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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임진각 천막 집무실 차린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작은 통일’ 이뤄지던 통일의 불씨 다시 살려야 하지 않나” 

개성공단 재개 촉구 위한 도라전망대 집무실 설치 유엔사 불허로 무산
“비군사적 행위 간섭은 월권… 남북 정상 나서 공단 재개 선언 나서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바람의언덕에 천막 하나가 들어섰다. 이재강(59)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집무를 보는 곳이다. 이 부지사는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도라전망대에 집무실을 설치하려다 유엔군사령부 불허로 가로막히자 도라전망대가 보이는 이곳 임진각에 임시 집무실을 차렸다. 그의 결단은 시위가 아니다. 경기도의 부지사가 경기도 땅을 들어가지 못하는 역설의 시대에 대한 고발이다. 그가 고발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12월 2일 천막 집무실에서 이 부지사를 만났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개성공단 재개 선언이 남북 평화협력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월 2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은 평일이어서 한산했다. 바람이 잦아들었지만, 겨울 공기는 차가웠다. 남북을 갈라놓은 이중삼중의 철조망도 북에서 내려온 한기(寒氣)를 막진 못했다.

평화누리 바람의언덕 건너편에는 강철케이블에 매달린 곤돌라가 DMZ 안쪽으로 관람객들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평화곤돌라’는 9월부터 정식 가동했다. 임진각에서 민간인통제선 안쪽의 제1 전망대 850m를 오간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이용자 수는 예상치를 밑돌지만, 실향민과 비대면 관광을 하려는 가족 단위 소규모 이용객의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바람의언덕 위에 있는 이재강 부지사의 천막 집무실 주변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몽골 텐트 형태의 천막 안에는 커다란 책상과 노트북 컴퓨터 몇 대, 정수기가 비품의 전부였다. 히터가 있지만, 외부 공기를 막아줄 출입문이 없어서 무용지물이다. 이 부지사는 “그래도 격려하러 일부러 와주시는 많은 분 덕분에 집무실 열기는 늘 뜨겁다”며 웃었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이날도 격려의 방문 행렬은 대기줄을 만들 정도였다. 이 부지사가 천막 집무실을 연 지 23일째 되는 날이다. 관심이 수그러질 법도 한데, 이 부지사의 일정표는 30분 단위로 면담이 있을 정도로 스케줄이 빽빽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지역민 등 각계각층에서 그를 응원하러 임시 집무실을 찾는다.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산책하던 이들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이 부지사의 비서진은 천막 집무실을 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관공서의 집무실과 달리 이곳에는 문턱이 없었다.

왜 굳이 황량한 언덕 위에 천막 집무실을 설치한 걸까. 이 부지사의 설명이다.

“원래는 도라전망대에 집무실을 차리려고 했다. 도라전망대에 가면 개성공단이 보인다. 매일 개성공단을 바라보면서 남북관계가 해빙될 날을 앞당기는 구상을 하려던 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서 이곳에 잠시 눌러앉았다.”

군 당국이 불허했나?

“처음에 관할인 1사단에 문의하자 아무 문제 없이 설치하라고 했다. 그래서 도라전망대 건물에 경기도 행정시스템을 설치하고, 그 앞에 몽골 텐트를 치려고 했다. 준비가 다 끝났는데 갑자기 1사단에서 ‘유엔사 승인이 없어서 설치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엔사는 지금도 검토 중이라면서 가부 판단을 미루고 있다. 곧 교섭이 될 거라는데, 어찌 될지 모르니 마냥 기다릴 뿐이다.”

도라전망대에 임시 집무실을 설치하려던 이유가 무엇인가?

“11월 9일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남북의 장벽을 무너뜨려 보자는 생각에 11월 9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경기도 평화부지사 집무실을 도라전망대로 옮기는 건 상징적이다. 거기서 남북 정부에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해줄 것을 촉구하려고 했다.”

유엔사 출입 불허로 도라전망대 집무실 계획 차질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내 바람의언덕에 설치한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임시 집무실. 도라전망대에 설치하려다 유엔군사령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이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유엔사가 집무실 설치를 불허한 이유는 뭔가?

