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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기피 부처’ 된 기재부 5급 사무관 공무원 24시 

격무는 전통, 승진 보상은 옛말 

올해 신임 사무관 희망 부처 지원에서 기재부 첫 정원 미달돼
승진·수당 등 보상 적은데 정책 입안해도 외풍 시달려 ‘좌절감’


▎국회 대정부 질문을 앞두고 국회 본청 복도를 세종정부청사에서 파견 나온 기재부 공무원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88 만원 세대] 우석훈 박사는 2012년 소설 한 권을 냈다. 제목은 [모피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의 영문 약자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소설은 2010년대를 배경으로 대통령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관료의 대결을 그린다. 소설 속 기재부의 막후 수장 ‘이현도’는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할 만큼 위세 등등하다. 다음은 소설 속 한 대목.

“IMF 경제 위기 때 재계 반발 막아내고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도와 드린 게 바로 접니다. (…) 군인들이 경제를 살렸다? 그놈들이 황당한 짓 못하게 뒤에서 경제계획 세우고 돈이 돌아가게 만든 데는 배경이 다 있는 겁니다.”

소설은 다소 극적인 전개 끝에 이현도의 완패로 끝난다. 우 박사는 장르를 ‘경제 코미디’라고 했지만, 자문해준 이들의 면면이 가볍지 않다. 김대중·노무현 시절 청와대에서 경제 참모로 활동했던 이들이다. 우 박사 자신도 국민의정부 때 총리실 경험이 있다. 가치 판단은 어렵지만, 그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기재부 관료의 위상과 영향력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경제개발 시기는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를 맡으며 위상을 과시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금융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정리를 이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기재부 수장은 곧 정권 실세로 불릴 때가 많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원 없이 돈 써봤다”(원화약세)는 강만수 전 장관, 2014년 ‘초이노믹스’(경제활성화 대책)를 입안한 최경환 전 장관 등이 그랬다. 이런 위상 덕에 5급 공채에 합격한 수습 사무관들의 지망 1순위는 이변이 없는 한 언제나 기재부였다.

그런데 올해 초 기재부 관료사회가 크게 체면을 구겼다. 수습 사무관들에게 희망 부처 1순위 지원을 받았는데 정원을 못 채웠다. 성적 상위권으로 가면 결과가 더 처참하다. 경제 관료를 지망하는 재경직의 최상위 5명 중 기재부 지원자는 1명에 그쳤다. 일반행정직 최상위 5명 중에선 한 명도 없었다. 기재부를 그만두는 사무관도 속출한다. 2019년에 2명, 지난해에는 5명이 그만뒀다는 게 전직 기재부 사무관 A씨의 말이다. 한 해 기재부에 배치되는 신임 사무관 수는 30명 내외다. 고시생들이 보는 잡지에는 매해 5급 공채 수석 합격자의 인터뷰가 나온다. 불과 3년 전까지도 이들은 “기재부(혹은 경제부처) 입직을 꿈꾼다”고 말하곤 했다. 포부는 하나같이 대동소이하다.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것. 그러던 이들이 왜 기재부를 피하기 시작했을까.

대통령 국정과제도 하루아침에 폐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기재부 국장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년 전엔 국회 보좌관이 기재부 과장한테 직접 전화를 못하고 사무관한테 ‘과장님 계시느냐’고 물어봤다더라. 지금은 부르면 세종에서 달려온다(웃음). 비서관이 연락해도 와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난 현직 사무관 B씨는 지금은 전설이 된 선배들의 왕년 이야기로 운을 뗐다. B씨는 기자와 대화하면서 눈 위 쌍꺼풀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며 피곤한 기색을 드러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보좌관을 만나기 위해 세종 청사에서 막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와 약속을 잡은 국회 정문 맞은편 카페 안은 여야 의원실 관계자와 이야기 나누는 공무원들로 소란했다. 각자 패용한 공무원증으로 신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B씨는 주위를 둘러보다 한쪽 테이블을 보더니 반가운 듯 눈인사했다. 그와 같은 기재부 동기였다.

