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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소셜밸류커넥트, ‘임팩트 투자’ 시대의 마중물 

SK의 미션,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라 

SK의 사회문제 해결 모색에 포스코·신한금융그룹·네이버 동참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 돕기 위해 협업 기반 ‘소셜벤처’에 투자


▎소셜밸류커넥트(SOVAC) 행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아이디어로 2019년 처음 개최됐다. / 사진:SK
박용준 삼진어묵 대표는 2019년 5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SK그룹 측 관계자였다. 그는 ‘사회적 가치에 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박 대표가 기조연설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전했다. 박 대표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기업을 SK가 찾았던 듯하다”고 기억했다.

SK가 2019년 5월 28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개최한 제1회 ‘소셜밸류커넥트(SOVAC)’는 독특한 기업 행사였다. ‘얼마나 잘 벌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썼느냐’를 평가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것도 SK 계열사나 협력사만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삼진어묵만 해도 SK그룹과 별 인연이 없는, 부산지역 중소기업이다. 경계를 한정 짓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모범적으로 수행한 조직이 있으면 평가했다.

SK가 박 대표를 부른 것은 베이커리형 어묵 매장 도입, 10배 이상의 매출 상승 등 혁신 성공사례를 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삼진어묵이 본사가 위치한 부산 영도 지역에서 실행 중인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경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부터 시작해서 주변 지역을 바꿀 수 있는 민간주도형 재생 사업으로 ‘아레아6(AREA6)’라고 이름 붙였다”며 “6시만 되면 슬럼화되는 공간을 활성화하기 위해 본점 뒤편 폐가 건물 6동을 매입해 복합건물로 리뉴얼했다”고 설명했다. 이 공간에 송월타올 등 부산 지역의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를 들였다. 선배 기업과 소통하며 성장하도록 신생 지역 브랜드도 추가하고 있다. 박 대표는 “2015년 회사가 가장 호황이었다. 이때 과분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삼진이음’이라는 비영리기관을 만들었다”며 “기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의 경험을 나누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지역 자체를 콘텐트로서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 기업의 역할 모색


▎최태원(가운데) SK그룹 회장이 2018년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 간담회에서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 사진:SK
스케일은 저마다 달라도 사회적 가치를 수행하는 조직들에는 교집합이 존재한다. “돈은 일정한 수준 이상을 넘어가는 순간 큰 의미가 없다”는 마인드가 그것이다. 일례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업이 이윤만 추구하다가는 돌연사할 수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박 대표도 “곳간에 돈이 너무 많으면 무리한 사업을 하게 되더라”고 고백했다. 그 대신 이들은 ‘세상이 당장 알아주지 않아도 스며들듯 꾸준히 (사회적 가치 활동을) 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액수보다는 진정성이 사회적 가치의 연료라는 관점이다. 실제 2019년 행사 당시 SK가 예상했던 인원의 두 배가 넘는 5000명 이상이 몰렸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시대적 필연성에 관한 우리 사회의 갈증은 예상보다 컸던 것이다.

최 회장은 ‘생태계’라는 어휘를 즐겨 쓴다. “누구나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협력과 교류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그의 아이디어로 출범한 소셜밸류커넥트는 ‘사회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행복 플랫폼’에 해당한다. 요약하면 SK가 사회적 가치의 플랫폼을 자임한 셈이다. 실제 2021년 1월 ‘SV(사회적 가치) 2030’을 발표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담은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SK는 ▷환경 ▷동반성장 ▷사회안전망 ▷기업문화 등으로 SV 창출 분야를 분류했다.

