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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1)] 하드리아누스 청동상… 털, 야만에서 패션으로 

황제의 수염에서 찾은 대제국 로마의 힘 

전통 깨고 우수한 그리스 문명·문화, 외모 스타일까지 수용
개방성으로 2200년간 번영… ‘K-국뽕’에 빠진 한국과 대조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그의 정실부인 비비아 사비나의 입상. 서로 다른 시선처럼 두 사람은 평생 별거 생활을 이어간다. / 사진:유민호
K-용비어천가는 언제부턴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한국의 일상 풍경이다. 오래전부터 떠돌던 K-팝에서부터 전염병 시대 들어서는 K-마스크, K-방역으로 진화했다. 이들 K-시리즈의 대부분은 ‘한국 넘버1’이란 의미가 담긴 21세기 ‘국뽕’ 조어(造語)다. 한국인이 한국 자랑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 말대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도 아니고 나쁜 것만도 아니다. 국뽕을 통해 국가적 단결과 국난해결로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K-용비어천가에는 결함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만세’를 확인시켜 줄 근거·증거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있다 해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인 것이 전부다. 머리는커녕 가슴도 아닌, 이벤트와 슬로건에서 출발하는 허상으로서의 K-용비어천가가 주류다. 예컨대 2년째 접어든 전염병 시대의 게임 체인저는 백신이다. K-마스크, K-주사기는 해괴한 변명일 뿐이다. 대만 같은 진짜 방역 선진국은 언급도 안 한 채, 최악의 나라와 비교해서 K-용비어천가를 주문처럼 반복한다. 애처로운 마음이 적잖이 든다. 왜 한국이 전 세계 백신 접종 순위 102위에 그쳤는지를 설명해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동물 화석이나 고고학 유물은 주기적으로 신문·방송에 등장하는 소프트 뉴스 중 하나다. 자세히 보기 바란다. 새롭게 발견된 화석이나 유물 사진 속에 반드시 등장하는 근거가 하나 있다. 동전·담뱃갑·볼펜 같은 것들이다. 화석·유물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객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기준이다. 빙하기 동물의 다리뼈 하나를 통해 몸 전체의 윤곽을 파악해낼 수 있다. 동전·담뱃갑·볼펜은 그런 큰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사소하지만 객관적인’ 근거에 해당한다.

필자의 개인적 얘기지만, 40대 중반부터 R-용비어천가에 빠졌다. R은 고대 로마(Rome)를 의미한다. 로마 숭배자라고나 할까? 그러나 로마 전부를 무조건 찬미·추앙하진 않는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볼 수 있는, 허물조차도 사랑할 수 있는 자세가 R-용비어천가의 출발점이다. 로마가 가진 밝고 아름다운 점은 물론, 어둡고도 추한 모습 전체를 파악한 뒤 내린 결론이 바로 R-용비어천가다. 당대는 물론, 로마 이전 과거나 이후 미래를 객관적 상대적으로 비교하면서 도출해낸 결론이 R-용비어천가다. 로마가 얼마나 위대한 인류의 모델이자 교훈인지 알 수 있게 만드는, 동전·담뱃갑·볼펜을 통해 파악한 결과로서의 R-용비어천가다.

파리 루브르 뮤지엄은 R-용비어천가의 증거를 발견해낸 장소 중 하나다. 2005년 겨울, 장기출입 티켓을 끊은 뒤 2주일 동안 샅샅이 뒤졌다. 미로 같은 공간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챙겼다. 루브르는 개장과 함께 입장문을 향한 긴 행렬이 시작된다. 개장 30분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면 최소한 1시간은 벌 수 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저녁 문을 닫을 때까지, 휴무일을 뺀 12일간의 여정이었다. 관람 기간이 왜 그렇게 기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한 달 내내 돌아다녀도 모자란 곳이 루브르다. 한 번만 보고 스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읽고 느끼는 것이 좋다. 참고로 루브르 1층에는 물품보관소가 있다. 카메라 하나만 지참하고, 나머지는 전부 보관한 채 돌아다닐 수 있다. 배가 고프면 보관소에 들러 식사를 한 뒤, 다시 입장할 수 있다.

