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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와 인생’] 김양권 미드아마골프연맹 고문 

“이기는 게 좋지만 멋지게 지는 것도 중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골프, 모난 마음 부드럽게 해줘”
지고는 못 살아 독하게 연습… 상대에겐 관대한 ‘신사’


▎김양권 고문 스윙은 태국의 프로골퍼 타원 위랏찬트처럼 피니시에서 허리가 많이 휘어진다. 어릴 때 야구를 한 김고문은 “야구와 골프 모두 머리가 뒤에 남고 체중이 확실히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 사진:미드아마골프연맹
프로 골퍼에 맞선 한국 순수 아마추어 최고의 전과는 2015년 10월 밀란 KPGA 시니어오픈에서 김양권(62, 당시 56)의 라운드가 아닐까 싶다. 선힐 골프장 힐, 파인코스에서 벌어진 최종 2라운드에서 김양권은 보기 없이 버디 7개를 잡아 7언더파 65타를 쳤다. 첫날 2언더파를 더해 9언더파 2위였다.

한 시대를 휩쓴 프로골퍼들이 대부분 출전했다. 우승자는 12언더파의 유건희였고 박남신·공영준이 동갑내기인 김양권에 2타 뒤진 7언더파 공동 3위였다.

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고문인 그는 “첫날 연습장에서 클럽 2개를 놓고 와서 12개 클럽으로 쳤다. 그 실수가 없었다면 더 좋은 스코어가 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제도가 바뀌어 김 고문 같은 순수 아마추어는 출전이 어렵게 됐다.

물론 주니어 아마추어 골퍼가 오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신지애와 최나연, 리디아 고 등이 아마추어 시절 프로대회에서 우승했다. 김경태 등도 프로 잡은 아마추어로 통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프로를 지망하고 자란 선수들이라 순수 아마추어인 김양권 고문과는 약간 다르다.

업적이 눈부시다. 김 고문은 전국 아마추어골프대회에서 20승 이상 했다. 신안 그룹이 운영하는 리베라 등 4개 골프장의 통합챔피언을 두 차례 했다. 용인의 88CC 클럽 챔피언대회에서는 19타 차로 우승했다. 베스트 스코어는 여주 페럼CC 챔피언티에서 기록한 10언더파 62타다. 1~4번 홀 버디, 6~9번 홀 버디를 잡아 전반 28타를 쳤다. 순수 아마추어계의 타이거 우즈 비슷하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굵고 길게 간다. 미드아마골프계에서 15년간 우승을 했고, 2010년 한국미드아마추어연맹 창설 이후 계속 랭킹 톱 10에 머물고 있다. 만 60세에 KGA 미드아마추어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60세이던 2019년 미드아마 랭킹 1위 자격으로 매경 오픈에, 미드아마 선수권 우승자 자격으로 한국오픈에 출전하는 영광도 누렸다. 또한 KGA 한국 시니어 선수권, 브리지스톤 챔피언십 벤제프 챔피언십에서 타이틀 방어를 했다.

김 고문은 광주에서 7형제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열두 살 터울의 큰형이 아버지처럼 키웠다. 초등학교에서 5년간 야구 선수를 했고 이후 복싱과 태권도도 했다.

