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남성욱의 평양 리포트]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첫해 심상치 않은 경제 상황 

날개 없이 추락하는 ‘김정은 식’ 자력갱생 

대북 제재 이어 코로나19 확산으로 북·중 교역 줄고 경제난 심화
경제부처 기강 잡고 ‘장마당’ 통제해 정치 자금줄 확보에 안간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월 11일에 끝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연설하면서 삿대질을 하고 있다. 김 총비서는 이번 전원회의에서 경제목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당 경제부장을 한 달 만에 교체했다. / 사진:연합뉴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을까?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재원이었던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은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란 시에서 인생의 굴곡을 은유법으로 표현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로스는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타고 높이 날다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로 추락했다. 최근 한반도 북쪽의 경제 상황은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하는 이카로스를 연상시킨다. 평양의 살림살이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의 상황이다.

2009년 필자가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으로 근무할 당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연구원 고문이었다. 고문의 역할은 필자와 금요일 늦은 오후 도곡동 연구소 근처 식당에서 2시간가량 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평소 목소리가 나지막한 황 고문이 목청을 높이며 열을 내는 주제 중의 하나는 1997년 탈북 당시 북한의 식량 사정이었다.

그는 주체사상 담당비서로서 북한의 내부 문건은 물론 웬만한 남한 문건까지 접근이 가능했다. 농업성에서 보내온 식량 생산 예측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1996년에 이어 1997년에도 식량 생산량이 220만t 내외로 예상됐다. 가공용과 사료용을 제외하고 식용과 종자용을 합한 최소 소요량이 350만t 이상인 만큼 3분의 1이 부족했다. 3년째 전체 주민의 4개월 치 먹거리가 부족한 심각한 기근이었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래는 없다고 판단했고 탈북을 결심했다.

하지만 1998년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대규모 식량을 평양에 지원함에 따라 북한이 붕괴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황 고문은 탄식했다. 1995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자연재해는 4년 연속 지속됐다. 1995년 100년 만의 수해, 1996년 60년 만의 대홍수와 해일, 1997년 왕가뭄, 1998년 홍수 등 4년간 연속해서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황 고문은 이미 1997년 탈북 당시 최소 100만 명 넘는 주민이 아사(餓死)한 만큼 DJ 정부가 대규모 식량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정권 붕괴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노를 표시했다. 2000만 명 북한주민 중에서 5%가 굶어 죽었다고 하니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50만 명의 두 배 수준인 셈이다.

체제 붕괴 위기 부른 1990년대 북한의 식량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던 1997년 초 북한 개성 시민들이 혹한 속에 땔감용 소나무를 베어 집으로 가져가고 있다.
당시 북한의 긴급식량 지원 호소에 국제사회가 호응했다. 1997년 4월에 유엔식량계획(WFP)은 평양에서 북한과 ‘큰 물피해 긴급식량 협조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식량 6만t을 지원했다. 6월 들어 중국은 식량 8만t을 북한에 긴급 지원했다. 국제사회의 긴급 식량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는 1997년 12월 말 기준으로 식량 재고량이 16만7000t으로, 배급량을 축소하더라도 3월 중순이 되면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식량 지원으로 북한은 대량 아사에 의한 체제 붕괴 위기를 탈출했다.

당시 북한의 긴급 식량 구호 요청에 국제식량기구(FAO)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지원에 나섰던 명분은 인도적 측면이었다. 자연재해로 인한 대북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관점에서 타당하다는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당시는 북한이 1994년 제네바 북·미 합의로 핵개발이 중단되고 함경남도 신포에 경수로가 건설되는 등 국제정치적 갈등이 없었던 상황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1995~1998년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아사했던 ‘고난의 행군’은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일단락됐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과 비교해 2020·2021년 평양의 경제 상황부터 파악해보자. 지난해 코로나19로 1400㎞에 달하는 북·중 국경이 막힌 것은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작년 1월 22일 [노동신문]에서 최초로 외국의 코로나19 발생 보도를 한 이후 1월 30일부터 북·중, 북·러 간 항공편과 국경 철도 도로를 차단했다. 지난달 러시아 외교관 가족들 8명이 함경북도 나선에서 러시아 하산까지 북·러 국경 1㎞를 철길수레로 이동하는 북한 탈출기는 SNS에서 조회 수가 치솟았다.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구글 기준으로 6408㎞인데 이들이 평양을 출발해 육로로 국경을 넘어 하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항공편으로 모스크바로 돌아간 거리는 1만136㎞였다. 러시아 외교관조차 국경 봉쇄로 외부에서 자국 물자를 조달할 수 없으니 엑소더스 행렬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보건당국은 1월 28일 비상설 중앙보건위원회를 시작으로 2월 이후 국가비상방역지휘부→국가초특급비상방역위원회→국가비상방역사령부 및 위생방역체계→국가비상방역체계→국가비상체제로 대응 주체와 체계를 격상하면서 신속히 선제적인 현장 방역을 유도했다. 2월 초부터 북·중 국경지대를 대상으로 수출입 품목에 대한 검사 검역을 강조했다. 비상방역의 키워드는 봉쇄와 차단이다. 예방의학을 강조하는 북한 보건의료체계는 감염병 치료에 속수무책이다.

