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스포츠 경제] KBO리그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SSG 랜더스 

코로나19 시대에 최적화된 프로야구 소비 모델 내놓을까 

야구단을 ‘신세계 유니버스’의 플랫폼이자 언택트 시대 콘텐트 생산·유통 기지로 재설정
정용진 구단주의 이슈 메이킹·추신수 영입·초반 상승세로 흥행… 지속가능성은 지켜봐야


▎2021년 3월 30일 열린 SSG 랜더스 창단식에서 정용진 구단주가 포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사회 환원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프로야구단의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 사진:연합뉴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없던 프로야구단의 시작.’ 2021년 3월 30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SSG 랜더스 창단식이 열렸다. 정용진 구단주는 “고객과 팬을 위해 광적으로 집중한다면, 랜더스를 꿈이 현실이 되는 야구단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선언했다. 창단 이후 100일이 흐른 7월, ‘대한민국 야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SSG 랜더스의 행보는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을까. 단순히 야구를 잘하는 차원을 넘어서 야구단의 존재 이유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 이들이 상륙하려는 목적지다.

랜더스는 ‘신세계 유니버스’의 플랫폼


▎SSG 랜더스는 추신수 영입 효과에 힘입어 2021시즌 전반기 기대 이상의 성적과 인기를 얻고 있다.
7월 4일 전국 이마트 매장에서는 한우 40% 할인 행사가 열렸다. 야구단 창단 100일을 기념한 ‘랜더스 데이’ 이벤트였다. 유통회사인 신세계그룹과 야구단 랜더스를 묶는 고리는 ‘고객과 팬’이다. 야구단은 자체적으로 돈을 벌진 못하지만, 강력한 노출 효과를 갖추고 있다. 이 장점을 신세계그룹의 수많은 계열사와 연계시켜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 기본 틀이다.

김재웅 랜더스 마케팅팀장은 “야구단을 ‘신세계 유니버스(universe)’의 플랫폼이자 허브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신세계에서 출시한 별처럼 많은 브랜드를 SSG 랜더스를 통해 전파하겠다는 발상이다. 야구단으로 묶겠다는 ‘락인(lock in) 전략’이다. 스타벅스,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 강력한 네임 밸류를 지닌 계열사와도 협업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브랜드를 각인할 때, 야구단의 필요성이 극대화할 수 있다.

일례로 반려동물용품점 몰리스, 체험형 장난감매장 토이 킹덤 등은 SSG 랜더스와 결합해 마케팅을 기획할 수 있다. 노브랜드는 정체성에 걸맞게 2군 선수단을 후원할 수 있다. 팬이 ‘신상’을 창출하는 케이스도 등장했다. 최정·추신수·로맥·최주환으로 이어지는 홈런타자들의 이름에서 ‘최신맥주’ 타선이라는 애칭이 입소문을 타자 편의점 이마트24는 ‘최신맥주(beer)’를 출시했다. 정용진 구단주는 인스타그램에 자기 얼굴을 새긴 ‘구단주 맥주’ 디자인을 올리기도 했다. 그룹 관계자는 “구단주 맥주의 상품화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 대신 올여름 수제맥주 SSG 랜더스 라거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성용 랜더스 홍보팀장은 “미국 마이너리그의 지역밀착 마케팅은 야구 티켓의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가령 랜더스필드 티켓을 신세계 계열사 매장으로 가져오면 할인을 해주는 방식을 협의 중이다. ESG 경영에도 야구단이 동원되고 있다. 랜더스 2군 시설이 강화도에 있는 점에 착안해 코로나19 여파로 판로가 막힌 이 지역 농산물을 이마트 인천점에서 납품받고 있다. 쌀을 페트병에 넣어서 야구장 응원 도구로 나눠주기도 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의 서비스와 상품, 공간 안에서 소비자가 먹고·자고·보고·사고·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신세계 유니버스’를 실험 중이다. 중국의 온라인쇼핑몰 알리바바와 같은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비전이다. 이에 맞춰 그룹의 체질을 온라인·디지털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다. SSG 랜더스 창단과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그 포석에 해당한다.

SSG 랜더스의 등장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회사는 메인 스폰서인 SSG닷컴이다. 4월 1~4일 ‘랜더스 데이’ 행사 때 매출은 전주 대비 43% 증가했다. 6월 12~16일 ‘랜디쓱데이’ 때에는 전년 대비 일일 방문자 수가 20%가량 늘었다. 이밖에 5월 21~23일 ‘스타벅스 데이’ 기간에는 노브랜드 버거 매출이 45%, 이마트24 매출이 20% 상승했다. 특히 연고지 인천의 노브랜드 전 지점 5월 매출은 전달 대비 11% 올랐다.

