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문화이슈] 조선구마사 사태로 본 신(新)동북공정 

역사 왜곡뿐 아니라 ‘금기’를 건드렸다 

중국 자본 유입에 ‘문화공정’ 위기의식 강해진 것이 배경
학계에서는 창작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까 우려 목소리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영 2회 만에 퇴출됐다. / 사진:SBS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퇴출당했다. 지상파TV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32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고 80%가 사전 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송사도, 제작사도 차마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SBS는 논란이 벌어지고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심상치 않은 여론에 ‘백기’를 든 것이다. 그 정도로 분위기는 과열돼 있었다. 그동안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은 사극은 여러 편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초강수가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조선구마사는 왜 이런 철퇴를 맞아야 했을까.

모든 사건에는 ‘발단’이 있다. 조선구마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유례없는 퇴출로 번진 데는 작가의 이력이 깊숙하게 작용했다. 조선구마사를 쓴 박계옥 작가는 앞서 tvN에서 ‘철인왕후’를 집필했는데 이때도 역사를 폄하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철인왕후는 ‘허세남 셰프의 영혼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조선 시대 왕후에게 깃든다’는 설정으로 제작한 만큼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란 예상은 가능했다. 하지만 극 초반 철인왕후(신혜선)가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라고 표현하고, 신정왕후가 미신에 빠진 인물로 등장하면서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정왕후의 집안인 풍양조씨 종친회 측도 거세게 항의했다. 제작진은 급히 극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집안을 각각 안송김씨, 풍안조씨 등으로 수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실제 역사에 허구의 이야기를 집어넣는 사극은 언제나 흥미와 역사 왜곡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사극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완전한 창작을 할 것이냐, 아니면 실제 역사에 얹어서 갈 것이냐다. 철인왕후가 맞딱뜨린 지점도 여기였다. 철종·철인왕후·신정왕후 등 실존 인물을 끌어다 쓰면서 캐릭터 설정을 마음대로 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정덕현 평론가는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정통, 허구를 살짝 얹은 퓨전, 완전한 허구 중 어느 형식이 어울리는지 잘 선택했어야 했는데 철인왕후는 애매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고 시청률 42.2%를 기록했던 ‘해를 품은 달(MBC)’의 경우 조선 시대 가상의 왕인 이훤과 무녀 월의 사랑을 다뤘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복식과 예법, 궁중 암투 등을 가져다 쓰면서도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왕과 무녀의 로맨스를 풀어나갔고 역사 왜곡 논란도 피했다.

뜨거운 감자가 된 중국의 ‘문화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에서 세종대왕(충녕대군)이 구마사제에게 월병·피단 등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 도마 위에 올랐다. / 사진:SBS
그런 점에서 박계옥 작가가 조선구마사에 조선 태종(이방원)과 양녕·충녕대군 등 실존 인물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점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태종 및 세자들이 악령과 싸우게 되는 독특한 소재를 다뤘다. 태종이 아버지 태조의 환시를 보고 백성을 학살하거나 충녕대군이 구마 사제와 역관에게 무시당하는 등의 설정이다. 앞의 철인왕후에서 그토록 소동을 겪었다면 해를 품은 달처럼 가상의 인물로 꾸려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논란이 될 법한 역사적 인물을 썼을까. 그것도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충녕대군)을 소재로 말이다.

하지만 그저 실존 인물을 비틀었다는 논란만으로 폐지 수순으로 간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금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것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문제다.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중국 측은 고구려나 발해처럼 한국에서 ‘우리 역사’로 생각해왔던 만주 지역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대거 편입했다. 당초 학계에서 첨예한 갈등의 소재가 됐던 이 문제는 점차 영역을 확대하면서 문화 영역으로 번졌고, ‘문화공정’이라고 불리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렇다면 조선구마사에서 문제가 된 장면은 무엇일까. 첫 회에서 충녕대군(세종)이 바티칸에서 온 가톨릭 구마 사제에게 월병과 중국식 만두, 피단(삭힌 오리알) 등을 대접하는 장면이다. 조선을 배경으로 했는데 중국 음식이 등장하자 일각에선 중국의 문화공정에 이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조선구마사 제작진은 첫 회 방송의 이튿날인 3월 23일 “예민한 시기에 오해가 될 수 있는 장면으로 시청의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극 중 한양과 멀리 떨어진 변방에 있는 인물들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 어떤 특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 명나라를 통해 막 조선으로 건너온 서역의 구마 사제 일행을 쉬게 하는 장소였고,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을 가미해 소품을 준비했다”고 해명했다.

