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이슈분석] ‘테슬라 빔’ 타고 천장 뚫은 비트코인의 행로 

10배 먹을 생각이면 10토막도 각오하라 

일론 머스크 15억 달러 들여 비트코인 매입, 인플레 헤지 수단으로 주목
금과 디커플링… 향후 얼마나 많은 기관이 인정하느냐에 따라 가치 요동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15억 달러에 달하는 비트코인 매입을 발표했다. 테슬라 현금성 자산의 7.7%에 달하는 금액이다. / 사진:TED
최근 유동성 급증에 따른 투자 붐을 타고 ‘하이먼 민스키’ 모델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1919~1996)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2008년 금융위기 등 갑작스러운 자산 붕괴를 설명하는 데 인용되곤 한다. 고수익을 노린 모험적 투자가 유행하면서 자산가치가 급등했다가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최종적으로 공황이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버블의 생성과 발달, 그리고 소멸 과정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최근 사람들이 이 모델 얘기를 꺼낸 것은 2018년 비트코인 버블이 꺼질 때였다.

그리고 2021년 2월, 암호화폐 투자자 사이에서 새로운 모델이 유행하고 있다. 이른바 ‘일론 머스크 모델’이다. 하이먼 민스키 모델에 따르면, 거품의 정점을 지난 뒤 ‘공포’와 그에 따른 ‘투매’로 이어지는 급락장이 출현한다. 그러나 이번 비트코인 가격 급등을 하이먼 민스키 모델을 적용해 설명·예측하려고 하는 찰나, 전례 없던 이벤트가 발생했다. ‘테슬라 빔’ 혹은 ‘머스크 빔’이 등장한 것이다.

2월 8일(현지시간) 테슬라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15억 달러어치 비트코인을 매수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그 직후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5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고, 국내에서는 5000만원을 가볍게 돌파했다. 머스크의 영향력은 비단 비트코인에만 미치지 않는다. 머스크가 한마디 하면 자산 가격이 춤을 추다 보니 월가에서는 ‘일론 마켓(Elon Market)’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까지 돌고 있다.

테슬라는 보유한 현금성 자산(2020년 말 1930억 달러)의 약 7.7%로 비트코인을 매수했다. 설사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테슬라 ‘본진’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테슬라의 투자 결정이 달갑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다. 테슬라의 비트코인 구매 사실이 알려진 직후, 골드만삭스 임원 출신의 애널리스트 개리 블랙은 트위터를 통해 “2019년부터 보유하고 있던 테슬라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고 밝혔다. 테슬라 자체만으로도 리스크가 큰 자산인데, 더 리스크가 큰 비트코인에 투자했으니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테슬라 혹은 머스크는 무슨 생각으로 비트코인을 산 것일까. 2018년처럼 비트코인 가격이 꺼진다면 테슬라는 괜찮을까.

비트코인 폭락해도 테슬라 건재할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비트코인 매입 1주일 전, 트위터에 ‘#bitcoin’이라고 암시했다. / 사진:머스크 트위터 캡처
금액만 놓고 보자면, 15억 달러가 테슬라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시장의 평판이다. 그렇지 않아도 월가에서 ‘이단아’로 찍혀 있는 머스크다. 잘못된 투자 결정으로 판명된다면 테슬라 주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테슬라의 비트코인 매수 소식이 알려진 후 JP모건은 “테슬라를 따라 다른 대기업들이 비트코인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유는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JP모건에 따르면 기업들은 보통 내부 자산을 안전한 은행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단기채권 등에 투자한다. 이 자산의 가격 변동률은 1%에 그친다. 이런 포트폴리오에 1%를 비트코인으로 채우면 80%에 달하는 비트코인의 연간 가격변동률로 인해 전체 포트폴리오의 가격변동률도 8%로 올라간다. 투자가 사업 목적이 아닌 한, 이런 투자 위험을 짊어지는 선택을 할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기업이 테슬라 말고 또 있을 수 있을까. 테슬라에 가려서 그렇지 나스닥 상장사 가운데 가장 먼저 비트코인을 매수한 곳은 마이크로스트래티지다. 지난해 9월 비트코인 매수 사실이 처음 알려지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가했다. 마이클 세일러 대표(CEO)는 당시 비트코인 투자 이유를 언론에 이렇게 표현했다. “서서히 녹고 있는 5억 달러짜리 아이스 큐브 위에 앉아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깨닫게 됐다.” 5억 달러는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고, 이게 녹아내린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현금 가치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세일러가 비트코인 투자를 결심한 계기는 코로나19에 따른 무차별적 양적완화에 있었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량으로 돈을 풀었고, 이는 돈값의 하락을 불러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를 타개하기 위해 2020년에만 총 12조 달러를 투입했다. 2021년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125%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지출 비용에 따른 주요국의 채무비율(124%)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채무비율은 89%였다. 그야말로 ‘복사’ 수준으로 시장에 돈을 뿌리고 있는 셈이다.

세일러의 주장에 따르면 연간 15%의 현금 가치가 증발된다. 즉 돈값이 떨어지는 만큼 회사의 사내유보금 가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인플레이션 헤지가 가능한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이라고 하면 당연히 금을 떠올리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비트코인이 새로운 부의 저장소가 됐다.