대제국 로마를 입증할 근거는 루브르 탐사 마지막 날 얻어낸 수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머리카락이나 수염과 같은 ‘털(毛)’이 R-용비어천가를 지탱해주는 객관적 증거다.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털을 통해 로마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루브르 데넌(Denon) 전시관 내 1층 413호실에서 만난 청동상이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두상이다. 서기 117년부터 138년까지 21년간 황제로 군림한, 로마 5현제의 중심이자 대제국 최고 번성기를 창조해낸 인물이다.

로마 최고 번성기 이룬 하드리아누스


▎루브르에 전시된 하드리아누스의 청동 두상(왼쪽)과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출토된 카이사르 흉상. / 사진:루브르, AFP/연합뉴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청동상보다 대리석 조각이 한층 더 고가다. 제작도 어렵다는 점에서 대리석 조각이 한층 더 귀하다. 하드리아누스 시대로 돌아가면 다르다. 청동상이 한층 더 비싸고 귀하다. 대리석은 무진장 많지만, 청동은 발견 채취는 물론 특별한 연금술을 필요로 한다. 무거운 돌이 아니라, 가볍고 쉽게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청동 조각이 우위에 서 있었다. 2000여 년 전 기준으로 보자면, 대리석 조각 10개보다 청동상 하나가 더 소중하다. 전 세계 뮤지엄을 통틀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청동상을 가진 곳은 극히 드물다. 청동은 녹일 경우 무기·농기구로 재활용할 수 있다. 로마 시대 제작된 대리석 조각상의 상당수는 그리스 때 제작된 청동상을 모델로 한 가짜다. 루브르 하드리아누스 청동상도 원래는 전신 작품이었을 것이다. 몸통은 무기 농기구로 재활용됐을 것이라 추정된다. 비록 두상이지만, 청동상이라는 점에서 루브르가 자랑하는 고수준의 유물 중 하나다.

돌·금속 여부보다, 청동 두상에 새겨진 수염과 머리카락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염과 헤어스타일을 통해 문명·문화의 정도를 파악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 문명·문화사에서 볼 때 털은 야만의 상징이다. 고대 로마로 돌아가면 계층·계급으로서의 인간관계를 파악해내기가 어려웠다. 21세기처럼 자동차·귀금속·명품과 같은 물건을 통한 과시가 어렵다. 예외적으로 실크 옷을 입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명이나 목화로 된 의복에다 소박한 외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계층·계급을 가르는, 큰 차이를 발견해낼 수 있다. 당대 사람들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신분증명서다. 바로 수염과 헤어스타일이다. 남녀 구별 없이 어느 정도 열심히 털을 관리하느냐 여부가 신분 증명의 기준이다. 헝클어진 머리나 멋대로 자란 수염은 하층민에 해당한다. 로마가 그리는 야만인 조각상 얼굴의 대부분은 긴 머릿결에다 수염으로 뒤덮여 있다. 지금은 멋의 상징인 콧수염도 당시에는 미개인의 징표였다.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남성보다도 한층 더 까다롭다. 앞머리를 통째로 묶어 마치 방패처럼 끌어올리는 헤어스타일은 옷을 만드는 바늘을 이용해 하나하나 엮어나갔다. 보통 반나절이 꼬박 걸리는 수작업이다. 왜 수염과 헤어스타일이 신분 증명서로 자리 잡았을까?

수염을 깎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는 일은 여러 가지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 씻고 다듬기 위해서는 먼저 물이 있어야만 한다. 당시 보통 사람은 공중 수도까지 가서 물을 가져왔다. 집안에 물이 흐르거나 우물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주 특별하다. 수염과 머리를 만져 줄 노예나 전문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전제조건이다. 지금처럼 일회용 면도기나 대중 차원의 이발소나 미장원이 없던 시대다. 스스로 대충 자르거나 길게 기르는 것이 당시의 일상 풍경이다. 당시를 그린 벽화를 보면, 여성 머리 장식에 동원된 노예가 적어도 4~5명이었다. 머리만이 아닌, 향도 피우고 차도 마시면서 행하는 오늘날의 마사지 종합 케어 시설과 비슷했다.

