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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윤곽 드러나는 바이든 정부 1기 인물지도 

인종·성별·세대 망라한 용광로(melting pot) 내각 

첫 흑인 국방장관, 첫 여성 DNI 국장… 관례 깬 파격 이어져
오바마 정부 베테랑 대거 기용, 비서실장엔 31년 지기 내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1월 24일(현지시간) 외교·안보 각료급 지명자 6명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1월 20일 취임에 앞서 차기 정부를 이끌어 갈 장관들과 백악관 참모들을 속속 지명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장관과 참모들을 발탁하는 기준은 무엇보다 경험과 전문성이다. 특히 바이든 당선인은 자신과의 친분도 중시한다.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토니 블링컨(58) 전 국무부 부장관은 이런 조건들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바이든 당선인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라고 불릴 만큼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바이든 당선인과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고 이후 18년간 ‘복심’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근거리에서 일해 왔다. 그는 대선 캠프에서도 외교·안보 분야 좌장을 맡았다. 게다가 그는 마치 국무장관을 위해 키워진 듯한 스펙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또 외교관 중 외교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능할 뿐만 아니라 세련된 매너를 갖춘 정통파이다.

블링컨은 1962년 미국 뉴욕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부 도널드 블링컨은 부유한 은행가로 민주당에 거액을 기부한 공로 덕분에 클린턴 정부 시절 헝가리 대사를 지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친부와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 파리로 갔다. 그의 계부이자 유명 변호사인 사무엘 피사는 폴란드계 유대인 출신으로 비알리스토크에서 학살된 900명 어린이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다. 피사는 블링컨에게 자신이 홀로코스트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파리에서 고교 생활을 하면서 비틀즈에 심취해 밴드를 만들고 보컬리스트가 되려고도 했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블링컨이 외교관의 길을 걷는 데 큰 자산이 됐다.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비영리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의 로버트 몰리 이사는 “블링컨은 해외 생활을 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또 미국의 외교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알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가안보보좌관에 43세 외교천재 설리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가 가장 가깝고 신뢰하는 보좌관 중 한 명” 이라고 얘기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 / 사진:AFP/연합뉴스
하버드대에 입학한 그는 학보사 생활을 하며 한때 언론인의 길에도 관심을 가졌고, 졸업 이후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잠시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그는 1988년 친부의 친구였던 마이클 두카키스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도우면서 공직에 입문했다.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정부 1기 때 백악관에서 연설문 작성자로 일하다 국가안보회의(NSC)로 자리를 옮겨 외교·안보 업무를 맡았고 의회로 가면서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총괄국장(2002~2008년)으로 일하면서 당시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는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참모로 활동했다. 당시 바이든은 경선을 중도 포기하고 오바마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됐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그러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 부보좌관(2013~2015년)을 지낸 뒤 국무부 부장관(2015~2017년)을 역임했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블링컨은 슈퍼스타다. 과장이 아니다”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4년 만에 그것을 인지하고 내게서 그를 훔쳐 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링컨은 바이든이 주창한 ‘동맹 복원과 다자주의 강화’ 외교 노선을 이끌 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블링컨은 지난해 11월 24일 바이든이 새 외교·안보팀 지명자들을 소개한 자리에서 “미국은 세계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면서 “다른 나라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의 협력과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앞으로 추진할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대중(對中) 정책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적대적·경쟁적 측면뿐 아니라 협력적 측면도 갖고 있다”면서도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동맹이 함께 중국에 맞서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북 정책과 관련해선 “강력한 대북 경제 제재로 북한의 비핵화 협상 복귀를 압박하고, 검증 가능한 합의를 도출하자”고 주장해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과 관련,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핵을 포기하기도 전에 평화조약을 논의하려는 북한의 바람을 들어주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최악의 폭군”이라면서 “미국 외교가 ‘위협과 압박’에서 (김정은과의) ‘연애편지’ 사이를 거칠게 오가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양상을 보이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제이크 설리번(43)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은 ‘외교 천재’라는 말을 들어온 젊은 엘리트이다. 1976년생인 그는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맥 조지 번디 이후 최연소이다. 설리번은 나이에 비해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상원 외교위 총괄국장을 지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교수를 하다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도왔다. 클린턴이 국무장관이 되면서 국무장관 부비서실장이 됐고 이후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거쳐 블링컨의 후임으로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다. 클린턴이 2016년 대선에 나서자 캠프에서 수석 정책 고문으로 활동했고 이후 ‘국가 안보 행동’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다트머스대·카네기 기금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특히 설리번 내정자는 이란 핵 합의를 도출하는데 공헌했다. 그는 이란 핵 합의의 발판을 마련한 초기 회담의 수석 협상가였다. 지난해 8월 카네기재단 세미나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선 경기장 수준을 높이고 글로벌 시스템이 더 공정해지도록 규칙을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를 통한 중국 압박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핵 문제 관련해서는 “미국에 대한 최고의 국가안보 위협으로서, 다음 대통령이 다뤄야 할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라며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보듯이 북한에 대해선 압박과 대화 모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히스패닉계 이민자 첫 국토안보부 수장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전 국토안보부 부장관은 인준을 통과하면 미국 이민자(쿠바) 출신 첫 국토안보부 장관이 된다. / 사진:AFP/연합뉴스
국방장관으론 4성 장군 출신인 로이드 오스틴(67) 전 중부군 사령관이 지명됐다. 오스틴 지명자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미 국방부 73년 역사상 첫 흑인 수장이 된다. 1975년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한 그는 2016년 전역 때까지 41년간 전선을 누볐고, 지휘관 경력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보냈다. 2008년 이라크에서 다국적군을 지휘했고, 2012년 흑인으론 처음으로 육군 참모차장에 올랐다. 2013년에는 중동을 관할하는 중부군 사령관에 취임해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을 지휘했다. 바이든 부통령 시절 이라크 정책에 조언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도 역임했다.

