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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31)]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이끈 박항서 감독 

‘사랑하는 곳’ 베트남서 인생 정점, 은퇴 후 유소년 축구도 돕고 싶어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4년 간 각종 대회 우승 등 눈부신 성과, 축구 영웅 대접 받아
“같은 조 중국은 꼭 꺾어달라는 국민 마음 잘 알아, 매 경기 최선”


▎지난 7월 빙부상을 당해 귀국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은 내가 사랑하는 곳”이라며 항간에 번진 불화설을 일축했다.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이 지난 7월, 빙부상을 당해 3주가량 국내에 머물다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7월 10일 아침에 소식을 들은 박 감독은 당일 밤 비행기로 들어와서 장례를 치렀다. 이후 고향인 경남 산청의 요양원에 계신 모친을 뵙고 서울로 올라왔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사람들도 잘 만나지 못하고 가족과 지내다 7월 28일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을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올려놨다. 베트남 축구가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한 건 사상 처음이다.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베트남 국민은 난리가 났다.

2017년 9월 베트남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함께 맡은 박 감독은 2018년 1월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눈부신 성과를 냈다. 2018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을 차지했고 2019년에는 동남아시안(SEA) 게임에서 60년 만에 우승컵을 베트남으로 가져왔다. 이 모든 성과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게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이다. 베트남이 동남아 맹주를 넘어서 아시아 정상권 팀들과 실력을 겨룰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섰다는 증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감독은 마음이 그리 편치 않다. 베트남은 물론이고 모국인 한국에서도 박 감독을 둘러싼 온갖 루머와 가짜 뉴스가 떠돌고 있어서다. 일부 유튜버는 ‘박 감독이 태국과 계약했다’ ‘베트남축구협회와 갈등이 심하다’ 같은 근거 없는 뉴스를 올려 ‘조회 수 장사’를 하고 있다. 박 감독이 방한 기간에 어떤 미디어와도 접촉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저런 구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출국 직전에야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어떤 팀 만나도 해볼 만하다’ 자신감 생겨


▎2018년 12월 15일 AFF(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에 우승한 베트남 선수단.
베트남 축구는 뭐가 강해졌고, 어떻게 강해졌나요?

“선수들이 갖고 있던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 혼자 힘으로 이끌 수도 없고,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베트남 축구의 강점이라면 국민의 축구 사랑과 정부의 관심이죠. 프로 1부 팀이 14개, 2부가 12개 있고 3부도 있습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프로 구단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내가 간 지 4년 정도 됐는데 선수들도 처음 왔을 때보다 체력과 체격이 좋아진 편이고요.”

감독님 부임 후 동남아 국가를 상대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네요(28전 22승 6무).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올라가고 싸울 때 요령도 생긴 것 같습니다. 3~4년 같은 멤버로 조직력과 팀워크를 다지다 보니 어떤 팀을 만나도 쉽게 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죠.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스태프들의 노력이 있었고, 한국과 베트남 코치들이 완벽하진 않지만 각자 전문 영역과 역할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좋아졌다고 봅니다.”

2018년 2월 제가 하노이에 가서 인터뷰를 했을 때 “아침에 쌀국수 대신 우유를 먹게 했다”고 하셨는데요.

“처음 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대표 팀에 영양사가 없어요. 식단에 대한 부분은 최주영 의무실장, 베트남 의사, 피지컬 코치 등에게 역할을 줘서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식단을 짜게 합니다. 쌀국수는 베트남에서 오랫동안 아침 식사로 먹어 왔어요. 지금도 대표팀 아침 식단에 쌀국수는 나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단백질 공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우유나 계란 등으로 보충을 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쌀국수 먹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서 아메리칸 스타일 뷔페도 준비합니다.”

대표선수들한테 영양학 강의도 받게 했다면서요?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영양학 교수를 초빙해서 선수들한테 식단과 영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의를 듣도록 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왜 영양이 필요한 것인지, 왜 시합 전후에 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문가가 이야기하니까 납득을 하더라고요. 베트남 프로리그 전체 선수들도 이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베트남은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일본·호주·사우디·중국·오만과 B조에 속했다. 조 1, 2위는 카타르 본선에 직행하고 3위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마지막 가능성을 타진한다. 물론 베트남보다 약한 팀은 하나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베트남 국민은 “내친김에 본선 가자” “중국만은 꼭 이기자”며 박 감독에게 스트레스를 팍팍 주고 있다.

가짜뉴스 쏟아내는 일부 유튜버에 실망


▎2018년 8월 29일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박항서 감독이 스로인을 준비 중인 손흥민을 살짝 치고 있다.
본선 진출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팀은 어디인가요?

