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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담]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말하는 ‘동남권 시대’ 

성경륭: “수도권 과밀, 지역 위축 막을 국가 재구조화 절실”
김경수: “부·울·경 메가시티는 국가균형발전 전환점 될 것” 

■ “부산·울산·창원·진주 등 4대 거점도시를 1시간 생활권으로 연결”
■ “국회 양원제 도입 또는 비례대표 늘려 비수도권 발언권 확대해야”
■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 유지됐다면 부동산값 폭등 없었을 것”


▎김경수(왼쪽) 경남도지사와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7월 8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목표는 동남권에 또 하나의 수도권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一極)이 아닌 다극(多極) 체제로 전환하면 수도권 과밀도 해소하고 지방 소멸도 막을 수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대담 시간의 대부분을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설명에 할애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의 미래인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현지에서 미래를 설계하도록 하는 근간을 구축하는 작업이라고도 했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제기한 시·도 간 ‘초광역 협력’의 확장판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상생의 길을 열겠다는 게 김 지사의 야심찬 계획이다.

김경수 지사와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대담은 7월 8일 오전 경남도청 도지사 접견실 등에서 2시간여에 걸쳐 이뤄졌다. 이때만 해도 김 지사의 대통령선거 댓글 여론 조작 의혹 관련 대법원 선고 일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담에 앞서 일정을 조율하던 김 지사는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부·울·경 메가시티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했고, 참여정부 시절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입안한 성 전 위원장이 이 대담 주제의 적임자라고 평했다.

공교롭게도 대담이 진행된 7월 8일 밤 대법원 2부는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 지사의 상고심 선고 기일을 7월 21일로 지정했다. 대법원 선고일이 생각보다 앞당겨 잡히자 김 지사 측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지사 측은 “(선고하는 대법원 2부가 아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넘어갈 걸로 생각했고 (7월 21일로 선고 공판이 잡힐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월간중앙은 매월 17일 발행된다. 발행 며칠 뒤 김 지사의 선고 공판이 열리는 까닭에 월간중앙이 독자 손에 쥐어질 즈음 김 지사의 신분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물은 2심의 유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김 지사는 지사직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대법원에서 어떤 선고를 내리든 경남도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부·울·경 메가시티나 ‘청년특별도’ 사업은 경남도의 미래 성장동력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의회, 집행기관 갖춘 제3의 특별지방자치단체 뜬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기본 개요를 설명하자면?

김경수 경남도지사_ 부산·울산·경남을 대도시 경제권으로 엮어 수도권과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 축으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부산과 울산, 동부 경남의 창원과 서부 경남의 진주 등 지역별 거점도시와 인근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플랜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부산·울산·창원·진주 등 4대 거점도시를 잇는 광역대중교통망을 확충, 거점도시를 1시간 생활권으로 연결하게 된다. 또 이미 각 지역에 조성된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의 협업 체계를 만들어 산업을 육성하고 지역 성장을 도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궁극적으로 2040년까지 동남권에 인구 1000만 명, 경제 규모 490조원인 초광역 도시권 구축을 목표로 한다.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_ 인구 1000만 이상의 33개 메가시티가 전 세계 GDP의 1/3 이상을 생산하며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도 메가시티 육성을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울·경 메가시티는 동남권에 고용·주택·교육·문화 등 독자적 생활 여건을 구축하는 국가 차원의 큰 실험이자 현대사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게 성공하면 젊은이들이 살던 곳을 떠나지 않고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수도권 과밀과 지역 위축을 해소하고 국가의 재구조화까지 가능한 실마리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부산, 울산의 적극적 참여와 중앙정부, 국회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실효적으로 추진된다는 믿음을 줄 수 있나?

김 지사_ 먼저 메가시티에 대한 부산과 울산의 의지가 남다르다. 특히 보궐선거에서 새로 선출된 박형준 부산시장은 광역지자체 간 협업에 대한 이해가 깊고 추진 의지도 강하더라. 관련 광역지자체의 준비된 자세와 더불어 중앙정부와 국회 차원의 지원도 가시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이다. 내년 1월 13일 시행되는 개정 지방자치법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설치할 수 있는 ‘특별지방자치단체’에 집행 기관과 의회를 두도록 했다. 각 시·도 의회에서 추천한 인사들로 특별지방자치단체 의회가 별도로 꾸려지면 여기에서 조례를 만들고 예산 배정도 가능해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실질적인 기능을 뒷받침할 수 있다. 내년 가동을 목표로 부·울·경이 합동추진단을 만들었고 행정안전부가 이를 승인한 상태다. 그동안 협의에 머물러왔던 광역 단위의 행정 사무를 ‘특별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게 된다. 해당 광역지자체, 중앙정부, 의회가 협력하는 환경에서 부·울·경 메가시티를 준비해가고 있다.