바이든이 그를 낙점한 것은 민주당의 진보진영과 흑인층을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군 출신이 국방장관이 되려면 전역한 지 7년 이상 돼야 하는데 오스틴은 4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상원 인준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국토안보부 장관에는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60) 전 국토안보부 부장관이 지명됐다. 마요르카스 지명자는 오바마 정부 때 부장관으로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추방을 유예하는 보호프로그램(DACA)을 담당했었다. 마요르카스는 쿠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출신이다. 상원 인준을 통과할 경우 이민자 중 처음이자 히스패닉계로서도 첫 국토안보부 장관이 된다. 국토안보부는 테러 대책뿐 아니라 이민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다.

애브릴 헤인스(51) 국가정보국(DNI) 국장 지명자는 상원 인준을 받을 경우 2004년 DNI 설립 이래 최초의 여성 국장이 된다. DNI는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등 16개 정보기관을 통솔한다. 이른바 ‘정보기관의 정보기관’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최고 정보기관들이 생산하는 정보가 그를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헤인스 지명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유리천장’을 깼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CIA 부국장에 올랐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국가 안보 담당 수석 부보좌관을 지냈다. 당시에도 대통령의 주요 안보자문역에 임명된 첫 여성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헤인스는 1992년 결혼 후 서점을 운영하다 1995년 뒤늦게 조지타운대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2001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무부 법률 고문실에서 일하던 그는 2008년 상원 외교위원회 부고문을 맡으며 바이든과 인연을 맺었다. 오바마 정부 당시 대북정책에도 깊이 관여했던 그는 국제사회의 일관된 대북 압박으로 비핵화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2017년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는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고, 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핵무기 개발 동결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흑인 여성인 린다 토머스-그린필드(68)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지명자는 35년 경력의 베테랑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라이베리아·스위스·파키스탄·케냐·감비아·나이지리아·자메이카 등 4개 대륙에 걸쳐 외교 무대를 누빈 경험이 있다. 오바마 정부에선 아프리카 담당 정책 차관보를 지냈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다자주의 외교에서 유엔 대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의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약속을 실행하는 것도 유엔 대사의 일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은 토머스-그린필드 지명자에게 ‘각료급(cabinet-rank)’ 대사 타이틀을 달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대사는 내각 일원이 아니지만, 대통령의 재량에 따라 국무장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각료의 직급을 부여할 수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수전 라이스와 서맨사 파워 유엔 대사도 각료급이었다.