시니어 관료들이 이 모습을 지켜본다면 격세지감을 느낄 법하다. 1980년 재무부에 입직, 장·차관을 두루 거친 전직 관료 C씨는 “우리 때는 기재부 과장이 만든 정책은 국회에서 거의 수정 없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C씨는 “(당시엔 인사 적체가 없어) 사무관 때 과장직을 맡았었다”고도 했다. 다음은 C씨의 말.

“예전엔 기재부가 (법안을) 만들어서 의원 코멘트를 받았는데, 이제는 의원이 만들면 기재부 의견을 받는다. 그것도 기재부가 국회로 간다. 가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기껏 의견을 내봐야 ‘관료 습성에 박혀서 말이야’라고 질책하니 어쩌겠나. 요즘은 기재부에서 먼저 일을 안 하려고 한다.”

B씨도 비슷한 이유로 좌절감을 겪고 있다고 했다. 시니어 관료인 C씨의 젊은 시절처럼 보좌관·비서관들이 기재부로 찾아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학 학부 때 사회과학을 전공했던 B씨는 “행정부 입맛대로 입법하던 과거 시절이 정상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처럼 선출직이 하라는 대로 임명직이 따르는 건 바람직한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가 기재부 내부에서 직접 일해보니 정부가 약속하고 합의까지 끝난 정책이 상황 변화에 따라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적잖아서다.

B씨는 그같은 사례로 ‘주식 대주주 요건’을 꼽았다. 주식을 양도해 차익을 냈을 때 소득세를 내야 하는 기준을 뜻한다. 기재부는 4월부터 현행 10억원(한 종목을 10억원어치 이상 보유)을 3억원으로 강화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많은 주식 보유자가 양도소득세를 내게 될 터였다. 주식 대주주 요건 강화는 기재부가 독단으로 결정한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조세 형평성을 명분으로 주장했고, 2017년 7월 정부 출범 직후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이미 예고한 내용이었다. 같은 해 문 대통령은 2021년 4월부터 대주주 요건을 3억원으로 강화하도록 소득세법 시행령도 개정했다.

그런데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 이른바 ‘동학개미 열풍’이 불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주가 하락을 우려한 개인 투자자들이 반발했고, 여당은 현행 유지로 입장을 바꿨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미 2017년에 결정된 사안”이라며 입장을 고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당은 자본시장에 충격이 갈 수 있다는 이유로 현행 유지를 밀어붙였다. B씨는 당시를 돌이키며 “3년 전부터 시장에 다 알려진 내용이었는데 무슨 충격인가”라며 “이건 원칙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단이 내려지면 데이터를 끼워 맞춘다”


▎정부세종청사 기재부의 한 사무실로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설익은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앞서 전직 보좌관 A씨는 정부가 내놓는 주택 공급 대책을 예로 들었다. 정부는 지난해 8·4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36만4000호를 포함, 수도권 전체에 127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에 17만8000호, 올해는 20만1000호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진척은 지지부진하다. 공공 주도라는 개발 방식을 놓고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반발해서다. 이때 신규 택지로 지정된 서울 태릉골프장 등은 지구 지정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부동산 대책에 참여했던 사무관의 말을 대신 전했다. 부동산 대책은 기재부와 국토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만든다. “청와대에서 정한 목표를 뒷받침할 수치를 만들어내라는 지시가 계속 내려온다고 한다. 어떨 때는 ‘하루하루 사기 치는 것 아닌가’ 느낄 때도 있다고 말한다. 합리적인 조직이라면 데이터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지금은 판단이 내려지면 데이터를 끼워 맞춘다.”

