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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2021 격랑의 한반도, 4강외교 해법을 찾는다] 바이든-문재인의 대북정책 엇박자 

문재인이 운전하는 한반도 평화 열차 바이든이 선뜻 올라탈까 

국내외 지지 못 얻은 북한 원전 건설 구상, 논란 일자 청와대 기획설 차단
북·중 러브콜 보내는 한국과 반중 전선 강화하려는 미국의 동상이몽


▎문재인 대통령은 2월 4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첫 정상 간 전화 통화를 통해 한반도 정세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연합뉴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한 회의 자료를 낭독하면 장관들은 부지런히 받아 적는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토론은 없다. 대통령이 질문하지 않는 이상 장관들이 발언을 신청해서 특정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대통령의 말씀은 ‘어명(御命)’으로서 1~2주 안에 이행 계획을 수석비서관실에 보고해야 한다. 각 수석과 비서관들은 부처의 ‘대통령 말씀’ 복명 실태를 점검한다. 따라서 장관들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야 한다.

새해 들어서자마자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5월 2~4일경 산업부에서 작성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4월 7일 서울·부산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신북풍’ 혹은 ‘터질 게 터졌다’는 등의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쟁점은 첫째, 청와대의 지시 강도 여부로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독자적으로 작성했는지 여부다. 둘째, 어느 단계까지 검토가 됐으며 감사원에 의해 밝혀진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파일 530개 폐기작업에 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문건 17건이 포함됐느냐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구체적 내용을 담은 USB를 전달했는지 여부도 쟁점이다.

공무원에게 BH 관심사항은 최우선 순위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주겠다는 모순적인 정책을 어떻게 돌파하려고 했는지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2018년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대북정책이 집권 1년 만에 만개하던 시기였다. 특히 집권 2년차라 레임덕 없이 정부 정책에 힘이 실리고 공무원들이 복종하던 시기였다. 청와대가 눈만 찡긋해도 부처들이 알아서 기는 시기이고 공무원들은 승진을 위해 온갖 연줄을 동원해 청와대 파견을 도모했다. 파견이 끝난 뒤 부처에 복귀하면 진급과 요직 발령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공무원은 업무 처리에 있어 BH(청와대) 관심사항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다음이 언론 보도 사안이다. 대통령-수석-장관-차관-실장-국·과장으로 이어지는 업무의 위계에 있어 어떤 업무가 주목받는지를 눈치 빠르게 간파해야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다. 특히 정권에 상관없이 업무와 인맥의 흐름을 이해한다면, 행정고시 합격 이후 1급 실장이나 차관보 보직은 따놓은 당상이다. 과거 과천청사 시대부터 세종 관가에 이르기까지 청와대 보고자료를 작성하는 일은 부처의 에이스들이 참여했다.

2018년 당시 산업부 업무에서 탈원전은 BH에 일보를 할 정도로 가장 핫한 업무였다. 각종 남북경제협력 방안 역시 뜨거운 업무였다. VIP(대통령)의 관심 사항이 경협인 만큼 전 경제부처와 연구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심지어 일부 기관들은 경협 전문가를 특채할 정도였고, 공무원들은 연구용역을 외부에 발주했다. 일부 진보성향 연구자들은 두둑한 연구비가 들어오는 ‘북한 특수’를 누렸다. 산업부의 북한 원전 보고 자료의 작성은 BH의 의중을 파악한 귀납적인 업무 처리였다.

범부처 차원에서 남북경협과 평화 관련 업무를 경쟁적으로 수석비서관실에 직보하는 상황에서 ‘북한 전력’을 다루는 산업부도 당연히 관련보고서를 작성했다. 국토교통부는 북한과 철도·도로 연결, 과기부 역시 유영민 장관 시절 원전 협력, 정보통신부는 ICT 분야 협력, 농림부는 비료·농약·농기계 등 농자재 지원, 해양수산부는 해운항만과 공동어로 등 수산협력 구체화 방안을 마련하거나 산하 국책연구원 혹은 전문가에게 외주를 줬다.