성 전 위원장_ 지난해 말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제3의 광역 연합형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 기능을 하도록 세부 내용을 규정한 데서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는 광역 행정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설치 근거만 뒀을 뿐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특별지방자치단체를 현실적으로 운용하기가 어려웠다. 지난해 말 법 개정을 통해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의결 기관과 집행기관을 두도록 했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본궤도에 오르는 데 필요한 제도적 정비가 매듭지어진 셈이다.

“초광역 행정에서 시·도 행정통합 동력도 생성”


부·울·경 메가시티 합동추진단은 이미 가동 중인 부·울·경 광역교통실무협의회나 서울·경기·인천 교통 문제를 협의하는 ‘수도권 교통조합’과 기능 면에서 어떻게 차별화되는가?

김 지사_ 그렇다. 이미 부·울·경 광역교통실무협의회, 서울·경기·인천 수도권 교통조합이 설치돼 교통 문제를 다루고는 있다. 이 조직의 한계는 ‘협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예산권, 집행권이 없다 보니 협의만 되풀이하는 수준이다. 부·울·경 광역교통실무협의회에서 도출한 협의 내용을 각 광역지자체에서 검토하다가 손해라고 생각되면 다시 협의해오라며 반송하기 일쑤다. 이래서는 일이 겉돈다. 일이 되게 하자면 단순한 협의체가 아닌 연합체로 만들어 사업에 필요한 예산권에 인원, 집행권까지 부여돼야 한다. 지난해 말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이게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성 전 위원장_ 국민 입장에서는 메가시티, 광역특별연합, 특별지방자치단체, 합동추진단 등 명칭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사업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김 지사_ 우리가 통상 이 사업을 부를 때는 ‘부·울·경 메가시티’, ‘부·울·경 광역특별연합’이라고 한다. 메가시티나 광역특별연합은 같은 말이며 행정적 명칭으로 쓰인다. 이의 법률적 지위가 특별지방자치단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이 특별지방자치단체를 준비하는 기구가 합동추진단이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부·울·경 행정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김 지사_ 부산과 경남을 잇는 광역 철도를 놓는다고 치자. 두 광역지자체가 합의한다고 공사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해당 노선이 지나는 기초지자체들과도 일일이 다 협의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진척도 안 되고 시간만 허비한다. ‘부·울·경메가시티’는 이런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해 동남권 경제공동체의 핵심 요소라 할 물류 플랫폼을 만들게 된다. 항만과 공항, 철도가 연계되는 스마트 복합 물류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부·울·경 주민들이 초광역 단위 행정의 효율성을 체감하면 장기적으로는 행정통합까지 가는 동력도 생성된다. 행정통합은 시·도민의 동의가 필요한데, 지금 상황에서 부·울·경 행정통합을 얘기하면 갑작스럽고 엉뚱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서부 경남 주민들은 주변부로 밀린다는 걱정도 할 것이다. 부·울·경 메가시티 성과가 축적되면 이런 우려가 불식되고 행정통합 논의도 가능해질 것이다.

성 전 위원장_ 각 광역지자체가 자발적 결의에 따라 특별자치단체를 만드는 건 유럽의 독립된 나라들이 유럽연합(EU)을 결성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대구·경북 같은 광역지자체가 바로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차라리 부·울·경 메가시티처럼 광역특별연합의 과정을 거쳐 합의된 영역에서 함께 노력하다 보면 서로 공동 행정체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루게 된다. 이런 징검다리를 통해 행정 통합의 길로 갈 수도 있지 않겠나. 다른 광역지자체에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사업이다. 이 사업은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됐지만, 다음 정부에서도 이 취지를 잘 살려가면 좋겠다.

