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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와 인생’] 박태영 ㈜동아인슈 대표의 롱런 비결 

“정직과 뚝심만 있으면 사업도, 골프도 ‘나이스 샷’” 

혈혈단신 객지에서 뚝심 하나로 건실한 조선 기자재 회사 일궈
눈앞의 성적 욕심 비우고 긴 호흡 유지하는 게 성공의 밑바탕


▎ 사진: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동아인슈는 매출 250억원 규모의 조선 기자재 회사다. 이 회사 박태영 대표는 인천에서 태어났다. 성실히 살았지만,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다. 2000년에 가게를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울산으로 내려왔다. 지인이 사장으로 있는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게 됐다.

당시 30대 후반의 박 대표는 배를 만드는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월급은 130만원을 받았고, 연탄 때는 월셋집에서 살았다. 일한 지 1년 만에 사장이 부도를 내고 사라졌다. 현장에서 일하던 기능공들은 밀린 임금을 받지 못했다.

박 대표에게 찾아온 위기였다. 벼랑 끝에 몰렸지만, 그는 모든 걸 걸었다. 그가 가진 전 재산인 자동차 판 돈 450만원을 기능공 5명에게 나눠줬다. 박 대표는 “대신 내가 일거리를 얻으면 시간을 내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박 대표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일감을 구했다. 때론 무릎을 꿇고 사정도 했다. 그는 “나처럼 고생 많이 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니 자투리 일거리가 나왔다. 납기 열흘짜리 일을 일주일만에 해줬다. 1000만원은 받아야 하는 일인데 800만원만 받았다. 새벽 5시부터 사람들을 태워 거제도든 다대포든 울산이든, 조선소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운전기사 노릇을 자처하며 다녔다. ‘박태영 팀’은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일거리가 늘었다. 기능공들에게 잘해준다는 얘기가 퍼져 인부도 몰렸다. 박 대표는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아주 좋아하는데, 2002년 월드컵 경기를 거의 보지 못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

연고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이 객지 울산에 내려온 박 대표는 건실한 기업을 일궜다. 운도 좋았다. 일단 조선경기가 좋았다. 그의 성공을 예견한 사람도 있었다. 박 대표는 “인천 살 때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한 스님이 다가오더니 ‘쇳소리 나는 직업을 얻을 것이다. 물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다. 40대 중반이 되면 삶이 안정된다’고 하더라.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그냥 덕담이 고마워서 그분 커피 값만 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다. 아주 신기하다. 그 스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자동차 판 돈 450만원으로 신뢰 쌓으니 일감 몰려


▎2019년 브리지스톤 챔피언십에서 박태영 ㈜동아인슈 대표가 우승컵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박 대표는 골프도 그의 성공에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이다. 친구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 갔는데 캄캄한 밤하늘로 솟구치는 하얀 공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다음날은 직접 스윙을 해봤다. 재능이 있었다. 몇 번 쳐 보니 7번 아이언으로 150m 정도 보낼 수 있었다. 연습장 사람들이 “골프 처음 하는 사람이 이렇게 공을 멀리 치는 게 신기하다”며 몰려들 정도였다. 박 대표는 기분이 좋아 바로 그날 골프채를 샀다.

골프도 일처럼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그가 산 골프채는 알고 보니 짝퉁이었다. 건성건성 한두 마디 던지고 가는 레슨 프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독학했는데 잘 안 됐다. 실력이 제자리를 걸었다.

필드에 나간 건 11개월 뒤였다. 바삐 일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골프장은 다른 세상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색 들판이 펼쳐졌다. 꽃도 흐드러지고 나무도 아름다웠다. 삭막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그에게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현실은 풍경보다 냉정하다. 골프장에서의 스윙은 연습장과 달랐다. 하도 공이 안 맞아서 13번째 홀에서 집에 가려고 했다. 동반자들 권유로 겨우 라운드를 마치기는 했다. 박 대표는 골프 타수 세는 것도 몰랐는데 함께 간 사람들은 70대와 80대를 쳤다고 했다. 친구들은 잘 치는데 나는 왜 못 칠까. 오기가 생겼다. 이후 2년 동안 휴가와 명절만 빼고 골프연습장에 갔다. 3년 만에 그는 홀인원, 언더파 등 알바트로스를 뺀 모든 기록을 세웠다.