전력은 비핵화 보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당근’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환담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북한이 가장 매력을 느낄 만한 분야는 전력이었다. 전력은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1948년 5월 14일 서울에서 요금을 지불한다고 사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화천발전소에서 송전하는 전력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단전함으로써 서울은 암흑으로 변했었다. 일제의 북측 중화학 공업, 남측 농업 발전 정책으로 발전소의 92%가 북측에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남측의 안재홍 민정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전기 수입을 간청했지만 북측은 미국 개입을 이유로 속칭 ‘5·14 송전중단’을 결행했다. 하지만 분단이 반세기를 넘으면서 북한의 전력난은 투자 부족과 노후화 등으로 고질병이 됐다. 3년 전에 방문한 평안북도 수풍발전소의 발전용량은 70만㎾에서 5만㎾로 망가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전력은 비핵화 보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최우선적인 당근이었다. 1994년 10월 1차 북핵 위기의 결과인 제네바 합의에서도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는 대가로 함경남도 신포에 100만㎾급 원전 2기를 건설해주기로 했었다. 과거 추진사례를 들어 2018년 북한 원전 건설 방안은 청와대와 산자부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됐을 터였다. 부처 공무원들에게 북한 관련 프로젝트는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애매한” 계륵(鷄肋) 같은 존재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4억5000만 달러의 뒷돈이 북측에 전달됐다는 팩트는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2003년 대북 송금 특검에서 밝혀졌다. 당시 박지원 문화부 장관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엄낙용 산업은행 총재의 폭로로 진실이 밝혀진 이후 일반 행정부처 공무원들에게 대북 업무는 불가근불가원이 된 것이다.

대북 업무는 상부에서 여간 챙기지 않으면 비(非)안보 부처 공무원들 스스로 절대 추진하지 않는다. 특별한 관심도 없으며 산업부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장·차관이 청와대 회의를 다녀온 이후 실국장이 올인하자 사무관, 서기관 공무원들은 과거 DJ정부 시절부터 검토했던 자료를 현실에 맞게 각색하고 깔끔한 보고서로 작성해 BH에 올렸을 것이다. 당시 산업부는 문재인 정부 초대 백운규 장관이 탈원전에 총대를 메고 부하 공무원들에게 ‘너 죽을래’라고 윽박지르던 시절이었다.

문 대통령이 북에 준 USB에는 무슨 내용 들었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경제 구상’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서해안 산업·물류·교통과 동해권 에너지·자원, DMZ(비무장지대) 환경·관광 등 3대 벨트를 통해서 남북 간 경제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심은 에너지 제공과 남북 철도·도로 연결이었으며 제2의 개성공단 건설 등도 주요 추진 대상이었다. 북한 전력 제공은 송전 방식과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으로 구분된다. 송전 방식은 2005년 7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200만㎾를 북한에 보내는 ‘중대제안’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당시 산업부, 한전과는 사전협의가 없었다.

북한 현지 원전 건설은 함경남도 신포에 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이었다. 2001년 집권한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핵개발을 재개한 김정일 정권의 갈등으로 원전 건설은 토목공사가 30% 진행된 상황에서 중단됐다. 제네바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되었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해체됐다. 당시 국정원 통일부 공무원들이 신포 현지에서 2년 이상 체류하며 공사를 독려했고, 한국중공업 등이 공사에 참여했었다. 당시 사업이 이번 산업부의 6쪽짜리 보고서에서도 검토됐다.

문 대통령은 3대 분야를 중심으로 경협 추진 내용을 USB에 담아서 북측 판문각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최근 원전 논란과 관련 참모들의 추론과 과잉 반응은 매우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조한기 당시 의전 비서관은 USB 전달 의혹에 ‘기가 찬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언급했다가 하루 만에 청와대의 확인으로 “도보다리에서 건넨 것이 아니란 뜻”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자료는 박근혜 정부에서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SNS에 올렸다. 하지만 산업부는 “해당 자료가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북한 관련 문건이나 사업은 여권 인사라고 모두 파악하고 아는 것은 아니다. 내부 핵심그룹에서도 극비사항이라 국정원장 등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여 인사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과잉충성파들의 쓸데없는 추론이나 경솔한 부인은 의혹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산업부 공무원이 언론을 보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과천이나 세종 관가에서 공무원증을 하루라도 달고 일해본 인사라면 쓴웃음을 짓을 수밖에 없다.

