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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바이든시대’ 글로벌 지형이 달라진다] 제2의 ‘아편 전쟁’ 초읽기 들어가다 

민주주의 고리로 中 압박하는 바이든에 시진핑은 공산당 100주년 행사로 ‘맞불’ 

“중국 빼고 다 모여” 반중 연합 전선 확대하려는 백악관 새 주인
“백 년 치욕 넘어 최강국으로” 내부 결속 다지며 빈틈 노리는 中


▎2013년 12월 부통령 시절 베이징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민주주의는 미국 사회의 근간일 뿐만 아니라 힘의 원천이다.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동맹들을 다시 공고히 하고, 미국이 다시 한번 세계를 선도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다. 나는 이를 위해 임기 첫해에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할 것이다. 세계의 민주국가들이 모여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민주주의에서 퇴보하는 국가들에 맞서 공동 의제를 마련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2020년 3·4월 호에 기고한 ‘미국은 왜 다시 주도해야 하나(Why America must lead again)’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이하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의지를 담은 내용이다.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려는 의도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약화된 동맹국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점차 노골화되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2월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지난 4년간 트럼프 정부의 ‘나홀로 접근’으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및 전통적 동맹에 심한 손상이 있었고 민주주의가 공격받았으며 우리의 안보가 위협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과 경쟁하면서 동맹국과 연합을 구축할 때 미국의 입장이 더 강해질 것”이라면서 “미국은 국제 경제의 약 25%를 차지하지만, 민주주의 파트너들과 함께라면 경제적 지렛대를 갑절 이상으로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의 ‘쿼드 플러스’ ‘D10’에 한국 모두 포함


▎2019년 8월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둘째)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독일·캐나다·영국·이탈리아·일본 정상들이 원탁에 앉아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할 대(對)중국 정책으로 ▷미국 노동자와 지식재산권 및 환경을 보호하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 추진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과 안보 보장 ▷인권 옹호 등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1년간의 고통과 손실 이후 단결을 통해 치유하고 재건하며, 세계에서 미국의 지위를 회복하겠다”며 “우리는 다시 한번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것이며, 자유 세계를 이끌 신뢰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중 연합 전선을 구축할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국가들과 손을 잡을 것인가.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과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바꿔 2017년에 꺼내 든 구상이다. 이 전략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맞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일단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일본·호주·인도 정상과의 전화통화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 협력을 기대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과 호주, 인도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구축해온 4개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의 일원이다. 바이든 정부는 향후 ‘인도·태평양판 나토’라고 불리는 쿼드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한국·뉴질랜드·베트남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을 추가로 포함하는 ‘쿼드 플러스(Quad Plus)’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선 주요 7개국(G7)에 한국·호주·인도를 추가해 ‘D10(Democracies 10·민주주의 10개국)’으로 개편하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D10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2008년, 미 국무부는 D10 개념을 구상했고,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2014년부터 D10 전략포럼을 열고 있다. G7에 한국·호주·인도를 합치면 세계 경제에서 10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2%다.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16.3%)의 3배나 된다. 미국 경제의 비중은 24.4%, G7은 45.2%다. 미국 입장에선 D10의 경제력으로 볼 때 중국을 견제하는데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가 올여름 G7 정상회의에 한국·호주·인도를 참관국 자격으로 초대하겠다고 밝혔다. G7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은 G7 이외 국가들을 참관국으로 초청할 수 있다. 올해 의장국은 영국이다. 영국 [가디언]은 보리스 존슨 총리의 참관국 초청이 D10 구상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존슨 총리가 제의한 D10 확대 개편 구상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과 일맥상통할 수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존슨 총리가 영국이 개최하는 회담에서 D10을 사실상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력체 형태로 창설해 정치·경제 양면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의 결속과 단합을 높이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그동안 미국의 외교 정책을 알 수 있는 창(窓)의 역할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대로 G7이 D10으로 확대되면서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력체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인도·태평양’에서 군사훈련 하는 유럽 의도는?