신세계그룹은 SK 와이번스 야구단 인수에 1352억8000만원(주식 100% 1000억원+토지와 건물 352억8000만원)을 베팅했다. 연 운영비로 약 200억원을 책정했는데 이 가운데 100억원을 네이밍 스폰서 SSG닷컴에서 책임진다. 노브랜드·트레이더스·피코크 등을 유니폼과 헬멧에 부착하는 대가로 이마트도 70억원을 지원한다. 류선규 랜더스 단장은 “정용진 구단주의 관심이 아니었다면 계열사와의 협업이 이렇게 활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단주가 최전선에서 SNS로 홍보하고, 유니폼 인증샷을 올리고, ‘용진이형 상’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한우를 선물하는 분위기에서 계열사 CEO들도 의욕을 보여야 했다.

콧대 높기로 소문난 스타벅스코리아가 랜더스필드에 매장을 출시하고 한정판 유니폼을 제작한 것은 상징적이다. 5월 출시된 ‘랜더스벅’ 유니폼과 모자 340개는 3분 만에 완판됐다. 6월 다시 300개 한정판으로 재발매했고, 이 역시 바로 품절됐다. 야구단 인수가 공개됐던 1월 말, 선수들은 제주도 전훈 중이었다. 이때 신세계그룹은 전훈 종료일인 3월 5일까지 스타벅스 커피 100잔씩을 매일 선수단에 무료로 공급했다. 선수들은 ‘스타벅스 세리머니’로 화답했다. 특히 정용진 구단주와 용모가 흡사한 정의윤이 홈런을 치고 돌아온 추신수에게 스타벅스를 건네는 장면은 온라인상에서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정의윤은 ‘구닮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세계는 선수들의 SNS 영향력을 자사제품 홍보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가령 추신수 같은 스타 선수가 노브랜드 햄버거나 시코르 선크림을 개인 인스타그램 등에 올려주면, 반대급부로 전 선수단에 제품을 지원한다. 김 홍보팀장은 “유통은 라이프다. 문화를 지배하는 선수들이 보이스를 퍼뜨려 줄수록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 겨냥한 정용진의 계산된 ‘도발’


▎SSG 선수들은 홈런을 친 뒤, 덕아웃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세리머니로 브랜드를 전파한다.
랜더스가 신생팀 핸디캡을 딛고 빠르게 관심 구단으로 진입한 방편 중 하나로 유통 라이벌 롯데와의 대결 전선이 꼽힌다. 정용진 구단주가 앞장서서 구도를 만들었다. 그는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를 통해 “롯데가 본업(유통)과 야구를 서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며 “게임에선 우리가 질 수 있어도 마케팅에서만큼은 반드시 이기겠다. 롯데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고 도발했다.

랜더스는 창단 첫 경기인 4월 4일 승리를 비롯해 롯데전 첫 3경기를 전부 이겼다. 이후 7월 12일까지 롯데전 4승 3패로 우세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4월 27일 잠실구장을 찾아 LG전을 관람했다. 2015년 9월 이후 6년 만의 야구장 방문이었다. 그러자 그날 밤 정용진 구단주는 또 클럽하우스를 열고 “내가 롯데를 도발했기 때문에 ‘동빈이형’이 야구장에 왔다. 동빈이형은 원래 야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도발하니까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가 도발하자 롯데가 불쾌한 것 같은데, 그렇게 불쾌할 때 더 좋은 정책이 나온다”며 “이런 라이벌 구도를 통해 야구판이 더 커지길 원한다”고 발언했다.

정용진 구단주의 공세에 롯데가 곤혹스러워하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롯데쇼핑은 SSG와의 시즌 개막전 시점인 4월 1~4일 ‘원정 가서 쓰윽 이기고 ON’이라는 롯데온 1주년 이벤트를 열었다. 여기서 ‘쓰윽’은 SSG를 지칭한다. 롯데 자이언츠는 시즌 개막 후 1달밖에 지나지 않은 5월 10일 허문회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당시 롯데는 성민규 단장과 허 감독의 불화설을 외부에 노출하며 꼴찌로 떨어져 있었고, 5월 11일부터 SSG와의 3연전을 앞두고 있었다. 롯데는 SSG와 맞붙으면 마무리 김원중의 조기 등판을 불사하는 등, 총력전 모드로 임하고 있다. SSG 랜더스의 전방위적 마케팅 퍼포먼스에 롯데는 애써 내색하지 않지만 난감하다. ‘미투 전략’으로 맞불을 놓으면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고, 무시하자니 계속 밀리는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창단 100일 된 랜더스가 특히 프로 스포츠 산업화 관점에서 이목을 끄는 이유는 ‘코로나19가 초래한 언택트 환경에서 프로야구팀의 활로’를 선도적으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야구장에 팬들을 가득 채워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전통적 방문 모델은 붕괴했다”며 “새로운 환경에서 야구단의 가치를 증명할 체질 개선과 체제 전환을 모색할 때”라고 단언한다.

