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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의 뮤지컬 오디세이(4)] 인류를 향한 휴머니즘의 대서사시 '레미제라블' 

“법과 이성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라네” 

인간 도와줄 수 있는 존재는 다름아닌 동료 인간들
인간성의 원형, 머리 아닌 심장 박동으로 뜨겁게 전달


▎전 세계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뮤지컬 중 하나인 [레미제라블]. 인간성의 원형을 머리가 아닌 심장의 박동으로 전달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힘으로 평가된다. / 사진:레미제라블 코리아
1862년, 대작 [레미제라블]을 출간한 빅토르 위고는 반응이 궁금해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달랑 문장부호 하나, ‘?’였다. 며칠 후 출판사로부터 답장이 왔다. 답변 역시 간단했다.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로 회자하는 에피소드다. 하늘에 있는 위고가 지금 [레미제라블]에 대한 후손들의 반응이 궁금해 또다시 메일을 보낸다면 답은 동일할 것이다. 원작소설은 물론 영화·연극·뮤지컬로 끊임없이 재생산돼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레미제라블]의 인기를 새롭게 되살린 일등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뮤지컬이었다. 뮤지컬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영화와 연극이 잇달아 제작됐고, 원작소설이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미셀숀버그와 작사가 알랭 부브릴은 1980년, 프랑스어로 된 두 장짜리 콘셉트 앨범 [레미제라블]을 발표했다. 이어 파리에서 3개월간 뮤지컬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앨범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꿰뚫어봤다. 영어로 번역하고, 몇 군데를 손봐 ‘흙 속의 진주’를 블록버스터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985년 10월 8일 카메론 매킨토시와 로열 세익스피어극단(RSC) 공동 제작으로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개막됐다. 연출을 맡은 이는 [캣츠]에서 뛰어난 역량을 과시한 트레버넌이었다. [레미제라블]의 반응은 대단했다. 초연 당시 런던 [스탠더드지]는 “표를 사지 못했다면 구걸하거나 빌려라, 그것도 안 되면 훔치라”며 극찬했다.

[레미제라블]은 지금껏 40여 개국 300여 개 도시에서 21개 언어로 공연되며 6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국내에서는 해외 투어팀의 공연이 두 차례(1996·2002년) 있었고, 2012년 11월 역사적인 한국어 공연이 개막했고, 2015년에도 한 차례 막을 올렸다. 2012년 개봉한 휴 잭맨, 러셀크로, 앤 해서웨이 주연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도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여기에 위고의 원작소설까지 불티나게 팔리면서 [레미제라블] 붐이 크게 일었다.

뮤지컬 팬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레미제라블]을 꼽는 사람이 많다. “왜? 무엇 때문에?”라고 재차 물으면 어느 것 하나 빼놓기 아까운 주옥같은 넘버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깊이 있는 드라마, 개성과 매력이 조화를 이룬 등장인물들 등 여러 이유를 나열한다. 그야말로 걸작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고 극찬한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음악이다.

[레미제라블]의 대성공은 방대한 원작을 뮤지컬이란 장르에 맞게 세련되게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숀버그-부브릴 콤비는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영혼을 음악과 노랫말의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으로 러닝타임 3시간에 충실히 담아냈다. 덕분에 무명 예술가였던 이들은 이 작품 하나로 일약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방대한 원작 일목요연하게 정리


▎[레미제라블]의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
다른 장르의 텍스트를 갖고 뮤지컬로 만들면 부분적이건 대대적이건 변형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숀버그-부브릴 콤비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위고의 위대한 정신과 원작의 향취를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흔한 오페라 스타일을 선택했고, 대사 없이 30여 곡의 넘버에 드라마를 담았다.

원작소설 [레미제라블]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방곤 선생이 번역해 범우사에서 출간한 한글 번역본은 총 5권이다. 권 당 500페이지 안팎이다. 읽으려면 몇 달이 걸린다. [레미제라블]은 19세기 초 격동의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한 대하 서사시다. 주인공 장발장과 그를 쫓는 형사 자베르를 중심 축으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1789년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등장과 왕정복고, 1830년 혁명, 1848년 혁명 등이 배경에 깔렸다. 숨 가쁘게 전개되는 절대권력과 민중의 투쟁, 피와 눈물의 역사가 저변에 깔렸다. ‘소설로 읽는 19세기 프랑스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수한 인물의 사연과 이야기들이 얽혔다가 떨어지고, 어느 순간 다시 만난다. 수많은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가듯, 모든 에피소드는 이리저리 흩어져 전개되지만, 마지막 순간 한 점에 모인다. 그 점은 바로 휴머니즘이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란 제목 자체가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따뜻한 인간애가 바탕에 흐른다.