이제 세종 관가에서는 실무공무원들이 업무일기를 작성하는 것이 필수라고 한다. 업무를 누가 지시했는지 메모해놓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서기관, 사무관이 ‘뽀요이스(Pohjois) 신내림’으로 작성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지 않기 위해서다. ‘뽀요이스’는 핀란드어로 북쪽이란 뜻이며 해당 공무원이 유학한 장소라고 한다. 요컨대, 북한 원전 건설 문건은 산업부 공무원들의 아닌 밤중에 홍두깨 스타일의 ‘신내림’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며 청와대가 총론을 결정하고 산업부가 각론을 채우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합작물이다.

북한 원전 건설 구상이 이율배반적인 이유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피의자 심문에 출석한 2월 8일 대전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백 전 장관의 구속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야당은 이적행위라며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전달한 USB 공개를 강하게 요구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해당 USB를 미국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에게도 전달했으며 원전의 ‘원’ 자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USB 공개와 관련 “색깔론이 아니면 야당도 명운을 걸어야 한다”고 강공을 폈다. 하지만 정세균 총리는 USB 공개는 지혜롭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내용을 공개하면 민심이 어디로 갈지 판단하는 수준은 총리급은 되어야 한다. 존 볼튼 전 보좌관도 남의 나라 정치혼란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며 ‘노코멘트’다. 학생들의 단순 발표 자료가 아닌 이상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남북한 정상 간에 주고받은 문서를 일반인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그래서 비공개가 원칙이나 당시 USB 내용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북한 원전 건설을 위한 산업부의 보고서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이율배반을 해결하는 동시에 평양의 반응이 긍정적이어야 한다. 정부의 북한 원전 검토는 세 가지 점에서 정부 정책과 맞지 않았다. 우선 KEDO가 건설을 중단한 신포지구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와 배치된다. 두 번째 안인 DMZ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은 친환경 기조와 비무장지대 관광 활성화 방침과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신한울 3·4호기를 완공해서 북한에 송전하는 방안은 수천억원의 건설비용 때문에 중단한 것을 북한에 지원하려고 재개한다는 게 논리적이지 못하다. 요컨대 세 가지 난관과 비핵화도 없이 북한에 퍼준다는 논란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결사적으로 산업부 문건을 평가절하하고 부인한 것이다.

특히 원전의 위험성을 앞세워 국내 태양광 업계에 친여 인사들이 우후죽순 개입하는 상황에서 한편으로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누가 봐도 모순이고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도 부정적이다.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북한 원전 건설 변수와도 맞물려 있다. 김정은 정권이 핵무력을 완성해 주기적으로 신무기를 선보이는 상황에서 수조원의 예산이 드는 원전 건설은 코로나로 지친 국민의 눈높이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대통령은 탈원전을 부르짖는데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북한에 원전을 지어줄 궁리를 했다고 믿을 국민이 어디 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만큼 남한의 북한지역 원전 건설계획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을 것이다. 고질적인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제 강점기 총독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38도선 이북에는 원전의 원료가 되는 양질의 우라늄 원광석이 400만t 이상 매장돼 있었다. 남한은 충북 옥천, 진천 등에 겨우 20만t 정도 매장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양이다. 특히 남한의 우라늄은 품질이 좋지 않아 실험실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북한 지역 우라늄은 양질이었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원자력 무기 생산을 검토했던 이유였다.

