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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도전 인터뷰(1)]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이 말하는 ‘이재명식 공정’ 

“형식에 실리 더해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것” 

삶의 공정에 무게 둔 이재명, 형식의 공정 중시하는 윤석열과 달라
문재인 정부의 공과(功過) 극복하고 공정의 균형점 찾는 게 과제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실질적 공정과 형식적 공정의 균형을 찾는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준석 현상’으로 ‘공정’이 이슈가 되면서 대선주자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공정’으로 맞붙을 조짐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내 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 포럼’을,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을 출범시켰다. 두 대권주자가 그리는 공정한 세상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한주 경기연구원장과 정용상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상임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대선의 시대정신을 엿봤다. [편집자 주]

"이번 대선은 형식적 공정과 실질적 공정 사이에서 누가 더 균형을 잘 잡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대선의 시대정신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이 지사의 브랜드가 된 ‘기본’ 정책 시리즈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 지사가 성남지역 시민운동을 할 때 지역의 대학교수로 지내며 맺은 오랜 인연으로 누구보다 이 지사의 철학에 이해가 깊다. 6월 8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경기연구원에서 만난 이 원장은 “이 지사의 ‘공정’은 윤석열의 공정과 다르다”고 단언했다.

공정이 최근에 나온 화두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때부터 ‘공정’을 강조해왔다. 이 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세 사람이 공정을 강조한 게 흥미롭다.

“법률가에게 공정은 매우 친숙한 개념이다. 세 사람은 20대 때부터 법철학을 공부했다. 자연스럽게 공정이 제일 큰 시대적 화두라고 생각했을 거다. ‘법적인’, ‘불법’, ‘엄단’ 이런 말을 잘 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이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윤 전 총장은 법의 집행자였다. 법 집행자에게는 맥락보다 기계적인 평등이 중요하다. 이 지사는 다르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세상은 기울어져 있다고 체득했을 거다. 외형적 균형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 삶에 있어선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 그걸 바로잡는 게 공정이라고 보는 거다.”

이 원장은 “이 지사는 사회·경제적인 형평, 삶에서의 형평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윤 전 총장과 이 지사의 차이를 “형식적 공정과 실질적 공정의 차이”라고 구분했다.

그렇다면 이 지사가 생각하는 실질적 공정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이 지사가 즐겨 쓰는 용어에 힌트가 있다. 그중 하나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다. 억강부약이란 말은 경우에 따라 난폭해 보이기도 한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이상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운 존재고 평등한데 강약을 누가 판단하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이 지사는 자기가 경험한 삶에서 그걸 체득한 거다.”

‘대동세상’도 이 지사가 잘 쓰는 용어다.

“대동세상은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이상향을 뜻하는 용어였다. 지금 보이지 않는 신분이 있다고 본다. 경제적 격차, 권력의 격차 같은 것들이다. 대동세상은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대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동, 삶의 조건에서의 대동을 말하는 거다. 또 하나 실사구시란 말도 곧잘 쓴다. 이념이 아니라 삶에서의 가치를 지향하는 의미다. 이 세 말이 지향하고 상징하는 것이 공정으로 귀결된다.”

삶에서 구현되는 실질적 공정이 이재명의 가치


▎2020년 8월 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과 취업준비생 등이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기자
그런데 사람들은 왜 윤 전 총장의 공정에 환호할까?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할 법을 다루는 검찰이 과거에는 권력에 굴종했었다. 그래서 국민이 누구에게나 공정하라고 요구했던 것이고…. 윤 전 총장이 그 역할을 자임했다. 그런데 정권이 그걸 못하게 하는 것처럼 비쳤고, 그래서 나가니까 사람들이 환호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형식적 공정이 덜 완성된 게 아닐까 싶다. ‘형식적 공정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이 지사는 그걸 넘어서야 하고 말이다.”

지난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표로 나타났듯이 청년들이 정부여당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우리가 원했던 공정한 세상이 이 정도 수준이었나라는 실망감의 표출이 아닐까?

“공정에 관한 형식과 실질이 혼재돼 나타난 현상으로 본다. ‘인국공 사태’만 봐도 그렇다. 그동안 차별대우 받던 비정규직을 좀 더 대우하자는 거였다. 이건 실질적 공정을 실현하려는 측면이다. 그런데 열심히 시험 준비하던 청년들이 자기 생각과 다른 공정의 가치가 들어오니 반발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실질과 형식적 공정 사이에 어느 한쪽을 취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 부동산도 그렇다. 누군가는 주거의 수단으로만 봐야 한다지만, 누군가는 집값 올라서 노후에 좀 편해지고 싶은 경제적 수단으로 본다. 그들에게 집 사서 부를 늘릴 기회를 막는 건 공정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이율배반적이지만 현실이다.”

이 지사가 주창하는 기본소득은 실질인가 형식인가.

“기본소득은 형식적 공정에 가깝다.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똑같이 대우하자는 얘기가 바로 형식적 공정이다. 가난한 사람만 준다면 형식이 깨진다. 그런 점에서 정책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만약 윤 전 총장과 이 지사가 살아온 길이나 추구하는 가치로 보면 윤 전 총장은 오히려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똑같이 주자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이 지사는 반대일 테고.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윤석열도 필요하고, 이재명도 필요하다. 강조하는 점이 다를 뿐 누가 더 균형을 잘 잡느냐의 문제다.”