“목표는 본선 진출이라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베트남 역사 최초로 최종 예선에 올랐는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우리는 FIFA(국제축구연맹)로부터 6번 시드를 받았어요. 그만큼 전력이 떨어진다는 거죠. 모두 우리보다 상위 랭킹 팀들이고. 이제 동남아를 벗어나서 처음으로 아시아 정상권과 경기를 합니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10경기인데 한 경기 한 경기 잘 준비해서 갈 겁니다. 익숙한 환경이니까 아무래도 홈경기가 유리할 테니 그 경기를 잘 활용해야죠. 5개 팀은 각자 색깔을 가진 강팀입니다. 이런 팀을 상대해서 베트남 축구의 현실을 측정하고 부족한 게 뭔지 부딪쳐 보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죠.”

베트남 대표선수 한 명이 “중국과 함께라면 꿈에 그리던 최종예선 1승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부이티엔중이라고 비에텔 팀 주장 선수인데, AFC 대회에서 울산 현대와 같은 조라서 인터뷰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대표 선수 채팅방에 통역을 통해서 ‘개인이 한 이야기는 거기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져라. 자기가 감독도 아닌데 중국을 이긴다는 얘기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얘기만 해라’는 글을 올려서 주의를 줬습니다. 이런 건 있겠죠. 베트남이 중국을 이기겠다는 의지는 강합니다. 역사적인 부분도 있고. 많은 베트남 국민이 중국과의 경기는 꼭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알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만 갖고 되는 건 아니고 우리가 잘 준비해야죠. 중국도 5~6명씩 귀화시키니까 옛날의 중국이 아닙니다. 그건 베트남 선수와 국민이 중국을 꼭 이겨야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2017년 베트남으로 가셔서 4년이 흘렀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싶었던 일은?

“그런 일은 특별히 없습니다. 제가 2017년에 가서 대회 때마다 매번 최상의 결과는 아니지만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딱 하나 실패한 건 우리가 2019년 SEA게임 우승하고, 태국에서 열린 U-23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습니다. 변명 같지만 SEA게임 우승하고 들떠 있다 싶어서 한국 와서 통영서 훈련하고 다시 태국으로 갔는데, 우승한 뒤의 심리적 상태, 장기 합숙에 따른 문제 같은 게 있었습니다. 사실 베트남에서 좋은 결과 내니까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베트남 국가대표팀(A팀)과 U-23세 대표팀을 동시에 맡고 있는데 힘들지 않으신가요?

“한 대회 우승하고 돌아오면 바로 다음 대회가 있습니다. 이 대회 결과가 좋았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국민 기대가 높으니까 제가 압박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한국 들어오면 지인들 연락이 옵니다. 유튜브 봤다면서요. 사실 저는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데 거기에 팩트도 있지만, 실제와 판이하게 다른 부분이 있어서 에이전트 회사를 통해 주의도 주고 했는데, 그럴 때가 좀 짜증스럽죠. 한-베트남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왜 자꾸 자극성 있는 내용을 내보내는지…. 베트남축구협회와 저는 좋은 결과를 내니까 허니문으로 가고 있습니다. 가끔 의견 충돌도 있을 수 있는데 협회나 정부도 지원을 잘해주고 있는 편이고, 저도 협회의 재정 형편을 아니까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고민되거나 어려운 건 없습니다.”

내년 1월 말이 계약 종료지만 ‘플러스1’ 남아 있어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를 맡던 시절 박항서 감독은 ‘악동’ 이천수를 끝까지 품으려 했다.
지난해 8월 기자회견장에서 베트남 기자가 “연봉 삭감 언제 합니까?” 물어서 감독님이 매우 화난 모습을 보이셨는데요.

“그때 분위기로 보면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코비드(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분이 연봉 삭감하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언론에서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니까 난감했고, 민감한 부분이라 표정관리가 안 된 점이 있습니다. 베트남축구협회가 공식적으로 그 부분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언론상에서 밝히기 힘든 거잖아요. 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제 나름대로는 베트남 감독으로서 기부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자분은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질문한 것이고, 그 문제는 잘 정리됐습니다.”

월드컵 2차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최종예선에 통과한다면 베트남에서 내 역할은 거기까지일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큰 파장이 일었는데요.