입문 1년 만에 ‘싱글’… 미드아마골프계 15년간 평정


▎김 고문은 미드아마 골프계의 신사로 꼽힌다. 그러나 젊은 시절 거칠게 살았다. 풍파를 겪었으나 골프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 사진:성호준
김 고문은 자동차 부품 제조 판매사인 평화자동차 회장이다. 형과 함께 자동차 부품 유통업을 하다가 1994년 독립했다. 연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납품처인 대기업의 파산으로 부도 위기를 맞았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김 고문은 “외환위기 때 회사를 접을 상황이었는데 직원들이 회사를 함께 살리자고 적금 통장을 깨서 가져오기도 했다. 시가의 반밖에 안 되는 이율로 어음할인을 받았다. 납품업자들이 나에게 제일 좋은 물건을 줘서 월마트 등 새로운 유통채널에 들어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운이 꼭 운만은 아니다. 김 고문은 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겼다. 저리로 돈을 빌릴 수 있던 건 신용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다. 일부 업주들은 결제를 늦추려고 일부러 자리를 비우기도 하는데 김 고문은 출장 가더라도 결제는 확실히 했다. 김 고문은 “협력업체들은 한 달 내내 돈 받을 날만 기다리는데 우리 형편이 어려워도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그만두는 거래처 직원들도 잘 챙겼다. 회사를 떠나면 결정권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김양권 사장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얘기를 해줬다.

김 고문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에게 투자한 성과가 나온 것이다. 진짜 운도 있었다. 평화자동차가 개발한 우레탄 체인은 처음엔 잘 안 팔렸는데 어느 해 눈이 많이 와 싹 팔려나갔다. 회사는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김 고문은 10년 전부터 경영에서 손을 뗐고 주요 경영 사안만 관여한다. 투자회사도 차렸다.

골프는 1990년에 입문했다. 야구를 해서 쉽게 실력이 늘었다. “야구든 골프든 몸이 앞으로 나가면 절대 안 맞는다. 공 뒤에 머리를 두고 치는 것이다. 회전축을 만들고 체중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전히 옮겨주는 타법이 비슷하다. 옆으로 치느냐, 아래로 치느냐의 차이뿐이었다.”

1년 만에 싱글 핸디캡이 됐지만 일이 바빠 본격적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10년쯤 지나 여유가 생기자 본격적으로 칼을 뺐다. 최고 아마추어 골퍼가 되겠다고 다짐해, 클럽챔피언전과 아마추어대회에 참가했다. 그의 승부욕은 남달랐다. 이른바 ‘도장 깨기’도 했다. 고수가 있으면 배움을 얻으려 찾아다녔다. 김 고문은 “전국의 고수들을 찾아다녔더니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말했다.

2008년 팀의 에이스로 고교동창 최강전에서 모교를 우승시켰다. 우승팀끼리 겨룬 왕중왕전에서도 1등을 했다. 이후 고교동창 최강전에서는 은퇴했다.

김양권 고문은 이미지가 좋다. 미드아마 대회가 가끔 중계되는데 컨시드를 후하게 주고 경쟁자를 배려하는 신사의 모습이다. 원래 그가 이렇지는 않았다. 그는 “젊었을 때는 사납고 거친 사람이었다”고 했다. 어릴 때 딱지를 잃으면 빨랫줄에 전등을 달아 놓고 밤늦게까지 딱지를 쳤다. 지고는 못 살고, 뭔가에 꽂히면 꼭 해내는 스타일이다.

야구와 복싱을 했으니 완력도 좋았다. 팔씨름은 팔목 잡고도 다 이겼다. 왼손잡이와 처음 복싱을 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았는데 결국 한두 달 만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당구와 볼링, 카드 게임 등에서도 그랬다.

골프에서도 이 승부욕이 발휘됐다. 골프 실력을 늘리기 위해 전국 고수를 찾아다니다 내기 꾼에 휩쓸리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골프장에는 유달리 사파(邪派)가 많았다. 넓은 골프장은 속일 수 있는 공간 투성이다. 여기에 뱀이 산다.

김 고문은 우연히 만난 사람인 것처럼 위장한 꾼 세 명과 함께 라운드한 적이 있다. 꾼들은 자신의 핸디캡에 비해 가장 잘 친 사람 한 명이 돈을 다 가져가는 내기를 건다(일명 핸디치기). 세 사람이 그 날의 대표선수 한 사람만 밀어준다. 대표 선수가 OB가 나면 다른 사람은 찾아주는 척하면서 알까기를 대신 해준다.

