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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뻐꾸기 탁란 희생양, 뱁새의 놀라운 복수극 

 

속담에 등장하는 몸길이 12㎝ 안팎 ‘붉은머리오목눈이’
칩입 예상해 일부러 무정란 낳고 외부 알깬 뒤 둥지 버려


▎뻐꾸기 새끼는 둥지 주인의 새끼처럼 행세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일명 뱁새)는 뻐꾸기 새끼를 자기 새끼로 여기고 먹이를 먹인다. 뻐꾸기 새끼가 얼마나 큰지 부리 안으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머리가 쑥 들어갈 정도다. / 사진:환경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힘겨운 짓을 하면 도리어 해만 입는다는 말이다. 비슷한 속담으로 “촉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가 있다. 몸길이가 12㎝ 안팎에 지나지 않는 꼬마 뱁새가, 체장이 110~150㎝로 옛날에는 큰 새라는 뜻의 ‘한새’로 불렸던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질 만도 하다. 그리고 한국에선 참새만큼 흔하고, 워낙 귀여운 생김새 덕에 “뱁새야, 너는 황새 따라가지 마라”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아울러 ‘뱁새눈’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눈이 작고 날카롭게(가늘게) 찢어진 눈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뱁새의 눈은 아주 동그랗고 작다.

붉은머리오목눈이(Sinosuthora webbiana)는 참새목 흰턱딱새과의 조류로 흔히(보통) 뱁새라고도 한다. 몸길이 11~12.5㎝, 몸무게 7~13g으로 크기가 참새와 비슷하고, 새 중에서도 작은 편이지만 꼬리가 긴 축에 속한다. 부리는 굵고 짧으며, 코는 깃털로 가렸다. 수컷의 등은 적갈색이고, 암컷은 연한 색깔이며, 배는 황갈색이다. 동작이 재빠르며, 움직일 때 긴 꽁지를 좌우로 쓸듯이 흔드는 버릇이 있다. 사실 모양은 굴뚝새와 비슷하나 곱고 아름다우며, 벌레를 잡아먹는 이론새(익조, 益鳥)다.

겨울에는 거의 항상 떼 지어 다니며 덤불이나 밭 울타리 사이에 숨기를 좋아한다. 또 나뭇가지 사이에서 이동할 때는 징검다리 건너듯이 가지를 하나하나 밟으며 이동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밭 가에서 뱁새 한 마리를 보았다. 아마도 암컷은 알을 품고, 수컷 놈은 짝을 지키고 있었나 보다!

뱁새는 매우 사회적인 조류(highly social species)로 떼(flock)를 짓는데, 번식 시기에 가장 적은 규모로 무리를 형성한다. 번식 시기 이외에는 보통 30∼50마리씩 무리 지어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댄다. 무리가 쉬지 않고 ‘찌찌찌찌’ 지저귀면서 재빨리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겨울에는 많게는 140마리가 무리를 짓기도 한다.

그런데 붉은머리오목눈이란 국명(國名, Korean name)이 보통이름(common name)에 비해 길뿐더러, 띄어쓰기에 거슬리는 면이 있지 않은가? ‘붉은 머리 오목 눈이’로 띄어 쓰지 않고 어째서 다 붙여 썼을까? 그렇다, 우리말 생물 이름은 아무리 길어도 붙여쓰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그렇게 써야 옳다.

붉은머리오목눈이(parrotbill)는 둥지를 관목(灌木,키가 작고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으며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이나 덤불 또는 풀밭 등지에 짓고, 4~7월에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는다. 보통 1m 안팎의 높이에 보금자리를 트는데, 마른풀, 풀잎, 풀뿌리 등을 거미줄로 엮어서 단지 모양으로 튼튼하게 만들고, 알을 낳는 자리에는 보드라운 풀잎을 깐다.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는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며, 덤불 속에 있어서 둥지가 비에 완전히 젖지 않는다.

뱁새는 주로 곤충류들과 거미들을 먹는다. 뱁새의 천적은 둥지를 빼앗는 뻐꾸기, 그리고 알을 먹는 어치, 누룩뱀 등이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흔한 텃새이고, 북한에서는 부비새 또는 비비새라고 부른다. 한국, 중국, 미얀마(동북부), 일본, 몽골, 러시아, 타이완, 베트남 등지에 분포한다.

10초 만에 알 낳고 도망가는 뻐꾸기… 품고 키우는 뱁새


▎붉은머리오목눈이(일명 뱁새) 한 마리가 화창한 봄 날씨에 개나리 나무 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하고 있다. /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뱁새는 세계적으로 푸른색과 하얀색의 알을 낳는데, 이와 전혀 다른 색의 알을 낳는 새는 매우 드물다. 하얀 알과 푸른 알의 비율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70~80%가 푸른색 알을 낳는다고 한다.

뻐꾸기가 뱁새 둥지에 알을 맡기는 탁란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탁란(托卵, parasitism/deposition)이란 자기 스스로 둥지를 만들어 품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을 말하며, 두견이과의 새(뻐꾸기류)가 주를 이룬다. 조막만 한 뱁새 어미가 제 몇 배가 넘는, 가슴으로 낳은 새끼뻐꾸기를 키운다.

뻐꾸기가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알을 맡길 숙주(임자 몸)를 고른다. 만만한 상대는 개개비, 붉은머리오목눈이, 휘파람새, 산솔새 같은 작은 새들이다. 사실 뻐꾸기는 몸길이가 33㎝에 이르는 제법 큰 새며, 게다가 회색빛 깃털에 가슴에는 줄무늬가 선명해서 새매처럼 보인다.

작은 새들의 동태를 면밀히 관찰하던 뻐꾸기는 목표가 된 숙주 새가 알을 낳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둥지에 들이닥친 뻐꾸기가 제일 먼저 뱁새의 알 하나를 부리로 밀어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곧바로 둥지에 앉아 자기 알을 낳는다. 알은 2.2×1.6㎝ 길이에 무게 3.2g으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편이다. 뱁새 알과 뻐꾸기 알의 모양과 무늬, 색깔이 놀랍게 비슷하다. 뻐꾸기가 숙주 둥지에 들어와 알을 하나 없앤 다음 제 알로 채워 넣기까지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미 뱁새가 뻐꾸기의 침입을 알고 대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뻐꾸기가 자신의 둥지에 탁란할 줄 아는 뱁새는 둥지를 정성껏 지은 후 고의로 무정란(無精卵)을 낳는다. 무정란 옆에 뻐꾸기가 알을 낳으면 뻐꾸기 알을 깨버린 후 둥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뻐꾸기가 나타나면 뱁새, 개개비 등의 숙주(宿主, host) 새들은 몸집은 작아도 무리를 지어 기생자(寄生者, parasite)인 뻐꾸기를 공격하여 둥지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쫓아낸다. 뻐꾸기의 깃털 색깔과 무늬가 이런 작은 새들의 치명적 천적인 새매를 빼닮은 것은 숙주 새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진화적 적응이다. 사실 뱁새가 새매에게 덤벼드는 건 호랑이 입에 얼굴을 들이미는 꼴과 다르지 않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 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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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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