상류층 상징이었던 ‘카이사르 스타일’ 폐기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뮤지엄을 찾은 방문객들이 루브르 피라미드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수염과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는 특별한 도구도 필요하다. 거울·면도기·가위·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청동제나 철제라는 점에서 살 능력이 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따라서 수염과 머리를 다듬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부자로 통하던 시대가 로마다. 주기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관리하는 사람은 한층 더 특별하다. 상식적 얘기지만, 문명·문화의 대부분은 돈을 전제로 한 경제 사회활동에서 비롯된다. 돈이 없어도 문명·문화가 일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거나 오래가지 못한다. 수염과 헤어스타일은 로마의 금전적 번영이 창출해낸, 대제국 문명·문화의 상징 중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하드리아누스 청동상에 새겨진 수염과 헤어스타일에 관한 부분이다. 하드리아누스는 기원전 3세기 공화정 이래 지속된 로마 지도층의 수염과 헤어스타일을 바꾼 황제다. 하드리아누스 이전 약 400여 년간, 로마 황제와 지도층은 얼굴의 털을 전부 깎았다. 면도는 기본적인 사회적 예법이다. 공화정 마지막 종신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그를 죽인 브루투스, 제정 로마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의 조각상을 보면 수염과 무관한 얼굴이다. 기원전 3세기는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벗어나, 지중해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다.

면도기·귀이개에도 문명이 담겼다


▎로마의 청동거울과 귀청소기. 부자가 아니면 사기 어려운 사치품 중 하나다. / 사진:유민호
당시 지중해 모든 지역 주민은 수염과 머리 모두 길게 길렀다. 로마는 그들 나라를 야만시하면서 면도와 헤어스타일에 주목한다. 군인들도 매일 면도를 하고, 오늘날처럼 짧게 기르는 식의 헤어스타일 문화를 창조해낸다. 어린이의 경우 머리를 길렀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머리를 짧게 자르고 매일 면도하는 습성을 갖게 된다. 청결이란 이미지와 함께, 몸을 씻고 매일 관리하는 문명·문화가 로마군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면도를 안 하거나 머리를 길게 기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2류, 3류 인간으로 추락했다.

필자의 뮤지엄에서의 관찰대상 중 하나로 면도기와 귀청소기를 빼놓을 수 없다. 면도기는 보통 양면에 날이 선 작은 칼이 주류다. 날카로운 면도기를 보호할 칼집은 없다. 보통 청동으로 만들어진 귀청소기는 오늘날의 모습과 비슷하다. 미세하지만, 끝부분을 평면으로 만들어 내부를 긁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문명·문화의 증거로서 초대형 건축물이나 조각품, 나아가 철학이나 문학 같은 정신세계가 인용된다. 더불어 빠뜨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인간 개개인의 몸 관리에 활용될 수 있는 도구나 장식품도 문명·문화의 구성 요소 중 하나다.

거울 역시 기본적인 신체 관리용 도구다. 그리스에 나르키소스(Narcissus) 신화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다듬고 지키는 문명·문화가 존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르키소스가 많을수록 문명·문화국이라는 의미다. 오해하기 쉬운데 나르키소스는 결코 사악한 캐릭터가 아니다. 자기 자신만 쳐다보다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조차 잊고, 결국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한 존재로 그려진다. 결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물이 아니다. ‘외면보다 내면이 우선’이란 그럴듯한 슬로건과 함께, 자기 자신을 잊고 남에게 충성하는 동양식 미덕의 정반대 편에 선 캐릭터가 바로 나르키소스다. 서양이 나에 기초한 개인주의, 동양이 우리에 뿌리를 둔 집단문화란 점도 나르키소스 세계관을 통해 구별해낼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는 면도와 짧은 헤어스타일의 로마 전통을 무너뜨린 황제다. 그 자신, 평생 수염을 기르고 긴 머릿결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 다시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일까? 정반대다. 수염과 머리도 기르지만, 야만인처럼 그냥 멋대로 풀어헤치는 것이 아니다. 길게는 하지만, 손을 대면서 한층 더 아름답고 품위 있게 진화시킨 인물이 바로 하드리아누스다.