“검토 중이라는 말뿐이다. 우리 행위는 군사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몽골 텐트 하나랑 의자, 책상, 사무용 집기를 들이겠다는 게 정전협정에 위반되는지 의문이다.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순수한 행정업무가 군사행위에 해당하나? 군사적인 부분에서 유엔사의 권한은 존중한다. 하지만 평화증진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도 집무실 이전은 아무 제약 없이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런 규정이 없다. 과거에는 도라전망대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유엔사에서 승인을 받으라며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따져 봐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궁금하다. 공론화해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

유엔사가 민간에 대한 DMZ와 군사분계선(MDL) 통과를 거부하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2018년 4월 27일과 5월 26일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따라 남북교류협력사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는데, 그해 8월 남북 철도연결을 위한 현지 조사가 유엔사의 불허로 무산됐다. 이듬해 8월까지 유엔사는 세 차례에 걸쳐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위한 DMZ 출입을 불허했다.

유엔사가 DMZ 출입과 MDL 통과 여부를 승인할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는 군사적 행위에 제한된다는 게 우리 정부와 학계의 해석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협정의 조건과 규정들은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경기도의 비군사적 행정행위는 유엔사의 승인 권한 밖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정부도 이런 해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2020년 10월 8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정전협정에 명시된 유엔사의 비무장지대 출입 허가 권한에 대한 판단’을 묻자 “(정전협정문의) 글자 그대로 준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국방부도 유엔사의 DMZ 출입 승인 권한에 대해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출입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정부 입장이나 정전협정문에서 유엔사의 권한 범위는 확고해 보인다.

“평화부지사실을 도라전망대로 옮기는 건 군사행위가 아닌 행정행위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63년간 유엔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관행에 근거해서 일을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내정간섭이고, 주권침해 행위라고 본다.”

이 부지사의 일로 최근에 ‘족보 없는 유엔사’라는 비판 여론도 나온다.

“국내외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에서 유엔사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분들이 연구한 주장에 따르면 엄밀히 말해서 유엔군이 아니고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미국 동맹군이라고 한다. 유엔사 이름을 도용했다고 주장한다. 법적인 측면에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1975년 11월 18일에 열린 제30차 유엔총회에서 남과 북이 동시에 유엔사 문제를 결의안을 올려 해체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통과했다. 이듬해(1976년)에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사는 없다’라고 선언까지 했다.”

정전협정문엔 ‘군사적 성질’로 유엔사 권한 명문화


▎로버트 B.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2019년 7월 27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열린 정전협정 조인 66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과 한미연합군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
유엔사의 지위에 관한 논쟁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최근에는 2018년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로즈매리 디카를로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유엔사에 관한 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름과 달리 유엔사는 유엔에 딸린 기구나 조직이 아니다. 유엔의 지휘·통제도 받지 않는다. 안보리 산하 단체도 아니다. 따라서 유엔의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며, 유엔사와 유엔 사무국 간에 어떤 보고체계도 없다.”

이 부지사는 “유엔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족보가 있는지 없는지 토론에 부쳐야 한다”고 했다. “과연 미군이 유엔사 이름으로 DMZ 출입 승인의 전권을 행사하는 게 정당한지 공론화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유엔사가 관할권을 행사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착잡함을 느꼈다고 했다.

“전에 판문점을 간 적이 있었다. 미군이 영어로 설명하고 한국어로 통역을 했다. 우리 땅에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참담했다. 도라전망대는 하루에 200명밖에 못 들어간다. 우리 국민이 우리 땅을 밟을 수 없는 현실을 평화부지사가 두고 본다면 그건 직무유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통일부나 정부에선 이 지사의 천막 집무실 설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나?

“천막 집무실을 설치하면서 통일부에 알렸다. 그 뒤로 따로 소통하고 있진 않다. 다만 우리가 왜 이 추운 ‘바람의 언덕’에 있는지 장관께서 달려와주면 좋겠다. 오셔서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찾는 길이 개성공단 재개라는 것에 동의해주면 어떨까 기대한다.”

광역자치단체들 중에 ‘평화부지사’란 직책은 경기도가 유일하다. 유독 평화를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

“전에는 정무부지사였는데 2018년에 평화부지사로 이름과 역할을 바꿨다. 경기도는 분단으로 갈라져 있는 곳이다. 개성이 경기도의 미수복 지역이다. 그래서 경기도의 3대 지표에는 복지, 공정과 함께 평화가 들어간다. 지자체 중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국 단위 실무부서를 갖췄다. 평화협력국, 소통협치국, 인권담당관실 3개 국·실 직원만 180여 명이다. 접경지대에 DMZ 평화공원을 만들거나 개성공단 기업들을 돕는 등 평화 기반을 조성하는 게 전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왜 꼭 개성공단이어야 하나?