필자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늦가을 북·중 국경도시 단둥을 방문했다. 밤 11시가 되자 ‘평북’ 번호판을 붙인 11t 북한 트럭들이 짐을 잔뜩 싣고 세관을 통과해 압록강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를 지나 불 꺼진 신의주로 들어갔다. 한 시간가량 사라진 북한 트럭 숫자를 어림잡아 세어보니 족히 20대는 됐다. 물자는 200t 이상으로 추정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단둥 세관이 일을 하니 한 달에 넘어가는 물량은 짐작됐다. 다만 화물의 짐을 포장으로 덮었고, 가끔은 탑차 형태도 있어서 무슨 물자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로 꽉 막힌 북·중 교역, 전년 대비 10분의 1


▎코로나19로 북한 국경이 봉쇄된 가운데 북한 주재 러시아 외교관 가족이 발로 페달을 밟는 ‘레일 바이크’식 수레를 타고 북한과 러시아가 연결된 철로를 통해 두만강을 넘고 있다. / 사진:러시아 외교부 SNS
마침내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던 중국과의 교역이 중단됐다. 대한무역진흥공사는 지난해 12월 10월 한 달 북·중 교역은 전년 동기 대비 99.4% 축소된 166만 달러에 그쳤다고 밝혔다. 9월과 비교해 92%가 감소했다. 지난해 1~10월간 누적 북·중 무역액은 전년 동기 대비 76% 감소했다. 연간 무역액은 전년 대비 80% 감소했다. 북한은 석탄 등 광물자원과 인삼, 버섯 등 임산물을 수출하고 전기, 전자, 화학, 기계 소재·부품·장비를 수입해 완제 공산품을 생산한다. 중국에서 공산품 중간재가 수입되지 않으면 공장이 작동되지 않는다.

북한 전역 500개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물자의 상당수는 민간 돈주들과 보따리상들이 중국 단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입한 것이다. 단둥을 거쳐 신의주와 평안남도 평성의 물류 유통망을 거쳐 북한 전역으로 배송된다. 남한의 동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상들이 새벽에 전국으로 물자를 이동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로 2018년 하반기부터는 기계류와 부품 수입이 감소했다. 평안남도 안주시에 있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원래 비료와 화학제품을 생산했었는데 고압밸브와 고압분사기 같은 부품을 수입할 수 없어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북한 경제의 혈액인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물자가 압록강을 건너오지 않으면 민생경제를 책임진 500여 개 장마당 혈관에는 피가 돌지 않는다. 그나마 지난해 북한의 식량 공급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시진핑 주석이 북한 방문(2019년 6월 22일) 1주년을 맞이해 여름부터 북한에 식량 80만t을 보냈기 때문이다. 주로 톈진, 옌타이 등 보하이만 항구에서 선박을 통해 남포항으로 보냈다. 11월 3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이 식량 외에 비료까지 대량으로 제공하는 등 북한에 대한 물밑 지원을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2월 위원장(Chairman)에서 갑자기 프레지던트(President)로 영문 호칭을 변경한 김정은의 금고가 바닥나고 있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연초 열린 8차 당 대회에 참가하고 평양역을 통해 전국 각지로 돌아가는 대표들 손에 들린 최고지도자의 ‘선물’은 2021년 북한 경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이 받는 하사품은 북한 경제를 진단하는 바로미터다.

지난 1월 초 7박 8일간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소집된 당 대표와 방청객 등 7000명은 강추위 속에 3주 이상을 난방도 되지 않는 호텔·여관에서 보냈다. 극심한 경제난 탓에 하루 세 끼 제공되던 쌀밥도 한 끼로 줄고, 지급된 선물도 과거의 가전제품 같은 고가품이 아닌 과일 한 상자가 전부였다. 당국은 3주간의 강행군을 마친 당 대회 참가자들에게 바나나·감·귤이 든 10㎏짜리 과일 상자 하나를 나눠줬다. 대북 소식통은 “당 부부장급 간부들도 과일 상자에다 중국제 손목시계 하나를 더 받은 게 전부였다. 당 대회 역사상 이렇게 부실한 선물은 처음이라 불만이 상당했다”고 전했다.

