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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 - 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26) 도굴꾼 천국 된 미다스의 ‘황금 수도’ 고르디온 

가짜들의 무덤 정치, 그 허망한 종말 

권위 세우려 초대형 왕릉 만들었지만 2세기 만에 멸망
죽은 인물 앞세워 ‘적폐 청산’ 외치는 한국 정치와 겹쳐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 중부 프리지아 지역에는 고분 120여 기가 평원을 메우고 있다. 기원전 8세기 프리지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이 있던 곳이다. / 사진:유민호
'이노베이터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 직역하면 ‘창조자의 모순’ 정도로 풀이되는 말이다. 창조자가 되는 순간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악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997년 하버드대 교수이자 기업인 클레이턴 크리스턴슨이 창안한 용어로, 20세기 말 ‘닷컴 열풍’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당대의 유행어이기도 하다. 혁신자가 만들어 낸 새로운 기술이 여기저기 구질서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에서 ‘파괴적인 창조(Disruptive innovation)’라는 단어도 반드시 따라붙는다.

사실 21세기 기준이든, 구시대 상식으로 보든 ‘창조자=파괴자’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즉 ‘옛것을 연구해 새것을 알아내면 스승이 될 만하다’는 달콤한 말도 있지만, 현실은 좀 더 척박하다. 역사, 아니 회사나 가족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새것이 등장하는 순간 옛것은 퇴출당하기 마련이다.

이미 저승으로 간 사람이 주인공


▎프리지아의 미다스 왕이 아버지의 시신을 안치한 곳으로 알려진 봉분. 높이 53m 봉분 내부에는 의식을 행할 수 있는 가로·세로 2m 공간도 마련돼 있다. / 사진:유민호
창조자의 모순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새것’에 관한 부분이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그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자신은 창조자라고 주장한다. 개혁·창조·혁신 나아가 혁명이란 말까지 남발하면서 구시대와의 종식을 선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짜로, ‘구관이 명관’이란 불만과 함께 사라져간다.

클레이턴이 말한 창조자는 기존과 다르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과 가치, 나아가 새로운 네트워크의 탄생’이 진짜 창조자의 공적이다. MBA 신임 재벌 총수를 내세운 얼굴의 변화만이 아니라, 시장·가치·네트워크의 창조가 ‘새것’이 갖는 진짜 의미다. 이노베이터 딜레마란 말이 등장하기 3년 전인 1994년 창조된 ‘아마존닷컴’, 2007년 6월 이래 전 세계를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정도로 바꾼 애플의 아이폰은 창조자의 진짜 얼굴과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증명해주는 최적의 본보기들이다.

21세기 한국의 모습을 보면 ‘페이크(Fake) 창조자’가 넘치고도 넘친다. 경제계에는 유독 창조자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대를 이은 충성’이 창조 경제인의 실체다. 2021년 신문·방송을 보면 재벌 4세와 5세, 나아가 ‘범(汎)’ 이란 한자로 이어진 재벌가(家)란 용어도 일상화된 듯하다. 물론 재벌 후손이라 해서 나쁘게 몰아갈 수만은 없다. 피만 이어받았을 뿐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벌의 자식이란 타이틀을 뺄 경우, 뭐가 특별해서 스티브 잡스 스타일 발표 무대에 올라섰는지 알기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다.

정치 무대는 창조자의 모순 논리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새로운 정치를 통해 구체제·구질서·구시대 전부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보통 개혁이란 말에서 출발하지만, 어제에 대한 증오나 반발이 강할 경우 혁명이란 단어도 등장한다. 2021년 한국 정치는 개혁과 혁명이 오가는 수많은 창조자로 채워진 세계로 느껴진다. 기억에도 새로운 적폐청산은 창조자의 최고 업적 중 하나다. 검투사의 칼부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모두 흥분하면서 손뼉을 쳤지만, 언제부터 허탈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장·가치·네트워크’가 전혀 안 보인다. ‘과거 때려 부수기’만 난무한다.

