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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기고] 가업(家業) 상속이 국가 경제에 주는 선순환 효과 

기업 상속세율 절반만 인하해도 일자리 27만 개 창출 

국내 기업 절반이 가족 중심, 기업 상속세가 투자와 고용 가로막아
세율 인하 경제 효과 크지만, ‘부의 대물림’ 부정적 정서 극복 관건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창업주에서 2세대로 승계할 시기가 도래하면서 기업 상속제도 개선에 관한 논쟁이 커지고 있다. 안정된 기업 상속은 국가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상속세 문제가 세간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주식, 부동산, 미술품 등 22조원대 유산을 남겨 상속세만 무려 11조~1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월 30일까지 상속세 신고를 해야 한다. 전체 상속세를 6년간 나눠 내는 연부 연납제도를 활용하더라도 삼성 일가가 올해 내야 할 상속세만 2조원이 넘는다.

세간의 관심은 삼성 일가에서 상속세를 낼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우선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삼성 계열사 지분에서 나오는 배당이다. 2020년 삼성전자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약 1250억원,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관장은 약 1600억원을 배당받았다. 이 회장 몫의 배당은 약 7400억원이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전자 지분이 없다. 이 배당금을 활용하더라도 매년 2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은 4년째 무보수로 일하는 만큼, 배당을 제외하고는 다른 수단도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고 이 부회장이 보유한 회사 지분을 매각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0.7%, 삼성물산 17.3%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회장으로부터 상속받게 되는 지분은 삼성전자 4.2%, 삼성생명 20.8% 등이다. 이전 ‘엘리엇사태’에서 보듯 외국계 투기 자본 등의 공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그룹의 핵심인 전자·생명·물산의 지분을 처분하는 것은 경영권에 위협이 되는 큰 부담이다.

이 회장이 소장했던 고가의 미술품을 파는 것도 상속세 재원 마련의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미술계에 따르면 모네의 ‘수련’ 등을 해외 미술 시장에서 팔 경우 1000억원 이상의 값어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이 회장이 소장한 미술품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기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많은 걸작과 문화재급 유산이 국외로 반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건희 떠난 삼성가(家), 상속세만 최대 13조원


일부에선 미술품의 국외 반출을 막으면서 상속세 문제도 해결해주자는 취지에서 미술품을 ‘물납’으로 받아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마디로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하는 것이다. 실제 이광재 국회의원은 2020년 11월 미술품 물납이 가능하도록 하는 상속세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미술품 물납은 삼성을 위한 특혜라며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돈을 빌리는 방법뿐이다.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대표이사, 이서현 이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최근 금융회사로부터 수천억원 규모 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증권사 중 삼성 오너 일가가 필요한 금액을 대출할 여력이 있는 곳이 없었다. 최근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서 대출을 많이 받은 탓에 증권사마다 그 한도가 거의 소진됐기 때문이다.

막대한 상속세는 삼성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할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그룹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삼성의 상속세 이슈가 국가 경제에 끼칠 파급력 또한 작지 않다. 최악의 경우 막대한 대출금 부담으로 경영이 악화해 계열사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삼성의 상속세 문제가 더는 오너 일가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개인 상속이 아닌 기업 상속은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에게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상당수 중소·중견기업의 1세대 소유주들이 퇴임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0년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 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복수 응답으로 전체의 94.5%가 기업 승계 시 상속세와 같은 조세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1] 참조)

정부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2019년 7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 중견기업 14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단수 응답으로 전체의 78.3%가 기업 승계 시 상속세와 같은 조세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림2] 참조)

이처럼 중소·중견기업들이 기업 승계 시 상속세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기업 오너 9명을 상대로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 응한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현행기업 상속공제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기업 상속공제제도의 한계와 대안은 무엇일까. 그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행 기업 상속공제 대상은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되어 있는데, 규모 제한을 없애야 한다. 가족 기업 육성을 바탕으로 히든 챔피언을 많이 배출해낸 독일은 좋은 사례다. 독일의 경우는 기업 상속공제제도 적용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 특정한 규모 기준이 없다.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은 기업 상속공제제도를 참고해 기업 승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제도 혜택을 받을 기업 규모를 정해놓으면 기업 스스로 이 기준을 초과하지 않게끔 유도해 기업 성장을 저해한다. 기업 상속공제제도 적용 대상이 매출액 3000억원 미만으로 정해져 있으니 더 큰 투자 여력이 있더라도 기업은 이 기준을 넘지 않기 위해 투자를 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상속공제 한도 금액을 제한한 것도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 현행 기업 상속공제 한도 금액은 피상속인의 기업 계속 경영 기간에 따라 다르다. 피상속인의 기업 계속 경영 기간이 10년 이상~20년 미만인 경우 200억원, 20년 이상~30년 미만인 경우 300억원, 30년 이상인 경우 500억원이다. 이처럼 한도를 일정하게 한정하면,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서 기업 규모를 조정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글로벌 기업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기업 상속공제 한도를 정해두지 않고 있다.

