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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이준규 前 주일 대사가 말하는 꽉 막힌 한·일 관계의 출구 

“국민 감정 정치적 이용은 금물… 바닥난 신뢰 관계부터 회복하라” 

■ 호주·뉴질랜드 관계처럼 싫어하거나 경쟁하더라도 미워하진 말아야
■ 양국 지도자들,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의 길 따라가지 못해
■ 일본이 잘못한 점도 있지만 지금 와서 잘잘못 따지는 건 큰 의미 없어
■ 결자해지 자세 필요… 다음 정권 때 관계 복원할 근거라도 마련해놔야


▎이준규 전 주일 대사가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 개선 방안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 전 대사는 “양국 모두에 이웃 나라는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訪日) 무산을 발표한 건 7월 19일. 2020 도쿄올림픽 개막 나흘 전이었다.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 배경과 관련해 ‘의미 있는 성과’를 조건으로 내세웠던 정부의 입장과 ‘단순한 축하 차원의 개막식 참석 형식’을 고수해온 일본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 성사에 꽤 공을 들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동맹 강화 차원의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국은 끝내 이견 조율에 실패했고, 문 대통령의 방일도 무산됐다.

외교가에서는 임기가 8개월밖에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 관계 복원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본다.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과 관련해서는 “내년 3월 대선이 있는 만큼 청와대에서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 분석대로라면 국내 정치 이해관계에 외교가 뒷전으로 밀린 셈이다.

월간중앙이 대표적인 ‘일본통’인 이준규 전 주일 대사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한·일 관계의 출구를 물었다. 40년 외교관 경력의 이 전 대사는 2016년 7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주일 대사를 지냈다. 그는 퇴임 뒤 한국외교협회장(2020년~현재)을 맡아 한·일 관계 개선 방안 등을 깊이 모색하고 있다. 인터뷰는 8월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이 전 대사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근황이 궁금하다.

“현직에서 은퇴한 이후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찬물 한 잔 마시고, 애견(파코)과 함께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생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생긴 습관 때문인지 매일 국내외 뉴스를 꼼꼼히 챙겨 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文 정부 출범 초기엔 일본도 희망 섞인 기대 가져


▎2017년 5월 17일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문희상(가운데) 당시 대통령 특사를 영접하는 이준규(왼쪽) 주일 대사.
주일 대사 퇴임 이후 한국외교협회장에 취임했다. 어떤 단체이며, 구성원들은 누구인가?

“한국외교협회는 전·현직 외교관 200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된 공익 목적의 사단법인이다. 외교관들의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우리나라 외교를 위해 활용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가 창립 50주년이라 기념 학술대회 등 여러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걱정이 많다.”

40년 외교관 인생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일본·중국·인도 등 아시아 쪽과 관련이 많았던 것 같다.

“첫 번째 해외근무를 1984~87년 주(駐)유엔대표부에서 했는데, 별다른 재미나 보람은 없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하기 전이었던 터라, 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옵서버로서 맨 뒷자리에 앉아 회원국 대표들의 발언을 받아 적는 게 업무의 대부분이었다. 그때 우리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우리나라와 가깝고 이해관계가 많은 아태지역 관련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이후 말레이시아·일본·중국·뉴질랜드·인도 등에서 근무했다. 2000년대 초 주중대사관에서 총영사로 근무할 때 탈북자들이 우리 대사관 영사부를 비롯한 여러 외국 공관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많을 때는 우리 사무실에만 200명 가까운 탈북자가 한국행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중국 정부와 교섭했는데,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만 1000명 가까이 됐다. 지금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주일 대사로 1년 4개월가량 재직했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역할을 했나?

“나는 국내 정치의 격변으로 인해 비교적 짧은 재직 기간임에도 박근혜 대통령,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문재인 대통령 등 3명의 국가 원수를 모신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6년 7월 일본 대사로 부임했는데, 그 전 2015년 12월에 한·일 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또 2016년 연말 도쿄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박 대통령이 방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탄핵당해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2017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모든 후보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의 새 정부가 대일 정책을 어떻게 펼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카운터파트였던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차관과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만나거나 전화로 서로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했다. 스기야마 차관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고 있었는데, 나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나 견해를 아베 총리에게 잘 전달해줬다. 주 메시지는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는 반일적인 목소리가 득세할 수 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니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방일한 문희상 대통령 특사도 굉장히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기에 일본 정부도 다소 희망 섞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관계 악화된 근본 원인은 지도자들의 긴 안목 부재


