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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전망] 4·7 재·보선 ‘절반의 성공’ 안철수의 미래 

정국 주도권 가질 입장은 아냐 국민 신뢰 축적하면 기회 올 수도 

본선 진출 실패로 입지 축소됐으나 ‘약속’ 지키는 정치인 이미지 얻어
국민의힘과 합당 통해 새로운 길 모색하겠지만 당권 도전은 안할 것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4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 배경 판의 글귀를 읽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안철수 현상’과 함께 정치와 인연을 맺은 지 어언 10년. 의사 출신 서울대 교수이자 벤처기업인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그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가장 주목받은 인물이었다. 당시는 이명박(MB) 정권이 말기에 접어들었던 시기로, MB의 도곡동 사저 논란 등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었고,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당시 안 교수는 여론조사로만 보면 적수가 없었지만,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통 크게 양보했다. 안 대표는 훗날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과 관련해 “그때 저는 정치인이 아닌 서울대 교수였다”며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게 제 결론이었다”고 고백했다.

2012년 9월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치인 안철수’의 행로는 곡절이 많았다. 그의 최근 3년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 패배→유럽·미국 체류(1년 4개월)→귀국(2020년 1월)→제21대 총선 사실상 패배(2020년 4월)→4·7 서울·부산 시장 재·보선 출마 선언(2020년 12월)→서울시장 야권 단일 후보 여론조사 패배(2021년 3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번 4·7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은 서울·부산 시장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예상 밖의 대승이었다. 특히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서울에서 오세훈 범야권 단일 후보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서울시에 입성했다. “안철수의 흥행몰이 덕분”이란 말도 나왔다.

그런데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안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4·7 재·보선 당일 안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야권의 승리”라고 말한 걸 걸고넘어졌다. 안 대표는 이번 보선에서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오 후보와 김형준 부산시장 후보를 지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어떻게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나. 자기가 이번 승리를 가져왔다는 건가”라며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오세훈’을 찍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 승리’를 축하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역시 사람을 잘 알아봤다’ 했다”며 “그 정도 수준의 정치인밖에 안 된다고 확신했다”고 도발했다.

선거 전만 해도 김 전 위원장이 연일 안 대표를 비판한 게 국민의힘 후보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해석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선거 뒤에도 안 대표를 콕 집어 비난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 일각에서는 추후 야권 대통합 과정에서 김 전 위원장이 확실하게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종인 안철수 때리기의 노림수


▎4·7 재·보선 당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축하 인사말을 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 사진:연합뉴스
다른 한편으로는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이 재·보선 압승으로 어렵사리 확보한 국민적 지지가 분산될 경우 대선 승리 동력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해되기도 한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5월 말 또는 6월 초로 예상되는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과열 조짐을 보인다. 극우 탈피, 중도 확장 등 혁신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 듯한 모습이다. 국민의당과의 합당,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연대 등으로도 어수선하다. 전직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누가 보면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인 줄 알겠다”고 꼬집었다.

김 전 위원장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재·보선 결과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대체로 안 대표의 ‘공’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야권 단일 후보 발표 다음 날인 3월 24일 안 대표가 빨간 넥타이를 매고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나타났을 때 참석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 전 위원장의 안 대표 ‘저격’ 발언과 관련해서 장제원·배현진 의원 등이 발끈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장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안 대표를 향해 뜬금없이 토사구팽식 막말로 야권 통합에 침을 뱉는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를 도운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건방지다’는 막말로 돌려주는 게 더 건방진 것 아니냐”고 김 전 위원장을 비판했다. 배현진 의원도 “선거도 끝났는데,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아들 같은 정치인에게 마치 스토킹처럼 집요하게 분노를 표출하시겠는가”라며 김 전 위원장을 저격했다.


▎4월 8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찾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오른쪽)가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오종택 기자
이처럼 안 대표는 4·7 재·보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간극을 많이 좁혔다. 실제로 안 대표는 선거 기간 “당원의 의사를 물어 국민의힘과 합당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현실적으로 국민의당은 3석에 불과한 미니 정당인 데다, 안 대표 역시 본선 진출 실패로 입지가 줄어든 만큼 국민의힘과의 합당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YS처럼 합당 승부수 띄운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오른쪽)와 안철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4월 4일 함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와 관련 김민준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가 안 대표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1970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후보 선출 경선에서 YS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그런데도 YS는 “김대중씨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이며, 나의 승리다. 나는 김대중씨를 위해 거제도에서 무주 구천동까지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지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실제로 YS는 DJ 당선을 위해 전국을 누볐다. 그 덕에 YS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통 큰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안 대표가 이번 선거를 통해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 이미지를 챙길 수 있었다는 데 이견은 많지 않다. 안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오 후보는 물론이고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형준 후보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대표로서는 국민의힘과 합당한 뒤 그 안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재기하는 목표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며 “또 안 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파트너십을 강하게 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안 전 대표와 가까워지는 선택을 할지는 불확실하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 통합하는 순간 제3지대 대표성은 윤 전 총장이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과의 합당이 ‘만능열쇠’가 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힘에 안 대표는 유일 대안이 아닌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과거 바른미래당 시절 유승민계 의원들과 한솥밥을 먹긴 했지만, 국민의힘 내에 안 대표의 지분은 없다. 혈혈단신인 게 현실이다.

