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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검찰개혁 잡음] 추미애의 십자포화 버틴 尹의 시간이 왔다 

‘민심 블랙홀’ 윤석열 소멸 못시키면 박범계 ‘제2의 추미애’ 될 수도 

윤석열, 원전 의혹과 라임·옵티머스 펀드 수사로 ‘살아 있는 권력’ 칼 빼 들어
박범계, 검찰과 극한 대결 대신 인사권 활용 ‘힘 빼기’로 반사이익 차단 예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등판하는 박범계 장관 후보자(오른쪽)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최대 리스크가 된 ‘윤석열 신드롬’을 잠재워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두 사람은 각자 조직의 명운을 쥐고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정치를 하면서 요즘처럼 자괴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의 말이다. 그는 자괴감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제1야당으로서 국회에서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견제할 방법이 없는 점, 그리고 대중정치인인 자신들보다 민심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그중에서도 ‘윤석열 신드롬’에서 느끼는 자괴감이 크다”고 했다. 한편으론 정권이 폭주할 때마다 번번이 윤 총장에게서 가로막히는 상황에 안도하면서도 야당의 역할을 사실상 윤 총장이 대신하는 기막힌 현실을 바라보는 심경이 꽤 복잡해 보였다. 그는 “본격적으로 선거 정국이 시작돼 민심이 야당의 역할을 주목할 때까지만이라도 윤 총장이 버텨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지난해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윤석열을 향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정치인의 속성이 크게 한몫했다. 정치인은 긍정·부정을 막론하고 여론의 관심을 늘 목말라한다. 여론의 주목도는 정치적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구 정치인을 꿈꾸는 이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하는 욕구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정치권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의 체급을 키워줬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추 장관의 자기 정치가 윤 총장에게 반사이익이 됐다는 말이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향해 공세 강도를 높일수록 윤 총장의 지지율은 비례해 상승했다. 급기야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은 오차범위를 넘어선 차기 대선주자 1위로 발돋움했다.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올 1월 1~2일에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다. 윤 총장은 30.4%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3%를 얻어 2위에 오른 이재명 경기도 지사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5%로 밀려났다.

가장 최근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윤 총장의 기세는 맹렬했다.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1월 9~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23.8%를 얻었다. 1위를 차지한 이재명 지사(25.5%)를 오차범위(±3.1%p) 내에서 바짝 추격했다.

윤석열 신드롬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정치권의 전망은 분분하다. 국민의힘 대권 잠룡 중 한 사람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한 달씩 가는 태풍은 없다”며 윤석열 효과가 곧 소멸할 거로 내다봤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도 “윤 총장의 지지율은 추 장관과 대립이 격화했을 때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며 “법무부와 갈등 이슈가 일단락된 상황이어서 지지율도 서서히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윤석열 돌풍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렇게 엇갈리는 전망을 하면서도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이 문재인 정권에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란 점에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1년 내내 검찰개혁을 명분 삼아 ‘윤석열 축출 작전’에 올인했던 것은, 그가 현 정권에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방증이기도 하다. 축출 작전의 선봉에 선 이가 바로 추 장관이었다.

추미애 장관의 자기 정치에 윤석열만 반사이익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결은 추 장관의 완패로 끝났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린 2020년 12월 15일 추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추 장관은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 윤 총장이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라임 사태 관련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어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면서 11월 24일 윤 총장의 직무를 정지했다.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윤 총장은 법원에 직무정지 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법원은 윤 총장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추 장관은 물러서지 않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징계 사안이 되지 않는다고 만장일치로 의견을 냈는데도 규정을 바꿔가며 징계를 강행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 처분을 의결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하지만 이 처분 역시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윤 총장이 정직 처분 효력을 멈춰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결국 추 장관의 ‘윤석열 쫓아내기’는 무위에 그쳤다.

추미애-윤석열 대결은 사실상 추 장관의 완패였다. 추 장관은 윤 총장 징계 의결서를 대통령에게 보고한 직후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입법과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마침으로써 임무를 완수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문 대통령은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추 장관의 추진력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공수처와 수사권 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시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준 것에 특별히 감사한다”고 했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개혁의 화룡점정이었다는 간접 시인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말이다.