방송 하루 만에 해명이 나오는 등 신속하게 대처하긴 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일부 누리꾼들은 의도적인 동북공정 드라마가 아니냐며 제목을 ‘중국구마사’로 바꾸라는 조롱까지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제작진은 24일 “중국풍 미술과 소품(월병 등) 관련해 예민한 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시청에 불편함을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충녕대군이 구마 사제 일행을 맞이하는 장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 삭제해 다시 보기와 재방송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SBS도 “실존 인물과 역사를 다루는 만큼 더욱 세세하게 챙기고 검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시청자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엎드렸지만, 여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문제까지 거론하며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졌다. 특히 삼성전자·쌍방울·에이스침대 등 드라마 제작지원에 나선 기업들이 대거 철수를 선언하자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K-컬쳐 도약 시기하는 중국 유튜버들


▎드라마 ‘빈센조’에서는 극중 송중기가 중국 즈하이궈에서 만든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됐다. / 사진:tvN
여기엔 앞서 한·중 양국에서 문화공정을 두고 벌인 갈등이 배경에 있다. 중국의 인기 유튜버들이 김치나 한복을 자국 문화처럼 소화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한국인을 자극하는 일이 최근 두드러졌는데 특히 ‘킹덤’ 등 한국 사극이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확산했다. 한국에선 중국 유튜버들의 이같은 ‘도발’이 K-컬쳐의 도약에 따른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던 차에 몇 가지 드라마가 논란에 불을 붙였다. tvN 드라마 ‘빈센조’는 극 중 송중기가 중국 즈하이궈에서 만든 비빔밥을 먹는 장면을 내보냈다. PPL이긴 했으나, 한국 고유 음식인 비빔밥을 중국 음식이라고 오해하게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앞서 방영된 tvN의 ‘여신강림’에서도 편의점에서 중국식 인스턴트 훠궈를 사 먹고, 국내에서는 서비스되지 않는 중국 쇼핑몰 광고판이 버스정류장에 등장해 논란이 됐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중국 자본이 들어와 한국 역사에 이어 문화 콘텐트까지 망가뜨린다는 위기의식이 강해지던 차에 조선구마사 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국민적 감정이 폭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선구마사 측은 중국 자본의 유입을 부인했지만, 그와 무관하게 대중은 중국 자본에 대한 굴복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구마사를 놓고 정작 학계의 반응은 대중과는 약간 거리감이 있다.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3월 28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조선구마사는 역사 왜곡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번 사건은 앞으로 창작 활동 위축 등 한국 사회에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 교수는 [만인만색역사공작단]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등의 책을 통해 대중과 학계의 간극을 좁히는 시도를 해온 대표적 소장파 학자인 만큼 그의 주장은 큰 주목을 받았다. 기 교수는 3월 3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조선구마사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배경을 조선 초로 잡았는데 소품 등의 디테일을 판타지라는 장르 뒤에 숨어 대충 느낌만 나게 얼버무렸다”면서도 “하지만 조선구마사가 실수한 여러 가지 요소들은 결정적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국경 지역에서 중국 음식이 나온 것은 제작진의 해명이 이해된다. 의주는 한반도와 요동을 잇는 교통과 무역의 거점이었다. 외국인 왕래가 잦은 접경 지역에 외국 음식이 나오는 건 이상하지 않다. 짜장면도 근대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이 모인 인천에서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실존 인물을 비튼 점에 대해서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입장을 폈다. 그는 “미국에서 링컨은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가 실은 흡혈귀 사냥꾼이고, 도끼로 이들을 때려잡고 다니다가 심지어 나중에는 흡혈귀가 된다는 설정의 소설과 영화도 만들어졌다”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것을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한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2008년 방영된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도 예로 들었다. 기 교수는 “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을 여성이라고 설정했다. 실제 역사와는 다른 말도 안 되는 왜곡이다. 그런데 당시 이를 폐지시켰나? 영화 ‘천군’에선 무과에 낙방한 이순신이 방탕하게 살다가 나중에 각성해서 영웅적 인물이 됐다. 창작물에서 이 정도 캐릭터 설정도 못 하면 그게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학계에선 그간 나온 사극들도 조선구마사의 기준으로 보면 역사 왜곡으로 공격당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나 ‘신기전’에서는 세종이 제작을 후원한 천문기구 간의(簡儀)나 신기전(神機箭) 등으로 명나라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양국 간에는 이런 문제로 충돌한 적이 없다. 또 세종은 명나라에 맞서 자주적인 나라를 세우려고 하다가 신하들의 제지를 받는 것으로 등장하지만, 실제 역사는 정반대다. 세종은 조선 시대 누구보다 사대에 정성을 다했다. 심지어 사대가 너무 지나치다는 신하들의 만류에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내가 사대의 예를 지나치게 한다고 말한다는데, 지금 명나라가 사신을 보내오고 상을 주고 하는 예우가 일찍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본래 예의의 나라로서 해마다 직공의 예를 닦아, 때에 따라 조빙하면 명나라가 이를 대우하는 것이 매우 후하였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여 섬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크게 불경한 일이고, 특히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그럴 수가 있겠느냐.”([세종실록] 10년 윤4월 18일)

