트럼프는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주(州)의회를 압박해 몇 개의 주요 주 선거인단 결과를 바꾸려 했다. 주의회가 선거인단을 새로 뽑으면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서 바이든을 선택한 주민의 의사표명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도를 교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근본에서부터 위협하는 폭거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뿐더러 나아가 그 결과를 바꾸려는 현직 대통령의 시도는 그 자체로서 미국 민주주의에 유례없는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동맹 관계 훼손시키고 국제규범은 짓밟고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트럼프는 권위주의적 독재자와 친했고 자유 진영의 지도자들과는 갈등만 빚었다. 한때 ‘로켓맨’이라고 비난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수차례 만남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개인적 신뢰를 쌓아갔다. 무역 전쟁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서는 ‘좋은 친구’라고 이야기했다. 러시아 커넥션의 주범으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는 서로 통하는 뭔가가 있어 보였다. 프랑스의 군사 열병식을 미국에 도입하려는 것을 보아도 트럼프는 우리가 통상 알아온 미국의 대통령보다는 훨씬 더 군림하고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고 위용을 자랑하려는 성향이 남달리 컸다. 그런 점에서 권위주의적 지도자들과 통하는 점이 있었다.

반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돈으로만 환산될 수 없는 동맹관계에도 적용되면서 동맹국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이들 지도자와의 개인적 친분도 크게 훼손됐다. 그 과정에서 전후(戰後) 어렵게 만들어진 자유주의적 다자질서가 훼손되면서 동맹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심각하게 손상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한국에 대한 일방적인 방위비 분담요구가 그 좋은 사례다. 타국의 안보를 위해 미군을 파견하고 군사장비를 동원하는데, 동맹 당사국이 뒷짐 지고 있는 것은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는데, 약속과 약속에 대한 상호기대의 총합인 동맹관계는 이렇게 약화됐다.

트럼프는 또한 오바마 행정부가 이뤄놓은 모든 합의와 국제제도에서 탈퇴, 글로벌 위기에 대한 즉각적인 국제적 집합 행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먼저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 탈퇴를 시작으로 현재도 진행 중인 미·중 무역 전쟁이 국가 간 약속과 암묵적 합의에 대한 파괴의 사례가 될 것이다. 또한 유럽과 한국 등 전통적인 다자 및 양자 동맹 국가들에도 보호무역 조치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한국은 한·미 FTA를 다시 써야 했고, 미국은 EU의 여러 나라와는 무역마찰을 일으켰다. 트럼프의 미국에 대해 과거의 양해와 합의를 기반으로 미래를 기약하는 것을 힘들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이란과의 ‘P5+1 협정’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행위가 초래한 기후변화를 진보파의 근거 없는 우려로 보는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파리협약에서 탈퇴했다. 지구 탄소배출량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의 불참은 사실상 파리협약을 무력화시켰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케리 국무장관이 제네바에 20일 가까이 머물면서 어렵게 성사시킨 이란과의 핵 협정 역시 트럼프의 반아랍 정서와 친이스라엘 로비로 없던 것이 됐다. 2020년 미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나고 바이러스의 진원지를 둘러싼 미·중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중국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트럼프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탈퇴했다. 이렇게 트럼프가 외친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 주권론은 국제제도와 규칙, 국가 간 약속을 여지없이 파괴해 갔다.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한 바이든 당선인은 펜데믹 극복, 경제회복, 인종차별 해소, 기후변화를 주요 화두로 내걸면서 정권 인수에 분주하다. 당장 눈앞의 과제는 팬데믹 극복일 것이다. 바이든 역시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미국인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고 거듭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에 전횡된 각종 성적·인종적 차별에 항의하듯, 그의 인선은 소수인종과 여성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외적으로도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발신하면서 다자주의와 동맹관계의 복원에 강력한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바이든의 민주주의 국가 연대론에 대해서 유럽은 ‘범대서양 동맹’으로 화답하고 있다. 케리 전 국무장관을 장관급 기후변화 특사로 지명해 파리 기후체제의 부활도 약속하고 있다.

공화당의 분열? 트럼피즘 불씨는 안 꺼져

그런데 미국 내에선 대선이라는 막이 내렸는데도 트럼프 주연의 연극은 계속되고 있다. 관객이 떠나지 않고 주연배우가 퇴장하지 않는 한 극장은 문을 닫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해 트럼프 지지자의 분노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는 떠나도 트럼프를 지지한 소외된 백인의 분노는 믿고 싶은 것을 그냥 믿어버리는 확증 편향을 통해 공화당을 여전히 트럼프의 정당으로 복속시키고 있다. 오바마 당선 이후 트럼프가 주도한 ‘오바마 출생지 부정운동(birther movement, 오바마가 미국 하와이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니라는 주장)’만큼이나 트럼프 발(發) ‘부정선거론’은 그의 지지층 사이에서 맹신돼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세계화와 이민 물결, 그로 인한 불안정과 불평등의 지속 속에서 트럼프에게서 위안을 얻었던 소외된 백인의 분노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당분간 지속될 트럼피즘과 함께 공화당은 외연 확대나 중도층 공략보다는 백인의 결집을 계속하는 백인 민족주의 정당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백인이 2050년에 이르면 전체 인구에서 소수가 된다고는 하지만, 실제 투표 연령인구로 보면 이보다 10년 이상은 여전히 다수 유권자를 구성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전략은 나름 실익이 있어 보인다. 선거승리 공식에는 잘 맞지 않지만 백인이 결집해 투표장으로 모두 나온다면 이러한 전략은 공화당 후보의 유권자 동원능력에 따라 일정 수준 유효한 전략이 될 것이다. 아울러 공화당은 당분간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 적극적 국제개입 주의보다는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와 사해동포주의가 공포감을 조성하고 이런 공포감에서 트럼피즘이 등장한 것을 상기할 때, 공화당이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옹호하는 노선으로 복귀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도 트럼피즘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하나의 단서조항이 있다.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의 지속가능성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의 활동성과 비례할 것이라는 점이다. 오는 1월 5일 치러질 조지아주 경선을 둘러싸고 조지아주 선거결과의 불복을 지시하는 트럼프와 이에 따르지 않는 조지아주 주지사 간의 갈등이 언론에 보도됐다. 크지는 않지만, 선거 불복 문제를 둘러싸고 일정 수준 공화당 내 분열이 드러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공화당 지지자에 대한 트럼프의 장악력이 강하고 2024년 그의 재출마설이 회자하고 있어, 공화당 내 그의 선거 불복 주장을 억지라고 대놓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백악관에서 나온 뒤 공화당에 대한 그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 약화되는 순간 트럼피즘의 위력은 지금과 같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피즘이 트럼프 개인과는 별개로 백인 유권자의 누적된 분노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와 같은 강력한 자극제가 없는 상황에서 트럼피즘이 지금처럼 위력을 발휘할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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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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