비트코인을 새로운 부의 저장소로써 주목한 인물은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릿지워터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다. 그는 1월 말 ‘비트코인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투자자 레터를 통해 비트코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까지 오를 테니 모두 나를 따르라 수준의 확신이 아니라, 규제 이슈 등 여러 위험 요소가 있지만 새로운 부의 저장소가 필요한 만큼 비트코인도 눈여겨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달리오에 따르면, 과거 가장 좋은 부의 저장소는 국채였다. 문제는 2010년만 해도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수익률 1% 이하 글로벌 국채 비중이 최근에는 80% 가까이 급증했다. 게다가 미국의 실질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권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국채 투자로 인플레이션 헤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체 자산을 찾아야 하고, 그 대체 자산의 하나로 비트코인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테슬라 역시 SEC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투자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금성 자산을 좀 더 유연하고, 다양화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투자 정책을 개선했다. 우리(테슬라)는 현금의 일정 부분을 대체 준비 자산(alternative reserve assets)에 투자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정책하에 비트코인에 총 15억 달러를 투자했다.” 테슬라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행위가 위험하게 비칠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방식이 위험을 전혀 감수하지 않는 투자법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어쩌면 관성에 따라 늘 하던 대로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현금 가치를 떨어뜨리는 위험한 의사결정일 수 있다.

비트코인 인정하는 기관들 급증해 가격 강세


▎비트코인 실물. 적격 투자 대상으로 인정받을수록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한편 JP모건의 우려와 달리 테슬라 이외의 기업들도 비트코인 매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트위터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비트코인 보유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프란시스 수아레스 시장은 “시 정부가 운용하는 일부 펀드를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의 저장소’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이 금이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에 해당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단순히 금을 디지털화한 것이라면 왜 금값과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들어 다르게 움직일까. 왜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에 주식(S&P500)과 동조화된 모습을 보일까. 아크인베스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회사는 미국 주식을 투자하는 ‘서학개미’ 사이에서 가장 핫한 월가의 운용사다.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곳인데, ‘파괴적 혁신’에 가치를 두고 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미국 전체 ETF 성과 상위 10곳 가운데 아크인베스트의 ETF가 3개나 이름을 올렸다. 서학개미들이 올해 들어 일반 주식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들인 ETF가 아크인베스트상품(ARKK)다.

아크인베스트는 마치 테슬라의 비트코인 매수를 예견한 듯하다. 이곳의 수장(CEO)인 캐시 우드는 1월 말 언론에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대차대조표에 이 헤징 수단(비트코인)을 올릴 것”이라며 “특히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에 친숙한 기술기업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비트코인보다 나은 인플레이션 헤징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대기업이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에 현금을 대량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온다”고 말했다.

아크인베스트의 장기적인 투자전망을 담은 올해 보고서(Big Ideas 2021)에서도 15가지 투자 테마 가운데 비트코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챕터가 3개에 달한다. ‘4. 디지털 월렛’, ‘5. 비트코인의 펀더멘탈’, ‘6. 비트코인: 기관 진입을 기다리며’ 등이다. 보고서는 “기관 투자자가 비트코인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모든 S&P 기업이 현금의 1%씩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면 현재 가격에서 4만 달러 더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보고서에는 주식·채권·금·원유·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기관 투자자들이 자산의 일부를 비트코인에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새로운 자산군에 넣지 않고 무시할 경우의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비트코인을 2.55% 편입할 경우 변동성이 가장 작아진다. 만약 6.55%를 편입한다면 기대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만약 기관들이 2.55%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한다면 비트코인 가격은 20만 달러, 6.55% 편입한다면 50만 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크인베스트가 가격을 예상하는 논리 구조는 비트코인이 현재 시장에서 얼마나 ‘디지털 금’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인가 보다는, 얼마나 많은 기관이 비트코인을 적격 투자 대상 자산으로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더 많은 기관이 비트코인을 수용할수록 비트코인 가격은 오르게 돼 있다. 최근 금값과 무관하게 비트코인 가격이 유난히 강세를 보이는 것은 비트코인을 인정하는 기관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외에는 존재가치 검증 안 돼


2018년과는 다르게 시장의 주도권이 기관으로 옮겨갔다. 이들 기관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이유가 명확하다.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 2018년 개인들의 ‘묻지마 투자’와는 다르게,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접근한다. 당장 치고 빠지는 식의 투자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 따른 투자를 진행한다.

문제는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알트코인이다.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려면 코인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현재 시장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확실히 입증한 코인은 비트코인이 거의 유일하다. 그나마 플랫폼으로서 이더리움에 일부 기관들이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외 다른 알트코인은 사실, 존재 가치가 의심스럽다.

유감스럽게도 존재 가치와 가격은 별개로 움직인다. 바깥에서 보면 “비트코인 많이 올라서 돈 많이 벌었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정작 코인 투자를 오래 한 ‘고인물’들은 요즘 심각한 ‘코울증(코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들고 있는 것으로 2배 먹었지만, 남이 들고 있는 코인은 10배 올랐기 때문이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심보에 다른 급등한 알트코인으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불장’이 끝나는 순간 존재 가치가 없는 알트코인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10배 먹을 생각이면 10토막도 각오해야 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한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비극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17년 말 시가총액 상위 10개 코인 가운데 4개의 코인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10위권을 사수한 이더리움(2017~2018년 불장 고점 243만7000원), 비트코인캐시(561만7000원), 리플(4925원), 라이트코인(53만5000원), 카르다노(1995원) 등은 3년여가 지난 지금(2월 14일 기준)까지도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 고란 조인디 기자 neoran@joongang.co.kr

202103호 (2021.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