스프링클러가 없어 직접 물을 뿌리는 골프장이 많았다. 물탱크가 그린 옆에 설 때를 이용해 마크를 홀 쪽으로 던져 놓는 내기 꾼들도 많았다.

도그래그가 심한 골프장을 예약하고, 앞 팀 골퍼들과 캐디까지 입을 맞추는 꾼들도 있다. 안 보이는 곳에서 치면 앞 조에서 공을 홀 컵에 넣고 가 이글을 만들어준다. 커피에 졸리는 약을 타는 경우도 있다.

내기 골프 전문 사기꾼 몰아내는데 큰 역할


▎김양권 고문은 60세이던 2019년 미드아마 랭킹 1위 자격으로 매경오픈, 미드아마 선수권 우승자 자격으로 한국오픈에 출전했다. / 사진:미드아마골프연맹
김 고문은 져도 불평하지 않고, 다음에 약속을 다시 잡아 속임수를 못 쓰게 하면서 실력으로 이겼다고 했다. 골프가 안되면 카드 ‘기술자’가 따라다니는 경우도 있다. 골프장 식당에서 우연히 합석해 하우스로 유인한다. 김 고문은 기술자에게 속지 않는 비결을 배웠다. 속임수에 당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게임을 하면 김 고문이 이겼다.

요즘 골프장에서 전문 내기 꾼은 거의 사라졌다. 뱀 같은 내기 꾼을 쫓는데 김 고문이 큰 역할을 했다고 골프 고수들은 평한다. 김 고문은 “골프장에서 안 좋은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속임수를 쓰면 주홍글씨를 다는 것 같은 일인데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래서 클럽 챔피언 출신 선후배가 모여 자선을 행하는 ‘사랑의 버디회’를 발족하고 추후 한국미드아마골프연맹을 뜻있는 선후배와 만들게 됐다”고 했다. 미드아마 초창기엔 대회에서 알까기를 하거나 한 조 선수들이 스코어를 줄이는 담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맹은 캐디들에게 부정을 저지른 참가자 신고 포상제를 실시하고 각 지역 골프협회에 공지하는 강수도 썼다. 김 고문은 “요즘은 미드아마 대회가 골프의 정신을 지키는 신사들의 경연의 장”이라고 자부한다.

승부욕이 강하다고 골프가 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김 고문은 2등도 여러 차례 했다. 그는 “어떤 대회 첫날 6언더파로 선두에 올랐다가 둘째 날 4오버파를 쳐 한 타 차 2위를 했다. 내 자신에게 너무나 실망해 3개월 동안 잠을 잘 못잤다.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어니 엘스는 타이거 우즈가 우승한 대회에서 가장 많이 2등을 한 선수다. 엘스는 우즈가 나오면 우승하려는 의지를 잃는 것 같다. 김 고문은 2등을 할수록 1등을 위해 노력했다. 김 고문은 우즈처럼 미드아마계 최다승 선수가 됐다. 김 고문은 “골프는 항상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골프가 모난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인생도 바꿔줬다”고 했다.

골프는 매일 연습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그러나 김 고문은 골프는 노력과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 스포츠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하루 한 시간 연습해놓고 노력했다고 할 수 없다. 그냥 몸만 푼 정도다. 최경주 선수는 하도 오랫동안 그립을 잡고 연습해 손가락이 안 펴졌다고 한다. 신지애의 손을 본 적이 있는가. 벙커샷을 잘하려면 벙커에서 하루 종일 안 나와야 한다. 그래도 실수한다. 한때 집에서 군용 모포를 펴놓고 와이프가 공을 놔주고 나는 기계처럼 퍼트 연습을 했다. 하도 오랫동안 연습하니 부인이 졸면서 공을 놔주더라. 퍼트를 3만 개 굴려보라. 퍼트의 원리가 어떤지 알게 된다”고 했다.

