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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취재] 떡락·떡상에 울고 웃는 2030세대 위험투자 실상 

코린이들 가상화폐 투자, 눈 감으면 돈 베어 간다 

일주일 만에 70% 수익률 올리기도… “자산 마련할 유일 탈출구”
일시적 수익은 신기루, 재미·유행 따라 영끌 투자했다간 ‘쪽박’


▎가상화폐 시가 총액 규모는 5월 12일 기준 2조4800억 달러로 치솟았다.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거래소 업비트 고객센터 전광판 모습.
아침 6시. 잠에서 깨어난 진하나(31, 가명)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근에 사들인 코인(가상화폐) 수익률이 계속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든 사이에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밤잠까지 설쳤다. 카카오톡 가상화폐 단체방인 ‘흑우(돈을 잃은 사람들을 놀릴 때 쓰는 인터넷 용어)들의 모임’에 들어갔더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의 넋두리가 올라온다. ‘제 코인은 오를까요? ㅠㅠ’, ‘약발 다했나요’ 서로서로 위로하는 가운데 진하나씨는 본인이 산 코인이 제발 오르기를 소망한다.

12시 점심시간.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간 식당에 앉았지만 모두들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요즘은 가상화폐 거래소 앱을 켜놓고 밥을 먹으면서도 몇 퍼센트 올랐느니 손해를 봤느니가 주된 화젯거리다. 함께 밥을 먹은 회사 동기 하나가 며칠 전 산 코인이 3배나 뛰어올랐다며 밥값을 냈다. 축하를 보내면서도 내심 마음이 우울해졌다.

오후 6시. 가상화폐 그래프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도는 통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해 결국 상사에게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하지만 속상함도 잠시, 회사를 나오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으로 코인 시세를 확인한다. 불과 몇 분 전까지는 상승장이었지만 그새 다시 마이너스가 됐다. 스마트폰을 아예 보지 말자고 다짐하며 가방 속에 넣는다.

밤 11시. 가상화폐 시세를 24시간 방송하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내가 산 코인이 새벽에 분명히 오를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오늘도 알람을 2시간마다 설정해놓고 잠이 깼을 때 대박의 순간을 기대하며 잠이 든다.

최근의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름만 가상인물로 바꿔 일상을 정리해봤다. 진하나씨처럼 2021년을 사는 2030세대에게 코인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용어다. ‘가상화폐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겸상하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가상화폐 트렌드 취재는 취재원을 구하는 데도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젊은 세대들에게 열풍이었다.

이진우(33)씨는 4년 전인 2017년부터 가상화폐 세계에 뛰어든 ‘고인물(무슨 일이건 한곳에 오래 있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평소 주식 투자를 즐겨 하던 그에게 주변에서 가상화폐에 투자해보라며 추천한 것이 시작이었다. 생소하긴 했지만 변동률 추이를 살펴보니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코인의 종류 중 하나인 이더리움에 500만원을 투자했고, 1개당 30만원이던 가격이 일주일 만에 5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 뒤부터 가상화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가격이 급락할 때는 손해를 봤지만 현재 자산은 초창기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8배 이상 벌었다. 그는 높은 수익률이 매력인 가상화폐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 되는 것이다. 30억 자산을 모으고 남들보다 빨리 은퇴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높은 수익률이 매력, 자산 증식할 기회”


강예나(30·여)씨도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 3년 차 회사원인 강씨는 이제 막 입문한 코린이(코인과 어린이를 합친 신조어)다. 예전에는 예·적금 등의 안전 자산에만 투자했지만, 치솟는 물가가 감당이 안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모든 돈을 빼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Alternative와 Coin의 합성어, 비트코인 외 다른 가상화폐)에 쏟아부었다. 그녀는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성이 커서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과감히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030세대에게 가상화폐가 새로운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들은 가상화폐가 자산 증식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값이 폭등하면서 특히 사회에 진출한,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는 30대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자 가상화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식투자가 가상화폐보다 안전하기는 하지만 대안이 되지 못했다. 이진우씨는 “이미 기관투자자가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은 개미 투자자들은 돈을 많이 벌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송수영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를 두고 “부동산 시장은 이미 너무 올라 뛰어들기 힘들고 주식은 수익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 코인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위 ‘한 방’을 노리며 벼락부자를 꿈꾸는 이도 적지 않다. 한 삼성 직원이 4월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에 5000만원을 투자해 400억원을 넘게 벌었다는 글이 화제가 됐다. 실제 사례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부럽다, 언제든 사직서 써도 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TV와 유튜브 매체에서도 소액을 투자해 일확천금을 벌었다는 인증이 끊임없이 올라오며 가상화폐 이용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021년 1월 119만 명이었던 가상화폐 거래소 이용자는 2개월 만에 320만 명으로 168%가량 뛰어올랐다(업비트 이용자 기준). 몇몇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전망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가상화폐 이용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가상화폐가 인기 투자 대상이 된 데는 2030세대의 독특한 특성도 한몫했다. 2030세대는 단절·소외되는 것에 유독 민감하다. 즉 유행에 제일 빠르게 반응하는 세대다. 남들이 하고 있는 것은 한 번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취재하며 만난 대부분이 “주변에서 코인을 하고 있길래 따라 해봤다”고 말했다. K대에 재학 중인 박모(22)씨는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도 가상화폐가 무엇이고, 자신이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잃는 구조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했다. “굳이 투자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요즘에 친구들과 만나면 가상화폐 얘기만 나누니 안 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박씨는 “수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하고 있다는 것이 나한테는 중요하다. 적게는 몇천원에서 많게는 몇만원까지 버는데 그걸로 친구들과 PC방 가고, 술 사 먹고 하는 게 재밌다”고 대답했다.