민주당 얘기를 해보자. 소위 친문그룹의 영향력이 당내에서 상당하다. 최근에는 경선 연기론까지 들고 나온다. 공정을 깬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당에서 친문의 문제가 뜨거운 감자이긴 하다. 실제로 집단으로 움직여서 당내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걸 언론자유의 영역으로 볼지, 여론 왜곡으로 볼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이 지사만큼 시달린 사람도 없을 거다. 그런 판단을 하기 전에 이미 상황이 변했다. 친문그룹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분화하고 있다. 대신 수가 줄고 독해졌다. 촛불이 꺼지기 직전과 비슷하다.”

분화한다는 건 와해된다는 건가?

“단적인 예로 우리 그룹에도 친문이 있고 이낙연, 정세균 전 총리 쪽에도 있다. 독자적으로 뭉치는 게 아니라 각자 생각에 따라 갈라지고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와서 친문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민주당이 그 정도 자정능력은 있다.”

친문의 문제 심각하지 않아… 조국 행동은 잘못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월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 포럼’ 창립총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 사진:오종택 기자
조국 전 장관이 책을 냈다. 그를 두둔하는 이들도 있지만,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그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조 전 장관이 고통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광도 누렸잖은가. 잘생겼지, 돈도 많았지, 똑똑하지… 하나 갖기도 어려운 걸 다 가졌다. 스스로 정의로우려고 노력했고, 정의롭게 보이는 데도 성공했다. 서울법대 교수에 민정수석을 지낸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엄청난 포지션이다. 이 분이 실질적인 공정과 평등을 위해 노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본인 스스로 인정했듯이 보통 사람하고 다르게 행동한 건 맞다. 거듭 강조하지만, 공정은 실질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선 조 전 장관이 균형감각을 잃었다고 본다.”

이런 평가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겠다.

“이 지사는 더 힘들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개인보다 당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상반된 여론이 존재하는 상황에 이 지사가 메시지를 내면 당원과 국민이 조 전 장관을 판단할 잣대로 오용될 수 있다. 시간을 두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조 전 장관이 별다른 역할을 못할 거라고 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이 지사의 공정은 문 대통령의 공정을 계승하는 것인가,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인가?

“형식과 실질적 공정 중에서 이 지사는 실질로 출발했다. 윤 전 총장은 형식에서 출발했고, 문 대통령은 그 중간쯤에 있다. 중간에 있다는 건 이 지사가 계승해야 한다. 실질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니까. 다만 그 포지션까지 계승해야 하는 건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감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당선될 때는 촛불을 겪었지만,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또 하나의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에는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 의무보다 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지 않나. 시대가 변하고 판이 바뀐 거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공정을 계승도 해야 하고 극복도 해야 한다.”

한때 선거철마다 단골처럼 등장한 게 ‘노무현 정신 계승’이란 구호였다. 다가올 대선에서 ‘문재인 정신’을 계승할 시대 상황이 펼쳐질까?

“정책으로 보면 문 대통령은 그다지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도 말이 이상했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긍정적 결과가 없다. 일자리가 확 늘어났나, 소득이 늘어났나. 늘긴 했어도 불평등하게 늘어났다. 정말 위태로운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더 나빠졌다. 문 대통령이 어떻게 기억될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방향은 맞는데 운용을 잘못해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본다. 한마디로 정신은 계승하되, 발전을 위한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재명 스토리’ 좋지만 진부해, 새 이미지 메이킹 필요

이 원장은 현 정부의 정책적 실패 원인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예로 최저임금을 꼽았다. 최저임금은 손해 보는 사람과 이익 보는 사람이 분명히 갈린다. 양쪽 다 국민이다. 손해 보는 사람에게 일방적 희생만 강요해서는 정책의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손해 보는 쪽을 설득해 ‘복지동맹’의 일원으로 만들었어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지적이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미숙했다’고 한 데 대해 이 원장은 “맞는 얘기지만, 그보다 지도자가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두툼한 책을 한 권 꺼내 보였다. 경기 연구원이 펴낸 [통계로 본 우리 사회]라는 책이다. 사회 부문별 현황과 추이를 숫자와 그래프로 도식화했다. 이 원장은 이 지사에게 이 책에 나온 숫자를 달달 외우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통령이 모르면 참모들이 공부를 안 한다. 그러면 관료들한테 속는다. 그러면 청와대는 관료집단의 로봇이 되고 만다. 청와대 행정관부터 담당 부처 실·국장들을 업무로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라면 자기가 원하는 세상에서 한국이 어디쯤 와 있는지 숫자로 좌표를 찍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사의 대선 전략이 궁금하다.

“이 지사는 국민에게 어필할 스토리텔링 요소를 다 갖고 있다. 소년공, 시골에서 올라온 도시 빈민, 검정고시, 사법고시 합격…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이게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오래되면 흥미가 떨어진다. 지금 다시 꺼내면 재미가 없다. 사견이지만, 앞으로 두 가지를 내세워야 한다. ‘이재명은 확실하다’는 인식이 첫째다. 계곡 불법 구조물을 정비하고 신천지 털어버린 걸로 어느 정도 입증됐다. 둘째로 실사구시 정책이다. 이걸로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정책들을 조합해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

모두가 공정을 외치는 가운데서 이 지사가 내세울 대선의 시대정신은 뭔가.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변화 중 하나가 공동체가 강화돼야 하고, 국가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변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불평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소득, 정보의 격차 같은 것들 말이다. 또 지속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서 ‘성장과 공정을 위한 포럼’을 만들었는데, 좀 더 구체화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말하려 한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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