문 대통령이 사의를 즉시 받아들이지 않아 후임자 인선 전까지 장관직은 유지했지만, 여론의 무게추는 윤 총장 쪽으로 급속히 쏠렸고, 대통령 지지율은 연일 최저치를 경신했다. 결국 12월 25일 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범계 검찰 자극 않겠다고 했지만 여당은 ‘보복 입법’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축출’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특위를 꾸리고 검찰총장의 지휘권 폐지를 비롯한 강도 높은 ‘검찰개혁 시즌2’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 사진:오종택
닷새 뒤 문 대통령은 추 장관 후임에 박범계 민주당 의원을 지명했다. 판사 출신의 3선인 박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으로 일하며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윤 총장과는 사법연수원 23기로 동문수학했다. 박 후보자는 2013년 11월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중 징계를 받았을 때 세 살 위인 윤 총장을 ‘형’이라고 부르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박 후보자의 태도는 일단 신중 모드다. 박 후보자는 윤 총장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안정적인 협조 관계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검찰 개혁을 이루라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고 했다. 박 후보자는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이 ‘검찰 인사를 준비하겠다’고 보고하자 “신중해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인사를 윤 총장과 협의해 진행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난해 1월 검사장급 인사에서 추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반영했던 관례를 깨고 윤 총장 측근들을 모두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박 후보자의 태도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윤 총장과 대립하는 구도를 피해 검찰 조직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사사건건 윤 총장을 옥죄다가 부메랑을 맞았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후보자 앞에 놓인 상황을 볼 때 안정적인 협조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여권 내에 깊이 박힌 반(反)윤석열 감정이 걸림돌이다. 민주당 내부에는 “윤 총장을 이대로 가만둬선 안 된다”는 격앙된 감정이 의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이런 감정은 ‘보복 입법’으로 표면화하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윤 총장이 낸 직무정지 집행정지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자 지난해 12월 28일 집행정지 결정 신청이 본안소송의 실익을 해치는 경우 집행정지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행정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이를 ‘윤석열 방지법’이라고 명명했다. 윤 총장과 같이 임기제 공무원이 징계 효력 정지 신청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윤 총장의 징계 처분이 정지된 직후 ‘검찰개혁특별위원회’를 꾸린 민주당은 궁극적으로 검찰의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검찰개혁 시즌2’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즉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모두 없애 ‘기소청’의 역할만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들어 수사 범위가 축소돼왔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 6가지로 제한하고 있다.

범여권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현직 검사와 법관이 선거 후보자로 출마하기 위해선 1년 전 사직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현행법은 검사와 법관이 출마하려면 90일 전에 사직해야 한다. 만약 2022년 3월 9일에 치러지는 대선에 출마하려면 올해 3월 9일 이전에 퇴직해야 한다. 윤 총장의 임기가 오는 7월까지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윤석열 대선 출마 금지법’이나 다름없다.

앞서 지난해 7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총장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일선 검사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당시는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을 두고 추 장관이 헌정 사상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등 윤 총장과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친문’ 의식한 추미애와 달리 박범계 무리수 안 둘 것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은 문재인 정부의 역린을 건드린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2020년 11월 원전 평가 조작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카이스트(KAIST) 교정에 붙어 있다. 전국 100여 개 대학에 대자보가 붙었다.
검찰 인사가 총장을 건너뛰고 이뤄지는 상황에서 수사지휘권마저 폐지할 경우 검찰총장은 조직을 통제할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식물총장’에 불과해진다. 대신 검찰 고위 간부로부터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인사권과 수사지휘권을 틀어쥔 법무부 장관의 검찰 통제력은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정치 예속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며 “이는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검찰개혁의 취지에 역행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윤 총장에 대한 반감이 깊은 강성 친문 지지자들의 입김도 여권의 강공 여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윤 총장 해임 요구는 40만 명 가까이 동의를 얻었다. 그러자 김두관 의원은 지난해 12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며 “남은 방법은 (윤 총장) 탄핵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운하 의원도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사의를 표명하고 침묵하던 추 장관도 12월 28일 유튜브 계정 ‘추미애TV’에 ‘윤석열 탄핵, 역풍은 오지 않는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추 장관은 “지금까지 나는 수사권·기소권 완전 분리와 윤 총장 탄핵 두 가지를 주장했다”며 “수구카르텔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검찰조직의 예봉을 꺾어야 나머지 과제들의 합리적·효율적 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탄핵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여권의 분위기 때문에 박 후보자가 추-윤 갈등을 수습할 관계 재정립에 당장 나서기보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윤석열 힘 빼기’ 전략을 구상할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공수처 설립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의 굵직한 과제는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여서 박 후보자가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게 첫째 근거다. 또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는 추 장관의 경우 민주당 최대 계파인 친문 진영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숙원인 검찰개혁을 이뤄냄으로써 친문을 지지기반으로 확보하려는 전술의 하나로 윤 총장과의 대립각을 스스로 세웠다는 것이다. 반면 박 후보자는 친문의 신뢰를 두텁게 받는 데다 선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게 둘째 이유다. 또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와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지지율 회복이 시급한 청와대가 윤 총장을 띄워준 셈이 된 추 장관 방식을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게 셋째 근거다.

