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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 산책]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 

‘민주주의 위기’시대에 듣는 재야 어른의 목소리 

천하 대의 늘 염두에 두는 ‘선우후락(先憂後樂)’ 인생… 운동권 경력 내세운 무절제한 권력 지망생들에게 ‘죽비’

▎김정남 선생은 1960년대부터 군사독재에 맞서 재야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재야의 어른이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독립을 얻은 신생국가들 가운데 반세기 안에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를 달성한 대표적 사례로 공인되고 있다. 이 사실은 이 과정에 관한 학문적 저술이 국내외에서 상당히 많이 출판된 데서도 입증되고 있다. 그것들은 대체로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제 아래, ‘발전국가’ 모델에 따른 여러 경제이론과 통계수치를 인용한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취를 비판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내외의 저술도 적지 않다. 그것들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또는 ‘관료적 권위주의’ 또는 ‘종속적 발전’의 시각을 보여준다. 위에 제시한 책은 비록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앞의 시각을 배척하고 뒤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 그 자체가 억압을 받던 1960년대 이후 민주화가 실현된 2000년대까지 40년에 걸쳐 초지일관으로 재야에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이끌었던 김정남(金正男·79) 전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한인섭(韓寅燮·62)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면담한 뒤 그 내용을 체계를 세워 편집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김정남 전 수석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그의 삶의 궤적 자체가 이 책의 골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전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대전고등학교에서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이끌며 4월혁명을 체험한 데 이어 1961년 4월에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이후 쿠데타를 통해 곧 등장한 군사정부에 맞서 견결히 싸웠다. 1963년에는 문리대의 군정연장반대시위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선두에 섰으며, 1964년에는 ‘굴욕적’인 한일수교 협상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가 이른바 불꽃회사건에 연루돼 8개월에 걸쳐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존재와 능력이 돋보인 때는 1972년 10월에 시작된 유신시대였다. 이 암울했던 시대에 횃불을 들었던 민주회복 국민회의의 발족 이후 그는 민주화운동 및 인권운동에 관련된 갖가지 사건들에서 그때마다 시국선언문을 기초했으며 특히 양심선언 운동을 제의해 실현할 수 있었다.

자리 연연하지 않고 진퇴 분명히 한 선비


▎김정남 선생과 한인섭 대담서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표지. / 사진:연합뉴스
그는 5공 시대에도 자신에게 닥쳐올 엄청난 위난을 고려하지 않고 투쟁 일선에 나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들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가 컸던 일은 1987년에 일어난 박종철고문치사은폐사건의 폭로였다. 그가 정치학과 동기생 이부영(훗날 열린우리당 의장·3선 국회의원)군, 그리고 역시 정치학과 동기생 최환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과 함께 성사시킨 이 일은 이미 비틀거리던 5공 정권을 강타했고, 그 결과 국민적 6월항쟁이 촉발될 수 있었으며 그 연장선 위에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위원 겸 대통령 후보의 ‘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선언’ 곧 6·29선언이 발표될 수 있었다. 2017년에 개봉된 영화 [1987]은 바로 이 사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재야에 머물던 그가 정부에 몸을 담은 계기는 김영삼 정부의 출범이었다. 그는 재야 시절 이미 인연을 맺었던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가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동맹보다 민족이 더 중요하다”라는 취지의 취임사를 썼으며, 동시에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기용된 것이다. 이 시기에 그는 전교조의 사실상 합법화를 비롯해 교육문화 부문에서의 행정에 변화를 시도했다. 자연히 색깔 논쟁에 휘말려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이때 정부가 미안한 마음에서 청와대 밖의 어느 기관장 자리를 제의했으나 물리치고 표표히 재야로 돌아갔다. 이것은 그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진퇴를 분명히 하는 선비정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력의 그의 회고는 두 차례 출판됐었다. 그가 직접 집필한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창비, 2005), 그리고 역시 그가 직접 집필한 [이 사람을 보라: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람들](두레, 2012)이다.

이 책들에서 그는 박정희 정권 이후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 세대에 걸쳐 국가폭력이 자행한 수많은 시국사건과 공안사건들 그리고 그것들에 과감히 맞선 민주화 운동가들의 일련의 투쟁을 자세히 회고했다.

이 두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우선 윤보선 전 대통령과 부인 공덕귀 여사, 그리고 훗날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포함됐으며, 김수환·강원룡·함석헌·김지하·지학순·이병린·이돈명· 강신옥·송건호·리영희·전태일·문익환·박형규·오원춘·서경원·박종철·홍성우·박원순·김상진·박현채(무순) 등이 포함됐다. 이어 조직 또는 기구로는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주회복국민회의·기독교교회협의회·정의구현전국사제단·구속자가족협의회·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톨릭농민회 등이 포함됐다.

사건으로는 제1차 및 제2차 인민혁명당사건, 김대중납치사건 및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남산야외음악당부활절사건, 함평고구마사건, 우리의 교육지표사건, 민청학련사건, 3·1민주구국선언사건, 겨울공화국사건, 동일방직노조사건, YH사건, 남민전사건, 미문화원방화점거사건, 보도지침사건 등이 포함됐으며, 운동으로는 동아일보 기자들과 조선일보 기자들이 차례로 전개한 언론자유실천운동 그리고 김재규구명운동 및 김영삼총재단식운동 등이 포함됐다.

국가의 진로 성찰에 도움 주는 책

이 두 책의 후속이 바로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이다. 앞서 두 책과 내용이 다소 겹치지만, 민주화운동세력이 주축이 된 문재인정부 시대에 ‘민주주의 후퇴’론 또는 ‘민주주의 위기’론이 확산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 오늘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출판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천하의 대의(大義)를 늘 염두에 두면서 ‘선우후락(先憂後樂)’ 곧 ‘시대의 어려움을 내가 먼저 택하고 즐거움을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자세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러한 인품을 지녔기에 그는 선출직이건 임명직이건 그 어느 것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재야에서 어른의 목소리를 내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했기에 그는 오늘날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일부 ‘진보’ 세력, 특히 운동권 경력을 앞세워 ‘한 자리’를 얻었거나 얻으려고 하는 무절제한 권력 지망생들을 향해 꾸짖을 수 있었다.

자신의 성격과 철학에 따라 운동권을 택하지 않고 제도권을 택했다고 하여 비도덕적 또는 출세 지향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제도권에 있으면서도 늘 정직하고 성실하게 봉직한 인재도 많았으며 그들의 역할이 대한민국의 성취에 이바지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가시밭길과 같은 운동권을 택해 가난과 고문 그리고 감옥생활을 마다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긴 지사들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가 모두 정파를 떠나 국가의 진로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는 그러한 성찰에 도움을 줄 것이다.

-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hakjoon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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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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