체력훈련을 하고 쇼트 게임 연습을 하고 식단 조절도 하고 라운드도 한다. 김양권 고문은 “얼마 전까지 1년에 300라운드를 했다. 하루에 27홀에 겨울 전지훈련을 가면 36홀씩을 했다”고 했다. 김 고문은 프로보다 연습을 많이 했다. 유연성과 헬스 등 다른 운동도 쉬지 않았다. 골프책도 많이 봤다.

드라이버샷 거리는 240m 정도다. 태국의 프로골퍼 타원 위랏찬트처럼 피니시에서 허리가 많이 휘어진다. 김 고문은 “체중 이동이 장타에 매우 중요하다. 백스윙할 때 체중이 오른쪽에 있어야 하고 피니시에서는 무게가 완전히 왼발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5m 정도의 짧은 퍼트를 중시한다. 쇼트 퍼트가 자신이 없으면 첫 번째 퍼트를 짧게 치게 된다. 홀컵을 지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도록 1.5m 정도의 퍼트가 100% 들어갈 수 있도록 연마해야 한다고 했다.

“정직·배려·에티켓 골프 되살리는 데 최선”

연습의 집중력도 중요하다. 대충대충 하지 말고 이 짧은 퍼트가 안 들어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칩샷 안 들어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연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골프는 일관된 스윙이 있어야 한다. 연습장에서 볼만 치지 말고 빈 스윙을 하게 되면 골프장에서도 그 느낌을 기억하고 스윙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라운드에서 1오버파와 2오버파는 한 타 차이가 아니라 두 배 차이다. 일반 사람은 그 깊이를 모르지만 고수가 될수록 큰 간극을 느낀다. 일부 골퍼 중에는 ‘짧은 퍼트 실수 안 하면 언더파인데’, ‘쇼트게임만 조금만 잘 했다면 이븐파인데’ 라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잘하는 그 날이 오려면 몇 년 걸린다. 안 올지도 모른다. 작은 차이는 커다란 차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스윙보다는 장비를 바꾸는 것이 낫다고 본다. 김 고문은 “처음에 잘 배워야 하지만 나쁜 습관이 오래 쌓이면 지문처럼 굳어진다. 스윙이 잘 안 변하고 바꾸려다가 괜히 더 꼬이기만 한다. 나는 스윙할 때 허리가 너무 많이 움직여 다칠 것 같아 불안하다는 사람이 많아 줄여 봤더니 드라이버 거리가 180m밖에 안 나가더라. 나이가 들면 악습이 있더라도 그냥 있는 대로 쳐야 한다. 피팅을 통해 몸에 맞는 장비를 갖추는 것이 낫다. 몸에 너무 안 맞는 장비를 가지고 용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피팅 장비 및 기술이 좋아졌다. 피팅으로 OB 두 개가 덜 나면 4타를 버는 건데 스윙 교정으로 바꾸기 힘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프로 골퍼의 지위는 높다. 프로 골퍼들을 과거의 무사나 장인처럼 우대하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프로는 귀족이고 아마추어는 평민으로 여겨진다. 프로는 실력도 좋지만 룰도 잘 지키는 부류고, 아마추어는 가끔은 속이기도 하는, 혹은 속여도 되는 골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직과 자연과의 조화 동반자에 대한 배려, 에티켓 등 골프의 정신은 아마추어가 만들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한 1861년 디 오픈에서 프로들에게만 마커가 따라다녔다. 프로들은 스코어를 속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고 실제로 그런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마추어인 젠틀맨 골퍼들은 명예를 중시해 속이지 않았다.

김양권 고문은 매치플레이로 치러진 아마추어대회 8강전 마지막 홀에서 한 홀 지고 있었다. 10m 버디 퍼트를 남긴 김 고문은 상대의 1.5m 파 퍼트에 컨시드를 줬다. 10m 버디를 넣어 연장전에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넣지 못했다. 그는 “내가 잘 쳐서 이기고 싶지만, 멋지게 패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동반자를 배려하고 아마추어의 자존심을 세우는데도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 [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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