산업부 보고서 작성된 2018년에 북한도 원전 강조


▎2020년 7월 필리핀 해역에서 미국, 호주, 일본 3국 해군이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 사진:미 해군 페이스북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묘하게도 북한 매체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원전’ 관련 발언이 수차례 소개됐다. 2019년 신년사에는 “조·수력과 풍력, 원자력 발전 능력을 조성”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수력과 조력 그리고 원자력을 비롯한 전망성 있는 에너지 자원을 적극 개발해 더 많은 발전 능력을 조성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에 이어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원전이란 용어도 자취를 감췄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동의 없이 남한이 아무리 계획을 수립해도 실행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은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핵화 수준에서 가능한 것일까? 그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원전 건설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원전은 남북한이 독자적으로 논의해서 지을 수 있는 종류의 시설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고유의 원자로 도안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 원전을 짓는다고 해도 많은 부품을 해외에서 들여오거나 원천기술과 부품 라이선스 계약을 미국 등과 체결해야 한다. 이런 절차 없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기란 불가능하다.

비용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 금호지구에 건설해주기로 했던 경수로 2기는 모두 북한의 열악한 전력망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1000㎽급이었다. 원전을 지어준다 해도 북한 내 전력 공급에 필요한 전력망 구축에 엄청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KEDO의 당시 계획으로도 5억 달러에 달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최소 3배 이상이 소요된다.

또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지 않으면 북한 땅에 원자로를 지을 수 없다. 북한에 원자로 공사 삽질을 시작하는 날을 기준으로 북한은 NPT 회원국이어야 한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은 원전 건설에 가장 끔찍한 딜레마다.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와 2397호는 북한의 특정 핵 관련 활동을 막고 있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프로그램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이번 사안의 전말이 밝혀지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원전 건설 계획이 그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기 위한 누군가의 생각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준비 작업을 마친 진지한 시도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준비 작업을 했는지 전부 검토돼야 한다. 북한 원전 건설은 국내 여론 못지않게 국제적인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문건이 국내 정가를 뒤흔드는 시점에 국제정세 역시 흐름이 심상치 않다. 2월 4일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미 정상이 전화 통화를 했다. 앞서 1월 27일 8개월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격적으로 선제 전화통화를 한 이후라 한·미 정상 간 통화가 늦어지면서 일각에서 ‘코리아 패싱’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미·일 정상 간 전화 통화보다 많이 늦었으나 호주 총리와 통화한 날이니 그런대로 모양새가 갖춰졌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취임 초기에 얼마나 바쁘냐고 인사를 하자 전화 통화를 못할 정도로 바쁘지는 않다고 화답하면서 화기애애했다고 청와대가 32분간의 회담 분위기를 소개했으나, 실제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 당시 통화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 차례의 웃음과 양 정상이 가톨릭 신자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안건에서까지 코드를 맞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의제는 북한 비핵화와 한·미동맹 강화 등이었으나 양측의 언론 발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한·미 정상 간 통화가 보여준 양국의 온도차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정상회담이나 정상 간 통화 이후 발표는 공동성명이나 공동언론 보도문이 아닌 이상 양측의 발표를 비교해서 판단해야 한다.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발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 공동 노력”, 바이든 대통령은 “양국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양측 발표의 결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포괄적인 대북 전략의 조속한 마련에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조속한”이라는 표현 없이 “두 정상은 북한 문제에서 긴밀히 조율하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서로 다른 발표의 근원은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계승 여부다. 청와대는 2018년 북한 원전 건설 문건 작성 이후 이뤄진 싱가포르 합의를 이어나가 또다시 중매자로서 김정은 위원장과 바이든 행정부 간에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백악관의 기류는 “새로운 전략”을 예고하고 있다. 백악관이 밝힌 자료에는 ‘포괄적인 대북 전략’이나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 정착’과 같은 청와대가 발표한 표현이 없다. 북한 비핵화를 통한 북·미 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북한 체제 보장 등은 교과서적인 표현이다. 문 대통령의 원론적인 입장 표명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선뜻 동조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지난 1월 27일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통화 후 백악관은 “두 정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미 및 미·일 정상 통화 이후 발표문에는 분명히 뉘앙스 차이가 있었다.