“개성공단은 단순한 공장 집약단지를 뛰어넘는 깊은 의미가 있다. 2004년에 문을 열어 누적 생산액이 약 3조8000억원에 달하는 한반도 경제공동체의 실험장이었다. 한때 남북의 노동자 5만5000여 명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작은 통일’이 날마다 이뤄진 공간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의 오판으로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벌써 5년째(2016년 2월 폐쇄) 접어든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한반도 평화도 후퇴했다.”

개성공단은 평화 마중물… 조건 없이 재개해야


▎이재강 평화부지사는 매일 오전 개성공단의 관문인 파주 통일대교 앞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경기도
개성공단 기업들의 어려움도 소상히 알고 있겠다.

“기업의 경제적 손실이 크다. 120여 공단 입주 기업이 두고 온 자산이 9000억원에 달한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투자손실까지 더하면 피해 규모가 1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개성공단 사업에 올인했는데 설비회수도 못하는 상황이다. 매출과 신용 등급은 급락하고 부채는 증가하는 사면초가 신세다.”

경기도 차원에서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평화부지사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 경기도가 개성공단 기업을 지원하는 유일한 지방정부일 거다. 지금까지 입주기업 41곳에 51억원 정도 지원했다. 올해에도 3억원 정도의 지원 예산을 마련했다. 나머지 80여 개 기업은 부산이나 인천 곳곳에 있는데, 이분들도 해당 지방정부에서 도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단을 재가동하기 위한 복안이 있나?

“남북 당국이 합의한 ‘개성공단 재개 선언’이 첫걸음이다. 미국 승인이나 대북제재의 틀 속에 갇혀선 공단 재개가 불가능하다. 일단 선언해서 국제적 협력을 끌어낼 방안을 남북이 함께 모색해야 한다. 국민적 염원과 세계인의 지지를 끌어내고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한반도 비핵화와 개성공단 재개를 함께 풀어낼 수 있을 거다.”

준비하고 있는 대북 협력사업들은 어떤 게 있나?

“인도주의적인 협력사업은 계속하고 있다. 2020년 8월에 취약계층 영양 상태 개선을 위한 유리온실사업 물자 298개 품목에 대해 유엔 대북 제재 면제를 단독 신청해 승인받았다. 지자체가 민간단체의 협조 없이 단독으로 면제 승인을 받은 건 최초다. 2019년 말에는 개풍양묘장 조성사업에 필요한 152개 품목의 물자 지원사업이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받아 9년 만에 사업 재개의 계기가 마련됐다.”

북한도 코로나19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9월 DMZ포럼에서 이재명 지사께서 다섯 가지 협력 사업을 북측에 공개 제안했다. 개풍·개성 일대에 남북공동의료·보건 방역센터를 설립하는 게 있다. 남북이 전염병·감염병 확산에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취지에서다. 임진강·북한강 수계관리 협력을 위한 남북 수계관리기구를 설치하는 방안과 DMZ 안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공동조사도 제안했다. 남북관계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경기도가 많은 인도주의적 협력을 하는 장면들을 국민께 보여드릴 수 있을 거다.”

경기도 남북협력사업 2건, 유엔 제재 면제 승인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전경. 2016년 2월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한 지 5년째 접어든다.
접경지역이 많은 경기북부지역의 낙후 문제도 남북관계와 떼놓을 수 없는 과제 아닐까?

“경기북부는 수도권 규제에 군사시설 보호규제 등 규제가 중첩돼 있다. 분단 때문에 특별한 희생을 수십 년간 감내해야 했다. 평화시대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평화협력시대를 대비한 여러 지역 발전 계획들이 있다. 경의·경원선 연결과 미군반환 공여지 개발, DMZ 생태평화지구 조성, 평화(통일) 경제특구 지정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경기북부를 한반도 신경제 중심지역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정상회담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더구나 2010년 6월 북한이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로 국내 여론도 냉랭해졌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선 체제로 접어드는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에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부지사는 “지금이야말로 남북 지도자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자주적으로 남북관계의 길을 열어야 할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남북관계를 풀어갈 때 늘 대립하는 게 ‘머리’와 ‘가슴’, 즉 이상론과 현실론이다. 뜨거운 가슴만으로 한반도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분단된 지 어느덧 70년이 넘었다. 한반도의 평화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숙명과 같은 거다. 때로 정체되고 난관이 있더라도 우리의 지향점을 놓쳐선 안 된다. 물론 통일의 과정에는 ‘머리’가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평화와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일이다. 모두가 가슴으로 필요성을 공감해야 길을 열어낼 힘이 생기는 법이다.”

