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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수백 억 연봉, 大入 온라인 '1타 강사'들의 세상 

‘1타’ 20명이 3천억 시장 좌우… 승자독식, 피라미드 넘어 압정 수준 

年 수십 억 조교 인건비·개발비 감당 못 하면 곧바로 ‘퇴물’
4위권 밖 강사는 이름만 걸어두고 지방 현장강의 전전하기도


▎한 인터넷강의 강사가 지난해 5월 고3 대상 입시설명회를 관중 없이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명절 연휴 때면 현장 특강으로 보통 억 단위 매출을 올렸다. 오전·오후·저녁에 걸쳐 150명이 들어가는 강의실이 꽉 찰 정도였다. 그런데 마지막 해 특강 때는 15명이 앉아있더라. 다급해서 학생들에게 ‘내일도 꼭 나오라’고 사정해야 했다.”

한 대형 인터넷강의(인강) 업체에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수능 과학탐구(과탐) 영역 화학 강사로 활동했던 A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실력있는 고교 교사였던 A씨는 2013년 데뷔 첫해부터 과탐 매출 1위를 올렸다. 현장 강의와 교재 매출을 더하면 30억원에 달했다. 이듬해 기대치는 그보다 10억원 더 많았다. 그런 A씨를 업계에선 ‘1타 강사’로 불렀다.

‘벼락 성공’이 기존 경쟁자들의 시기를 부른 걸까. 2013년 말부터 A씨는 경쟁사와 강사로부터 집중적인 댓글 공격을 받았다. 강의에서 A씨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던 개념이 수능시험 문제로 출제됐다는 내용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꾸준하게”(재판 중 드러난 경쟁사 임원의 말) 댓글 작업이 이뤄지면서 A씨 매출이 결국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A씨와 계약 맺은 업체가 메인 웹페이지에서 A씨의 사진을 내렸다. 2017년 A씨가 올린 매출은 ‘겨우’ 3억원. 학원 몫(70%)과 고정비를 빼면 적자였다. 재계약을 꿈꿨던 A씨는 그 길로 업계에서 퇴출당했다.

1타 자리에서 밀려난 다음 해 A씨가 올린 매출은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인강 업계에선 1타와 나머지 강사의 수익 격차가 크다는 얘기다. 유명 입시학원 수학 1타 강사인 현우진씨의 추정 연봉은 200억~3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야구 선수 류현진의 지난해 연봉(약 238억6000만원)에 맞먹는다. 사회탐구 1타 강사인 이지영씨는 최근 약 130억원대 통장 잔고를 공개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나머지 강사들의 사정은 1타 강사와 거리가 멀다. “업계 4위밖 강사의 수강생 수는 대략 100명 정도”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교재 개발은커녕 강의 연구를 돕는 조교 임금도 주기 어려운 수준이다.

1타 강사에 수강생이 몰리는 이유


▎서울의 한 편의점에 수능을 겨냥한 기획 상품이 진열돼 있다. 상품 앞면에 수학 1타 강사 현우진씨의 사진이 보인다. / 사진:뉴시스
이렇게 승자독식이 극심한 업계 구조를 두고 “피라미드를 넘어 압정 수준”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능 과목은 국어·수학·영어·사회탐구·과학탐구 등 5개. 20명 남짓의 강사가 시장을 과점하는 셈이다. 메가스터디 등 국내 4대 인강 업체에서 활동하는 강사 수는 269명이다. 전직 인강 업체 대표인 B씨는 “1타 강사는 언제 내리막을 걷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반 강사는 어쩌면 한 번도 1타가 될 수 없다는 두려움에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1타 강사 A씨의 사례다. 그의 일과는 과거 그가 교사로 일하던 때와 전연 달랐다. 강의는 매일 오전 9시 30분 시작해 밤 10시가 돼서야 끝났다. 밤 10시부터 수강생들은 한숨 돌리지만, A씨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연구실 조교들과 함께 강의 중 나왔던 질문을 정리하고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