앞서 당국은 2016년 5월 36년 만에 열린 7차 당 대회 때는 참석자들에게 42인치 중국산 평면TV를 선물했다. 1980년 6차 당 대회 때는 일제 컬러TV를 지급하고, 고위 간부들에겐 ‘백두산’ 소형 냉장고도 얹어줬다고 한다. 당 대회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군인들의 경우 혹한에 훈련과 열병식을 강행하면서 상당수가 귀와 손에 동상을 입었다고 전해졌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행사 당일 화장실 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병식 전날부터 한 끼 식사량을 100g으로 줄이고 1인당 날달걀 2개와 빵 1개씩만 나눠줬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선물정치’ 사치품 대신 생필품으로 간소화


▎2021년 1월 11일 마스크를 쓴 평양 시민들 뒤로 북한 조선노동당 8차 대회를 축하하는 간판이 설치돼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열린 8차 당 대회 6일 차 회의 내용을 전하며 “당 제8차 대회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높이 추대할 것을 결정한다”고 11일 보도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연초 노동당 중앙위 간부 가족들에게 신년 선물로 한국산 화장품 세트를 나눠줬다. 노동당 재정경리부는 2018년 11월 중순 중국 연변 지역에서 화장품 거래업자로부터 한국산 화장품 1000세트를 미화 현찰로 구매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일부 중앙위 간부 가족들이 선물 받은 한국산 화장품 세트를 시장에 내다 팔면서 알려졌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시대부터 주요 명절 때마다 권력 엘리트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특별선물을 하사했다. 주로 주류·당과류·고기 등을 상자에 담아 줬고 특별한 기념일의 경우 스위스 시계나 TV 및 소형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김정은도 지난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대회를 마치면서 군 사령관 등 간부 100명에게 ‘스위스제’ 시계를 선물했다. 일종의 ‘선물정치’로서 최고지도자의 선물을 받았는지 여부가 계급과 신분을 상징한다.

2018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2012~2017년 사치품 구입에 쓴 돈은 40억429만 달러다. 안보리 결의 1718호에 따라 통일부가 고시한 대북 반출 제한 사치품 목록을 기준으로 중국 해관(세관)의 무역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자동차 수입액엔 ‘슈퍼카 수집광’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의전 차량인 ‘방탄 벤츠’와 외신에 존재가 확인된 롤스로이스 등 외제차 구입비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시계와 함께 김정은의 선물 통치에 가장 자주 활용되는 품목이다. 수입 악기들은 모란봉악단과 현송월이 단장으로 있는 삼지연관현악단 등 체제 선전용 악단에 지급됐을 가능성이 크다. 수입한 사치품의 대부분은 김정은의 사금고에서 대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이제 이런 선물은 전설의 고향에 나올 만한 이야기가 됐다. 2017년부터 본격화한 5건의 유엔 대북제재가 김정은의 궁정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2016년 이전 제재는 무기 수출 통제 등 군사 제재였으나 2017년부터는 현금 차단 목적의 맞춤형 경제 제재로 제재의 본질이 변했다. 오죽했으면 김정은이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5건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겠는가. 압박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북한경제는 4중(重) 경제로 분류된다. 가장 규모가 크며 제2경제위원회가 운영하는 군수경제, 내각에서 관리하는 일반 정무원 경제, 김정은 위원장의 사금고인 궁정경제(court economy)가 있다. 이 밖에 주민들의 생존 현장인 장마당경제가 있다. 정확한 비중의 통계는 없으나 각기 25% 내외 비중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김 위원장의 통치 수단인 궁정경제는 무기수출 등 불법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으로서 지도자가 최고위층 간부들에게 하사품을 내릴 수 있는 자금줄이다. 김정은 집권 10년 차를 맞이해 전자제품과 시계→한국산 화장품→술과 고기바구니→과일바구니 순으로 하사품이 빈약해지고 있다. 돈줄이 막히니 최고지도자라도 용빼는 재주가 없다.

정책 실패 시인하고 경제 내각 물갈이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탄 번호판 없는 벤츠 리무진.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2019년에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제재 위반 물품(사치품) 중 하나로 지목했다.
대북 제재가 시작된 2017년 당시 북한 당국은 석탄 수출과 외화벌이 등을 통해 30억·60억 달러 규모의 외화를 갖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주로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로 시장에서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제재로 인한 물가 오름세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장마당이 돌아갔기 때문에 물품 공급도 그런대로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경제 사정이 급격히 악화했다. 대북 제재에다 코로나19가 충격을 주며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됐다.