원래 프로야구팀은 콘텐트를 생산하는 업(業)이다. 랜더스는 새로운 시대에 콘텐트의 개념과 유통은 기존 야구단의 방식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중 입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옛날처럼 텅 빈 야구장에서 랜선 응원을 해봤자 별 효용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 대신 구단 자체적으로 온라인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하는 궤도로 변경했다. 네이버와 협업해 1시간짜리 프리뷰 쇼를 시작했고, 야구단의 핵심 자산인 선수들과 얽힌 스토리를 발굴해 유튜브와 SNS 등에 지속적으로 업로드 했다. 치어리더의 포지셔닝도 크리에이터로 바꿨다. 야구장 응원보다 먹방, 봉사활동, 게임을 한다. 사인회를 대체해 랜더스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한 게릴라 마케팅을 도입했다. 과거에는 만원 관중을 채워놓고 이벤트를 여는 마케팅을 최고로 쳤다면, 이제는 화제의 콘텐트를 만들어서 조회수 50만 뷰, 100만 뷰를 찍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됐다. 김 홍보팀장은 “코로나19가 어느덧 2년이다. 언젠가 끝나더라도 프로야구 소비 습관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정보의 유통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SK 와이번스에서 SSG 랜더스로 바뀐 뒤 TV 시청률이나 관련기사 숫자도 증가했다. 스포츠케이블 스포티비는 SSG 경기를 집중 편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20·30세대의 SSG경기 시청률이 높은 현상을 겨냥한 전략이다. OBS 경인방송은 7월 중순부터 랜더스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SSG 관계자는 “향후 넷플릭스나 티빙에 판매되면 더 전파력이 커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얼마짜리 야구단으로 키울 수 있을까

랜더스가 신장개업 후 선순환을 누릴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는 성적이다. 당초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던 SSG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가 일시중단된 7월 12일 시점까지 42승 36패 2무로 4위를 달리고 있다. “SSG가 가을야구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는 정용진 구단주의 바람대로 흘러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200홈런을 기록한 타자 추신수를 연봉 27억원에 영입하며 전력과 이슈, 팀 케미스트리에서 플러스 효과를 얻었다. 4년 총액 42억원에 FA 2루수 최주환도 가세했다. 새 외국인투수 폰트도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타자친화적인 랜더스필드의 특성을 극대화하며 7월 12일까지 홈런 10위 안에 무려 4명(최정 20홈런·로맥 18홈런·추신수 13홈런·한유섬 13홈런)이 SSG 소속이다. SSG는 팀 홈런에서 전체 1위(107개)다.

반면 팀 평균자책점은 4.80으로 하위권(7위)이다. 폰트(88이닝)를 제외하면 80이닝을 넘긴 투수가 없다. 토종 원투펀치인 박종훈과 문승원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했다. 제1 선발로 기대했던 르위키는 부상으로 4경기만 던지고 퇴출됐다. 선발진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불펜진이 막강한 것도 아니다. 극단적 타고투저 전력에서 경기력의 기복이 극심하다. 한여름 레이스에서 불안요소가 쌓여 있다. 게다가 김원형 감독은 코치 경험은 많지만, 감독으로선 첫해다. 관건은 랜더스의 승률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마케팅과 홍보의 위력이 반감될지 여부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구단에서 필요하다고 요청한 사항에 대해 적극 지원하겠다”며 “트레이드 등 전력 보강은 구단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답했다.

랜더스 내부에서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위기감이 역력하다. 정용진 구단주와 신세계그룹의 관심이 살아있을 때, 야구단의 가치를 불가역적으로 구축해놔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김 마케팅팀장은 “올해는 계열사들과 다양한 만남을 가졌다면, 내년부터는 ‘브랜드 파워에 구애받지 않고 랜더스와 협업하면 이롭다’는 그룹 내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야구는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이지만,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올드’한 이미지와 코로나19라는 겹악재 속에서 영원히 자립 못 하는 ‘돈 먹는 하마’로 낙인찍힐 수 있다. 랜더스는 “우리의 실험은 야구판을 살려보자는 메시지다. 이마저 실패하면 버려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있다”고 토로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베이코리아를 3조4400억원에 인수한 뒤 고평가 논란이 일자 “얼마에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짜리 회사로 키우느냐가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SSG 랜더스에도 같은 화두가 주어졌다. 향후 얼마짜리 야구단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따라 산업으로서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도 달려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108호 (2021.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