실제로 지난 2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번 정부에서 늘린 공공주택 대부분이 장기간 서민이 안심하고 거주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에서 증가한 공공주택 32만8000호 가운데 국민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영구·국민·장기전세 아파트 등 진짜 공공주택은 4만8000호(15%)에 그쳤다”고 밝혔다. 보증금만 지원해주는 전세임대, 분양전환이 가능한 10년 임대 등은 “무늬만 공공주택인 가짜, 짝퉁 공공주택”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렇게 외풍에 시달리는 지금의 기재부는 세간에서 흔히 생각하는 ‘파워 부처’의 이미지와는 크게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외풍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지난해 기재부를 나온 김가람(37) 전 사무관은 “일반 국민의 염원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정치”라며 “입법부의 압박이 없었다면 과연 (재난지원금) 추경이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앞서 B씨의 말처럼 원칙이다. 2008년 기재부 1차관을 지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부총리가 얼마나 뚝심 있게 직무를 맡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부총리가) 자기 소신 안 맞으면 사표를 던져야지. 그것 못하면 만만하게 보기 시작한다. 그 자리가 생계형이 돼버린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여당의 주장대로 대주주 요건 현행 유지가 결정되자, 홍 부총리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갈 수 없었다”며 결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대통령이 사의를 반려하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B씨는 “언론에서 기재부를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라고 조롱하는 걸 보면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선별지급도 그렇고 몇 번째 후퇴했는지 모르겠다. (윤석열) 검찰총장 하는 것 보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기재부 공무원들이 겪는 격무는 살인적이다. 12월엔 국회 예산 업무를 보던 기재부 서기관이 뇌출혈로 쓰러지기도 했다. 예산안 심사를 위해 새벽까지 대기하던 중이었다. 2018년 기준 기재부 공무원의 월평균 시간외근무시간은 27.8시간.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에 이어 전국 48개 중앙부처 중 셋째로 많다. 전 부처 평균은 19시간이다. 일각에선 ‘수당 받으려고 일을 늦게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지난해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쓴 책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에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대정부 질문을 앞둔 기재부 풍경이 나온다.

밤새워 준비한 서류 들고 KTX타고 서울로


▎2014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상임위 개의 전날에 기재부 기획조정실에서는 ‘실국 판단하에 연락요원·필수요원 중심 대기’라는 행동 요령 지침을 내린다. 필수요원은 결국 모든 사무관이다. (…) 지침은 새벽 1시가 넘게 해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직원들은 여당에서 일찍 준 질의에 대해 답을 쓰고, 자정 전후에 본격적으로 입수하는 야당 질의서에 답을 쓴다. 사무관이 그때 답을 쓰니 과장, 국장들도 그날은 일찍 잠들지 못한다. 사무관은 밤새워 국장까지 결재한 Q&A를 들고 다음 날 새벽 KTX로 세종에서 국회로 올라간다.”(74쪽)

일한 만큼 보상도 제대로 못 받는 실정이다. 김 전 사무관은 “오전 8시 출근해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날이 많다”며 “계산해보면 한 달에 80~90시간 추가로 근무했다”고 말했다. 앞서 집계한 평균 시간외 근무시간도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이 중 20~30시간가량(5급 기준 시간당 1만4072원)에 대해선 수당을 받지 못한다. 시간외 근무수당이 나오는 상한이 57시간까지라고 했다. 김 전 사무관은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말 그대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9년 12월 31일부로 끝난 ‘특공’도 신임 사무관들에겐 불만거리다. 특공이란 ‘세종시 특별공급 제도’의 줄임말이다. 세종시 이전기관 근무자를 대상으로 분양 아파트 물량의 50%에 한해 특별공급 기회를 부여하고, 청약자끼리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가리는 제도다. 이전기관 근무자끼리만 경쟁하는 까닭에 청약 경쟁률이 일반 분양의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약에 성공하면 얻는 수익은 ‘로또’에 비견될 만하다.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분양가는 낮은데, 세종시 아파트 값은 지난해에만 30%가량 올랐다. A씨는 “청약 기회조차 없는 사무관들 사이에선 ‘기성세대가 단물을 다 빨아간다’며 이죽댈 만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말했다.

“특공 받은 선배와 이제 입부한 후배들 사이에 계층이 나뉘어 버린다. 후배들은 빚을 끌어안고 집을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대책을 낼 때 젊은 사무관들이 자료를 만드는데, 자기가 실무자인데도 신뢰 안 한다. 25번 실패했는데 이번엔 다르겠느냐, 내 집 마련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그런 말을 한다.”