SK의 소셜밸류커넥트는 2020년 9월 비대면으로 다시 열렸다. 2년째를 맞은 행사는 코로나19로 심화된 사회문제의 해결 방안 모색이라는 새로운 과제와 마주했다. 9월 1일부터 24일까지 강연, 토크쇼, 대학생 챌린지 등 다양한 포맷이 동원됐다. 2020년의 행사는 1년 전보다 훨씬 더 확대 개편됐다. 포스코, 신한금융그룹, 독일 바스프 외에도 네이버, 카카오, 구글 등 플랫폼 기업이 동참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 마틴 브루더뮐러 독일 바스프 회장 등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셀럽들도 참석했다. 가수 브라이언, 탤런트 손현주·박시은, 개그맨 박영진, 아나운서 조우종·신아영·김일중·한석준·손미나·박은영·문지애, 방송인 알베르토·허영지·박슬기, 프로게이머 페이커, 유튜버 신사임당·김지우·태용, 스포츠트레이너 양치승 등이 참여했다.

2020년의 소셜밸류커넥트는 4주간에 걸쳐 주별 특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첫째 주에는 혁신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소셜 벤처들의 성공사례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신조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둘째 주에는 네이버, 카카오, 포스코, 구글 등 공동 파트너로 참여하는 기업들이 주관하는 세션을 열었다. 셋째 주에는 임팩트 투자의 의미, 젊은 세대의 사회 혁신, IT를 활용한 지역 문제 해결, 장애인 고용 문제를 논의했다. 마지막 주에는 코로나19 이후 비영리 단체들의 과제, 공감 교육의 필요성, 사회성과인센티브(SPC)의 성과와 미래를 논의했다. 매일의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행복 인플루언서’가 제작한 사회적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소개 영상이 등장했다. ‘행복 인플루언서’는 평균 구독자 수 25만 명에 달하는 유명 유튜버 21개 팀으로 이뤄졌다. 사전행사에서는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원 교수 등의 기조연설을 공개했다.

‘임팩트 유니콘’ 만들기


▎2019년 11월 국내 최대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인 소셜밸류 투자조합이 결성됐다. / 사진:SK
이 가운데 임팩트 투자(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 등을 키워내 수익과 공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자)는 2020년 소셜밸류커넥트의 핵심 화두였다. 사회 석학들이 참여한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사회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비대면 시대를 맞아 새롭게 떠오른 사회문제는 무엇인지’, ‘투자자들이 공익과 수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무엇인지’, ‘사회적 기업들은 효율적 투자 유치를 위해 어떤 경영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등을 집단지성을 토대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가 진행을 맡았고, 정경선 HGI 의장, 한상엽 SOPOONG 대표, 이덕준 D3쥬빌리 대표, 진윤정 소프트뱅크벤처스 이사 등 임팩트 투자 분야를 선도하는 인사들이 사회 변화에 따른 투자 동향에 대해 토론했다.

일자리 부족, 환경오염 등 기존의 이슈 외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투자하고 싶은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의 미덕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이었다. 이런 공간을 만든 배경에 관해 SK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초래한 급격한 사회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점검하고, 비대면 시대에 맞춰 상시적으로 관련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사회적 기업가와 예비 창업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만한 산업 트렌드 변화, 임팩트 투자 유치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로 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사회문제를 인지함에 따라 임팩트 투자가 빠르게 대형화하며 ▷새롭게 생겨나는 사회문제 해결 기업에는 성장 기회가 열릴 것이며 ▷글로벌 이동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 임팩트 투자 시장에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의견을 교환했다. 이 밖에 코로나19가 초래한 교육, 과학기술, 기후변화·환경, 사회 변화상에 대해 마동훈 고려대 교수, 박상욱 서울대 교수,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 연구소장, 장용석 연세대 교수 등이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SK가 소셜밸류커넥트와 같은 트랙에서 마련한 프로젝트가 소셜벤처 지원이다.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소셜벤처가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기업과 금융기관, 대학이 협력해 집중 육성하는 전략을 일컫는다. SK와 신한금융그룹, 카이스트의 SK사회적기업가센터, 옐로우독-SK-KDB 소셜밸류 투자조합은 2020년 4월 예비 창업가를 대상으로 ‘임팩트 유니콘’ 연합 모델을 공모했다. 유니콘 기업은 통상적으로 기업가치 1조원 수준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을 의미한다. 단순히 기업가치만 높이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함으로써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유니콘 기업이 ‘임팩트 유니콘’이다.