▎2012년 제2차 핵 안보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다. / 사진:공동취재단
바이든 정부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보다 큰 규모의 협력체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추진했던 핵 안보정상회의를 최대 외교 성과로 평가하면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이에 비교하기도 했다. 핵 안보정상회의는 2010년 미국 워싱턴에서 50여 개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고, 2년마다 열려왔다. 한국은 2012년 서울에서 제2차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전 세계적으로 고립시키려면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여하는 국가를 대거 확대해 이를 정례 협의체로 만드는 것이 전략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이 경우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많은 소국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반중 연합 전선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나토 29개 회원국은 지난해 12월 채택한 ‘나토 2030’ 보고서에서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민주주의 국가들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중국은 권위주의적 방식을 통해 영토적 야망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중국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은 기본적인 인권도 존중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협박하려 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나토의 이런 보고서는 향후 서방과 중국의 광범위한 대결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나토 전문가인 루이스 사이먼 브뤼셀 자유대 교수는 “나토 보고서는 유럽과 중국의 대결이 미·중처럼 노골적인 힘의 대결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대 독재국가라는 좀 더 광범위한 이념적 충돌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나토 사무총장은 “중국이 나토의 영향권 내에서 군사력과 악의적인 전략적 투자, 허위정보 캠페인을 늘리는 상황에서 나토는 방위를 위한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나토의 주축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올해 초부터 최신예 항공모함인 퀸엘리자베스호를 주축으로 하는 항모전단을 동중국해를 비롯해 서태평양에 장기 파견할 계획이다. 2017년에 취역한 퀸엘리자베스호는 영국 해군 사상 가장 큰 함정으로, 만재배수량 7만600t, 길이 283m, 폭 39m에 달한다. 수직 이착륙 기종인 F-35B 스텔스 전투기 36대를 비롯해 중형 대잠수함 헬기와 공격헬기, 수송용 헬기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다. 특히 영국 해군은 퀸엘리자베스 항모에 탑재된 F-35B를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정비공장에서 정비할 계획이다. 일본 언론들은 서태평양에서 동맹인 미국 이외 국가의 항공모함이 일본과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中 겨냥해 120년 만에 아시아로 모이는 열강


▎지난해 12월, 미국의 핵잠수함 애슈빌함이 프랑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평양에 배치한 핵잠수함인 에머호드함과 괌 인근 해역에서 훈련을 벌이고 있다. / 사진:미 해군
프랑스는 헬기 상륙전단인 잔 다르크 함대와 샤를 드골 항모전단을 서태평양과 동·남중국해에 오는 5월 파견할 계획이다. 헬기탑재 수륙 양용함과 프리깃함으로 구성된 잔 다르크 함대는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등 외딴섬 탈환 작전과 유사한 연합훈련을 미·일 함정들과 처음 실시한다.

2001년 취역한 샤를 드골호는 길이 261.5m, 폭 64.36m 만재배수량 4만2500t으로 크기는 10만t급 규모인 미국 항모의 절반 수준이지만, 전력은 막강하다. 미국 항모가 핵 공격 능력을 제거했기 때문에 핵 공격 능력을 보유한 세계 유일한 항모다. 미국 외에 핵 추진 항모는 샤를 드골호가 유일하다. 레이더 추적을 피할 수 있는 스텔스 방식으로 건조됐다. 프랑스 항모 전단이 동북아에 파견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샤를 드골호는 2019년 4월 벵골만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함정과 연합해상훈련을 한 적이 있다. 독일 정부도 7000t급 프리깃함 1척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파견할 계획이다. 영국·프랑스·독일은 지난해 9월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일방적인 영유권 주장을 일축한 2016년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 판정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성명을 유엔에 제출했었다.

서방 국가들이 함대를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거 파견하는 모습은 19세기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신축조약(베이징 의정서)’이 체결된 지 120년 만에 미·중 대결이 당시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신축조약은 열강 11개국이 1901년 청나라를 압박해 체결한 불평등 조약을 말한다. 이 조약은 1899년 ‘부청멸양(扶淸滅洋: 청을 도와서 서양 오랑캐를 멸하자)’을 기치로 내건 의화단(義和團) 운동에서 비롯됐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 어려움을 겪었던 농민들은 반외세·반제국주의·반기독교를 내걸고 의화단 운동을 벌였다. 의화단 운동세력은 정부군과 함께 외국 공사관을 습격하고 서양 선교사와 가족, 중국 기독교인 5만 명을 살해했다. 열강 8개국은 자국민과 공관 보호 등을 명분으로 연합군을 결성해 베이징을 점령하고 신축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사실상 열강들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하고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120년 전, 의화단 운동에 맞서 열강들이 연합군을 구성했듯이 미국을 중심으로 반중 연합 전선이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19세기에선 열강들이 힘 잃은 중국의 이권을 뜯어가려는 목적이었지만, 21세기에선 갈수록 커지고 있는 중국을 세계 각국이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점이 다르다.