김 지사와 성 전 위원장은 부·울·경 메가시티 존재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두 사람에 따르면 경남도의 최대 고민은 청년 인구의 역외 유출에 있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부산이나 수도권으로 빠져나갔다. 청년들을 붙들자면 경남에 살면서도 부산 직장에 통근할 수 있는 교통인프라를 꾸리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부·울·경 메가시티는 일차적으로 광역교통망 확충을 목표로 한다. 나아가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몰리면 수도권 생활 및 주거 환경이 악화한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대표적 현상이다. 이래서는 수도권도 함께 몰락한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기업의 지역 이전을 촉진하기에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는 효과도 낸다. 그래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모두 편안한 삶을 누리게 하는 수단이 부·울·경 메가시티이고 이게 바로 지역균형발전의 성과로 이어진다는 해석이다.

“교통인프라 격차가 청년층 수도권 이동 불러”


▎김경수(오른쪽) 경남도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이 4월 16일 부산시청에서 손을 맞잡고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을 위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경남도는 올해 캐치프레이즈로 ‘청년특별도’를 내걸었다. 청년들이 경남을 떠나지 않고 머물게 하고, 돌아오게 하는 경남을 만드는 새판 짜기를 한다고 들었다.

김 지사_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을 도정의 최우선 목표로 두고 정책을 재설계하고 있다. 경남의 경우 지난해 2030세대 청년 인구가 1만9000명 가까이 빠져나갔다. 청년이 줄어드는 지방은 미래가 없어 존립을 장담키 어렵다. 수도권은 사정이 정반대다. 지난해 10만 명 정도의 2030세대가 수도권으로 유입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교통인프라 격차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더라. 구직자 입장에서 보면 교통 인프라가 훌륭한 수도권은 서울, 경기, 인천 어디든 다 선택권 안에 있다. 출퇴근이 가능하기에 굳이 서울로 이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은 반대다. 창원 청년들에게 가까이 있는 부산과 울산의 일자리는 그림의 떡이다. 창원시청에서 부산시청까지 거리는 30㎞ 정도에 불과한데 차량으로 이동하는 데 2시간 넘게 걸린다. 마찬가지로 30㎞ 정도 떨어진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1시간이면 족하다. 수도권 철도망, 도로망, 광역버스 환승 체계 등이 완비된 덕이다. 반면 부산의 일자리는 안타깝게도 ‘창원에 사는’ 청년의 선택지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창원 청년들이 부산, 울산으로, 심지어 아예 수도권으로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부·울·경 인구가 800만이다. 수도권처럼 하나의 생활권, 경제권으로 기능하면 청년들이 외지로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대중교통 이동성을 높이는 플랜이기도 하다.

“매달 일정액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 검토할 시점”


▎경남도가 작성한 부·울·경 메가시티 광역교통망 개념도. 동남권 주요 거점 도시를 1시간 생활권으로 묶는다는 계획이다. / 사진:경남도
성 전 위원장_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자. 이대로 가면 수도권도 힘들다. 수도권이라도 잘살면 다행인데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인구 과밀화로 몸살을 앓지 않나. 지금 상황이라면 기업조차 고정비 증가로 인해 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인재가 있는 수도권에 사무실을 둬야 하는데 비용은 증가하고 부동산은 부동산대로 올라 기업의 직원들도 고통을 겪는다. 지난해 8만8000명이 수도권에 유입됐다. 연령대를 보면 40대 이하에서 10만3000명이 몰렸는데 40대 이상은 오히려 1만5000명이 비수도권으로 빠져나갔다. 3040세대에서도 기회가 닿으면 지역으로 내려오겠다는 친구들이 많다. 수도권 청년들도 힘들어한다. 출산율이 말해준다. 지난해 전국 출산율은 0.84인데 서울은 0.64에 그쳤다. 서울 출산율이 전국 출산율을 깎아먹은 것이다. 이 고리를 끊어줘야 한다.

김 지사_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면 아파트 가격은 오르게 돼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 지수에서 비수도권이 수도권을 앞선 때가 2012년부터 2017년까지다. 이때는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인구가 순유출된 시기와 거의 겹친다. 적게는 1000명, 많게는 3만2000명이 비수도권으로 빠져나갔다. 참여정부가 만든 혁신도시로 정부 및 공공기관을 이전하기 시작한 시점이 2011년이다.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이 효과를 나타냈다는 방증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는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풀기 어렵다.