사극에서 바라는 우리 안의 ‘욕구’ 살펴봐야


▎학계에서는 2007년 방영한 대표적인 팩션사극인 ‘태왕사신기(MBC)’를 예로 들어 “조선구마사의 잣대로 보면 살아남을 사극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 사진:MBC
기경량 교수는 “‘주몽(MBC)’의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인데 화약 무기가 나왔다. ‘태왕사신기(MBC)’는 주작과 청룡 등이 나오는데 실존 인물인 광개토대왕이 등장했다. 실존 인물을 가지고 창작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도 문제 삼아야 한다. 조선구마사의 잣대로 보면 살아남을 사극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선구마사 사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첫째, 사극에서 바라는 우리 안의 ‘욕구’가 무엇인지 살펴볼 때가 됐다. 사극을 통해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욕구다. 조선구마사 사태에서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서경덕 동덕여대 교수가 3월 24일 자신의 SNS에 “우리의 훌륭한 문화와 역사를 알리기도 시간이 모자란 데, 왜곡된 역사를 해외 시청자들에게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한국은 문화를 통한 국가 위상에 민감하다. 그것이 설령 중국발 문화공정을 통해 촉발됐다고 하더라도 ‘문화=국위선양 도구’라는 관점에 대해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정통사극과 팩션사극 사이의 균형이다. KBS 주말 대하사극이 사라진 뒤 현재 한국에는 팩션사극만 난무한다. 한국보다는 해외 관객을 노린 설정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킹덤’이 대표적인데, 조선의 시대적 상황은 몰라도 볼 수 있는 연출 거리로 가득하다. 최근 사극에 좀비가 많이 나오고 국적 불명의 패션이나 소품이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설명하는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고증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반면 대중문화가 발달한 미국·영국·일본 등에선 사극을 만들 때 여러 명의 작가가 투입되고, 전문가들의 고증도 철저한 편이다. NHK의 대하드라마는 역사의 서브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1명의 작가가 집필하는 경우가 많고 자료 수집이나 고증도 철저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지금까지 달리기만 했던 K-컬쳐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볼 계기를 만들어줬는지도 모른다.

- 유성운 중앙일보 기자 pirate@joongang.co.kr

202105호 (2021.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