“말하다가 잠깐 쉰 거는 통역이 놀래가지고 물어서 그런 거고, 그 이야기는 DJ(에이전트 이동준 대표)가 얘기했던 그대로입니다. 저는 내년 1월까지 계약이 돼 있습니다. 베트남은 월드컵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요. 스즈키컵 우승했고 동남아에서 우승했지만…. 정부도 협회도 마찬가지고 저도 이 월드컵 최종예선 통과하는 게 제가 대표팀 감독으로서 최고의 올해 목표다 그 부분을 이야기한 거지, 제가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데 대표팀을 관둔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부분을 포괄적으로 얘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나머지 뜻은 전혀 없고. 계약을 약속한 것은 그대로 지킬 겁니다.”

내년 1월 말이 계약 만료인데, 월드컵 본선 진출하면 당연히 함께 가는 게 맞고, 만약 못 간다면 떠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그것까지는. 그런 것은 나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나를 관리해주는 회사 대표가 있기 때문에 대표가 모든 걸 해줄 거라 전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 거까지 생각하다 보면 제 일에 집중을 못 하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1월 31일 계약 종료인데 ‘플러스1’이 남아 있어요. 그 ‘플러스1’이라는 건 베트남축구협회와 나와 합의가 돼야 하는 부분이에요. 한쪽이라도 합의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대표가 방향을 제시하면 그 방향으로 가야 할 건지 안 가야 할 건지 결정하는 겁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계약 만료) 3개월 전에 협의해야 하는 거라고 하니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지도자 은퇴 후에는 베트남에서 유소년 축구 육성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많은 분이 은퇴 이후에 뭘 할 거냐고 물어봅니다. 베트남에는 유소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학원 축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팀이 다 유소년 육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북부 하노이 쪽에는 PVF라는, 큰 그룹이 하는 아주 좋은 축구센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이 길기 때문에 중부 남부에 거점을 둬 권역별로 세 군데로 나눠서 하면 좋겠다 싶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외국인이 축구센터 만드는 건 내국인과 같이하지 않으면 쉽지 않습니다. 부지가 있어야 하는데 외국인은 부지를 살 수 없고. 베트남 기업이나 이런 데서 제안이 오면 할 수 있지만 저 스스로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태입니다.”

또래보다 늦게 축구를 시작한 박항서는 서울로 유학 와 경신고에서 축구 선수로 첫발을 뗐다. 늦깎이로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축구 명문 한양대에 진학했고, 청소년 대표에도 뽑혔다. 프로팀 럭키금성에서는 투지와 기동력이 좋은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1994 미국 월드컵 코치로 김호 감독을 보좌했고, 김 감독을 따라 수원 삼성 창단 코치로 일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알린 건 히딩크 감독을 도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했을 때다.

싸움 잘 하고 불의 못 참는 골목 대장


2002 월드컵 대표팀 수석코치 때 선수들의 100m 기록을 재 놓은 걸 한참 뒤에 공개하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차두리 11초2, 이천수 11초6, 박지성 11초9라는데 맞습니까?

“당시 월드컵 대표팀에 레이몬드라는 피지컬 코치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축구 선수는 100m 기록이 필요 없다’고 했어요. 당시에는 ‘삑삑이’라 불린 셔틀런(왕복달리기)이 있었죠. 그건 일정 시간에 달린 총 거리도 보지만 회복 능력을 본다 했어요. 셔틀런 기록은 공개된 적이 있지만 제가 피지컬 코치도 아닌데 선수들의 100m 기록을 적을 이유가 없죠.”

지난 6월 안타깝게 우리와 이별한 유상철 감독은 경신고 후배이기도 하고, 2002 월드컵 때 남다른 인연을 쌓으셨지요?

“한창 일할 나이에 너무 일찍 간 것에 대해서는 축구인 선배로서 안타깝고. 세상이 인생살이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전에도 와서 상철이 만났고, 상태도 보고 갔고, 전화 통화로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아옹다옹 살아야 하나 싶은데, 또 현실에 부닥치면 이렇게 살아야 하고. 너무 불공평해요.”

축구 인생에서 가장 캄캄했던 시기는 언제입니까? 혹시 2002 부산아시안게임(동메달 따고도 경질)이 아닌가요?

“(웃으며) 잘 아시면서. 한국축구 집행부 다 알지 않습니까. 저도 당시에 피해의식 있었고, 저 혼자만의 피해의식이 아니고 약간의 집단세력이 있었으니까. 축구협회 상벌위원회 가서 당하고 일방적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자신 슬기롭지 못한, 지혜롭지 못한 부분도 있었기에 전적으로 그분들 탓을 할 수는 없죠. 저한테는 암흑기였지만 저 성격이나 인품이 자제할 줄 알고 성숙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엔 공도 예쁘게 차고, 중학교 때 전교 3등 안에 들었다고 하던데요.