“쉬는 시간에 수강생이 찾아와 ‘이 문제 왜 이래요’ 하고 물을 때가 있다. 수차례 검수를 거친 문제라도 ‘아이들 입장에선 다르게 볼 수 있겠구나’ 깨닫는 그 순간부터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문제를 고쳐서 조교들과 다시 검토하고, 그러면 디자인 전문 프로그램으로 만든 강의 자료도 다시 고쳐야 한다. 그럴 때는 그냥 연구실에서 잠을 잘 수 밖에 없다. A씨는 “공장은 라인을 세우면 알아서 돌아가지만, 강사는 모든 공정에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구실을 운영하자면 조교가 적어도 10명은 돼야 한다. 그마저도 최소치라고 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수능 관련 콘텐트를 개발하는 C씨는 “현우진 강사가 거느리는 조교는 50명 내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C씨가 설명하는 조교는 현장·인강·(교재)집필·(교재)검토 등 총 네 분류로 나뉜다.

현장 조교는 현장 강의를 중심으로 뛴다. 강의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 곳곳으로 흩어져 수강생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온라인 Q&A 게시판을 24시간 관리·운영할 인강 조교도 필요하다. 현장 조교와 인강 조교는 보통 대학생들이 맡는데, 학벌이 만만치 않다. C씨는 “수강생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려면 ‘설카포의치한’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대·카이스트·포항공대, 의대·치대·한의대’를 뜻하는 업계 은어다. 세간에서 높게 치는 학벌만큼이나 임금도 높다. 시급 1만1000원이 ‘업계 최저임금’으로 통한다. 참고로 올해 최저임금은 8720원이다.

강사와 함께 교재를 개발하는 집필 조교와 문제를 풀어보고 오류를 잡아내는 검토 조교는 그보다 더 고급 인력이다. 보통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강사를 쓴다. 취업 정보 사이트에 올라오는 관련 공고를 종합하면, 이들의 연봉은 3000만원 중·후반에서 형성된다. C씨는 “또래(이공계 석·박사)보다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며 “그래서 강사 데뷔를 염두에 두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인건비보다 큰 돈이 들어가는 분야가 교재 개발이다. 보통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에 앞서 시행하는 9월 모의평가가 끝나고 나면, 주요 강사들은 본격적으로 ‘파이널 모의고사’ 교재를 낸다. 모의고사 5회분 분량이다. 30년 경력의 수능국어 강사인 임우옥씨는 문제집 한 권을 만드는 데만 1억원이 든다고 말한다. 임씨는 2000년대 수학 1타 강사로 잘 알려진 삽자루(본명 우형철) 선생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수학(총 30문제)의 경우 한 문제당 50만원, 많으면 100만원을 주고도 산다. 그렇게 돈을 주고 구입한 문제도 결과적으로 80%는 버린다. 다른 문제집 내용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문제도 1차로 대학원생 10명에게, 2차로 수학 선생님들한테 의뢰해 다시 풀어보도록 한다. 그렇게 문제를 선별하고 난 뒤 디자인하고 조판하는 데만도 1000만원 내외가 든다.”

문제집 한 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위권 학생들은 모의고사 전체 문항 중에 1·2등급 당락을 결정짓는 ‘킬러 문항’ 한두 문제만을 뽑아서 보기 때문이다. 임씨는 “이들의 수요에 맞추자면 한 해에 (9월 모의평가 이후) 파이널 문제집만 네 권(20회분) 이상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킬러 문항들이 실제 수능을 얼마나 잘 예측하느냐가 이듬해 강사의 평판을 결정한다. 인강 강사들이 지출을 쉽사리 줄일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인건비와 콘텐트 개발비 등으로 우 강사가 한 달에 쓴 돈은 평균 2억원에서 2억5000만원. 연 단위로는 20억원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임씨는 “(국어·영어·수학 기준) 이 정도 지출해야 A급 콘텐트를 유지할 수 있다”며 “그러니 수험생 입장에선 답변도 곧잘 해주고, 콘텐트 질도 진짜 시험에 버금가는 1타 강사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대치동에는 ‘1000명 강사’라는 말이 있다. 200명 정원 강의를 5개 이상 진행하는 강사라는 뜻이다. 5개 강의를 완판하자면 수강생이 몰리는 주말 오전·오후·저녁 시간대를 모두 마감해야 한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1타와 나머지 강사들을 가르는 말로 쓰인다. C씨에 따르면 이들 ‘1000명 강사’의 수는 20~30명. 업계에서 가늠하는 대치동 지역 강사의 수가 1500명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만만찮은 경쟁률이다. 이들이 한 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5억~10억원가량이라고 한다. 인강 업계에 비하면 강사별 편차가 크지 않다. 다만 1타가 아니라도 수익이 나쁘지 않다. 이미 학원가에서 선별된 강사진인 만큼, 못해도 1억~3억원은 번다는 것이 C씨의 말이다.