비현실적인 기업 상속공제제도, 기업 생존 위협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로 기업 상속세 문제가 본격화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피상속인들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는 최대 13조원에 이른다.
기업 상속공제제도의 사후관리 요건 중 업종 변경 제한 의무 규정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한다. 기술 발달에 따라 산업의 패러다임이 수시로 변화하는데 업종 변경을 제한하면 국제 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업 자체가 도산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자동차는 도태의 길에 들어서고 IT 기술이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 관련 제조업체가 업종 변경 제한 규정 때문에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지 못한다면 기업 자체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기업 상속공제제도의 피상속인 요건인 최대주주 지분율 역시 현실성 없는 규정이다. 비상장기업인 경우 50%, 상장기업은 30% 지분율을 확보해야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렇게 큰 지분을 확보한 상장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비상장기업은 30%, 상장기업은 15%로 완화해 더 많은 기업이 상속공제 혜택을 받아 안정적인 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기업 오너들은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덜기 위해 가능하다면 현행 기업 상속공제 혜택을 받고 싶어 한다. 기업 상속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면 기업을 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종자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 농우바이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3년 8월 창업주인 고희선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상속 이벤트가 발생했다. 당시 농우바이오가 내야 할 기업 상속세는 1000억원을 넘었다. 연간 매출액 676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더구나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어 기업 상속공제 혜택도 받을 수 없게 되자, 피상속인은 결국 농협경제지주에 기업을 매각했다.

반대로 기업 상속공제제도가 가업을 승계하고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자동차 부품 전문 기업인 삼기오토모티브는 2014년 기업 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해 별문제 없이 가업 승계 작업을 마쳤다. 상속 이벤트가 발생한 2014년 기준 매출액은 약 2340억원이고 종업원은 약 440명이었다. 그러나 승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1년 만에 각각 18.4%, 38.5% 증가했다. 2020년 말 기준 이 기업의 매출액은 3626억원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 상속 문제가 국가적으로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인 이유는 가족기업의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2010년 세계적 학술지인 [미국경제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가족기업 비중이 44% 이상인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브라질, 스페인, 스웨덴, 대만 등이었다. 전문경영인 체제 중심인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등은 24% 이하였다.

기업 상속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국민 정서는 부정에 더 가깝다. 먼저, 기업 상속세를 더 감면해 기업 승계를 촉진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비용 대비 효율성을 강조한다. 우선, 기업을 소유주의 자손에게 승계하는 것은 대리인 비용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혈족이 아닌 제3자가 경영할 경우 기업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개인의 이익과 단기적 성과에 치우치게 된다. 둘째, 기업을 제3자에게 매각할 때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 앞서 말한 농우바이오의 사례처럼 기업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없는 피상속인은 기업을 제3자에게 매각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기업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자금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 기업을 시장에서 제값을 쳐줄 리 만무하다. 2008년 상속 이벤트가 발생한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인 스리세븐의 경우 약 150억원에 달하는 기업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없어 급매로 시장에 내놓은 결과 낮은 가치로 매각되고 말았다. 이런 불필요한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업 승계를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업 상속 효율적이지만 부정적 정서 극복해야


기업 상속에 부정적인 쪽에선 주로 도덕성과 정서적 문제에 치중한다. 경영능력이 부족한 피상속인에게 기업을 승계하면 기업의 혁신이 오히려 지체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기업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취지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기업 승계는 부를 대물림하는 데 혜택을 부여해 분배의 정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민 정서를 자극하기 쉬워 기업 상속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없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기업 상속 문제를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만약 기업을 상속할 경우 상속세를 감면해주면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어떠한 파급효과가 발생할까? 필자가 속해 있는 재단법인 파이터치연구원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기업 상속세 인하는 상당한 일자리 창출과 기업 성장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상속세율을 절반으로 인하할 경우 일자리가 26만7000개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기업의 총매출액과 총영업이익이 각각 139조원, 8조원 증가한다. 근로자 개인의 소득 증가로도 이어져 월급 기준 7000원의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기업 상속세 인하 혜택이 피상속인에게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국민과 국가 경제 전체에 골고루 배분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3] 참조)

이런 효과는 가업을 승계토록 함으로써 얻는 한계효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자식에게 더 큰 자본(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투자를 늘려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자본이 증가하면,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는 노동수요(일자리)도 늘어난다. 생산요소인 자본과 노동수요가 증가하면 생산이 증가한다. 생산이 증가하면 이에 상응해 매출과 영업이익도 늘어난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면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임금이 상승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실제 기업 상속세율을 인하해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본 사례는 많다. 그리스의 경우 2003년 기업 상속세율을 20%에서 2.4%로 크게 인하했다. 그러자 기업 상속을 한 가족기업의 투자가 약 40% 증가했다. 이는 기업 성장과 고용 증대, 법인세수 증가 등 개인과 국가 전체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스 사례뿐만 아니라 앞서 살펴본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최대 50%에 달하는 기업 상속세율을 굳이 현행대로 고집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기업 상속 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기업 상속공제제도가 있다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사전 요건과 사후 요건이 까다로워 혜택을 받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더 많은 강소기업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하려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청년 고용 절벽 시대에 기업 상속제 개선은 민간 기업의 자발적 경제 회복 참여를 유도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 라정주 (재)파이터치연구원장(경제학 박사) ljj@pi-touch.re.kr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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