숀버그&부브릴 콤비는 이 장황한 이야기를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이야기 중심의 드라마를 선보였다가는 일주일 밤낮을 새도 다 보여줄 수가 없다. 그래서 주인공 장발장을 비롯해 형사 자베르, 비련의 여인 판틴, 그녀의 딸로 장발장의 양녀가 되는 코제트, 코제트를 사랑하는 젊은 귀족 마리우스, 악인 테나르디에 부부, 테나르디에 부부의 딸로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등 주요 인물들을 끄집어내 그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시 엮었다. 서사 속에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통해 서사를 전달한다.

이렇게 재구성하고 나서 보니 그 방대한 원작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주인공 장발장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 모두 캐릭터가 살아났다. 그들에게 각각의 개성을 대변하는 뮤지컬 넘버를 부여하면서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게 됐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쉽게 빠져들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나라 역사도 아닌 다른 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면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레미제라블]은 혼돈의 시대가 배경이고, 이야기도 복잡하지만, 신기하게도 누구나 쉽게 드라마에 빠져든다. 특정 시대와 긴밀하게 연루된 이야기임에도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춘 위고의 혜안 덕분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이 위고의 정신을 웅장하고 서정적인 음악과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았다.

부브릴의 노랫말이 각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지향점을 포착했다면, 숀버그는 그 인물들에게 맞는 멜로디를 만들어 가슴으로 관객에게 드라마를 전달한다. 주요한 멜로디들은 반복되고, 변주되고, 다른 인물을 통해 다른 정서로 불린다. 겉모습은 오페라 스타일이지만 음악은 섬세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팝의 감각이다.

노래들이 주옥같다 보니 장발장은 물론 조연들까지 모두 존재감이 살아난다. 모든 장면에서 캐릭터가 살아 꿈틀댄다. [레미제라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캐릭터들 살려낸 숀버그 최고의 음악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휴 잭맨(왼쪽)과 앤 해서웨이. / 사진:UPI코리아
주인공 장발장은 한(恨) 많은 인물이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억울하게 19년 옥살이를 했으니 세상에 얼마나 불만이 많겠는가. 세상은 그를 흉악한 범죄자로만 본다.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더 큰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은쟁반을 훔친 자신을 용서하며 오히려 은촛대까지 선물한 미리엘 주교로부터 감화를 받고 새사람이 된다.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는 장발장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부르는 곡이다. 죄수 번호 ‘24601’으로 불리던 그는 장발장이란 이름을 스스로 되찾는다.

평생을 장발장의 뒤를 쫓는 형사 자베르는 법치주의자·원칙주의자다. 자신의 원칙과 신념에 따라 장발장을 체포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그는 자신의 넘버 ‘별(Stars)’에서 “장발장은 어둠과 악의 길에 있고 자신은 하느님의 길에 있다”며 그를 잡아 감옥에 넣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아울러 장발장을 꼭 잡겠다고 하늘의 별에 맹세한다.

딸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몸까지 팔게 되는 판틴이 부르는 ‘나는 꿈을 꾸었네(I Dreamed a Dream)’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그녀는 지난날 꿨던 행복한 꿈들을 떠올린다.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고, 사랑은 죽지 않는다고, 신은 자비롭다고 믿었건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세상에 버림받은 여인의 회한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담아 애잔한 슬픔을 자아낸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에서 머리를 박박 깎은 앤 해서웨이가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곡이자, 2009년 노처녀 수잔 보일을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스타로 만들어준 곡이기도 하다.

솔로 곡 외에 웅장한 합창곡들도 압권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 가운데 포옹하는 이는 이지수와 조상웅. 뒤에 서 있는 이는 왼쪽부터 조정은·정성화·박지연. / 사진:KCM
판틴의 딸로 못된 주막집 부부 테나르디에 밑에서 고역에 시달리고 있는 소녀 코제트가 환상을 꿈꾸며 부르는 ‘구름 위의 성(Castle on a cloud)’도 한 번 들으면 그 슬픔을 머금은 맑은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판틴과 코제트 모두 상상 속에서만 잠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처참한 현실을 애절하고 투명한 멜로디에 담았다.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테나르디에 부부의 딸인 에포닌은 뮤지컬을 통해서 가장 부각된 캐릭터다. 원작에서보다 존재감이 훨씬 커졌다. 그녀가 부르는 아리아 ‘나 혼자서(On My Own)’ 덕분이다. 성장해서 파리로 올라온 그녀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리우스, 코제트와 얽히게 된다. 코제트에게 푹 빠진 마리우스를 도와주지만 남몰래 그를 사랑한다. ‘나 혼자서’는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을 상상 속에서나마 꿈꾼다는 내용이다. 작사가 부브릴은 그 시대 불쌍한 사람들의 희망을 현실이 아닌 꿈에서 해소하는 것으로 연출해 비극성을 부각했다.

‘나 혼자서’는 ‘나는 꿈을 꾸었네’와 더불어 [레미제라블]에서 여배우들이 부르는 넘버 가운데 최고의 히트곡이다.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필리핀 출신 배우 레아 살롱가가 부르는 ‘나 혼자서’는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곡 덕분에 에포닌은 코제트보다 뮤지컬에선 더 비중 있는 역할로 격상됐다.