인강은 메가스터디와 디지털대성 양강 구도


▎국어 1타 강사 박광일씨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1월 경쟁 강사들을 댓글로 비방해온 혐의로 구속됐다.
이는 물리적 한계 탓이 크다. 강의실 규모와 강의시간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강생을 마냥 늘릴 수 없다. C씨는 “최근 온라인 데뷔한 강사가 대치동 시절에 3000명 가까이 거느리는 걸 봤다”며 “현장 강의에서 모을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했다. 반면 온라인은 한계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100% 독식도 가능하다. 실제로 수능 사회탐구 영역 1타 강사인 이지영씨의 누적 수강생 수는 25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EBS 수능강의에 데뷔한 때부터 계산해도 매년 19만 명이 넘는다. 문과 수험생 셋 중 두 명(2021학년도 수능 문과 응시생 기준)은 이씨의 강의를 듣는 셈이다.

이렇게 온라인에선 1타 강사가 수강생을 독식하다 보니, “4위권 밖 강사는 수강사이트에 이름만 걸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C씨의 말이다. ‘인강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부산·대구·광주 등 지역의 주요 대도시에서 출강하는 경우가 다수라는 것이다. C씨는 “온라인은 승자독식이 너무 심해 데뷔를 단념하는 대치동 강사가 적지 않다”며 “이런 분위기 때문에 주요 인강 업체들도 강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만간 강사로 전업한다는 C씨도 “온라인은 생각 없다”며 선을 그었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프리패스’ 판매가 인기를 끌면서 1타 강사를 향한 쏠림 경향은 더 커졌다. 프리패스란 1년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해당 강의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수강권을 말한다. 특정 강사 강의 하나만 듣는 금액과 프리패스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당연히 프리패스 결제를 선호한다. 업계 후발주자 스카이에듀가 2014년 30만원대 가격의 프리패스 상품을 처음 선보였을 무렵, 1타 강사의 인터넷강의와 교재 판매가는 30만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스카이에듀의 매출액은 1년 만에 40% 껑충 뛰었다.

그런데 모든 업체가 프리패스를 도입하면, 가격 비교우위는 다시 사라지는 것 아닐까? 실제로 2017년부터 스카이에듀의 매출은 다시 하락세로 반전했다. 이때 승부처는 결국 1타 강사의 유무다. B씨는 “학생들은 고만고만한 2~4타 강사가 많은 곳이 아니라 확실한 1타 강사가 있는 업체의 프리패스를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나머지 강사는 사실상 ‘끼워팔기 상품’으로 전락한다. 수학 1타 강사 정승제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주요 인강 업체별로 티켓 파워를 지닌 1타 강사 3~4명이 매출을 이끄는 구조”라고 말했다.

2개월 댓글작업에 당해 매출 10분의 1로 떨어져


▎2019년 전직 수학 1타 강사인 삽자루(본명 우형철)씨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박광일씨의 불법 댓글작업 의혹을 폭로하고 있다.
디지털대성의 국어 1타 강사 박광일씨는 해당 업체의 프리패스 상품인 ‘19패스’가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 ‘만년 2군’ 취급받던 이곳이 19패스를 발판으로 메가스터디와 양강 구도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박씨는 지난 2019년 초부터 불법 댓글작업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그런 박씨가 올 초까지도 강의를 계속해오지 않았느냐”며 “그만큼 1타 강사의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댓글 작업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씨는 “1타 강사라도 불법 댓글작업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의·교재 질이 조금만 떨어져도 학생들은 떠난다. 새로운 강사의 데뷔 등 의 이유로 매출이 줄어든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 지출을 줄일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의 이탈 조짐이 보이면, 회사는 기다리지 않고 2타 강사를 1타 자리로 바로 옮겨버린다.” 그러니 강사는 매출을 올릴 값싸고 효과 좋은 ‘마약’에 끌릴 수밖에 없다.