외화보유고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달러화와 위안화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원-달러 환율을 인위적으로 20% 이상 떨어뜨렸다. 그 결과 북한의 환율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원-달러 시장 환율은 8000원 선이었다. 환율은 7400원으로 떨어졌고, 작년 하반기 몇 달간 환율 변동폭은 무려 25%에 달한다. 하지만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데 북한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은 한시적이다. 인위적인 환율 조작은 부작용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환율 조작은 외화를 사라지게 만들어 경제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민간의 외화 보유자들이 달러를 움켜주고 환율이 상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요컨대, 북한경제 현장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선물정치를 구사할 수 없는 김정은 위원장의 노기와 분노가 폭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 대회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기간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며 “결함의 원인을 객관이 아니라 주관에서 찾고…축적된 쓰라린 교훈” 등을 언급하며 내부 쇄신을 강조했다. 공개된 관영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김 위원장이 상기된 얼굴로 간부를 세워놓고 삿대질하는 장면이 나왔다. 급기야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된 김두일 당 경제부장을 경질하고 오수용을 임명했다. 김덕훈 총리도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 실패 원인으로 “경제부문 지도일꾼들이 조건 타발을 앞세우면서 패배주의에 빠져 눈치놀음과 요령주의를 부리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며 “그릇된 사상관점과 무책임한 사업 태도, 구태의연한 사업방식”을 질타했다.


▎[노동신문]은 최근 신설한 ‘지상연단’ 코너에 내각과 경제현장의 자아비판성 글을 실었다. / 사진: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당 대회를 마친 후 곧바로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결정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에 나섰지만, 예산이나 투자는 전년에 비해 줄어드는 등 경제난 타개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나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지속적인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 수해에 따른 경제난 속에서도 경제발전의 키워드로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외쳤지만 실제 대책은 내각 물갈이를 통한 ‘보여주기 인사’ 정도였다. 우선 고위급 경제 관료들을 대거 물갈이했다. 북한은 새로운 5개년 계획 실행을 위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려는 듯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경제 주요부처 수장 대부분을 교체했다. 국가 경제의 설계와 계획 전반을 총괄하는 국가계획위원장과 농업상을 비롯해 부총리 8명 중에서 전력공업상 등 6명을 교체했다. 무역을 총괄하는 대외경제상, 경제 통계를 담당한 중앙통계국장, 국가 재정을 담당한 중앙은행 총재 등 주요 부처 수장들도 바뀌었다.

새로 임명된 고위직 대부분이 기존 부처에서 일하던 40대, 50대 부상 또는 국장급 인사들이어서 내각 물갈이가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새로 등용된 장관급 인사들은 실무자들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당 간부의 눈치를 보는 데다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업무 수행에 한계가 크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격노는 경제 간부들이 [노동신문]에 릴레이로 자아비판의 반성문을 기고하게 만들었다. [노동신문]은 3월 들어 ‘지상연단’이란 코너를 만들어 간부들의 기강을 잡으면서 충성맹세를 유도하고 있다.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첫해, 경제 예산 제자리


▎2020년 말 김정은을 위인으로 묘사한 전기인 [위인과 강국시대] 표지. / 사진:남성욱 제공
한편 올해 살림살이를 책임질 경제건설 예산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고정범 재정상은 올해 경제건설 관련 지출이 지난해보다 0.6% 늘어난 데 그친 예산안을 보고했다. 최근 3년간 경제건설 부문 예산을 매년 4.9∼6.2%씩 늘려온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수치다. “경제건설에 대한 투자를 늘려 올해의 자력갱생 대 진군을 자금적으로 담보할 수 있게 했다”라는 재정당국의 설명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제건설 예산이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의 47.8%보다 줄었다. 금속·화학공업과 농업, 경공업 등 인민경제 관련 투자도 불과 0.9% 증가해 최근 3년간 평균 증가율 5.5∼6.2%보다 대폭 감소했다.

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첫해인데도 올해 북한이 경제 관련 예산을 낮춰 잡은 것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수해 등 삼중고로 북한 경제가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가예산 수입 증가율이 0%대로 낮아진 것도 경제 침체를 잘 보여준다. 남한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거래수입금과 남한의 법인세에 해당하는 국가기업 이익금이 각각 0.8%와 1.1%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의 올해 수입 총액의 83.4%를 차지하는 주 수입원이다. 양자 모두 경제가 원활히 굴러가야만 늘어난다.