그는 장타자였다. “울산 방어진 연습장에서 뒤 그물을 넘긴 사람이 3명인데, 내가 그중 한 명이다. 드라이버로 270m를 보냈다. 나머지 둘은 프로였다.” 박 대표는 다부진 체격에 펀치력이 좋았다. 어릴 때 축구를 하면 공이 너무 빨라 그의 슛을 골키퍼가 안 막으려 했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커 청바지는 아예 입을 생각도 못 하고, 양복도 꼭 맞춰 입어야 했다. 경주 보문 등 길지 않은 골프장 파 4홀에서 원온을 할 때가 많아 앞 팀과 마찰이 생긴 적도 여러 번이다.

컨트롤할 수 없다면 장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드라이버 때문에 어떤 날은 이븐파를 치고 어떤 날은 90타를 치기도 했다. 그는 오버스윙을 없애고 백스윙을 드는 듯 마는 듯 짧게 줄였다. 손목도 쓰지 않는 스윙으로 바꿨다. 손목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해 왼손에 깁스하려 병원에 가기도 했다. 거리가 40m 줄었다. 이후 골프가 안정됐다. 스윙을 간결하게 한 후 스코어가 확 좋아졌다.

2011년부터 아마 고수들의 격전장인 미드아마추어 챔피언십에 나가기 시작했다. ‘미드아마추어’란 25세 이상의 아마추어 골퍼를 뜻한다. 프로를 지망하거나 프로처럼 훈련하는 주니어 선수 등을 배제한 순수한 아마추어 골퍼라는 뜻이다. 미드아마추어 대회는 핸디캡 9 이하의 ‘싱글’이 출전한다. 박 대표는 2018년 볼빅 챔피언십과 2019년 브리지스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최저타는 7언더파 65타다. 2016년 마우나오션 파 5홀에서 210m를 남기고 4번 아이언으로 알바트로스를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거리 40m 줄이고 고수 반열에 들어


▎박태영 ㈜동아인슈 대표의 경쾌한 티샷. / 사진:박태영
그는 매우 겸손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골프에선 봐주는 게 없다. 클럽 챔피언십에서 9차례 우승했다. 영천 오션힐스 4회, 마우나오션 2회, 블루원 2회, 경주신라 1회 챔피언이다.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독식하면 다른 회원들이 달가울 리 없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온다. 영천 오션힐스에서는 회원들이 “박태영이 나오면 출전 안 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박 대표는 봐주는 건 스포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출전하지 않게 하려면 영구 챔피언 자리를 달라”고 했다.

업무상 만나는 사람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에게 이른바 ‘접대 골프’는 없다. 박 대표에게 골프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놀이다. 지는 것도 싫어한다. 우연히 골프장에서 조선소 중역과 라운드를 한 적이 있다. 만약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다면 박 대표는 철저한 을이었다. 박 대표와 라운드를 한 후 그 중역은 한 번 더 치자고 했다. 박 대표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도 평소처럼 안 봐주고 쳤다. 세 번 라운드한 후 중역은 박 대표의 회사를 협력사에 넣어줬다. “골프 잘 치면 다른 일도 분명히 잘할거다”라면서다.

박 대표는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대하는 것과 골프를 져주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퍼트를 넣지 않고 OB(아웃오브바운즈)를 내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러지 않는다. 그러면 내 골프만 망가진다. 골프를 잘하는 건 죄가 아니다. 물론 못하는 것도 죄는 아니다. 자기 모습을 숨기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 치니 오히려 소문이 나면서 나와 쳐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했다.

울산 연습장엔 조선소 직원이 많이 온다. 1층에 조선소 사장 등 중역이 오면 다른 직원들은 2층으로 피해 아래층에 오히려 자리가 비곤 한다. 박 대표는 여유로운 1층을 이용했다. 그런 박 대표에게 ‘어떻게 그렇게 멀리 공을 치냐’고 사람들이 물어오면 친절하게 답을 해줬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조선소의 높은 사람들이었다. 골프를 통해 인간관계를 넓혔다.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 대표는 “한 번도 공을 건드리고 치지 않았다. 드롭을 할 때는 반드시 동반자나 심판을 불러 동의를 받았다”고 했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정직한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그는 굳게 믿고 그 믿음을 스스로 지켜간다.