성 전 위원장_ 최근의 부동산값 폭등은 통화 공급량 증가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인구 구조의 변화도 한몫했다. 1인 가구 비중이 39%로 오르는 등 독신에게도 자기 집이 필요한 시대가 되면서 주택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돈은 풀렸고 젊은이도 수도권으로 몰리고…. 수도권의 고통을 해소하자면 궁극적으로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청년들의 지역 이탈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국가는 공공재를 생산해야 한다. 세금과 국방이 공공재의 핵심이다. 청년들은 국방을 책임지고 세금을 내는 등 나라의 중추를 이룬다. 청년들에게 미래가 없으면 나라는 얼마 못 가 무너진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의 핵심공공재를 생산하는 청년들을 위한 청년기본소득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라고 본다. 청년 고용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너졌다.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어려워졌다. 실업이나 비정규직 상태에 있는 청년들만이라도 취업역량 향상, 기업 인턴활동, 창업 준비, 글로벌 봉사활동 등을 위해 30살 될 때까지 국가가 매달 일정액의 기본소득을 보태주면 좋겠다. 연간 20조원 예산을 투입하면 가능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R&D센터로 유치하자면 최적화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생산라인을 두고도 연구개발(R&D)센터는 서울 서초구에 두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을 외면한 탓 아닐까? 이런 게 비수도권이 안고 있는 근원적 핸디캡으로 보인다.

성 전 위원장_ 기술혁신을 하자면 중장기 R&D와 단기적 R&D 모두 필요한데 기본적으로는 어디서든 생산과 개발이 동행하는 게 바람직한 모델이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추진했다. 혁신도시에 내려보낸 공공기관, R&D센터가 지역 대학 및 기업과 협력해 지역을 살리고 인재를 양성키로 한 것이다. 수도권 기업이 혁신도시로 오면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 혁신도시가 지역의 발전 거점이 되게 한다는 방안이다.

김 지사_ R&D는 성격에 따라 생산라인과의 거리가 결정된다. 장기 프로젝트 관련 R&D센터는 생산라인과 멀어도 지장이 없지만, 단기 프로젝트 R&D센터는 신기술 테스트를 해야 하기에 공장과 함께 있어야 한다. 창원의 LG전자만 해도 그렇다. 연구원 3000명이 일하는 R&D센터가 창원 공장과 바로 붙어 있어 실시간 협업 체계로 돌아간다.

국회 비례대표 의석 비율 높여야 지역 발전 정책도 탄력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부·울·경 메가시티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상생하는 정책이라고 말한다.
최근 들어 수도권과 비수도권 양극화는 더 심화했다는 지적이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6월 임시국회에서 답했듯이 ‘수도권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의회 구조’가 지역균형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 전 위원장_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펴낸 4차 지역혁신박람회 보고서를 최근 다시 읽었다. 거기에서도 그 문제가 지적됐다. 당시에는 지역구 국회의원 수에서 비수도권이 더 많았는데도 비례대표를 포함하니까 수도권이 더 우세한 점유율을 보였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한 요즘은 그 추세가 더 가속화됐다고 판단된다. 지금 같은 구조라면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이나 지방재정 이양과 같은 과감한 균형발전 법안이 더는 나오기 어렵다. 인구비례로 의원을 뽑게 되면 수도권은 의석에서 늘 지방을 압도하게 되고 지역균형발전도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 제안을 하자면 양원제를 도입했으면 한다. 하원은 지금처럼 인구비례로 선출하고 상원은 미국의 상원처럼 각 주 별도로 같은 수의 의석을 배정하는 방식이면 좋겠다. 상원이 하원과 중앙정부를 견제하면서 비수도권이 인구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조정 역할을 하면 어떻겠나.

김 지사_ 정치가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질곡처럼 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래 정치의 가장 큰 기능은 갈등을 녹이고 중재·조정하는 역할이다. 모든 갈등을 가져와 청문하고 논의해서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게 국회의 역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연정(聯政)을 통해 그걸 이루고자 했다.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연정도 불가능하다. 선거 제도 자체가 승자독식 구조이고 지역은 딱 쪼개져 있다. 연정보다는 격렬하게 경쟁하고 오히려 거꾸로 갈등을 증폭시켜야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 세상이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연정과 연합이 가능한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양원제도 하나의 대책이 되겠지만 우선 현재의 구조에서 보자면 지역구는 그대로 두더라도 비례대표를 대폭 늘리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동등하게 맞추면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한 국가 차원의 정책 논의와 입안이 더 수월해질 것 같다.