가관인 것은 과거 때려 부수기와 병행되는 이벤트다. 달콤한 과거의 부활이 이벤트의 핵심이다. 21세기 한국 정치의 수호신이 될 법한, 적폐청산의 근거이자 상징으로 받들어질 만한 인물의 등장이다. 산 사람이 아니라, 이미 저승으로 간 사람이 주인공이다. 바로 ‘무덤 정치’다. 현재 한국에서 누가 그 같은 숭고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본인이 살아 돌아와 본다면 황당해할 상황이지만, 무덤 정치는 어느 틈엔가 과거 때려 부수기의 근거이자 정통성으로 활용되고 있다.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구체제를 뒤엎는 것이 창조자의 임무지만, 거꾸로 무덤 정치가 나타나 구체제는 물론 신체제를 지배하는 식으로 나아간다.

알렉산더 대왕 시신 쟁탈전


▎고대 로마의 귀족 저택을 장식하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모자이크. 급사한 대왕의 시신은 권력 쟁탈전의 도구로 쓰인다.
세계적으로도 무덤 정치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영웅 알렉산더 대왕을 둘러싼 역사는 가장 오래된 무덤 정치의 본보기 중 하나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23년 6월, 33세 나이로 세상과 결별한다. 마케도니아로 돌아가자던 장군들의 요청을 무시하고 객지인 바빌로니아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알렉산더 사인이 독살이란 얘기는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렉산더의 서자에 의해 대제국이 이어지는 듯했지만, 결국 광활한 알렉산더 정복지는 4명의 장군에 의해 4개 지역으로 나눠진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소아시아와 트라키아(발칸반도 남동부 지역)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4개 지역이다.

네 장군은 자신이 차지한 왕국의 정통성을 모두 알렉산더에게서 구했다. 바로 무덤 정치다. 무덤 정치의 핵심은 유해다. 죽은 알렉산더의 시신을 가진 인물이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는다. 알렉산더 유해를 서로 차지하려고 난리를 친 것은 당연하다. 상식적으로 볼 때 알렉산더는 고향인 마케도니아에 묻히는 것이 순리다. 아버지 필립 2세가 묻힌 마케도니아 아이가이(Aegae)가 최종 목적지다. 장군들의 합의로 유해는 바빌로니아에서 아이가이로 이동된다.

그런데 도중에 납치 사건이 발생한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범인이다. 그 과정에서 바빌로니아를 지배한 셀레우코스와 충돌한다. 알렉산더 시신 납치사건을 계기로,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사이에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더 시신을 나일 강 중류 멤피스로 옮긴다. 이후 지중해로 통하는 나일 강 하류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장지로 정한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늘날 고대 7대 불가사의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도시다. 대규모 도서관과 초고층 파로스 등대는 번영의 상징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대규모 사원을 건설한 뒤 자신의 유물과 알렉산더 무덤을 동격으로 전시하면서 신격화한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즉 호랑이의 위엄을 빌린 여우라고나 할까? 알렉산더 영광을 통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권위가 이집트 전체에 선포된다. 두 사람은 동급의 파라오로서, 이집트인 모두가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는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알렉산더 사후 4개 왕국 가운데 가장 오래갔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에 의해 멸망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마지막 여왕이다.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클레오파트라 이집트를 멸망시킨 뒤 알렉산더 무덤을 참배한다. 당시 혹자가 아우구스투스에게 ‘프톨레마이오스 무덤도 보겠느냐’고 묻는다. 아우구스투스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공동묘지에 들린 것이 아니다. 영웅 알렉산더를 만나기 위해 왔다.” 알렉산더에 대한 로마인들의 남다른 자세는 종신 독재자 카이사르의 행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더는 내 나이에 그토록 많은 나라를 정복했는데, 나는 이 나이까지 기억에 남을 일을 한 것이 없다”며 알렉산더 흉상 앞에서 눈물 흘리기도 했다.

알렉산더 시신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를 지키는 무덤 정치의 도구로 활용됐다. 그러나 대제국 로마가 들어서면서 호가호위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알렉산더 신전은 로마 전체를 위한 무덤정치의 현장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와 비교할 때 크게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카이사르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알렉산더와 동격으로 취급하면서 정통성을 다지는 식의, 호가호위 무덤 정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프톨레마이오스를 빛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알렉산더가 아닌, 로마 전체의 영광과 함께 가는 ‘목적으로서의’ 무덤 정치다.