한꺼번에 밀어버리는 면도나 짧게 친 머리는 빠르고 간단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른바 로마의 ‘실용·간단·간편’을 상징하는 문명이자 문화다. 하드리아누스는 미와 품격을 한층 더 중시했다. 시간·돈이 더 들고 더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는, 긴 수염과 긴 머리를 상대로 한 고차원 문화다. 하드리아누스 조각상은 루브르만이 아니라, 유서 깊은 다른 뮤지엄에 가도 만날 수 있다. 예외 없이 물결 모양 머릿결과 잘 관리된 수염으로 장식돼 있다. 풍성한 머리숱은 기본이다. 수컷 사자가 그러하듯, 머리숱이 적다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파워를 상실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왜 하드리아누스는 전대와 달리 수염과 헤어스타일에 집착했을까? 답은 하드리아누스 조각상 주변 어딘가에서 반드시 만날 수 있는, 로마 당시 창조된 다른 예술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바로 안티누스(Antinous)다. 하드리아누스의 연인으로 통하는 그리스 미소년이다.

로마는 기원전 146년 코린트(Corinth) 점령을 끝으로 그리스 내 1000여 개 도시국가를 완전히 정복한다. 페르시아도 못해낸 일이다. 그러나 물리력이 아닌, 문화적 차원에서 보면 다르다. 로마가 아니라 그리스가 진짜 주인이다. 역사 학자들은 정신적·문화적으로 로마를 지배한 나라가 그리스라 단언한다. 로마는 자체 제작 문명·문화와 무관한 나라다. 점령지의 탁월한 문명·문화를 직수입해 로마식으로 개조한 것이 대제국의 실체다. 원형의 대부분은 로마 밖에서 왔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나타난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대제국은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주변을 흡수하는 정책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 이민대국 미국이 그러하듯, 외부로부터 새로운 피를 수용하고 내부의 구습이나 비능률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대제국으로 진화해 나간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은 대제국으로 나가기를 근본적으로 포기한 나라라고 현대 역사가들은 말한다. 남의 장점을 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상대에게 일방 강요하는 식의 성장은 대제국의 근본 속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위구르와 티베트 말살은 중국 한계론의 증거로서 역사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부분이다.

로마는 자신의 약점을 없애고 정복한 땅의 장점을 단기간에 흡수한 대제국의 전형적인 모델에 해당한다. 그리스 정신세계에 대한 하드리아누스의 관심은 로마 고유의 유전자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로마의 유연성과 개방성의 증거인 셈이다. 정신세계에 빠진다는 것은 그 같은 세계를 창조한 사람을 존경하면서 닮고 싶어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면만이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철학·사상·수학·미학을 선도한 인물들을 흠모하게 된다. 결국 하드리아누스는 면도와 짧은 머리를 유지해온 황제의 전통을 깬다. 정신세계만이 아니라, 로마 황제의 외형적 패션도 그리스풍으로 바꾼다.

예술로 남은 그리스 미소년과의 사랑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하드리아누스 황제(왼쪽)와 안티누스의 흉상. 황제는 정면을, 안티누스는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그리스 미소년 안티누스를 그리스 문명·문화 애착으로 연결하는 것이 이상하게 비칠지 모르겠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꼰대와 10대 청소년 사이의 추한 동성애 관계로 보일 듯하다. 2000여 년 전으로 돌아가면 정반대다. 미소년과 지적으로 성숙한 남성과의 관계야말로 플라토닉 러브, 즉 순결한 영혼으로 만나는 사랑의 정수(精髓)로 풀이됐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여성은 악의 상징에 해당한다. 제우스가 에피메테우스의 아내로 보낸 여성 판도라(Pandora)가 화의 근원이다. 악의 상자를 열어 세계를 어둡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판도라다.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Hera)의 외형적 이미지에서 보듯, 질투·잔인·충동·복수가 로마 당시 여성관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육체적 관계를 전제로 한 여성과의 만남이 아닌, 정신적 대화에서 출발하는 남성 사이의 사랑이야말로 그리스 철학과 미학의 중심과제로 여겨져 왔다. 결과적으로 육체적 관계로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적 접촉을 전제로 한 여성과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식의 세계관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지만, 평균 수명 30세를 못 넘긴 로마 당시 상식으로 본다면 충분히 가정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 볼 수도 있다. 생식과 본능으로서의 관계가 아닌, 미소년 청춘을 통해 순결하고도 아름다운 인간성을 부활하자는 의미에서의 사랑이다.