균형발전의 토대라 할 인구가 감소하는 국면에 접어들면서 지역균형발전 전략도 근본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발상의 전환이랄까, 접근 방식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김 지사_ 현장의 실태를 알아보고자 기업 관계자들과 접할 때가 많다. 기업들이 하는 말이 ‘인재를 뽑기 어려워 지역에 못 간다’는 게 대부분이다. 최태원 SK 회장을 만났는데 SK하이닉스가 온갖 혜택을 다 제시한 구미를 마다하고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세우는 것도 전체 인력의 절반을 차지하는 R&D 인력 확보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하더라. 서울 말고는 그만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창원에 3000명, 서울에 1000명의 R&D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 한 해 뽑는 신입 R&D 인력의 4분의 3을 창원으로 보내는데, 이직률이 높을 때는 20%에 달한다고 들었다. LG전자도 사람 구하기 힘들어 서울로 옮겨야 하는가를 고민한다고 들었다. 왜 수도권에서만 R&D 인력을 찾느냐고 물으니 아무래도 지역에서 채용한 인력은 수도권보다 (경쟁력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

“수도권 대학에 투자 몰아주는 정부 정책 재정립해야”

솔직한 진단으로 들린다. 지역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김 지사_ 결국 창원 LG전자 R&D센터가 요구하는 수준을 충족하는 인력을 현지에서 공급하는 게 정답이다. 그러자면 수도권 대학 못지않은 우수한 인력을 지역 대학에서 길러내는 길밖에 없지 않겠나. 지금까지의 인력 공급을 대학과 교육부가 전담했다면 이제는 경남도와 정부가 지역 대학과 손잡고 인재양성 체계를 만들고자 한다. 현지의 기업도 적극 나서줘야 한다. 기업이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를 대학에 설명해주고 그에 합당한 투자도 아끼지 않으면 좋겠다. 인재를 관리할 기업의 임원이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석·박사 과정을 공동연구로 이끄는 방법을 도입하는 등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지역에서 함께 키우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이게 바로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이다. 경남도와 17개 지역 대학, 지역 내 기업과 지역혁신 기관이 한데 모여 공유형 대학모델(USG)을 구축하고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대학과 기업이 함께 인재를 육성하는 국내 최초의 실험인 셈인데, 여기에 2025년까지 총 223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수도권 소재 기업도 경남으로 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꽉 막힌 수도권도 숨통이 트이는 것 아닌가. 지금 교육부는 사실상 수도권 대학에 투자를 몰아주는 양상으로 가는데, 정부가 관련 정책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성 전 위원장_ 2020년 지구촌의 도시화 비율은 56%에 달한다. 미국과 북미의 경우 82%이고 한국은 읍 소재 인구까지 포함하면 도시화율이 91%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지금 한국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기본적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하는 힘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술 발달로 원격 근무가 가능한 시대이자 재택근무도 점차 퍼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과 대기오염 심화 등으로 도시생활은 주민들에게 점점 더 많은 고통을 안기고 있다. 이런 요인 때문에 사람들은 기후변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농촌으로, 외곽으로 분산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런 흐름을 가속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최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산하 농산어촌유토피아특별위원장을 맡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통계를 보면 국민 다섯 중 한 명은 기회가 되면 농산어촌으로 가겠다고 한다. 농산어촌에 올 분들이 거주할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지을 계획이다. 또 올가을부터는 소멸위기에 놓인 전국 기초지자체들을 성원하는 농촌 서포터즈 100만 운동도 시작한다. 1개 시·군당 1만 명의 서포터즈를 조직해 이들이 해당 시·군의 농산물을 직구매하고, 농번기 농사활동도 돕고, 때로는 현지에서 생활도 한다면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도움을 주는 상생관계를 갖게 된다.

김 지사_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께서 진주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2단계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말씀하셨다. 그 요지가 광역 시·도 간 협업을 축으로 하는 ‘초광역 협력’이었고, 지금으로 따지면 메가시티다.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은 단순히 동남권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국가균형발전 전략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경쟁하는 게 아니라 상생하는 정책이라는 점, 몇몇 지자체에 국한되는 현안이 아닌, 중앙정부가 적극 끌어안고 추진해야 하는 국가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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