솔로 곡 외에 웅장한 합창곡들도 압권이다. 장발장의 고뇌, 형사 자베르의 다짐,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등을 한 곡에 담고 있는 ‘내일로(One Day More)’는 장엄한 멜로디가 일품이다. 각종 콘서트와 행사, 갈라쇼에서 자주 불린다.

앙졸라를 비롯한 학생 혁명가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부르는 합창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도 마찬가지다. 당장 길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바리케이드 신으로 불리는 이 장면은 포스터에 실려 있는, 찢어진 프랑스기를 배경으로 한 어린 코제트의 모습과 더불어 [레미제라블]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이 외에 마리우스와 코제트 두 연인, 그리고 에포닌이 부르는 삼중창 ‘가슴 가득한 사랑(A Heart Full Of Love)’도 상큼하고, 장발장이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가 혁명의 불길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하늘에 기도하는 ‘그를 돌려주소서(Bring Him Home)’는 고음부가 인상적인 곡으로 장엄하기 그지없다. 특히 이 곡은 런던 초연 멤버인 배우 콤 윌킨슨의 목소리로 들어볼 만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영혼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윌킨슨은 2012년 영화에서 주교 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레미제라블]은 음악의 힘으로 빅토르 위고의 휴머니즘을 되살렸다. 인간에 대한 위고의 따뜻한 시선은 숀버그-부브릴 콤비를 통해 20세기에 부활했다.

19세기 프랑스는 격동 그 자체였다. 1789년 대혁명 이후 1861년 파리 코뮌에 이르기까지 편할 날이 없었다. 권력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고, 분노한 민중은 봉기했다.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온갖 청사진이 난무했다. 온갖 욕망이 활화산처럼 분출되는 가운데 죽어나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무엇이 이 불쌍한 이들을 구원할 것인가. 참된 지식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휴머니스트로서 위고는 장발장이란 인물을 통해 담담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바로 사랑과 용서, 자비의 실천이다. 지식인이나 혁명가들이 떠들어대는 현학적인 사회 이론도, 영혼 없는 종교인들의 설교도 이들을 당장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을 도와줄 수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동료 인간들이다. 현란한 말이 아니라 작은 행동이 소중한 것이다. 신의 뜻을 받들어 몸소 실천하는 용서와 사랑만이 바로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 위고는 이런 따뜻하고 진실한 목소리를 [레미제라블]에 담았다.

장발장의 휴머니즘은 평생을 두고 그를 추적하는 형사 자베르의 원칙주의와 대조돼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베르는 법치주의의 신봉자다. 뮤지컬에서는 좀 냉정하게 표현되지만, 그는 사실 자기 일에 충실한 프로페셔널이다. 엄정한 법 집행만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매우 공명정대한 공직자다.

하지만 자베르가 신봉하는 법은 ‘불쌍한 사람들’의 생생한 아픔을 보지 못한다. 자베르의 이성은 차갑고, 장발장의 감성은 따뜻하다. 법은 주먹보다도, 그리고 사랑보다도 먼 곳에 있다. 자베르에게 장발장은 인간이기에 앞서 죄수 번호 ‘24601’이란 숫자일 뿐이었다.

감정이입 통해 영혼의 카타르시스 경험


▎2013년 6월 올림픽체조 경기장에서 ‘레미제라블’에 맞춰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피겨 퀸’ 김연아.
빅토르 위고는 장발장을 통해 법치주의 신봉자들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전한다. “법과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네, 이 친구들아!”라고. 장발장의 진심 어린 자비와 되풀이되는 용서는 선과 악, 법과 죄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살아온 강철 같은 자베르의 삶의 원칙을 무너뜨린다. 자신의 원칙이 잘못됐다고 인정할 수도 없고, 더는 고수할 수도 없게 된 그는 결국 센강에 몸을 던진다.

예술의 위대함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극중 인물에 동화돼 “아, 저건 내 얘기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라는 감정이입을 통해 영혼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레미제라블]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신기하게도 주인공 장발장뿐 아니라 형사 자베르, 판틴, 코제트, 마리우스, 에포닌 등 모든 인물이 다 가슴에 다가온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 장발장처럼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자베르처럼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절도 있게 마련이다. 아울러 마리우스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하고, 에포닌처럼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대립하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캐릭터들은 우리가 모두가진 삶의 다양한 면면들이다. 이 같은 인간성의 원형을 머리가 아닌 심장의 박동으로 전달한다는 점, 그것이 바로 [레미제라블]의 힘이다.

※ 김형중 - 공연 칼럼니스트.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20년 넘게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고 한국뮤지컬대상과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무대예술의 경이로움을 글로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시대 최고의 뮤지컬 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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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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