골프장에서 속이는 경우는 가끔 본다. 심지어 박 대표에게 약을 탄 커피를 건넨 사람도 있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고 나니 발걸음도 느껴지지 않고 공을 맞히기가 어려웠다”고 기억했다. 박 대표는 “속이는 사람에게 면전에서는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는 골프 보다 일이 먼저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회사에 들러 일을 처리하고 12시 이후 공을 친다. 대표가 신경 쓰지 않으면 사내 분위기가 느슨해져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그는 직원 130명에 협력업체 직원까지 300명 정도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2018년 조선업 침체로 위기가 있었다. 재산을 팔고 보험을 해약해 회사에 쏟아부어야 할 정도로 위기였다. 박 대표는 “부도를 내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라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박 대표는 처음으로 전국 대회 챔피언이 됐다. 박 대표는 “회사 자금 문제로 머리가 복잡해 대회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회사에서 벗어나면 마음이나마 편해질까 싶어 나갔다가 우승했다. 사실 제정신이 아니어서 어떻게 우승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어쨌든 그 우승으로 힘을 얻어 회사를 정상으로 복귀시켰다”고 했다.

골프에 필요한 근육 키워야 기초 흔들리지 않아


▎박태영 동아인슈 대표가 퍼트에 앞서 홀컵을 주시하고 있다. / 사진:박태영
박 대표는 레슨을 받지 않았다. 어니 엘스를 보고 혼자 배웠다. 타이거 우즈의 스윙은 너무 다이내믹해 따라 하기 어려웠다. 골프 채널에서 어니 엘스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꼼꼼히 적어 연습장에서 따라 했다. 박 대표는 “뭐든지 잘하려면 열정이 있어야 한다. 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열심히 할 때는 하루 4~5시간에 600개의 공을 쳤다. 드라이버는 20개 정도, 칩샷 200개, 나머지는 8번 같은 가장 많이 쓰는 아이언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박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은 코스 매니지먼트다. 7타 뒤진 채 최종라운드를 시작해 첫 홀 OB를 내고도 3타 차로 우승한 적도 있다. 그가 4차례 클럽 챔피언에 오른 영천 오션힐스는 풀백 티 전장이 7300m 정도다. 8000야드가 넘는다. 풀백티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긴 골프장일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가 긴 것으로 유명한 US오픈 코스도 7500야드 정도이니 어마어마하다. 영천 오션힐스에는 230m짜리 파 3홀과 610m 파 5홀도 있다. 풀백 티에서는 티잉그라운드에서 친 티샷이 페어웨이까지 도달하지 않는 홀도 있고, 우드를 쳐도 그린에 못 미치는 홀이 허다하다. 박 대표는 특별한 장타자가 아니지만 이곳에서 3오버파로 우승했다.

박 대표의 코스 공략법은 “첫 홀 드라이버를 세게 안 치고 똑바로만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드라이버를 세게 치지 않는다. 그럴 때 오히려 장타가 나온다. 경기 전 철저하게 버디 홀과 파를 할 홀, 보기 홀을 정한다. 전장이 길어도 짧은 홀이 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버디를 잡고, 어려운 홀에서는 절대 무리하지 않고 운 좋으면 파를 노리고 경기에 임한다.” 대회 전 이미지 스윙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것도 그의 전략이다.

그는 겸손하다. “레슨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 공개적으로 골프 스윙에 대해 알려줄 능력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확신하는 게 있다. 골프 근육을 안 만들면 절대 골프를 잘 할 수 없다는 거다. 골프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인간의 움직임과 달라서 필요한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가 주로 하는 운동은 발로 무게를 미는 운동(레그 프레스), 무릎을 꿇고 덤벨을 들어 올리는 운동(닐링 덤벨 프레스), 철봉에 매달리는 운동(데드 행), 무게를 당기는 훈련(웨이티드 케이블 로우)이다. 운동법은 혼자 터득했다고 한다. “12㎏짜리 덤벨 들기(닐링덤블 프레스)를 열다섯 번 3세트를 하면 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그러나 골프 근육이 올라온다는 걸 느낀다.”

박 대표의 운동 노하우에 대해 근육의 움직임을 가르치는 (주)바디스앤소울스 배익준 대표는 “등, 코어, 하체, 어깨 회전 근육을 강화해주는 운동들이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꼭 필요한 운동”이라고 했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 [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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