“중학 때는 한 반에 정원이 60명 정도였고, 한 학년에 세 클래스가 있었어요. 중학교 때까지 축구부가 없어서 정식으로 축구를 못했지요. 동네축구인데 예쁘게 찰 게 뭐 있겠습니까. 공부는 3등 안에 들어간 적은 있는 것 같아요. 시골서 서울 명문 배재고 원서를 써 줬으니까 공부를 좀 하긴 했겠죠.”

중학생 때 고등학교 형님들이 여고생들과 놀러 가는데 안 끼워주자 형들이 냇가에서 먹으려고 수박·참외 넣어둔 통에 똥을 쌌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축구 대표팀. 왼쪽부터 허정무 코치-김호 감독-박항서 코치.
“(허허 웃으며) 그건 과장된 이야기고, 누가 이야기했어요? 가서 혼내줘야 되겠네. 제가 4남 1녀 중 막내인데 키는 작아도 싸움은 좀 했습니다. 동네 골목 대장 노릇 한 적은 있었고, 지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고, 불의나 불이익을 당하면 형들한테도 달려들다가 두들겨 맞기도 많이 맞았죠. 수박을 훔쳐서 깨 버리기는 했겠지만 (똥은 쌌다는 건) 그건 가짜뉴스고요.”

쟁쟁한 지도자 밑에서 코치로 시집살이를 하셨는데요. 그분들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나요?

“경신고 이경이 감독님은 축구를 처음 시켜주신 분이고, 한양대 들어갔을 때 늦게 축구를 시작한 제게 최은택 교수님이 축구란 이런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프로에서는 럭키금성 박세학, 고재욱 감독님이 계셨고요. 지도자로 지금도 잊지 못할 분은 두 명입니다.”

그중 한 분이 김호 감독님이신가요?

“맞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을 맡았던 김호 감독님은 저와 아무 연고도 없는데 집으로 전화하셔서 ‘같이 일해보자’며 저를 끌어주셨죠. 수원 삼성까지 같이 가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저를 항상 박 선생이라 부르시면서 ‘박 선생, 많이 져 봐야 이기는 방법을 안다’고 하셨는데 당시에는 속으로 ‘아니 이겨야 되지 지면 누가 놔두나’ 생각했어요. 감독님은 축구를 개인이 하는 걸 선호하지 않아요. 팀으로 하는 축구의 철학을 많이 배웠습니다.”

“머리카락 이식해 회춘 했어요”


▎프로축구 럭키금성 소속이었던 박항서(왼쪽)는 투지와 기동력이 뛰어난 미드필더였다.
또 다른 한 분은요?

“히딩크 감독님이죠. 지도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2년간 감독님이 하신 말씀을 일기식으로 기록해 놓은 게 있는데 지금도 무슨 일이 있을 때 보면서 해답을 찾기도 합니다. 아직도 생각나는 건 ‘박 코치, 너는 성인팀 맡았을 때는 절대 선수를 만들어서 쓸 생각하지 마라.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인팀에서는 있는 자원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성적을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전에 경질당한다는 뜻이었어요. 국내 프로팀을 맡았을 때나 베트남에서도 그 점을 늘 새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즉문즉답’ 게임을 했다. 3초 안에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머리카락은 OOOO다’라는 질문을 본 박 감독은 크게 웃은 뒤 “귀중하다”고 답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앞머리가 벗겨져 ‘밧데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나는 앞머리 5대5로 가르마 탄 사람 진짜 싫어해요(웃음). 군대 가서부터 탈모 현상이 일어났는데 우리 아들도 탈모가 좀 보이는 것 같아서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제가 모발 이식을 좀 했습니다. 머리 없는 분들 보면 자랑을 좀 하죠. 요새 내가 회춘하고 있다고요. 처는 ‘당신 캐릭터가 없어진다’고 타박을 하네요. 하하.”

‘나에게 베트남은 OOOO다’라는 질문에는 “사랑하는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상에 있지 못했을 때 가서, 저 혼자 이룬 건 아니지만, 우리가 베트남의 축구 레벨을 조금 올려놓았고 그럼으로써 베트남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좋은 선수들과 스태프를 만났고, 저에게는 사랑하는, 잊히지 않을 국가일 수도 있고, 제 인생에서 정점에 와 있던 곳이죠.”

숱한 루머와 억측에 시달리고 있지만 박 감독은 여전히 베트남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방송국인 중앙UCN의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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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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