한·미동맹 강화 부분도 매끄럽지 못했다. 백악관은 통화 후 발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인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약속을 강조했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인 신분으로 문 대통령과 통화했을 때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인 한·미동맹”이라고 표현했다. 백악관은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통화 결과를 발표하면서 양측 동맹을 “인도·태평양과 세계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닻(anchor)”으로 표현하며 “중국 대응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스가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미·일 동맹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주춧돌(Conerstone, 코너스톤)”이라며 “중국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의 통화를 전하는 발표에 중국 논의 대목은 없었다.

두 정상의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전략인 ‘인도·태평양’ 대신 ‘동북아’라고 표현했다. 일본, 호주 등 중국 견제 안보협의체인 ‘쿼드’ 참여 국가와 달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역할은 축소되는 분위기다. 한국은 쿼드 참여 등 중국 압박에 미온적이다. 미국은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소극적인 방침을 알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하는 만남”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꼭 직접 만나서 협의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확산되면 6월 이후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연인들이 눈을 보고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진(眞)짜 속마음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바이든 입장에서는 트럼프와 김정은을 달콤한 이야기로 중매했던 문 대통령의 속 마음을 면전에서 파악하려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 무지의 소산인가 전략적 모호성인가

미국 국무부는 양 정상이 통화한 날 “북 인권 가해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지난해 한국 정부가 통과시킨 대북전단방지법에 상관없이 북한에 정보를 유입하기 위한 캠페인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공개했다. 북한 인권 문제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요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백악관과 청와대가 시간이 갈수록 이인삼각 행보가 아닌 각자 갈 길을 부지런히 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 트럼프가 떠났는데 트럼프 시대를 그리워하며 두 정상이 깜짝 회동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현실과 상상 사이에 혼란이 온다. 트럼프 시대는 지났다는 현실을 망각하고 과거를 계속 그리워하다간 허구의 세계관에 사로잡히고 만다.

최근 동북아 정세는 구한말을 연상시킨다. 119년 전 동맹을 맺었던 영국과 일본이 준(準)동맹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2월 3일 양국은 외무·국방 2+2 회의를 개최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데 힘을 모으자”고 의견 합의를 보았다. 영국은 올해 안에 퀸엘리자베스 항모(6만5000t급)가 일본 열도 남측 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공동 훈련할 계획을 밝혔다. 한·미동맹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와 인권 등 인류 보편적인 핵심가치를 공유해왔다. 한·미가 공유하는 가치를 부정하는 중국 공산당의 창설 100주년을 대통령이 대놓고 축하하는 나라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국 이외에는 없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트위터에 한·미동맹의 상징적 표현인 ‘같이 갑시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중국과 북한에 올인하면서 ‘Go together’를 트윗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인지 모호성으로 위장한 ‘회색 전략’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급 비밀에 해당하는 한·미연합훈련을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청와대의 복안은 트럼프 시절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바이든 행정부와는 맞지 않는다. 신형 대량살상무기를 계속 선보이는 김정은에 대해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미 국무부가 북한의 ‘핵 미사일 확산 의지’를 확인했다고 즉각 반박하는 상황이다. 워싱턴은 북한의 ‘중대 위협’을 강조하는데, 서울은 ‘비핵화 확인’을 내세우며 한·미연합훈련이 북한을 자극할 것이라고 반대한다.

한·미 간 엇박자는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북핵 포기에 온도차 정도가 아니라 불과 얼음 수준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외교수장이 평양에서 ‘특등머저리’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방어적인 한·미연합훈련마저 회피하며 워싱턴과 각을 세우는 데 올인한다. 정의용 장관은 미국을 설득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물밑 외교협상에서 조율해야 할 대북 인식차가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고 있다. ‘VIP 관객’인 평양의 최고지도자를 의식해 워싱턴보다는 평양과 코드를 맞추는 데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화상통화는 상견례로 지나칠 수 있겠지만, 따뜻한 봄날 양국 정상이 워싱턴에서 눈을 마주 보는 날에는 본심을 숨길 수 없는 진실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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