SK 등이 주도한 ‘임팩트 유니콘’의 독자성은 ‘기업 간 연합 모델’로 지원 대상을 규정한 점에 있다. 다시 말해 복수의 소셜벤처가 지분 교환이나 별도의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연대하는 전제하에서, 향후 성장 계획을 제시하면 이를 심사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상품 공동개발 등 단순 협업 수준을 넘어 소셜벤처끼리의 긴밀한 결합을 유도한 것이다. 이는 개별 소셜벤처가 유니콘급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난관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해서 나온 대안이다. “사회적 기업에 인재들이 몰리도록 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과 세계적 수준의 잠재력을 갖춰야 하며, 소셜벤처 간 연대와 결합을 통해 성장 속도를 높이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최태원 회장의 지론이 반영된 산물이기도 하다.

연대와 협업의 잠재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회 SV위원장은 “유망한 소셜벤처들이 연대와 협업을 통해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성장을 하도록 지원하고자 한다”며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임팩트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모에서 선정된 기업에는 성장에 필요한 마케팅, 재무, 정보기술 서비스와 더불어 사업 추진을 위한 인적 자원 및 외부 투자자 연계 등을 지원했다. 신한금융그룹은 혁신기업 발굴 육성 플랫폼인 ‘신한퓨처스랩’을 통해 ‘임팩트 유니콘’ 육성 취지에 부합하는 기업 간 연합 모델 발굴과 사업화 지원에 참여했다. 신한금융그룹과 신한대체투자운용은 임팩트 투자 참여기업들이 임팩트 유니콘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소셜벤처 기업 연합체 6개가 공모전을 통해 선발됐다. 스타트업·IT기업 구인·구직 플랫폼을 운영하는 소셜벤처 ‘로켓펀치’, 브랜드 개발 및 공간기획 전문기업 ‘엔스파이어’의 조합이 대표적이다. 엔스파이어는 집 근처 개인 사무실이라는 신개념 업무 공간을 만들었다. 개방형 캡슐과 같은 1인 전용 사무공간 조성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늘어나는 주거비·장시간 출퇴근으로 인한 피로와 탄소 배출 증가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로켓펀치와 엔스파이어는 2020년 5월 합병했다.

또 시선 추적 기술(카메라가 안구 움직임을 추적)을 보유한 ‘비주얼캠프’와 온라인 교육 서비스 회사 ‘두브레인’도 결합했다. 두 회사는 아동의 발달장애 징후를 포착하고,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공유했다. 발달장애 아동이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에 나타나는 사람·사물 등 다양한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특성을 파악한 뒤, 의료기관을 통해 진단이 확정될 경우 두브레인의 아동 두뇌발달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습을 돕겠다는 발상이다. 양사가 보유한 기술이 결합하면 성장 속도가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인정받은 것이다.

건강 맞춤형 식사요법 기업 ‘잇마플’은 건강편의식 거점 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프레시코드’와 손을 잡았다. 두 기업은 개인 생애주기에 맞는 식사요법 관리를 통해 사람들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크레파스-닛픽’ 연합은 청년 금융 플랫폼을 만들어 주거·생활·교육 등을 아우르는 청년 토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포이엔-임팩트스퀘어’ 연합은 미얀마에서 농업 부산물을 재활용한 고형연료 제조를 통해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도전한다.

이들 회사를 포함한 6개 소셜벤처 기업 연합체는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신한금융그룹, 옐로우독-SK-KDB 소셜밸류 투자조합 등에서 최대 20억~30억원의 투자를 받는다. 또 임팩트 투자사 HGI는 대기업과 소셜벤처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한다. 소셜벤처가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인프라를 만드는 SK의 파트너 역할을 맡는 셈이다. 이 SV 위원장은 “개별 기업 규모는 작지만, 연대와 협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연합체가 사회적 가치 창출의 새로운 롤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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