트럼프와 맞섰던 파우치, 수석보좌관으로


▎기후변화 담당 대통령 특사에 내정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은 국가안보회의(NSC)에도 참석할 전망이다. / 사진:로이터
존 케리(77) 전 국무장관이 기후변화 담당 대통령 특사에 내정된 것도 주목된다. 케리 전 장관은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다. 그는 오바마 정부 시절 파리기후변화협약, 이란 핵 합의 등 주요 국제협약을 끌어냈다. 그는 앞으로 NSC에 참석할 예정이다. 기후변화 특사가 NSC 참석 멤버에 포함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기후변화를 긴급한 국가안보 이슈로 다루겠다는 바이든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미국의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에 히스패닉계인 하비에르 베세라(62)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발탁했다. 베세라 지명자는 24년 간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에 맞서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인 이른바 ‘오바마 케어’를 지키는 데 앞장서 왔다. 멕시코 이민자인 모친을 둔 베세라는 상원 인준 통과 시 미국의 첫 히스패닉계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차기 국장에는 감염병 전문가인 로셸 왈런스키(51) 박사가 내정됐다. 여성인 왈런스키 박사는 현재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감염병 부문 책임자이면서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HIV 치료제 관련 연구 등으로 학계에선 유명하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CDC는 질병의 예측·예방·통제를 담당하며 연방정부 차원의 코로나19 대응 주무 부서다.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는 ‘코로나 차르’라는 평가를 받는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 겸 대통령 자문관에는 제프 자이언츠(54)가 발탁됐고, 부조정관에는 내털리 퀼리언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내정됐다. 자이언츠는 바이든 인수위 공동의장으로 오바마 정부 때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부국장과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은 경제 전문가다.

바이든은 미국 내 전염병 최고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79)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을 유임시키고 대통령 수석보좌관 업무도 맡겼다.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일원인 파우치 소장은 방역 대책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자주 대립했고, 트럼프는 그를 ‘재앙’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의무총감 겸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공동단장에는 비베크 머시(43)가 발탁됐다. 오바마 정부에 이어 두 번째로 의무총감을 맡는 머시는 바이든의 코로나19 자문단의 공동단장으로 활동해왔다.

재닛 옐런(74)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재무장관에 낙점됐다. 옐런 지명자는 오바마 정부 당시인 2014년 역대 첫 여성 연준 의장에 올랐다. 상원 인준을 통과한다면, 재무부 231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된다. 아울러 재무장관, 연준 의장, 경제자문위원장을 모두 거치는, 역사상 처음 있는 진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그는 클린턴 정부 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도 지냈다. 옐런 전 의장은 SNS에 “우리는 지금 국가적으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회복을 위해,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재무장관으로서 모두를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재건하기 위해 매일 같이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경제 해결사로 옐런 전 Fed 의장


▎시장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쟤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지명자. / 사진:AFP/연합뉴스
뉴욕 출신 옐런은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대와 런던정경대 등에서 학자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94년 클린턴 정부 당시 연준 이사로 임명되면서 공직을 시작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그를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재무장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론을 겸비한 경제학자이면서 정책과 실무 경험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그가 재무장관에 지명되자 뉴욕 다우존스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3만을 돌파하는 등 그의 ‘귀환’을 환영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옐런을 재무장관에 지명한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전대미문의 타격을 입은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전문 채널 [CNBC]는 “지금은 독특하고 수많은 경제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며 “옐런 전 의장이 재무장관에 오른다면 바이든 정부에서 가장 까다로운 자리를 맡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양적 완화 종료가 필요한 시점에 연준 의장으로서 통화정책 운전대를 잡은 옐런 지명자는 2015년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해 정책 방향 전환이라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5번 금리를 올리는 동안 시장과 소통하며 점진적으로 추진해서 시장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로 꼽히는 그는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양적 완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고용 회복에 초점을 맞춰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옐런 전 의장의 재임 시절보다 큰 폭으로 미국의 실업률을 떨어뜨린 연준 의장은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연임을 반대해 40여 년 만에 처음 단임에 그친 연준 의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제자인 옐런 지명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위기 이후 경제’로 갈 수 있는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앞으로 바이든의 의중대로 대규모 경기부양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재무부 부장관 자리에는 월리 아데예모(39)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제경제 담당 부보좌관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명했다. 아데예모는 어릴 때 나이지리아에서 이민을 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비영리단체인 오바마 재단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대통령 직속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에는 흑인 여성이자 노동경제학자인 세실리아 라우스(57) 프린스턴대 교수를 내정했다. 경제자문위원장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조언하는 자리로 라우스 교수가 인준을 거치면 CEA 74년 역사상 첫 유색인종 위원장이 들어서게 된다. 라우스 교수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정부의 재정 지출에 대한 로드맵을 세우는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에는 인도계 여성인 니라 탠든(50) 미국 진보센터 의장이 지명됐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는 기후변화 전문가인 브라이언 디스(42) 전 오바마 대통령 보좌관을 발탁했다. 디스 내정자는 NEC 부위원장,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부국장, 기후변화 특별고문 등을 지냈으며, 미국 자동차산업 구제와 파리기후변화협정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발탁한 인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백악관 인사 담당 국장으로 내정된 캐시 러셀(59)을 꼽을 수 있다. 정부 관리들의 인사를 담당할 그는 차기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았다. 트럼프 정부의 실패 원인 중 하나로 인사가 꼽힌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4년간 수백 개의 중요한 자리가 임자를 찾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공석으로 남았다. 가족들끼리 일자리를 물려주거나 넘기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러셀 내정자는 오랫동안 영부인이 될 질 바이든 여사의 오른손으로 일했다. 그의 남편 톰 도닐런도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냈다. 이들 부부는 1980년대 말부터 바이든의 측근으로 지내왔다.