유창선 평론가는 “안 대표 입장에서는 국민의힘과의 합당 이후로도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간단치 않을 것”이라며 “이번 보궐선거 때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패했던 것처럼, 국민의힘에서 대권주자로 인정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민 대표는 “안 대표는 이미 국민의힘과 통합한다고 발표했고, 국민은 이를 합당 선언으로 받아들였지만, 국민의힘에서 잡음이 커지면 합당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안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대선은 안 나간다’고 했으니, ‘불려 나가기’ 전에는 대선으로 방향을 틀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방향을 튼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유일 대안이라면 모를까, 지지율이 더 높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험로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을까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오른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4월 1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유세를 마친 뒤 포옹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내 정치사에서 소수파로 거대 정당에 참가해 대세를 뒤집은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주인공은 YS다. YS는 1990년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민자당)에 참여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이 다수파였고, YS가 이끄는 민주당은 소수파였다. 하지만 YS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당 헤게모니를 장악하더니 1992년 대선후보에 이어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안 대표가 그릴 수 있는 건 YS 방식일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중도우파 등 외연 확장 대책이 마땅치 않은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비록 소수파이긴 하지만 안철수 대표만 한 카드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정치평론가)은 “안 대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트로이 목마’가 되고 싶을 것”이라며 “안 대표가 원조 중도로서 이번 재·보선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중도 시대’를 여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어쨌든 서울시장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자기 세력이 약한 건 사실”이라며 “그래서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국민의힘과 손잡고 ‘트로이 목마’를 노려보려 하지 않겠냐”고 부연했다.

최 원장의 말처럼 안 대표가 ‘트로이 목마’가 되려면 국민의힘 내부를 장악해야 한다. 노회한, 다선 의원이 즐비한 국민의힘에서 안 대표가 어떻게 정치력을 발휘해서 헤게모니를 거머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지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4·7 재·보선 과정에서 보여준 안 대표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기대할 만하다는 평가와 결국 소수파의 한계를 절감하며 들러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엇갈린다.

국민의당 출신으로 현재 국민의힘에 몸담고 있는 정치권 관계자는 “냉정하게 보면 현재로서는 안 대표가 정국 주도권을 가질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칼끝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내년 대선은 어렵기 때문에 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 신뢰를 얻은 것처럼 앞으로도 길게 보고 차근차근 신뢰를 축적한다면 언제 어떤 기회가 올지는 모를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밖에서는 안 대표의 행로를 두고 설왕설래하지만, 정작 안 대표 본인은 담담하다는 게 국민의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측근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선뜻 결정하기 어려울 때 안 대표는 늘 명분을 택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지금까지 중도의 길을 걸으려 애썼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달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이어진다. “안 대표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합당을 추진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공언했기에 국민의힘과의 합당도 반드시 성사될 것으로 본다. 설사 합당 과정에서 굴욕적인 상황을 맞더라도 한 번 한 약속이니만큼 지켜야 한다는 게 안 대표의 생각이다.”

安 “국민 부름에 의해 설 자리는 마련되는 것”


▎제19대 대선 다음 날인 2017년 5월 10일 국민의당 대선 선대위 해단식에서 당시 박지원 대표에게 꽃다발을 받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전 총장과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서는 안 대표가 어떤 형태로든 계기를 마련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안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서두르거나 순리를 거스르지는 않겠지만, 안 대표가 윤 전 총장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며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의 합당, 뒤이어 윤 전 총장 측과의 통합도 그려볼 만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이어 “5월 말 또는 6월 초로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당권 도전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잇단 모독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는 직접적·즉응적(卽應的)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야권 통합 그리고 대선 승리라는 대명제가 중요할 뿐, 나머지는 지엽적이라는 게 안 대표의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 대표 지근거리에 있는 의원들의 입장은 좀 다르다. 안 대표에 대한 김 전 위원장의 잦은 비난성 발언에 계산이 깔려 있는 만큼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4월 14일 라디오 방송에서 “국민의당이 야권의 리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전 위원장 본인이 완강히 거부했다. 야권 전체의 단일화 과정에서 역할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 결과가 나오자 상대방을 공격함으로써 본인의 역할 없음을 숨기고 싶어 하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고 직격했다.

김 전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안 대표와 윤 전 총장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윤석열하고 안철수는 합쳐질 수 없다”며 “아무 관계도 없는데 안철수가 마음대로 남의 이름 가져다가 얘기한 것”이라는 발언과 관련해서도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발끈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당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무슨 자격으로 ‘된다, 안 된다’를 말할 수 있냐”고 반문한 뒤 “그러면 김 전 위원장 본인만 누구든 만날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오만함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국민의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전 총장을 때릴수록 지지율이 올라가듯이 안 대표도 마찬가지”라며 “우리 당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앞으로도 안 대표를 때려줬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는 않다”고 비꼬았다.

이처럼 말 많고 탈도 많은 안철수 전 대표의 행로는 어떻게 전개될까? 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말에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 안 대표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국민 부름에 의해 내가 설 자리가 있었던 것이지, 내가 계획했다고 해서 그 자리가 만들졌던 건 아니다. 국민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뭐든 다 하겠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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