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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이 쌀알 뚫고 나오면 싸라기만 남아암컷은 날카롭고 뾰족한 주둥이로 딱딱한 생쌀을 끌이나 드릴처럼 갉고 파서 구멍이 뚫어 알을 낳고, 끈적끈적한 젤라틴(gelatin) 물질을 분비해 구멍을 틀어막는다. 곡식을 찧은지 오래된 쌀 포대의 쌀알들이 덩어리를 지우는 수가 있는데 바로 이 물질 때문이다.바구미는 보통 곡식 한 알에 길이 0.7㎜, 폭 0.3㎜인 알 하나를 낳고, 그 알은 3~4일 후에 부화한다. 부화한 알은 아주 작고 하얀, 다리 없는 유충이 되어 19~34일 동안 쌀을 녹여먹고 자라 번데기가 된다. 쌀 속에 든 번데기는 환경조건이 좋으면 3~6일 후에 우화(羽化,날개돋이)한 후 성충이 되어 쌀알을 뚫고 나온다.번데기가 우화해 나온 자리에는 구멍이 뻥뻥 뚫려서 그만 싸라기(부스러진 쌀알)가 되고 만다. 그래서 성체보다 앳된 유충이 더 해롭다. 쌀 바구미가 갉아먹은 쌀을 들어내 체에 쳐보면 하얀 쌀가루가 먼지처럼 쏟아지니 놈들이 곡식을 갉아먹으면서 생긴 부스러기이다.애벌레는 딱딱한 저장 곡물에 해를 끼치지만, 밀가루 같은 가루 식품에서는 살지 못한다. 그리고 알곡 안에서 자라는 유충의 호흡으로 수분이 높아지고, 열이 발생해 쌀알이 부드럽게 되어 갉아먹기 쉽게 되며, 쌀은 결국 변질, 부패해 품질이 떨어진다.과거에는 바구미가 들끓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쌀자루나 쌀독에 마늘이나 생강을 넣기도 했는데, 요새는 놈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포장된 약을 시판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쌀의 해충을 박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하 18℃ 이하에서 약 3일간 냉동시키거나 60℃에서 15분간 두어서 바구미 알을 죽이고 보관하는 것이다.그런데 우리가 어릴 적에는 집에서는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정미소(방앗간)에서 도정(搗精)했다. 그런데 지금은 집집마다 쌀 찧는 도정기가 있어 그때그때 필요하면 내다 쓰니 참 좋은 세상이다. 방앗간에서 유래된 말도 많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란 욕심 많은 사람이 이익을 보고 가만있지 못함을, ‘참새에 방앗간’이란 늘 바라던 것을 만났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참새가 방앗간에 치여 죽어도 짹 하고 죽는다’라는 말은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너무 괴롭히면 대항한다는 말이다.필자도 디딜방아를 많이 찧어 봤다. 디딜방아는 한 사람이 찧는 외다리 방아와 한쪽이 가위다리처럼 벌어져서 두 사람이 찧는 양다리 방아가 있었다. 다리에 힘을 주기 위해 방앗간 천장에다 늘여 맨 굵직한 새끼를 팔로 세게 잡아당기며 발로 디딤대를 힘껏 밟았다. 물론 시간을 보내느라,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불러 가면서 말이다.한데 외다리 방아는 일본, 중국 등지에도 있지만 양다리 방아는 한국 고유의 발명품으로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다고 한다. 쿵당, 쿵당, 쿵쿵 짓찧느라 지축을 흔드는 그때의 방앗소리가 귀에 쟁쟁하도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