황제 스스로가 신으로 추앙되던 시대가 로마다. 알렉산더 권위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색깔 만들기에 전력한 나라가 로마다. 존경과 기억으로서의 무덤정치는 존재하지만, 호가호위 권위에 무심했던 인물이 바로 로마 황제들이다. 언제나 남이 아니라, 나만의 정치와 권위 그리고 정통성에 집착했던 시대가 바로 로마다. 당연하지만,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존경한 알렉산더는 이후 로마 황제나 지도자들의 필수방문 성지로 떠오른다.

고르디우스 매듭의 왕국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자리에 재건된 카이트베이 요새. 요새 안엔 이슬람사원이 들어서 있다. 석재는 지진으로 무너진 등대 원석을 많이 썼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인간 세계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웅 알렉산더를 통한 무덤 정치는 5세기에 접어들면서 한순간 사라진다. 알렉산더를 찾던 사람의 행렬이 끊기고, 무덤을 에워싸던 신전도 한순간 무너져 내린다. 알렉산더 무덤의 행방은 21세기 고고학자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 곳곳에 후보 지역이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기원전 4세기 말부터 900여년간 이어진 알렉산더 무덤은 왜 한순간 사라졌을까? 기독교도에 의한 파괴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은 392년이다. 기독교는 일신교다. 아무리 알렉산더라지만, 신으로 추앙되던 무덤은 파괴대상 0순위에 올라선다. 부정하고 파괴할수록 기독교 신에게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던 시대다. 로마의 국교라는 권위를 배경으로 한 기독교도의 조직적인 파괴가 대제국 전역에서 발생한다.

유럽 박물관에 가면 목이 잘린 흉상이나, 부서진 코와 칼로 짓이겨진 얼굴 모습의 조각품이 즐비하다. 그리스 로마 당시 제작된 것이라면, 기독교도에 의한 파괴의 결과라 보면 된다. 알렉산드리아에 묻힌 영웅의 무덤은 그 같은 상황 속에서 철저히 파괴되고 잊힌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를 위한 호가호위 전시품으로서의 무덤, 로마 황제와 시민이 진심으로 존경했던 영웅으로서의 알렉산더 신전은 7세기 말부터 또 다른 시련에 봉착한다. 이슬람의 출현이다. 기독교에서처럼, 일신교 이슬람 신자에 의해 한 번 더 초토화된다. 그 결과 무덤의 구체적인 위치조차도 수수께끼로 남게 된다.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 중부의 고르디온(Gordion) 지방은 고대국가가 펼친 무덤 정치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중 하나다. 물론 무덤 정치의 본보기로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더 좋은 본보기는 없다. 피라미드는 살아있는 신파라오가 태양으로 채워진 하늘로 올라가는 삼각형 계단에 해당한다. 죽은 뒤 피라미드 내부 어딘가에 묻힌 뒤, 뒤를 이은 파라오의 권위와 정통성을 다지는 역할을 한다. 크면 클수록 파라오의 권위와 정통성도 커진다. 터키 고르디온은 그 같은 차원의 무덤 정치의 메소포타미아 버전이라 보면 된다.

고르디온이라고 하면 어딘가에서 한번쯤 들어본 지명일듯하다. 그 유명한 ‘고르디우스 매듭(Gordian Knot)’의 탄생지다. 알렉산더 대왕 스타일의 이노베이터 딜레마라고나 할까? 구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시장·가치·네트워크로서의 고르디우스 매듭이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가 고르디온 정복에 나서기 전, 신비스러운 예언 하나가 표류한다. 신만을 위한 마차 바퀴에 이어진, 복잡하게 헝클어진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 최종 왕자가 될 것이란 예언이다. 당시 아시아는 지금과 달리,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만을 의미한다. 매듭은 신전용 마차와 함께 신전 안에 보관돼 있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가 점령하고 있던 고르디온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고르디우스 매듭 테스트에 직면한다. 알렉산더 이전에 수많은 영웅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한 난제다.