개성공단 재개가 남북 경제협력의 마중물이 될 거라고 보는 건가?

“그렇다. 개성공단 재개 선언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의 정상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다음에 제재를 넘는 국제적 협력을 끌어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한 보여주기식 쇼가 아니라 평화부지사로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절박함을 알리고 싶어서다.”

천막 집무실은 언제까지 할 건가?

“개성공단 재개 선언이 이뤄지는 날까지다. 대한민국 영토를 출입하는데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불공정을 타파하자는 국민적 염원을 모아 개성공단 재개로 이어진다면, 내 소임을 어느 정도 완수했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는 이곳 임진각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갈 거다.

지금은 북측 설득해야 할 ‘남북의 시간’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 “남쪽이 의지를 갖고 북을 설득하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지사는 천막 집무실 설치와 함께 통일대교 앞에서 1인 시위도 시작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통일대교 남단 바리케이드 앞에서 진행한다. 그가 목에 건 피켓에는 ‘평화의 상징, 개성공단 정상화’라고 적혀 있다. 통일대교는 이 부지사가 도라전망대를 들어가려다 막힌 곳이다. 소떼를 거느린 고 정주영 회장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 판문점을 향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 다리를 건넜다. 개성공단이 문 닫기 전까진 입주 기업들의 차량이 쉴 새 없이 이 다리를 오갔다. 이 관문을 넘어야 DMZ, 더 멀리는 개성공단, 평양까지 다다를 수 있다. 통일대교를 지키는 건 우리 국군이지만, 우리 맘대로 열 수 없는 길이다. 이 부지사는 “철문으로 막혀 있는 통일대교의 모습을 매일 보고 있는 것도 무척 괴롭다”고 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사진도 못 찍게 하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두고만 봐야 하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개성공단을 닫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미국 동의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개성공단을 재개하려면 미국 승인을 받으라는 게 말이 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심해서 시작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작심해서 문 닫은 걸 왜 우리 스스로 다시 못 여나.”

이 부지사는 지금을 ‘남북의 시간’이 돌아왔다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비핵화를 하면 많은 일이 진척될 거라고 하지만, 그 틀에 매이게 되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미국이나 유엔의 승인이나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하면 하나도 진전을 이룰 수 없다. 평화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평화를 구축하면 개성공단이 재개되고, 금강산이 열리고, 가족상봉이 이뤄진다. 문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촉구했으니 북한을 설득하고 미국과 중국에 호소해서 4자가 모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 라는 데까지 가면 비핵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그래서 남쪽의 의지가 중요하고, 북쪽을 설득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다.”

하지만 비핵화가 현실로 와 닿을지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4개 항 중 1번이 비핵화였다. 북한이 순순히 비핵화를 약속했다. 그게 노딜로 유효하지 않게 됐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평화 프레임을 먼저 장착하면 비핵화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확신한다. 그 믿음이 평화의 시작이란 것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재강 부지사는 12월 15일 통일대교 0.9㎞ 구간에서 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촉구하는 ‘삼보일배’를 했다. 행사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참했다. 이날 임진각 일대는 영하 13도의 매서운 추위가 몰아 닥쳤다.

12월 15일은 16년 전(2004년) 개성공단에서 처음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 ‘통일냄비’가 생산된 날이다. 통일냄비 1000개는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순식간에 모두 팔렸다. 당시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는 250명이었다. 10년 뒤인 2014년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는 5만3000여 명에 달했다.

이 부지사는 “개성공단이 조성되면서 북한은 군부대를 약 10㎞ 뒤로 물렸다. 개성공단이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평화를 담보하는 안보의 완충지대 역할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부지사의 소명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매일같이 작은 통일이 이뤄졌던 그 공간이 키운 통일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야 하지 않겠나.”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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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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