▎2017년 1월 청와대에서 진행된 5강 대사 회의에 참석한 김장수 주중 대사, 이준규 주일 대사, 한민구 국방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에 일본은 어떤 나라이며, 일본에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양국은 한마디로 이웃 나라다. 지난 수천 년을 이웃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웃으로 살아갈 것이다. 원래 이웃 나라 사이에는 경쟁심·시기·질투심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뉴질랜드 대사로 근무할 때 오클랜드의 한 스포츠용품점 벽에 ‘우리는 호주 것들(Aussies: 호주인을 통칭하는 말)과 싸우는 누구라도 응원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는 걸 봤다. 아무리 일본을 싫어한다 하더라도 서울 명동 상가 벽에 ‘우리는 일본 것들과 싸우는 누구라도 응원한다’고 써 붙일 수 있을까? 이런 구호를 써 붙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싫어하거나 경쟁하지만,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상호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주와 뉴질랜드 두 나라는 국제무대에서는 거의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한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 양국도 이러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단계까지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면 좋겠다. 최근 역사에서 한·일 양국 간에는 35년간의 식민통치라는 불행한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과거사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에 일본은 고통을 안겨준 가해자이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함께 번영을 도모해가야 할 소중한 이웃이기도 하다. 일본에 한국은 과거의 식민통치 역사로 인한 빚이 있고, 중국이나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하는 중요한 파트너다. 더구나 최근 신장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기에 한국과의 협력은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한·일은 이웃 나라로서 어느 정도 경쟁심과 시기심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실용적이고 합리적 협력을 해나가는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돌아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한국과 일본은 우호 관계를 이어갔던 반면, 이후로는 기복이 심했던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양국 관계가 필연적으로 나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양국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려는 혜안과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공동선언은 양국 관계의 미래에 대해 바른길을 제시했는데, 그 이후 양국 지도자들이 그 길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한·일 양국이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말한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담은 내용이 양국 공식 문서에 처음 명시된 선언이기도 하다.

스가 총리, 관계 개선 위해 모험할 입장 아닌 듯


▎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자리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한·일 간 반목이 심해졌는데 이유는 무엇이며, 또 해법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반목의) 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반일 정서를 가지고 있고, 일본 정부는 이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의 형해화시키는 것을 보며 일본 정부는 충격을 받았고, 징용공 문제 판결에 대해 우리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제삼자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고는 거의 절망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법원의 판결은 한일기본협정을 바탕으로 하는 양국 간의 1965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게 일본의 생각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정부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면서 일본과 협의하려 하는데, 일본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들었다. 양국 간에 바닥나 있는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그동안 쌓인 불신의 벽이 너무 높아서 이를 허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양국 관계가 틀어진 게 우리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일본이 가장 잘못한 건 무엇일까?

“일본의 가장 큰 잘못은 한반도를 식민통치한 것이고, 그다음 잘못은 패전 후 전후 처리와 반성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전 직후 일본이 제대로 과거 정리를 했다면 양국 관계의 발전은 훨씬 순조로웠을 것이고, 일본은 경제 대국만이 아닌 진정한 리더 국가로서 세계에 우뚝 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양국 관계가 더욱 꼬이게 된 데는 수출 제한 조치 등 일본이 잘못한 측면도 있지만, 지금 와서 누구의 잘잘못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결자해지, 즉 매듭을 만든 쪽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찬스’라던 도쿄올림픽 때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정상회담이 무산됐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론에 보도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구상했던 그림과 성과에 대해 일본 정부가 긍정적으로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이웃 나라에서 개최하는 큰 잔치에 제대로 축하하지 못하게 됐고, 2018년 아베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데 대한 답례도 못하게 된 셈이다. 처음부터 우리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은 당연한 것으로 밝혀놓고, 손님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일본 정부의 고민으로 넘기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 나아가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일본은 어떤 역할을 하는 나라인가?

“일본은 중국과 북한을 자국 안보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라고 보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6자 회담을 비롯한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국의 입장을 표명하거나 관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입장은 북한의 철저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북한을 보는 태도에는 우리와 때로 상이한 점도 있다. 일본은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 정착의 주연은 아니지만, 중요한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우리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한·일 관계 복원이 가능할까?