2030세대는 ‘단절’ 못 참아, 재미 삼아 했다 중독


▎일론 머스크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에 계속해서 도지코인 밈과 멘션을 올린다 / 사진:트위터 캡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원장은 2030 세대의 이러한 심리 상태를 포모 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고 진단했다. 포모 증후군은 자신만 트렌드를 놓치고 있는 것 같거나, 세상 흐름에서 자신만 소외되고 있다는 고립 공포감을 뜻한다. 안 원장은 “인터넷, 모바일에 익숙한 2030세대는 단절을 감당하지 못해 코인 투자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가상화폐는 2030세대들에게 투자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는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권은희 의원이 금융위원회를 통해 주요 4대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에서 받은 가상화폐 투자자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는 약 250만 명으로 20대가 32.7%(81만6039명), 30대가 30.8%(76만8775명)다. 2030세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2030세대의 트렌드가 돼버린 가상화폐 투자에 위험성은 없을까. 취재과정에서 만난 2030세대들은 가상화폐 투자의 단점으로 중독 현상을 말했다. 주식과 달리 24시간 내내 장이 열리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든 시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자 큰 단점이라고 했다. 강예나씨는 “재택근무를 하면 컴퓨터와 노트북을 사용하는데 노트북으로는 일하고 컴퓨터엔 차트 화면을 띄워놓으며 틈틈이 본다”고 말했다. 이진우씨는 “다른 부서에서 가상화폐에 빠져 휴대폰만 보다가 잘릴 뻔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급등락이 반복하면서 일각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의 시세를 조정한다고 의심한다. / 사진:업비트 캡처
취업 준비생이던 장모(28)씨는 본인을 중독자라고 소개하며 최근 취업마저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져 생활비를 벌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헤어나오지 못하게 됐다”며 “남들에게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스마트폰만 바라봐야 하니 이력서 쓸 시간도 없더라. 제대로 잠도 못 자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카카오톡의 오픈 채팅방에서 코인을 검색한 뒤 가상화폐 관련 방 네 군데에 접속하자마자 메시지가 쉬지 않고 올라왔다. 30분이 되기도 전에 999개가 넘는 채팅 문자가 쌓였다. 모두 업무시간이 없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잠드는 순간까지 밀려오는 문자 폭탄에 서둘러 방을 나오고 말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2021년 1월부터 3월까지 가상화폐·주식투자 중독 증상 상담 건수를 조사한 결과 1362건으로 지난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이전에는 카지노·경마 등의 도박 문제로 상담을 받는 내담자가 많았으나 2018년부터는 주식·가상화폐 문제로 내방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심리치료 전문가는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과 열풍 현상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중독자는 점점 더 증가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투자로 번 수익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며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현재 가상화폐 열풍을 보면 투자가 아닌 ‘투기’라는 것이다. 최근 ‘도지코인’ 파동이 대표적이다. 도지코인은 유명한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인 ‘도지(Doge)’의 이름을 따서 장난으로 만든 가상화폐다. 도지코인은 올 1월 1일 0.024달러에 불과했지만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올린 ‘The Dogefather(도지코인의 아버지)’ 한마디에 0.658달러까지 올라갔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트코인 강세론자인 마이크 노보그라츠는 이 같은 도지코인의 투자 광란을 문제 삼으며 “시장이 코인베이스 직상장에 너무 흥분했다”고 지적했다.

벼락부자 꿈 좇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 왼쪽) 또한 비트코인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더리움은 현재 시총 2위 가상화폐다.
전문가들은 국내 가상화폐가 거래되고 있는 비율도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량의 94%는 비트코인이 아닌 알트코인이다. 알트코인은 잡(雜)코인이라고도 부르는데 미국이 63개, 일본은 5개에 불과하지만 국내에는 상장된 잡코인만 178개(업비트 기준)나 된다. 문제는 비트코인과 같은 대표 코인과 달리 잡코인 대부분이 제대로 검증받지 않아 작전 세력에 의해 돈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가상화폐 피해에 대한 보호 제도가 없다는 것도 2030세대에게는 위험 요소다. 그래서 중소형 거래소에 투자했다가 먹튀(먹고 튀는 행위)하는 바람에 이용자들이 사기당하는 경우도 많다. 비트소닉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4월 중소형 거래소인 비트소닉 투자자들은 갑자기 계좌에서 출금이 되지 않아 민원을 제기했지만 가상화폐 관련 주무부처가 없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피해자 130여 명, 피해금액만 75억원에 이르렀으나 비트소닉 대표는 이미 잠적하고 난 뒤였다.

가상화폐 투자와 관련해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는 변동률이 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투기로 변질돼버린 상황이다. 아직 국가적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더 현명하게 분석하고 고민하고 결정해야 쪽박 차는 꼴을 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30세대가 가상화폐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p.alice901@gmail.com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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