박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2월에 있을 검찰 인사가 향후 윤 총장과 관계 설정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2월 1일에 평검사 정기 인사를 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번 인사에서 윤 총장을 ‘패싱’했던 추 장관과 달리 윤 총장과 인사안을 협의하는 관례를 복원한다면 청와대 차원의 검찰과 관계 개선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과 법무부 요직을 꿰차고 있는 이른바 ‘추미애 라인’ 검사들에게 어떤 임무를 부여할지도 관건이다. 추 장관이 발탁한 대표적 인물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심재철 법무부검찰국장, 이정현 대검 공공수사부장,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 등이 있다. 이들에 대한 재신임 여부에 따라 윤 총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예측할 수 있다.

윤 총장의 카드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윤석열 검찰총장이 1월 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변수는 윤 총장이 쥔 패에 있다.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 수사들이다. 추 장관과 대립이 절정에 달하던 지난해 11월 초 윤 총장은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에서 열린 신임 부장검사 리더십 교육에서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국민’을 여러 번 언급했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 인사가 연루됐거나 연루 의심을 받는 사건은 한두 개가 아니다.

가장 위협적인 사건은 지난 2018년 울산시장 선거 당시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현 시장의 당선을 도우려고 청와대와 경찰이 김기현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현 국민의힘 국회의원)를 수사하고 단독공천을 유도하는 등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반부패비서관실·국정상황실과 정무수석·사회정책·균형발전·인사비서관실이 동원됐다고 적혀 있다. 기소 이후 수사팀은 인사 조처로 와해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도 청와대까지 거론된다. 조기 폐쇄된 월성 1호기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의 상징이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발표한 감사원 감사 결과, 경제성 평가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 관련 자료 500여 건이 삭제돼 감사 방해 의혹도 일었다. 청와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경제성 평가 조작에 적극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은 산업부 국장과 서기관을 내부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12월 구속했다.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윤 총장이 법원 결정으로 직무 복귀한 지 하루 만에 이들에 대한 영장 청구를 직접 승인했다.

최근에는 별장 성접대 의혹의 중심 인물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조처 문제가 불거졌다. 2019년 3월 23일 밤 김 전 차관이 방콕으로 출국하려다 검찰이 긴급 출국금지요청서를 보내 무산됐다. 그런데 출국금지 과정에서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가 무혐의 처리된 사건 번호와 가짜 내사 번호로 공문서를 조작해 출국금지를 요청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직원들이 김 전 차관의 출입국기록을 여러 번 무단 조회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개입한 인물로는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이 거론된다. 사실일 경우 민간인 불법사찰에 해당하는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출국금지하기 5일 전인 2019년 3월 18일 문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김 전 차관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지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이 지시한 직후 불법행위가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법무부를 수사 의뢰한 데 이어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2조2000억원이 환매 중단된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은 현 정부 핵심 인물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 연루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라임 사태에 관련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여권 주요 인사들에게 로비했다고 진술해 게이트로 비화했다. 그러나 검사들이 김봉현에게 술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는 답보 상태지만, 여전히 화약을 품은 뇌관으로 남아 있다.

선수가 아닌 벤치에 서 있는 윤석열이 더 위협적

윤 총장의 임기는 7월에 끝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그의 임기 안에 마무리될 가능성은 낮다. 윤 총장이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그가 신뢰하는 측근이 흩어지고 수사팀이 번번이 교체된 상황에서 총장의 의지만으로 갑자기 가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권에 치명적일수록 살아 있는 권력의 저항도 크게 마련이다. 추 장관이 그랬듯이 윤 총장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박 후보자는 이를 막기 위해 윤 총장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권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윤 총장 리스크는 그의 정치활동 여부에 있다. 정치권에선 여·야 모두 윤 총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낮게 본다. 국민의힘의 한 정책통은 “윤 총장이 선거에 나오는 순간 그가 지금까지 해온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고, 윤 총장의 원칙주의자 이미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이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았다. 그는 “선거는 조직 대결이다. 대선을 불과 1년여 남겨둔 상황에서 윤 총장이 정치 조직을 만들어 독자노선을 걷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윤 총장이 직접 출마가 아닌 정권교체의 핵심 조력자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오히려 윤 총장이 직접 출마하는 것보다 여당에는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야권에는 윤 총장이 가진 정권을 상대로 한 법치 수호자의 이미지가 중도 민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큰 자산이다. 이는 보수 야당이 갖지 못한 것이다. 의석수에 밀려 어쩔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야당의 이미지는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각인돼 있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가장 위협적이란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현 정부와 여당이 윤 총장을 위협적이라고 여기는 건 그의 의중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퇴임하면 우리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윤 총장의 발언에 담긴 의미가 드러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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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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