격무에 비해 나아지지 않는 금전적 보상에 불만도 있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사무관들은 말한다. 민간 기업에 비해 보상이 적다는 걸 알고 행정고시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좌절감의 원천은 인사 적체다. 많게는 입직 15년이 되도록 사무관에 머물기도 한다. 김 전 사무관도 지난해 기재부를 나올 당시 12년 차였다. 김 전 사무관은 “외청에 있는 동기는 7년 차 때 4급 서기관을 달았다”며 “동기들에 비해 갈수록 진급이 늦어진다”고 말했다.

“상방 망가졌으니 하방이라도 챙겨야”


▎지난해 9월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제65기 신임관리자과정 수료식에서 김우호 인사혁신처 차장이 교육을 마친 신임 사무관 대표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사진:인사혁신처
기재부의 인사 적체가 심한 건 매년 받는 인원에 비해 나눠줄 자리가 부족해서다. 매년 25명 내외로 신임 사무관이 들어오는 반면, 1급 자리는 6개에 그친다. 그나마 역대 정부마다 기재부는 1급들을 다른 부처 차관이나 산하 외청장(국세청·관세청·조달청·통계청)으로 보내 인사의 숨통을 틔웠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전 부총리는 1급 이상 공무원 6명을 타 부처로 인사 이동하도록 힘썼다. 기재부 안에도 5개 과를 신설해 자리를 늘렸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대부분 외청장은 내부 승진이나 학계 인사 수혈로 자리를 메웠다. A씨는 “과거 정부와 비교할 때 리더의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낙하산 장관이 있는 부처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A씨는 전한다.

“중앙부처에는 1급 부처와 2급 부처가 있다. 내부 승진으로 장관이 임명되느냐 여부로 나눈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2급 부처라도 실세 의원이 겸직해서 오는 부처는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박영선 전 장관의 중소벤처기업부가 산업통상자원부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나. 애당초 정책을 만드는 곳이 부처가 아닌 청와대로 바뀌다 보니, 청와대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 어느 부처의 장으로 가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금전 보상은커녕, 승진도 난망하니 신임 사무관들 사이에선 기재부 기피 정서가 자리 잡았다. 기재부를 제치고 인기 기관으로 부상한 곳은 국세청이다. 올해 입직하는 사무관 중 일반행정직과 재경직의 성적 최상위 5명(합계 10명) 중 3명이 국세청에 배치됐다. 2018년 기재부에서 나온 뒤 올해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에 임용된 정호용 전 사무관은 “쉽게 말하면, 올라갈 수 있는 상방(上方)은 다 망가졌다”며 “그러면 하방(下方)이라도 튼튼해야 하지 않느냐는 심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지방세 관련 행정업무를 10년 이상 한 5급 이상 공무원은 세무사 1차 시험을 면제받는다.

김가람 전 사무관의 행로는 또래 중에서도 눈에 띈다. 그는 지난해 11월 사직한 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서관이 됐다. “시대정신이 정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 김 전 사무관의 변이다. 사무관이 국회 보좌진, 그것도 비서관으로 입직한 건 처음이다. 그런데 한 기재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사무관이 국회 비서관이 되겠다는 의견을 밝혔을 때 내부의 만류가 적잖았다고 한다. “기재부 사무관이 어떻게 보좌관도 아닌 비서관으로 가느냐”는 것이 ‘윗분’들의 생각이었다. ‘보좌관들도 쩔쩔매던 기재부 사무관인데…’라는 정서가 있었던 셈이다.

정호용 국민대 교수는 “기재부가 세상 흐름을 못 읽는 것 같다”며 “자기 역할을 재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오히려 “사무관들이 민간 경험을 쌓도록 정부에서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간에서 보는 경제정책을 이해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50여 년간 한국 경제를 리드했던 기재부 공직 사회가 변화를 앞두고 있다.-

- 문상덕 이코노미스트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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