“우리 정부가 관계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망은 썩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내 정치적 기반이 약한 스가 총리는 9월로 예상되는 중의원 선거까지 앞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결단이나 모험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곧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한·일 양국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조속한 관계 복원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라도 마련해놓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5년마다 새 정권,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해 문제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받는 이준규 주(駐)인도 대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관계 복원을 주문한다.

“바이든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의 역대 모든 정권이 ‘좋은 한·일 관계’를 희망했고,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불편해했다. 한·일 양국과 공히 동맹 관계인 미국은 양국과의 양자 관계뿐만 아니라 한·미·일 3자 간의 협력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일 관계가 삐걱거리면 이는 양국 간의 문제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한·미·일 협력, 나아가서는 미국의 대(對)동북아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문 외교관으로서 40년 동안 여러 정부에서 일했다. 역대 우리 정부 외교의 공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나라의 규모로 봐서 외교의 중요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 크다. 외교를 잘해서 나라의 존립과 번영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해야 한다. 미군 철수 위기 대처, 월남 파병 활용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미 외교,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산권 수교를 위한 북방 외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일 외교 등이 성공적 외교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G20 창립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좋은 역할을 했지만, 독도 방문으로 대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실수도 있었다. 5년에 한 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다 보니 외교에서도 장기적 비전이나 정책이 아니라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겼고, 외교 정책 수립뿐만 아니라 집행까지도 청와대가 일일이 간섭하게 됐는데, 이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개선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종합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 북한 문제를 본다면, 지난 4년여 동안 비교적 평화가 유지돼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더라도 북핵 문제에 전혀 진전이 없었고, 남북한 관계도 개선된 게 전혀 없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성과는 거의 없었다. 최근에 다소 복원됐다고는 하지만 한·미 동맹 관계가 확고한 기반 위에서 유지돼오지 못했고, 중국과의 관계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후유증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싱하이밍(邪海明) 중국 대사의 고답적인 발언은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6월 영국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옵서버로 초청돼 참석한 것이나 신남방정책, 신북방정책 등을 통해서 외교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반박했다. 유력 대선후보의 외교·안보 입장에 대해 중국 대사가 공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적절치 않다. 중국이 대선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미는 동맹국이라는 점 명확히 하는 게 중국에도 도움


▎이준규 전 주일 대사는 2020년부터 한국외교협회장을 맡아 한·일, 한·인도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용 외교를 주문한다. 실용 외교란 무엇인가?

“우리는 실용 외교를 ‘돈 되는 외교’, 즉 정치논리로 경제적 이익을 희생시키지 않는 외교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의미의 실용 외교가 아니다. 경제적 이익만 앞세우는 외교로는 어느 한 나라와의 관계를 심화시키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입지를 만들기도 어렵다. 진정한 실용 외교는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또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종합적 이익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가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외교부를 외교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우리가 중국을 선택한다고 중국이 우리의 진정한 친구나 동맹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미국과 조약으로 맺어져 있는 동맹이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미국과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사드 배치 때 우리가 명확한 태도 표명을 미루는 사이에 중국이 오판한 나머지 과격하고 과도한 반응을 보였던 게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구체적 사안에 관해서는 미·중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취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미는 동맹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국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우리를 가벼이 여기지 못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한국 외교의 나아갈 길에 대해 말해달라.

“구한말의 외교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았다고들 얘기하는데, 그때는 국제정세를 냉철하게 읽었더라도 우리의 국력이 너무 보잘것없었기에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나라, 독재국가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라는 등의 브랜드와 실력을 갖추고 있는 중견 국가다. 냉철한 상황 판단을 하면서 명실상부한 실용 외교를 펼친다면 대한민국이 크게 빛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건국 이래 냉전시대의 남북한 대결 외교, 구소련 몰락 이후의 북방 외교, 유엔 가입 외교, 북핵 문제 외교 등 다양한 외교를 경험했다. 제대로 훈련받고 경험이 풍부한 외교 인력도 많다. 외교관들을 나라의 소중한 자산으로 귀하게 여기고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외교부의 위상과 역할이 축소되고, 직업 외교관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 전 대사에게 가슴에 새기는 경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잠시도 망설임 없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남들과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전 대사는 “개인 간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국가 간 외교에서도 화이부동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말끝에 힘을 실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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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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