알렉산더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묶인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던 칼로 매듭 전체를 양분한다. 바퀴에 얽힌 매듭이 풀리면서 마차가 움직일 수 있게 된다. 21세기 기준으로 본다면 아주 무식한 방법이지만, 신을 태운 마차에 칼을 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 신을 모독할 경우 저주가 자자손손 이어질 것이라 믿던 시대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자신이 제우스의 아들이라 믿고 있었다.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피를 받은 이상, 다른 신들로부터 저주받을 거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서라벌보다 1400년 앞선 고르디온 왕릉


▎기원전 1세기 세워진 콤마게네 왕국 안티오코스 1세의 무덤. 무덤 높이만 50여m,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5개의 신상(神像) 높이도 9m에 달한다. / 사진:유민호
고르디온은 넓은 평원을 낀 도시다. 기원전 2300여 년 전 청동기 시대부터 번성한 곳이지만, 특히 유명한 것은 기원전 8세기 프리지아(Phrygia) 왕국 때다. 황금 손으로 알려진 미다스(Midas)가 통치자로 군림했던, 프리지아의 수도가 고르디온이다. 손을 대는 순간 금으로 변한 황금 천국이 미다스 왕국의 이미지다. 미다스 사후 400여 년 뒤 알렉산더가 내륙의 고르디온에 들른 이유도 황금 때문이었을 공산이 크다.

고르디온을 무덤 정치의 현장이라 할 때, 그 증거에 해당하는 것은 평야에 들어선 120여 개의 크고 작은 무덤이다. 미다스 왕이 살았던 궁전은 폐허로 변했지만, 크고 작은 인공 무덤이 고르디온의 풍경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황금 천국 고르디온이 누린 번영의 증거다. 무덤의 수나 규모를 통해 볼 때 기원전 8세기 아나톨리아를 대표하는 부자나라의 수도가 바로 고르디온이다.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초대형 인공 유적을 가진 지역은 고르디온이 유일하다.

인공 무덤 중 관광객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은 높이 53m의 투물루스(Tumulus)다. 미다스 아버지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다. 경주의 왕릉들보다 약 1400년 전에 세워졌다.

일직선으로 50m 정도 무덤 안으로 들어가면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심부엔 시신을 안치했고, 의식을 행할만한 가로·세로 2m 정도의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인상 깊은 것은 시신 보관실의 재료다. 대리석이나 석회석이 아니라, 굵기 3m, 길이 20m 정도의 통나무로 만들었다. 2800년 된 통나무들이라고 한다. 소나무 계통인 시더(Cedar)가 주류다. 어릴 때 기억이지만, 학교 안에 일직선으로 올라간 초대형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히말라야 시타’라는 이름의 소나무로, 모두가 자랑하는 교목(校木)으로 통했다. 잊고 지냈던 반세기 전의 기억이 미다스 아버지 무덤을 통해 재생된 듯하다.

황금의 땅에 들어선 120여 개의 무덤이라고 하지만, 기원전 6세기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접어든다. 기원전 6세기 들어 페르시아가 고르디온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해서다. 미다스가 꿈꾼 무덤 정치의 효능도 불과 200여 년 만에 끝난 셈이다. 무덤 정치를 통한 정통성과 권위는커녕 모두에게 무관심한 도굴의 현장으로 추락하게 된다. 동방원정 도중 알렉산더가 들렀을 당시는 이미 황금 천국의 약발이 끝났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무명의 무덤 몇 군데를 들렀지만, 도굴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멀리서 보면 둥근 산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폭탄에 짓이겨진 땅처럼 곳곳이 깊게 파헤쳐져 있다. 한때 모두에게 내세웠을 무덤 정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시신에 소금 뿌리는 반인륜적 파묘론


▎지난해 11월 평양 금수산 태양궁전 광장에서 수도당원사단 전투원들이 수해복구전 보고대회를 열고 있다. / 사진:뉴시스
20세기 이후 무덤 정치는 공산 독재국가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가장 화려하고 거창한 장소로 북한의 금수산 태양궁전만 한 곳도 없을 듯하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체를 보존하고 있는 장소로 북한 제1의 국가적 성지로 취급되고 있다. 북한 주민이라면, 임의가 아니라 의무적으로 들러야만 하는 곳이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 벌어지는 무덤 정치는 새 발의 피로 느껴지는 곳이다. 2층에는 김일성, 1층에는 김정일의 시신이 있다고 한다. 평양에 들르는 한국 정치가들을 통해 가끔 신문·방송에 등장한다.