북한이 초유의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첫째, 소위 권력 특수기관의 처리다. 김정은은 공개석상에서 최초로 특수기관들의 행태를 비판, 경고했다. 국방성, 국가보위성 및 사회안전성 등 힘센 특수기관이 주요 기업소를 독식하며 내각의 통제에서 벗어났던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당 대회 결론에서 “당 대회 이후에도 특수성을 운운하며 국가의 통일적 지도에 저해를 주는 현상에 대해서는 단위를 불문하고 강한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콕 집어 언급했다.

북한의 특수기관은 주로 ‘궁정경제’와 군수경제를 가동하고 있다. 궁정경제는 노동당 39호실이 관장하는 외화벌이 사업으로 ‘조선대성총국’을 비롯한 120여 개 핵심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 밖에 국가보위성(정보기관)과 지난해 인민보안성에서 명칭을 바꾼 사회안전성(경찰)도 각각 돈줄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제2경제’로 불리는 군수경제도 특수기관이다. 제2경제는 노동당 산하 조직으로 400~500여 개 군수품 공장과 인력 50여만 명이 종사한다. 39호실과 제2경제를 제외한 나머지가 내각이 관장하는 인민경제다.

정무원 산하에 내각은 농업과 광업, 경공업, 전력과 중화학, 지방경제 등 그야말로 끗발이 없는 부문을 관장하고 있다. 노동당 39호실과 제2경제가 전력, 자금, 인력을 비롯한 자원 배분에서 우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민경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김 위원장이 특수기관들을 손보겠다고 경고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국가 경제를 외면한 채 노른자위 기업을 제멋대로 운영하던 특수기관들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하지만 39호실이나 군수경제가 모두 김 위원장을 떠받드는 골수세력이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경제 위기 심해지자 장마당 통제 강화


▎2020년 9월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조선족자치현에서 바라본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마스크를 쓴 주민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둘째, 장마당에 대한 통제 강화다. 북한의 풀뿌리 시장경제가 가동되는 ‘장마당’은 인민 경제의 현장이자 외국 물자가 유입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장마당의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장마당의 국가 통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최근 반사회주의 및 비사회주의와 전쟁을 선포한 김정은은 개인들의 장마당 운영, 소유를 금지하고 모든 거래를 당국 관리 아래에 두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장마당 국가 통제의 일환으로 우선 전국 시장에서 개인들의 식량 거래를 중단시키고 국가식량 판매소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경제난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장마당은 2002년 김정일의 ‘7·1 경제관리개선조치’에 의해 공식화됐고, 이후 유통·물류·운수 등 경제의 핵심기지로 발전했다. 북한 당국이 공식 허가한 장마당만 500여 개고, 종사 인원이 110만 명에 달한다. ‘장마당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고, “노동당 아닌 장마당이 우릴 먹여 살린다”는 말이 회자됐다.

김정은은 궁정경제의 바닥난 금고를 장마당을 통제해 보충하려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장마당 국가통제’ 조치는 지난 1월 열린 노동당 8차 당 대회에서 이미 예고됐다. 당시 김정은은 사업총화 보고에서 “국영상업을 발전시키고 급양(식당), 편의봉사(미용, 사우나, 각종 수리점, 가내 수공업 등)의 ‘사회주의 성격’을 살리는 것을 현 시기 매우 간절한 문제로 상정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경제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봉쇄 속에서도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화하면서 인민들의 경제활동을 통제함으로써 국가가 먼저 살겠다고 주민들의 밥그릇마저 빼앗는 초유의 반인민 정책이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일부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에 경영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경제 개혁 조치를 추진했다. 이 때문에 서민 경제의 상징인 장마당은 2010년 200여 개에서 2017년 460여 개가 돼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남한의 모 진보정치인은 핵 개발과 인권 유린은 제쳐두고 확대된 장마당 규모만을 놓고 김정은을 ‘계몽군주’라 평하기도 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 1년 넘게 봉쇄돼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시장 폐쇄·통제라는 초유의 반개혁적 카드를 뽑아들었다. 결과적으로 김정일 때의 개혁 조치보다도 후퇴했다. 지난해 말 북한은 김정은을 위인으로 묘사한 전기인 [위인과 강국시대]를 책으로 발간했다. 경제난 심화로 민생이 큰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집권 10년을 성공으로 치장해 선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권력 기반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다. 2021년 김정은의 비상 경제 해법은 특수기관의 기업 가동을 내각으로 이관하고 장마당을 확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날개가 없는 추락이다.

/images/sph164x220.jpg
202104호 (2021.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