앞서 불법 댓글 의혹을 받던 박씨는 지난 1월 18일 구속됐다. 박씨는 “○○○ 교재 좋냐? 시험장에서 안 통한다던데”라는 식의 댓글로 경쟁사는 물론, 본인이 소속된 업체(디지털대성)의 동료 강사까지 전방위로 공격했다. 2017년 7월부터 약 2년 동안 작업에 동원된 아이디만 300여 개였다. 특히 박씨는 아이피(IP) 추적을 피하려 필리핀에서 한국인 유학생 등을 동원해 작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새로울 것 없다는 분위기다. B씨는 “비방 댓글을 추적했더니 작성자 주소가 미국 샌디에이고나 중국 선전으로 나오더라”며 “주소가 국내로 잡혀 찾아가 보니 폐건물이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실체가 드러난 건 최근이지만, 정황은 예전부터 적지 않았던 셈이다.

임씨의 지적처럼 댓글 알바의 가장 큰 매력은 값싼 비용 대비 눈에 띄는 효과, 바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각 인강 업체가 주요 포털 사이트 및 수험생 커뮤니티의 배너광고에 지출하는 돈만 매달 3000만원(한 곳당). 새 강사를 영입할 땐 포털사이트 맞춤형 광고로 일시에 5억원을 지출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각 업체가 댓글작업을 하는 경우 매년 지출하는 비용은 1억~3억원 남짓”이라는 게 마케팅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효과는 드라마틱했다. 앞서 과탐 1타 강사였던 A씨는 집중적인 댓글 공격에 시달렸다. 경쟁사와 경쟁강사는 2013년 12월부터 2개월간 유명 수험생 커뮤니티에 “A 강사는 수능에서 ‘전기음성도’ 개념이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었다”는 내용의 댓글을 꾸준히 써 올렸다. 전기음성도는 2014학년도 수능시험 화학 과목에 출제된 최고난도 개념(정답률 17%)이었다. 댓글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 문제로 등급이 갈리는 수능 판에서 B씨의 평판은 바닥을 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들은 ‘A씨 강의는 운에 목숨을 맡기는 러시안룰렛과 다를 바 없다’라는 뜻의 멸칭인 ‘○룰렛’이란 말까지 만들어 유포했다. 그러나 지난 2019년 7월 법원은 항소심에서 이런 주장이 허위사실이라고 결론 내렸다. A씨는 “처음엔 진실이 알려지면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의 게시판에 전기음성도 개념을 언급했던 영상 구간들을 정리해 올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A씨는 “현장강의 쉬는 시간 때마다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어오는 학생들이 줄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2019년 법원은 “피고 측이 A씨에 대해 비방 글을 올리면서 자사 강사에 대한 홍보를 연계시킨 점을 비춰보면 (2013년 11월~2014년 1월 집중된) 댓글 조작행위와 A씨의 2016년 이후 매출 급감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쟁 업체와 강사 등 피고 측이 B씨에게 11억28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의 판례는 댓글 조작행위와 매출 하락의 인과관계를 처음 인정한 사례다. 2개월 집중 작업으로 1타 강사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누구든 쉽게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A씨는 판결이 내려진 날, 판결문을 들고 곧바로 중학생 아들에게 달려갔다. “너무 기뻤다. 아들에게 당당하게 ‘봐라, 아버지가 정말 전기음성도 안 나온다고 한 적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불면으로 지샜던 시간, 5년 만에 누명을 벗어던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강사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는 중압감을 느낀다고 한다. 전직 대표 B씨는 “(인강 강사들은) 항상 새로운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해서 투자하고,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며 “정신적·육체적으로 오래 버티기 힘든 직종”이라고 말했다.

사회탐구 영역 강사 이지영씨도 “학원 강사는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교재 제작비, 조교 임금, 식비 등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회수가 안 될지 모르는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타 강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직업”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본인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전국구 1타 강사 되는 법’에서 그가 밝힌 생각이다.