이에 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바이든 대통령과 정면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 주석은 신년사에서 “2021년 창당 100주년을 맞아 중국 공산당은 인민을 중심으로 초심을 견지하며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필코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00조 위안(약 1경 6720조원)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를 기점으로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의 새로운 장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이란,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는 중국에 있어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자 14차 5개년(2021∼2025년) 계획의 첫해이며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의 첫해라는 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中 공산당 “중화 민족 부흥 통해 미국 넘어서겠다”


▎제1차 아편전쟁이 한창이던 1841년 1월 7일, 동인도회사가 만든 철제 증기선 네메시스호(그림 오른쪽)가 청나라 범선 15척을 궤멸시키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특히 시 주석 입장에서 반중 연합 전선에 맞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 실현은 양보할 수 없는 과제다. 시 주석은 올해 경제력과 군사력을 더욱 발전시켜 2035년까지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장기 목표를 적극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지난해 10월 열린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 회의(19기 5중전회)에서 채택한 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제조·기술 강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은 2035년까지 국방 및 군대 현대화를 완료하고 21세기 중반에는 세계 최강 미군을 넘어선다는 장기 목표도 제시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는 7월 창당 100주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은 어느 때보다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 중국의 발전과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현대화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시 주석은 중국이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가 됐다고 선언하고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는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을 실현할 것이라고 천명할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은 “아편전쟁(1840년)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침탈당했던 치욕의 역사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늘날 사회주의 중국은 세계에 우뚝 일어섰고, 그 어떤 세력도 중국 인민과 중화 민족의 진전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중국은 1840년대의 아편전쟁으로부터 마오쩌둥이 건국한 1949년까지를 중국 역사의 ‘백 년 치욕’이라 부른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앵거스 메디슨에 따르면 아편전쟁 발발 20년 전인 1820년 청나라의 GDP는 전 세계의 32.96%를 차지했다. 유럽 전체의 GDP는 22.91%였고, 신생 국가 미국은 1.81%에 불과해 유럽과 미국을 다 합쳐도 중국과 비교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중국을 바로 세워 지금까지 발전시킨 것을 가장 최고의 업적으로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이 독재와 권위주의 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 주석의 중국몽은 강성했던 중화 민족의 부흥을 의미한다. 아편전쟁 이전 세계사에서 차지했던 중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겨냥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는 유럽 연합(EU)과의 포괄적 투자협정(CAI)을 타결하면서 바이든 정부가 추진할 반중 연합 전선 구축 전략에 선제공격을 가했다. 지난해 12월 30일, EU와 포괄적 투자협정 체결에 합의한 것. 7년여에 걸친 협상을 통해 양측이 합의한 투자협정의 특징은 중국이 자국 시장을 대폭 개방했다는 점이다. 유럽 기업들은 전기차·부동산·광고·해양산업·바이오·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내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중국 진출 시 중국 기업과 합작투자사를 차려야 하는 등의 조건은 폐지된다. 중국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외국 기업에 강제 기술이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보조 특히 중국 정부는 그동안 껄끄럽게 생각해왔던 노동 분야에서도 대폭 양보했다. 중국과 EU는 그동안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자행되고 있는 위구르족의 강제노동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해왔다. 그런데 완강하게 버티던 중국 정부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준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중국 정부가 EU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바이든 정부의 반중 연합 전선 구축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EU와 손잡고 반중 전선 균열 유도하는 시진핑


▎지난해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EU 회원국 정상들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 사진:신화통신
미국 언론들은 중국과 EU의 투자협정 타결은 코로나19 팬데믹, 홍콩과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 등으로 국제적 지위에 타격을 입은 중국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소라 굽타 워싱턴 미·중 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에게 있어 EU와의 투자협정 타결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가장 중요한 경제적 성과”라면서 “미국에 대항해 세계 패권을 노리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성공적으로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우신보 상하이 푸단대 미국 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협정 타결은 중국-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전(前) 단계로, 양측의 FTA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서 “중국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을 좌절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 국가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점을 기회로 활용해 자국 경제와의 협력 카드를 제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로선 이번 투자협정 타결로 반중 연합 전선 구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토머스 라이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이번 합의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확실하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바이든 정부는 향후 유럽과 협력 확대 여부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는 앞으로 EU 회원국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해 이번 합의를 무효로 하는 전략에 나설 수도 있다. 이번 합의는 EU 회원국 의회 비준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베른트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유럽 의회가 홍콩 등의 인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우려는 과거 무역 정책 관련 논의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중국과 투자협정 비준에서도 분명히 그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낸 신년 축전에서 “2021년 양국은 선린우호 협력조약 체결 20주년을 토대로 양국의 우호 역사를 선양하고 새로운 관계 발전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미국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면 중국을 방문하는 첫 번째 외국 정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양국의 신냉전이 이처럼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올해 진검승부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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