백악관 공보팀 최고위직 7명 모두 여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31년간 함께 해 온 론 클레인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차기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론 클레인(59)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다. 클레인 내정자는 31년간 바이든과 함께해온 최측근이다. 인디애나폴리스 출신인 그는 조지타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헌법·선거법·행정법 전문가다. 로스쿨을 졸업한 직후 바이론 화이트 전연방 대법관의 법률 서기관으로 활동했고 1989년부터 상원 사법위원회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을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왔다. 백악관과 의회를 아우르는 정무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그는 바이든의 부통령 시절 비서실장이었다. 2014년엔 오바마 정부 당시 퍼졌던 전염병 에볼라 대응팀의 수장인 ‘차르’ 직을 맡았다. 러시아 황제를 일컫는 ‘차르’는 미국 정부에서 특정 이슈에 관한 최고 조정관을 뜻하는 비공식적인 직함이다. 상원 의결 없이 임명이 가능한 직책이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는 앨 고어 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바이든은 “그의 깊고 다양한 경험, 모든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정치적 스펙트럼은 우리가 위기의 순간을 직면한 이 시점에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나라를 다시 하나로 통합할 때 그가 필요한 이유”라고 낙점 이유를 밝혔다.

바이든의 인사에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을 대거 기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악관 공보팀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됐다. 대변인 등 백악관 공보팀의 7개 최고위직에 여성들이 전원 발탁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대변인으로 내정된 젠 사키(41) 인수위 선임고문은 2001년 민주당 선거 캠프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대선 캠프와 백악관, 관가를 두루 거치며 대 언론 분야에서 잔뼈가 굵다. 백악관 공보국장에는 캠프 선대부본부장을 지낸 케이트 베딩필드(38)가 낙점됐다. 오바마 정부 시절 백악관 신속대응국장, 공보 담당 차석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바이든이 부통령일 때 공보수석 비서관으로도 일했다. 바이든 부통령 시절 대변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알렉산더(41)는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질 바이든 여사의 공보국장으로 지명됐다.

바이든 정부의 인선은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 같은 미국 사회, 다시 말해 백인뿐 아니라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계가 섞인 다양성과 성별에 차별이 없는 인사를 하겠다는 당선인의 공약에 따른 것이다. 대선 승리에 여성 표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정부에서 일했던 전문가들과 베테랑들을 대거 기용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당선인으로선 취임 이후 맞닥뜨려야 할 코로나19 사태와 경제위기 및 중국과의 관계, 이란과 북한 핵 문제 등 시급한 현안을 감안할 때 공화당과의 인준 전쟁으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당선인이 앞으로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된 내각과 참모진들을 슬기롭게 조율해 ‘하나의 팀’으로 잘 꾸려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101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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