전 세계 뮤지엄 곳곳에서 수많은 안티누스 조각상을 만났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수염 하나 없고, 머릿결은 엄청난 숱과 함께 물결 문양으로 단정히 정돈돼 있다. 고개를 쳐들고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뭔가 수줍은 모양으로 아래를 굽어보는 구도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하드리아누스는 항상 얼굴을 정면으로 하면서 바로 앞을 보는 식으로 묘사돼 있다. 성숙한 하드리아누스와 풋풋한 청춘으로서의 안티누스다. 안티누스는 이집트 나일강에서 수영 중 익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하드리아누스는 마치 여성처럼 큰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로마 궁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별장에서의 칩거 생활은 안티누스 익사 이후 벌어진 황제의 슬픈 행적이다.

‘메이드 인 로마’ 집착 않는 유연함


▎터키 안탈리아 항구 근처에 세워진 하드리아누스 기념문. 2세기 로마 최고 번영기 때 황제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문이다. / 사진:유민호
최근 터키 안탈리아(Antalya) 뮤지엄에 들른 적이 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에서 3500㎞ 떨어진 곳에 있는, 지중해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내 전시관이다.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누스를 만나려고 들렸다. 서로 다른 층에 들어선 루브르와 달리, 두 사람을 같은 전시실에 모아 둔 곳이 안탈리아 뮤지엄이다. 안탈리아 지방은 로마는 물론 그리스 이전부터 번성한 지중해 무역도시다. 로마와 그리스 유물 유적이 지금도 출토되는 고대 유적 유물 집산지이기도 하다.

1층 전시실로 들어서자 하드리아누스 대리석 입상이 눈에 들어온다. 초대형 월계관을 쓰고 있다. 신으로 추앙된 황제라는 의미다. 로마는 저세상에 간 황제를 신으로 받아들였다. 초대형 월계관은 신의 상징이다. 수염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월계관 밑의 머릿결도 곱게 장식돼 있다. 하드리아누스 바로 오른쪽 옆에는 부인인 비비아 사비나(Vibia Sabina) 대리석 입상이 들어서 있다. 로마 특유의 정략결혼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두 사람은 평생 가면부부로 살았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의 상대가 미소년 안티누스란 사실은 당시 로마인 전부가 알고 있었다. 하드리아누스가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리석 두상으로 된 안티누스는 하드리아누스와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전시돼 있다. 얼굴을 아래로 내린, 미소년 특유의 부끄러움이 표현된 두상이다. 머릿결이 아폴로 신의 헤어스타일로 느껴진다.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시선은 바로 옆의 부인이 아닌, 안티누스를 향하고 있다.

한국이 로마와 같은 대제국으로 나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서 말하듯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R-용비어천가의 실체는 사실 ‘메이든 인 로마’와 무관하다. 로마의 점령지에서 직수입된, 다소 심하게 말하자면 짝퉁 문명·문화가 대제국 로마의 진짜 모습에 해당한다. 로마는 바깥의 모든 것을 끌어모으고 개량해서 실전에 응용한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대제국 경영자로서의 로마다. 황제가 직접 나서 로마 바깥에서 수염과 머리 관리법을 수입했다.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몰릴 경우 조상 탓으로 대응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뜻밖의 반응이 나라 전체에서 터져 나온다. 정치가들이 총출동해 주문처럼 외우는 K-용비어천가, 즉 자화자찬이다. 비교하면서 따라가고 배우고 흉내 내는 것이 나쁘고 열등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격려하고 지원해야 할 자세다. 기원전 753년이 신화 속의 로마 건국연도다. 1453년 패망한 동로마 비잔틴을 포함할 경우, 대제국 로마의 번영은 무려 2200여년간 지속했다. 결코 자랑하거나 자만하지 않았던 자세가 대제국 운영의 비결이었을 듯하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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