금수산 태양궁전을 접할 때마다 느끼지만,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죽은 사람에게 죄를 묻고 싶은 생각도, 자격도 없다. 김일성 부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전 세계에 흩어진 무덤 정치의 현장을 보면 한 가지 결론으로 모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10일을 못 간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고대에서 근대까지 수백 년 이상 지속한 경우도 있지만, 20세기 이후를 보면 100년을 넘기는 지도자의 무덤은 극히 드물다.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예외는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풍운아 존 F. 케네디 대통령조차 흑백필름 속 아이돌로 존재할 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공산 독재국가의 경우 단순히 잊히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철저히 파괴되고, 죽은 시신에조차 소금을 뿌리는 살벌한 상황도 나타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파묘(破墓)론은 공산 독재국가에서 행해지던 반인륜적 행위를 모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연례행사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덤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죽은 자를 기리고 흠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과연 정치적으로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열기가 사라진 상태지만, 최측근의 총에 의해 살해된 대통령에 기대는 무덤 정치도 마찬가지다. 죽은 인물에 대한 무덤 정치보다, 현재 살아있는 정치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 자랑, 조상 찬미에 나서는 것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다.

서로마를 기준으로 할 때, 제정 로마의 역사는 500년간 이어진다. 짧다면 짧지만, 동서로 이어진 대제국이 무려 500년간 지속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그만큼 우수하고도 남다른 건국 정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통치이념이나 국정운영 방식이 있었을까? 정답은 제정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를 통한 무덤 정치에 나서지 않았다. 역사책은 카이사르를 종신 독재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전면에 나설 당시 카이사르의 위상은 전혀 달랐다. 로마인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로마의 수호신이자 영웅이었다. 생전 카이사르는 전리품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줬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축재와 무관한 서민 지도자다. 카이사르의 그런 모습 하나만으로도 무덤 정치의 상징으로 떠오를 자격이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 죽음을 이용한 정통성 확보에 나서지 않았다. 카이사르 무덤으로서의 신전을 짓지만, 크기나 장식이란 측면에서 보면 왜소하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로만 포럼(Roman Forum) 주변에 가면 아직도 접할 수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모르고 스쳐 지나갔다. 아예 작정하고 찾지 않는 한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 카이사르의 무덤이다. 너무도 작고 특별한 장식도 없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창조자 모순과 전력으로 마주했다. 황제가 되는 순간, 재정·군사·원로원·도시계획 개혁에 집중한다. 원로원과의 합의를 거친, 민주주의 절차에 기초한 개혁이다. 제정 로마의 반석이 아우구스투스를 통해 똑바로 세워진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아우구스투스가 아니었다면 500년 서로마의 역사는 절반 정도에서 그쳤을 것이다. 뿌리를 분명히 세운 뒤, 내일에 매진하는 전통을 창조해낸 인물이 바로 아우구스투스다. 아버지 필립 2세가 남긴 땅과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 동쪽으로만 진군하다가 삶을 마친 인물이 알렉산더다. 죽음을 맞이한 최후의 장소도 객지인 바빌로니아이고, 묻힌 곳도 타향인 알렉산드리아다. 아우구스투스가 직접 찾아가 경배를 한 것은 내일에 주목하는 동병상련 지도자로서의 운명과 세계관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약해지고 수동적일수록 어제에 대한 추억도 한층 더 강해진다. 앞서 화무십일홍에 반드시 따라붙는 말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아무리 강한 권력도 10년을 못 넘긴다. 하물며 살아있는 권력조차 10년이 한계인데, 무덤 정치는 얼마나 갈 수 있을까?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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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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