“운동 선수같은 중압감에 오래 못 버텨”


▎대학생 때부터 스타 강사를 목표로 준비하는 20대가 늘고 있다. ‘강사 양성소’를 내건 한 업체의 수강생들이 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정점에 오르기까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도 연예인·운동선수와 비슷하다. 단적으로 인강 전체 매출 1위라는 현우진 강사는 올해 34세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수학과 재학 시절부터 유명 대입 교재 집필진으로 참여했고, 24세였던 2011년에는 대치동 수학 강사로 데뷔했다. 메가스터디 강사로 스카우트된 건 3년 뒤인 2014년. B씨는 “(현씨가)대치동에 오기 전부터 ‘(서울 서초구) 교대역 쪽에 가면 이름난 수학 강사가 있다더라’며 소문이 자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B씨는 “스타 강사의 연령대도 10년 전엔 40대가 주류였지만, 이제 30대로 내려왔다”고 진단했다.

성공의 단맛을 봤던 강사일수록 상실감은 더 크다. 한 차례 아픔을 겪었던 B씨도 이런 심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원심에서 일부 승소했을 무렵 한 인강 업체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송이 잘 진행되는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불태워 보자”는 것. 고교로 돌아갔던 B씨는 처음엔 한사코 거절했지만, 내심 ‘그래, 내려오더라도 이런 모습은 아니지’ ‘40대면 강사로선 한창일 나이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2019년부터 강의에 나섰지만, 결심은 1년이 채 이어지지 못했다. 해당 업체는 매출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B씨와의 계약을 일방 해지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해당 업체는 B씨에게 계약금을 주지 않으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고 한다. 공시보고서에 따르면 이 업체는 이미 자본잠식에 들어간 상태였다. B씨는 업체와의 소송 끝에 계약금을 모두 받아내기는 했지만 이제 다시는 사교육 시장에는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작정이다. “그간 번 돈이 모자라지 않다. 이제 평일에도 책 한 권 즐길 수 있는 삶이 좋다”고 B씨는 말했다. 두 차례 경험 끝에 B씨가 얻은 교훈이다. 다만 B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창에는 “연락 기다리고 있겠다”는 업계 관계자의 글이 여럿 보였다.

업계 자율 관리·감독 기구 만들어야


▎자정을 넘긴 시간 사회탐구 영역 강사 문성욱씨 (스카이에듀)가 본인 연구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 사진:문성욱
대입 사교육 시장은 사양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학령인구가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2021학년도 수능시험 응시자 수는 역대 처음으로 40만명대(49만3433명)로 내려앉았다. 2011학년도 수능에서 71만2227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지 불과 10년 만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사립대는 물론, 거점 국립대마저도 정원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A씨가 말하는 시장 상황은 정반대다. 대입 인터넷 강의 시장은 최근에도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다. 물론 전체 사교육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 강의 수요가 점차 온라인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 A씨가 꼽는 주된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비대면 강의 수요도 크게 늘었다. 그는 “2008년 시장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전체 700억원 규모였는데 지난해 각 사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추산해보니 3000억원 정도 되더라”고 말했다. 각 업체는 온라인사업 부문 매출을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살아남은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10년 전 20여 개 업체가 난립했지만, 지금 남은 곳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2019년 기준으로 업계 1위인 메가스터디 교육이 4373억원 매출에 596억원 영업이익, 디지털대성이 1406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211억원을 기록하는 등 매출 규모와 수익성 모두 개선되고 있다.

A씨는 “이제 업계 규범을 정립할 때”라고 말했다. “프로구단들처럼 위원회가 있어서 징계하거나 관리 감독하는 기구가 없다 보니 같은 문제가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학원에서 강의하려면 성범죄 이력만 없으면 되다 보니 불법 댓글작업 외에도 자신의 학력을 속이거나 심지어는 회사에 위조된 학력 증명서를 제출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A씨는 말한다. 그간 관리·감독 기구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선두 업체가 사다리를 걷어차려고 한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진척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2월 법원은 이투스교육 전무 정모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해당 업체 소속 강사에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012년 5월부터 2016년 12월경까지 5년 가까이 자사 강사를 홍보하고 경쟁업체 강사를 비난하는 게시글·댓글을 달아 왔다는 이유에서다. 불법 댓글작업과 관련해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로 출범한 지 22년째, 대입 인터넷강의 업계는 오랜 악습을 끊을 수 있을까.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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